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화.
마나 링크의 출시와 관련한 기자 회견에서 아무런 가식이나 체면치레도 하지 않고 솔직하게 자기 생각을 밝힌 나의 발언은 엄청난 화제를 몰고 왔다.
[ 통신사들을 망하게 만들려고 요금제 공짜로 책정한 거 맞다고요. ]
[ 그런 기생충 같은 기업들을 굳이 살려 줘야 할 필요가 있는지 저는 잘 모르겠네요. ]
[ 누가 칼 들고 협박했어요? 지가 망하게 생겼다고 왜 저한테 지랄이에요? ]
자극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주옥같은 발언들만 따로 편집되어 보도될 정도로 온갖 뉴스와 기사에 내 얼굴이 도배되고 있는 상황. 그리고 그걸 보며 제일 절망하며 탄식을 내뱉는 사람은 다름 아닌 아영이였다.
“정말이지……. 못 말린다니까…….”
할 말이 참 많다는 듯,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째려보고 있는 아영. 말로 굳이 표현을 안 했을 뿐이지, 눈으로 나를 잔뜩 욕하고 있는 듯한 그녀는 이내 답답하다는 듯이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었다.
“한숨 좀 그만 쉬어요. 그러다 땅 꺼지겠어요.”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나는 능글맞은 표정으로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아영에게 말했지만, 그녀는 너무나도 쉽게 웃는 얼굴에 가래침을 뱉었다.
“……. 지금 누굴 놀리는 것도 아니고 이 상황에 그런 말이 나와요?”
잔뜩 신경질을 부리며 날카롭게 나오는 아영. 그리고 그녀는 내가 저지른 일에 대해서 어마어마한 잔소리를 쏟아 내기 시작했다.
“아무리 의도가 그렇다고 하더라도 전 국민이 지켜보고 있는 상황에서 그런 말을 무턱대고 하면 어떻게 해요? 그러면 우리가 무슨 멀쩡한 기업 박살 내고 다니는 악랄한 악당 기업처럼 보이잖아요.”
경쟁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기술 격차를 가진 마나 링크를 무기로 통신 시장을 완전히 평정해 버리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밝힌 멀린. 그리고 거기에 기존 통신사들을 무자비하게 밟아 버리겠다는 그 속내까지 밝혀 버린 탓에 통신사들은 그야말로 자신들의 생존을 건 즉각적으로 투쟁에 나섰다.
[ 매지컬 네트워크는 의도적으로 경쟁 사업자인 기존 통신사들을 몰락시키기 위해서 차별적이고 부당하게 거래를 배제하겠다는 그 뜻을 공개적으로 밝혔습니다. 이는 시장 질서를 교란하고 경쟁자를 제거하여 통신 산업에서 독점적인 우월적 지위를 확보하려는 의도로 명백한 불공정거래 행위입니다. 이에 통신 3사는 현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공정거래위 제소를 비롯해 모든 법적 조치를 통해 매지컬 네트워크의 독주를 막아설 것입니다. ]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기나긴 법정 투쟁에 들어가겠다는 통신사들. 매지컬 네트워크의 모회사인 매지컬 컴퍼니 역시 그 소송의 주체 중 하나였기에 아영은 갑작스러운 송사에 휘말리게 된 이 상황을 보며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불공정 경쟁 행위로 공정위에 제소하고 법적 소송까지 불사하겠다고 나서는 거 안 보여요? 사실이 그렇다고 해도 거짓말로라도 아니라 해야지. 뭐든 꼬투리 안 잡히게 조심해도 모자란 상황에 왜 굳이 필요 없는 짓을 해서 일을 키우는 건데요?”
기자 회견을 하지 말거나 거짓말을 해서 에둘러 넘어갔었어야 한다며 투덜대는 아영.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 나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전 거짓말 못 해요.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마나를 다루는 주체는 함부로 거짓말을 해서는 안 돼요.”
“예……? 그건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은 단순한 말하기가 아니라, 자신의 의지를 세계에 발현(發現)하는 하나의 방법이라서 말 하나하나에 신중해야 하죠.”
한없이 낮은 격을 가진 저 서클의 마법사라면 모르겠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특히 초월적인 힘과 격을 가지고 단순한 말 한마디로 내비친 의지의 발현으로도 세계의 법칙을 뒤틀 수 있는 언령(言令)의 권능을 가진 고 서클의 대마법사나 드래곤, 하이 엘프, 정령왕 등과 같은 존재들에게 거짓말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였다.
“자신의 의지와 사실에 반(反)하는 이야기를 의도적으로 하는 것은 즉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뒤흔드는 위험천만한 행위죠. 악마 같은 존재로 격이 낮아지거나 타락할 수 있는 짓을 고작 이딴 일에 저지르면 그거야말로 정신 나간 짓 아닌가요? 저 그렇게 격 떨어지는 인간 아니거든요.”
“……?”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이 황당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아영.
전혀 이해를 못 하는 표정이었지만, 나는 그저 어깨를 으쓱하며 되물었다.
“그리고……. 어차피 지금 상황이 거짓말로 어물쩍 넘겼다고 해서 정말 달라질 게 있었다고 생각하세요? 제가 솔직하게 말하지 않았더라도 통신사들은 분명 법적 소송을 통해서 어떻게든 저희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졌을 거예요.”
내가 원하는 것은 한국 통신사들의 파멸이기에 무슨 조건을 내밀어도 그들과의 거래에 응하지 않을 생각인 상황. 결국 언젠가는 벌어질 일이었기에 나는 그저 그 시기를 최대한 앞당겨 준 것이 전부였다.
