157화.
러시아와 전쟁을 선포한 멀린.
일개 개인이 단신으로 일국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한다는 역사상 그 전례를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이 행동을 보며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었다.
[ 제아무리 특별한 힘을 가진 마법사라고 하더라도 수십만의 군대를 상대로 정말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멀린이 러시아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한 것은 본인의 생각을 대내외적으로 알리기 위한 일종의 요식 행위이자 퍼포먼스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
[ 마나를 다루는 각성자들의 처우와 지위에 대한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멀린으로서는 각성자를 전쟁 병기로 투입하는 러시아의 행보에 많은 불편함을 느낄 수밖에 없겠죠. 아마 국지적으로 일부 도움은 될 수 있겠지만, 전쟁이 양상을 바꿀 정도로 큰 역할을 하지는 못할 겁니다. ]
단순히 보여 주기식 연출에 불과하다. 설사 전쟁에 직접 참여하더라도 그 역할과 영향력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딱히 부정적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이 상황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에 대해 공통적으로 한 가지를 꼽았다.
[ 그가 아무리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결국, 그도 인간일 뿐이니까요. ]
개인은 어떤 수를 쓰더라도 무수히 많은 이들이 모여 있는 집단과 조직을 이길 수 없다.
인류 문명이 형성되게 된 가장 큰 이유이자 이 세계가 전제 군주와 왕정제를 탈피하여 집단적 민주주의 체제로 나아가게 될 수 있었던 명제.
하지만 멀린이 전장에 모습을 드러내면 드러낼수록, 사람들은 그 기본적이고 절대적인 명제가 깨어져 나가는 것을 보며 입을 열 수 없었다.
[ 크으으윽! 이 괴물! ]
[ 전부 발사! 모든 화력을 다 쏟아붓는 한이 있더라도 멀린을 반드시 제거하라. ]
[ 퍼어어어엉. 콰아아앙. ]
한 사람에게 쏟아지는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양의 막대한 총알과 포탄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처치하고 말겠다는 독기를 잔뜩 품은 러시아군은 쉴 새 없이 공격을 이어 가고 있었지만, 그런 그들의 공격을 맞받아치는 멀린의 얼굴은 너무나도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우우우우웅
그의 씨크릿 쮸쮸 요술봉이 푸른빛을 내며 공명하면 연이어 쏟아지는 수십, 수백 개의 마법들. 하나하나의 마법들이 그리 강력한 위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주 적재적소에 효율적이고 최적의 방법으로 러시아군의 강력한 병기들을 모조리 무력화해 내고 있었다.
[ 이게 정말 너희들이 최선을 다한 거냐? 생각보다 더 한심하네. 군사 강국이라는 간판도 그냥 떼 버려라. ]
혼자서 러시아의 일개 사단을 상대하고 있는 멀린.
이전보다 더 훨씬 강력해진 모습으로 전장을 종횡무진하고 있는 그를 보며 사람들은 이제 이 세상이 변화했다는 것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이제 일개 개인이 국가라는 거대한 조직을 상대로 승리할 수 있는 시대가 와 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말이다.
“와…….”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실시간으로 생중계하고 있는 뮤튜브 영상을 통해 전투 장면을 구경하고 있는 우로보로스의 마법사들은 저마다 각기 다른 표정으로 입을 벌리며 탄성을 토해 냈다.
“방금 봤어? 무영창으로 화염계 마법이랑 빙결계 마법을 동시에 사용한 거?”
“어떻게 완전히 상극의 속성 마법을 저렇게 급박한 전투 상황에서 표정 하나 안 바뀌고 사용할 수 있는 거지?”
“세상에 맙소사……. 도대체 공간 장악력이 얼마나 강력한 거야? 수천 발의 총알과 포탄을 전부 마나로 통제하고 모조리 되돌려보낸다고?”
