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화.
우크라이나의 알렉세이 대통령을 처치하기 위해서 찾아든 러시아의 암살조.
이들은 단순히 무장한 특수부대가 아니라 마나를 각성한 능력자들이었기에 우크라이나군 내부에는……. 아니, 이 세상에서 자신들을 막아 낼 수 있을 존재는 없으리란 생각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상상은 터무니없는 자기 과신과 오만으로 비롯된 착각에 불과했다.
“이럴 수가…….”
암살에 성공하면 안전한 장소로 모두를 이동시키는 탈출 임무를 맡고 있었기에 일찌감치 뒤틀린 공간의 틈새 속에 숨어서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며 대기하고 있었던 이반.
그는 그토록 강력한 능력을 가졌던 다른 동료들이 제대로 된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하나하나 죽어 나가는 그 모든 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며 그 어느 때보다도 엄청난 공포를 느꼈다.
“이게 전부인가? 솔직히 좀 시시하네.”
다른 4명의 동료를 단신으로 모조리 처치한 멀린.
흔적도 없이 이 세상에서 완전히 존재 자체가 지워져 버린 드미트리를 시작으로 커다란 얼음덩어리 속에 갇힌 채 죽어 버린 마야와 새까만 숯덩어리로 변해 버린 빅토르. 거기에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채 피를 쏟으며 죽어 버린 올가까지…….
모두 자신이 발현할 수 있는 능력보다도 더욱 우월하고 압도적인 힘 앞에 허무한 죽음을 맞이한 것을 보며 이반은 본능이 외쳐대는 머릿속 울림에 침을 꿀꺽 삼켰다.
‘위험해……. 이건 정말 위험해…….’
비록 나이가 다른 이들보다는 한참이나 어리다곤 하지만, 명색이 마나를 다룰 수 있는 각성자이기에 그는 자신과 몇 살 차이 나지 않는 저 작은 체구의 멀린으로부터 피어오르는, 감히 헤아릴 수 없는 강대한 마력의 폭풍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무방비로 아무런 생각 없이 서 있는 것 같은 그.
하지만 그의 주위로 맹렬하게 휘몰아치고 있는 마나의 파동은 그 누구도 감히 접근할 생각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그 일대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다.
“저게…… 진짜 마법사…….”
단순히 공간을 비틀거나 화염이나 냉기를 다루는 등 한낱 잔재주 수준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마나를 이용하고 다양한 형태로 그 힘을 발현하는 멀린을 보며 이반은 형용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두려움. 부러움. 동경심. 경외감…….
무어라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감정을 느끼며 자신이 만들어 낸 공간 속에서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저 어마어마한 괴물이 떠나가기만을 가만히 기다리던 이반.
하지만, 상황은 그런 그의 간절한 기대와는 다르게 완전히 정반대로 흘러갔다.
“그래서…… 너는 언제까지 거기 숨어 있게?”
정확하게 자신과 눈을 마주치며 물어오는 멀린.
그리고 그 순간, 알 수 없는 무형의 힘이 사방을 휘몰아치며 이반이 만들어 낸 미약하기 짝이 없는 공간의 장막을 찢어발겼다.
파지지지직.
“끄……끄아아아악!”
갑작스럽게 밀려드는 고통에 바닥에 쓰러져 신음하는 이반. 그리고 그는 어느새 자신의 바로 앞에 다가와서 한심하다는 듯이 중얼거리는 멀린의 목소리를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공간의 공백을 자유롭게 오가는 능력이라……. 자연적으로 튀어나오기에는 희귀한 능력이기는 한데 그런 식으로 수식 계산도 전혀 없이 대충 머릿속에 연상되는 이미지만을 이용해서 사용하다가는 나중에 큰일 난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멀린.
그리고 그는 정신도 차릴 수 없어 바닥에 엎어져 헐떡거리고 있는 이반에게 할 수 없는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설명했다.
“현실 세계와 이면 세계 사이에 존재하는 아주 약간의 틈새에 발을 들이미는 건 좋은데, 기본적으로 차원 좌표의 기준점만큼은 계산하고 사용해야지. 그렇게 안전 조치도 전혀 없이 사용하다가 까딱 실수라도 하면 흔적도 없이 몸이 원자 단위로 분해되는 것도 모르지? 운 좋아야 사망이고 최악인 상황에는…… 어휴. 말을 말자.”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가로젓는 멀린.
그리고 그는 조금은 호흡을 가다듬고 정신을 차린 이반을 향해 몸을 굽히곤 눈을 마주한 채로 물었다.
“네가 그렇게 러시아군 사이에서도 소문난 사이코패스라며? 생긴 건 완전 순진무구한 어린애면서 웃으면서 사람들 고문하고 다니는 게 취미인 변태라고 하던데?”
“그게 무슨……?”
내 물음에 흠칫하며 되묻는 이반. 그리고 그는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 같은 표정으로 울먹이며 불쌍한 피해자 연기를 하기 시작했다.
“저……저는 그냥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한 게 전부예요. 고문이라니요? 저는 그런 적 없어요! 정말이에요!”