“저거 하나하나 전부 다 공간 좌푯값이랑 운동 에너지양 계산해서 벡터값과 변환해야 하는데 저걸 전부 동시에 한다면…….”
“잠깐만……. 지금 동시에 마법을 몇 개나 사용하는 거야?”
“하나, 둘, 셋, 넷……. 최소 열 개……?”
다른 일반인이 봤을 때는 전혀 알 수 없는 사실.
하지만, 마도의 길에 처음 발을 담근 마법사들은 자신이 보고 있는 이 상황이 얼마나 터무니없고 경외스러운 일인지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아니, 저게 가능하긴 한 거야? 나는 1서클 마법 하나 사용하는 데도, 온 정신을 집중해야 30초는 족히 걸리는데…….”
“무슨 머리가 슈퍼컴퓨터로 만들어져 있는 건가?”
“진짜 저 정도면 괴물 아냐? 어떻게 저렇게 급박한 전장에서 저런 피지컬이 가능하냐고.”
고도의 집중력과 정신력을 필요로 하는 마법.
단순한 1서클 하나 사용하는데도 평온한 수련장에서도 오랜 시간이 필요한 이들이었기에 저런 목숨이 오고 가는 치열한 전장에서 3서클 수준의 중급 마법을 물 흐르듯이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멀린의 경지가 이들은 도무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 콰아아아앙! 퍼퍼퍼펑! ]
그리고 그 순간 맹렬한 폭음을 내며 공중에서 갑자기 터져 나간 수십 대의 러시아 공군 전투기들. 공군 전단 하나가 모조리 새까만 화염과 연기를 내며 하늘에서 산산조각이 난 금속 파편이 되어 추락하는 것을 보며 이들은 거의 눈동자가 튀어나올 것처럼 크게 뜨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뭐야! 방금!”
“어떻게 한 거지?”
멀린을 향해 수십 발의 지대공 미사일 쏘아 내기 위해 접근하던 전투기들.
하지만 그 전투기들을 한순간에 모조리 격추해 낸 멀린이 사용한 마법은 그리 엄청난 것이 아니었다.
우우우웅.
허공에 반투명한 상태로 은은한 푸른빛을 뿜어내는 역장.
1 서클 방어 마법 실드.
그 실드를 허공에 전개해 초속 수백 미터의 빠른 속도로 비행하는 전투기가 충돌하게 만들어 한 대당 수백억 원에 달하는 값비싼 전투기를 한순간에 수십 대나 날려 버린 것을 보며 이들은 등 뒤로 밀려오는 소름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저것이……. 진정한 마법사…….”
“본인 스스로를 대마법사라고 부르고 다니는 것이……. 괜히 그런 것이 아니구나.”
“방어 마법을 역으로 활용해 적을 공격한다니. 저런 발상은 도대체 어디서…….”
마법사라는 존재가 가진 힘에 대해서 여실 없이 보여 주고 있는 멀린을 보며 큰 감명을 받은 우로보로스의 학생들은 이내 가슴속에서 울컥 치밀어 오르는 묘한 감정에 이내 기묘한 분위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 아마 죽도록 힘들 거다. 아니, 정확히는 힘들어서 여러 번 죽게 될 것이다. 하지만 죽더라도 여기서 빠져나갈 수 없으니까 일찌감치 포기해라. 나는 졸업하기 전까지는 편히 죽게 놔둘 생각이 없거든. ]
[ 세상에 이런 말도 있잖아? 죽으니까 청춘이다. 죽을수록 강해진다. 일곱 번 죽으면 여덟 번 살아나라. 피할 수 없는 것이 너희들의 운명이니까 그냥 즐겨. 죽는 것도 한두 번 하다 보면 익숙해지지 않을까? ]
[ 꼬우면 입학 서약서에 서명하지를 말든가. 약관 동의는 신중히 해야 한다는 것도 몰라? 본인이 서명해 놓고 이제 와서 무를 수 있으면 계약서를 왜 쓰냐? ]
우로보로스의 그 정신 나간 교육 시스템을 나중에야 알게 된 수강생들을 전부 한곳에 불러다가 초강력 어그로를 끌어 버린 멀린. 그런 그를 완전히 정신 나간 미친 새끼로 생각하고 있었던 우로보로스의 제2기 신입생들이었지만, 그가 보여 주는 무위를 보며 이들은 비로소 그가 했던 이야기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 지금은 힘들겠지만, 견디고 견뎌 내야 한다. 이 세상은 아직 나와 너희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거든. ]
[ 국가와 권력자들은 너희가 가진 힘을 어떻게든 이용하려 할 테고, 그 과정에서 무수히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일들이 강요될 것이다. 이를테면, 강제 징집당해서 원하지도 않는 전쟁터에 끌려가거나 실험체로 이용당하거나 아니면 강제로 어딘가에 갇혀 마나만 뽑혀 나가는 건전지 신세가 될지도 모르지. ]
[ 그런 신세가 되고 싶지 않다면, 너희들이 먼저 아주 날카로운 가시를 가진 골칫덩어리가 되어 줘야 한다. 고슴도치나 호저같이 괜히 건드렸다가는 본전도 못 건지고 오랫동안 고생해야 되는 그런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말이야. ]
[ 최소한 이 새끼를 건들면 나도 무조건 X 된다……. 라는 생각을 심어 줄 정도의 수준은 되어야 하지 않겠냐? ]
마법사가 가진 힘을 만방에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멀린.
그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아 본 적 없는 햇병아리 같은 마법사들은 이제야 비로소 교관들이 왜 그렇게 멀린에 대한 거의 광신도적인 찬양과 존경심을 보여 주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도 언젠가는……. 멀런 님처럼 될 수 있을까?”
“이제 겨우 1서클도 만든 네가?”
“그러게……. 한 500번은 더 죽으면 가능할지도?”
“내가 볼 때 하워드는 한 100만 번은 더 죽어도 불가능할 것 같은데…….”
순식간에 멀린을 자신의 롤모델로 삼으며 저마다의 의지와 열정을 다지는 마법사들. 하지만 그런 그들과 다르게 저 한편에 모여 앉아 있는 소수의 무리들은 멀린이 아닌 다른 한 사람을 바라보며 환호하고 있었다.
“오우! 역시 우리 두식 스승님.”
“캬! 이거지. 이거. 야구 방망이 한 방에 탱크가 절단 나는 호쾌함.”
“마! 저 근육 봐라. 저거. 저거야말로 진정한 남자의 무력이지.”
전직 체육 교사이자 멀린의 직속 수제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런 재능과 다르게 비운의 지능을 가진 반쪽짜리 천재.
김두식.
이번 전장에 멀린과 함께 참여한 그는 비록 멀린보다는 못하지만 나름대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수준으로 이 전쟁에서 러시아군을 상대로 혁혁한 전공을 이루어 내고 있었다.
[ 히이이이익! ]
[ 사신……. 사신이 나타났다! ]
[ 이……이 괴물! 막아! 사령부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 ]
피로 물든 붉은색 야구 방망이 하나를 들고 홀연히 부대 안에 나타나 종횡무진 기지 안을 휩쓸고 다니며 지휘 통제실과 사령부를 쑥대밭으로 만들며 지휘관과 같은 고위 군 장교들만을 골라서 잡아 족치고 있는 두식. 멀린이 만들어서 선물해 준 위장 아티팩트들을 이용해 그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한 타이밍에 홀연히 등장에 그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홀연히 사라지는 유령과도 같은 존재로서 러시아군에게는 그야말로 멀린과 다른 의미로 공포의 대상이었다.
[ 피로 물든 붉은색 야구 방망이를 든 자가 나타나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도망쳐. ]
[ 야구 방망이의 사신……. 그를 직접 마주한 자는 누구도 무사하지 못한다고 하지. ]
[ 그의 먹잇감이 된 이상, 너에게 도망칠 수 있는 방법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아. ]
야구 방망이의 사신(The Repear of Baseball Bat) 김두식.