[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면 안 돼, 주인. 저 새끼는 사람 사지를 으스러뜨려 놓고 즐거워하며 웃는 놈이라고. 무슨 악취미인지는 모르지만 본인 스스로 찍어서 저장해 둔 영상도 몇 개 있다. ]
용용이의 고자질을 통해 마법사의 이미지를 제일 박살 내놓고 있는 주범이 누구인지를 일찌감치 파악하고 있었기에 나는 씨알도 먹히지 않는 거짓말을 하는 이반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지랄.”
“…….”
“밑장 빼기도 사람 봐 가면서 해야지. 이미 다 알아보고 온 사람 앞에서 어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인 척 연기하고 있어? 그런다고 내가 뭐 봐주기라도 할 것 같냐.”
멸망 이후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가장 첫 번째 원칙.
그것은 바로 아무도 믿지 않는 것이었다. 특히, 어린아이일수록 더더욱.
“원래 도덕성이나 사회성이 발달하지 못한 어린애일수록 더 악랄하고 순수한 악 그 자체인 경우가 많다는 말이지. 너처럼 불쌍하게 연기하는 놈한테 호의를 베풀며 먹을 것 나눠 주고 데리고 다니다가 잠자는 사이에 칼침 쑤셔 맞고 죽어 나간 새끼들 내가 한두 번 본 줄 아냐?”
“그때 야밤에 자기 살려 준 은인을 찌르고 식량을 모조리 훔쳐먹었던 그 애가 몇 살이었게? 자그마치 9살이었어. 9살. 농담이 아니라 딱 너 같은 표정을 지으면서 자기가 안 그랬다고 발뺌하더라.”
어리다고 방심하다가 너무나도 허무하고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 이들을 셀 수도 없이 많이 봐 왔기에, 이미 이런 상황에 면역이 있던 나는 이반의 같잖은 연기에 냉소적인 미소를 지으며 싸늘하게 말했다.
“어리다고 방심하다 칼침 맞고 뒤지는 험악한 곳이 바로 이 세상인데. 게다가 그 대상이 마나를 다룰 수 있는 능력자다? 그러면 나이는 더더욱 의미가 없는 거야. 고작 5살짜리 어린애라 하더라도 잘만 하면 다 큰 성인 남성도 죽일 수 있을 정도거든.”
우우우우웅.
일말의 자비나 동정심도 없이 오히려 더욱 냉소적으로 말하며 마나를 끌어올리자 순식간에 표정을 바꾸며 얼굴을 잔뜩 일그러트리는 이반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기습적으로 능력을 사용하였다.
“이익…… 제기랄!”
챙그랑.
그 순간,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가 들리며 허공이 생겨나는 검은색의 구멍. 그리고 그 속으로 뒤도 보지 않고 뛰어가며 도망치려는 이반을 바라보며 나는 황당하다는 눈빛을 지었다.
“하…… 재밌는 친구네.”
대마법사인 내 앞에서 감히 마법 같지도 않은 공간 이동으로 도망치려는 이반.
외부 간섭에 무척이나 취약한 공간 계열 마법을 그 어떤 안전 조치나 방지책도 없이 대놓고 사용하며 도주하려는 이반의 무모한 시도를 그저 가만히 바라보던 나는 너무나도 버젓이 드러나 있는 그의 공간 좌표를 왜곡시켜 버렸다.
우우우웅.
그가 들어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닫혀 버리는 공간의 틈새.
일대에 퍼져 있던 마력의 감지망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이반의 존재를 확인한 나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그저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렸다.
“알아서 죽으러 뛰어들다니. 저건 다른 놈들보다도 더욱 싱거운 최후인데?”
[ 도대체 어디로 보낸 거야? 주인? ]
“몰라? 나도 그냥 아무 좌표나 적어 놨는데?”
[ 뭐……? ]
“땅속 깊숙한 곳이나 심해 속……. 그것도 아니면 저 하늘 상공 어딘가로 이동했겠지.”
진짜 아무 생각 없이 무작위로 그의 이동 좌표를 바꿔 버린 상황.
하지만 뭐가 되었든 일단 그를 지표에서 꽤 멀리 떨어진 곳으로 지정해 놨었기에 나는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앞으로 살아서 다시 볼 일은 없을 인간인데 알 게 뭐야?”
[ 하여간…… 악랄하다니까. ]
툴툴거리는 용용이의 말에 나는 피식 웃으며 주변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눈을 돌렸다.
“저건 도대체 누구지……?”
“저 아이…….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우리 편인 건가?”
상황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어 가는 분위기에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우크라이나의 군인과 경찰들. 호기심 반, 두려움 반의 눈빛으로 나와 쓰러져 있는 러시아의 암살자들을 바라보며 수군거리는 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이내 목을 이리저리 꺾으며 중얼거렸다.
“자……. 그럼 대충 위급한 상황들은 모두 정리된 것 같으니……. 이제부터 나머지는 여기 엑스트라들에 맡겨 두고 우리는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러 가 볼까?”
[ 뭐? 지금 바로……? ]
철두철미하게 비밀에 부쳐진 채로 미국의 수송 작전 아래에 이제 막 우크라이나에 도착한 상황. 혹시라도 모를 정보 유출에 대비하고자 내가 이곳에 도착한 사실은 우크라이나의 지도자인 알렉세이 대통령에게조차도 알려지지 않았기에 용용이는 놀란 목소리로 나를 만류하기 시작했다.
[ 너무 위험하지 않겠어? 주인? ]
제아무리 전지의 권능을 가진 대마법사라 하더라도 육신은 한낱 인간에 불과한 나였기에 그는 혹시 모를 최악의 사태를 우려하며 말했다.
[ 미국 정부가 우크라이나군이랑 협력해서 전쟁에 개입하라고 했잖아. 목숨이 여러 개 있는 것도 아닌데 괜히 혼자서 전쟁터 한가운데에 뛰어들 필요가 있어? 전장의 마법사는 그런 존재가 아니잖아. ]
판달리아의 전쟁에서 마법사는 아주 희귀하고 또 강력한 전쟁 병기이다.
대규모 화력을 투사할 수 있는 화포와 미사일 같은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그곳에서 전장의 꽃이라 불리며 대규모 화력을 일순간 투사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들인 마법사.
그렇기에 이들은 언제나 전장에서 최우선으로 보호받는 대상이었으며 동시에 그 어떤 상황에서도 가장 먼저 제거되어야 하는 목표물로서 적들의 집요하고 치밀한 공격을 받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다시 말해서 마법사 혼자 전장 한가운데로 뛰어드는 짓은 엄청나게 멍청하고 무식한 짓이라는 의미. 하지만 나는 그런 용용이의 걱정스러운 우려에 피식 웃으면서 화답했다.
“그건 ‘일반적인’ 마법사에 국한된 이야기잖아.”
[ 뭐……? ]
마법 하나 쓰면서도 짧게는 수십 초에서 길게는 수십 분의 준비 시간이 필요한 마법사들. 하지만 그저 의문 하나만 떠올리더라도 그 모든 답을 자연스럽게 깨닫고 통찰할 수 있는 나에게 마법을 시전한다는 것은 마치 태어날 때부터 호흡하는 방법을 본능적으로 아는 것과 같이 너무나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들이었다.
그렇기에…….
“이동.”
우우우웅.
그저 마력을 끌어올리고 의지를 발현하는 것 하나만으로 내가 있던 주변의 세상은 변화했다.
“뭐……뭐야!”
“뭐지 방금……?”
“어떻게 여기까지 들어온 거야?”
방금 우크라이나의 수도 한가운데에서 수십 킬로미터는 더 떨어진 곳에 자리한 부차. 러시아군이 기습적으로 점령해서 장악하고 있는 그곳으로 공간 이동한 나는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나를 보며 당황한 러시아군을 향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누가 봐도 미친놈처럼 보이는 복장으로 나타난 앳된 외모의 동양인 소년. 딱 보기에도 수상함이 풀풀 묻어나는 나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던 러시아의 군인들은 이내 위협적으로 총을 겨누며 소리쳤다.
“손 들고 엎드려!”
“움직이면 쏜다! 허튼짓할 생각은 하지 마라!”
하지만 나는 그런 이들의 말에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그저 품속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는 이내 스트리밍을 시작하고는 이내 용용이에게 짤막하게 말했다.
“용용아. 러시아 쪽에서 내 영상 차단하지 못하게 알아서 잘 관리해야 된다. 알지?”
[ 알겠어. ]
전 세계에서 수십억 명이 구독하고 있는 초대형 채널인 내 뮤튜브.
이제는 마나 링크를 통해 확장된 서버로 인원 제한 없이 무제한으로 생방송 시청자들을 받아 줄 수 있었기에 나는 수천만…… 아니, 수억 명이 시청하게 될 방송을 켜고는 선언했다.
“안녕하냐. 이 미개한 인간들아. 형은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정의의 대마법사. 멀린이다.”
방송을 켜자마자 우르르 들어오기 시작한 전 세계의 사람들.
그리고 무슨 상황인지 몰라 의아해하는 이 모두를 향해서, 나는 작게 읊조렸다.
“누군가는 말했었지. 전쟁이라는 것은 정치적, 외교적인 모든 평화적 수단이 들어 먹히지 않았을 때 사용하게 되는 최후의 무력적인 방법을 통해 자국의 의지를 강요하기 위해 행하는 것이라고.”
전쟁론에서 가장 대표되는 인물인 클라우제비츠가 했던 이야기.
비록 이 상황에서 나는 국가가 아닌 그저 일개 개인에 불과했지만, 일국의 군대에 버금가는 무력을 가진 주체로서 나는 아무런 설명도, 해명도 없이 그저 간략하게 선언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러시아의 완전하고도 무조건적인 항복. 그리고 그러한 내 요구 조건이 이행되기 전까지…….”
“지금부터 나 멀린은 러시아에 공식적인 전쟁을 선포한다.”
세계 최대의 핵보유국이자 서열 2위의 군사 강국인 러시아를 상대로 한…….
선전포고(宣傳布告)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