어딘가 다른 사람한테 소개하기에는 정말 부끄러울 정도로 기묘한(?) 별명으로 불리고 있었지만, 그런 그를 바라보고 있는 차기 힘법사들의 눈에는 그야말로 경외감과 무한한 존경심이 물들고 있었다.
“캬. 마! 마! 봐라. 봐! 저게 진짜 마법사 아니냐!”
“배틀 메이지 학파의 저력이란 바로 저런 것이지!”
“힘법사가 자고로 최고여. 암. 암.”
무언가 우락부락한 근육질의 호쾌한 남성들만이 가득한 무리.
딱 비슷한 놈들만 옹기종기 끼리끼리 모아 놓은 것 같은, 묘하게 엄청난 진입 장벽이 느껴지는 이 힘법사의 무리들은 멀린을 선망하는 다른 우로보로스의 학생들과는 다르게 자신과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두식에게 무한한 동질감과 자부심을 느끼며 그 열정을 불태웠다.
“이 새끼들이……. 체력 단련은 안 하고 여기 모여서 뭐 하고 다들 자빠졌냐? 다 뒤질래?”
벌컥 문을 열고 휴게실 안으로 들어온 제이크.
우로보로스의 1기 졸업생이자 두식의 수제자로 알려진 그는 자신이 도맡아서 가르치는 8명의 힘법사 지망생(?)들을 향해서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손에 들고 있는 핏빛 야구 방망이를 고쳐 잡으며 위협적으로 탁탁 두들겼다.
“이 새끼들은 하여간 좋게 말로 하면 들어먹지를 않아요. 오랜만에 한번 마력으로 전신 마사지나 시켜 줘? 딱 한 대만 더 맞으면 죽기 직전까지 후려패 주면 좀 정신 차리겠냐? 앙?”
훈련을 빙자한 구타를 체벌로서 활용하는 크레이지 배트. 제이크.
그가 훈련이라는 명목하에 진짜 비 오는 날에 먼지 날 때까지……. 아니, 진짜 죽을 때까지 때리는 경우가 부지기수였기에 이 우로보로스에서 그는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는 평소와는 다른 학생들의 반응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저요……. 저부터 때려 주십시오!”
“아닙니다! 제가 잘 맞습니다.”
“마! 어딜 네가 나서냐. 제이크 교관님! 제가 타격감은 여기 이놈들 중에서 제일입니다.”
“전 죽을 때까지 때려 주셔도 됩니다. 어차피 진짜 죽는 것도 아닌데요. 뭐.”
“이……. 이 새끼들이 뭐 잘못 먹었냐? 갑자기 왜 이래?”
우르르 달려와서 얼른 때려 달라는 힘법사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반응에 제이크는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이들을 바라보았지만, 이내 이들의 뜨거운 의지와 열정을 깨닫고는 이내 큰 감명을 받고 야구 방망이를 고쳐 쥐었다.
“오냐……. 오늘 어디 신명 나게 맞아 보자. 이 망할 새끼들아.”
그렇게 둔탁한 파열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한 우로보로스의 배틀 메이지 학파의 수련장.
그곳과는 조금 떨어져 있는 도서관에는 수많은 우로보로스의 마법사들이 두꺼운 책을 부여잡고 저마다의 마법 수련에 그 어느 때보다도 열중하였다.
두 명의 마법사가 보여 준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무력에 큰 감명을 받은 우로보로스의 학생들의 하루는 그 어느 때보다도 치열하게 지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또한…….
- 긴급 속보. 러시아, 우크라이나 정부에 공식적인 전쟁 협상 제안.
- 이 이상의 교전 행위는 무의미. 한시적인 휴전의 뜻을 밝혀.
이 세계의 미래는 거대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완전히 뒤바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