“그건 그렇지만…….”
그런 내 설명에 할 말이 없어진 듯 우물거리는 아영. 그런 그녀에게 나는 피식 웃으며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좋게 생각하자고요. 그래도 제가 그렇게 총대 메고 나서 준 덕분에 대중들의 여론은 호의적이잖아요?”
통신사들이 저지른 갑질과 업보로 인해 쌓여 온 것이 많았던 일반 소비자와 기업들. 무료로 모든 서비스를 제공해 준다는 것만 하더라도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었지만, 내가 진정한 속내를 밝히고 나자 이들은 그야말로 무서울 정도로 매지컬 컴퍼니와 네트워크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보여 주고 있었다.
- 키야. 내 속이 다 시원하다
- ㅋㅋㅋㅋㅋ. 통신사 새끼들 전부 X 됐네. 너무 좋고.
- 예전에 데이터 요금으로 갑질한 것만 생각해 봐도 오래전부터 망했어야 할 회사들임.
- 시장 독점? 우월적 지위? 지금 이게 저 새끼들 입에서 나올 단어가 맞나?
- 무슨 낯짝으로 저러지. 비싼 요금제 가입해도 속도 제한 걸고 사기나 치던 새끼들인데?
불쌍해하거나 안타까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잘됐다고 춤을 추며 싸늘하고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는 여론. 거기에 이를 규제하고 중재할 정부마저도 내 영향력 안에 있었기에, 나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아영에게 말했다.
“이미 통신사들의 몰락은 기정사실화된 사안이에요. 침몰하는 배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 보려고 발버둥 치는 쥐새끼들의 저항에 그리 머리 쓰지 말자고요.”
“한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의 통신 규약을 마나 링크로 전환하는 것만 해도 아영이 처리해야 할 일은 넘쳐나니 말이죠.”
“…….”
히죽 웃는 나의 얼굴과는 다르게 완전히 똥 씹은 표정이 되어 버리는 아영.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산더미 같은 서류 더미를 한번 내려다보고는 다시금 깊은 한숨을 내쉬며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어휴……. 진짜 이 망할 놈의 세상…….”
세상의 멸망을 막아서기 위해 하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열심히 서류 더미에 파묻혀 있는 아영. 그녀는 여느 때나 마찬가지로 자신이 이 세상을 지켜 내는 것인지, 아니면 어느 정신 나간 마법사랑 함께 다른 방법으로 세상을 망하게 만드는 것인지에 대해 오늘도 깊은 혼란과 회의감에 빠져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서류철을 집어 들었다.
“망하든지 말든지 그냥 나 몰라라 했어야 하는 건데…….”
세계를 혁신하며 기록적인 매출과 영업 이익을 달성하는 세계 최대, 그리고 최고의 마법 공학 기업. 매지컬 컴퍼니의 초대 회장. 이아영.
머나먼 미래에 세계사에 기록되어 인류 모두에게 영원히 기억될 정도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간 그녀의 업적 대부분은 전혀 예상치도 못한 상황 속에서 벌어지곤 했다.
어느 치졸하며 쪼잔하고 정신이 반쯤……. 아니, 완전히 나간 것 같은 광기 어린 중2병 말기 환자의 복수극에서부터 말이다.
* * *
아영이 서류 더미 속에 파묻혀 절규하고 있을 그때.
나는 아영의 집무실을 나와 확장 이전하며 몰라보게 커진 매지컬 컴퍼니의 사옥을 천천히 걸으며 바쁘게 일하는 직원들의 모습을 살펴보며 다녔다.
“어……? 저 망토는 설마……?”
비록 최근에 큰 유행을 타서 예전보다는 덜하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눈에 팍 띄는 존재감을 가진 마법사 복장. 거기에 이제 갓 17살이 된 내 앳된 외모는 이 회사 안에서는 너무나도 이질적인 얼굴이었기에 직원들은 이 회사의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는 실질적인 소유주의 등장을 몰라볼 리가 없었다.
[ 야. 대박! 지금 우리 회사에 멀린 떴다! ]
[ 어머머! 어머머! 정말! ]
누군가가 뿌린 사내 메신저를 통해 순식간에 퍼져 나간 소문. 그리고 이내 사방에서 묘한 분위기가 감돌더니 이내 내 마력이 닿는 곳곳에서 온갖 이야기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 또 무슨 일 터지는 거 아냐? ]
[ 설마. 이제 막 매지컬 네트워크 만들면서 일 시작했는데 또 그러겠어? ]
[ 야. 너 아직도 모르냐? 멀린이 사장님 찾아오고 나면 무조건 뭔가 큰 거 하나 더 터져. ]
[ 에이……. 설마……. 지금 인력으로도 포화 상태인데……. 아니겠지. 아닐 거야. ]
“……?”
정말 불안하다는 듯이 현실 부정하는 온갖 직원들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는 상황에 나는 잠깐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과거의 일들을 떠올려 보면 이들의 이런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긴……. 그러고 보면 최근 벌여 둔 일이 많기는 했지.”
회사가 설립된 지 고작 2년을 조금 넘어가는 상황. 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에 이 매지컬 컴퍼니가 이루어 낸 성과는 감히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탄자니아를 비롯한 전 세계의 광물 자원의 독점적인 채굴 및 제련.
전 세계에 공급할 마나석의 독점 생산 및 유통.
이 두 가지만 해도 전 세계를 상대로 하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사업이었기에 이것만 해도 고작 수백 명의 직원이 감당하기에는 벅찰 정도의 업무였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마법 학교. 우로보로스와 천공섬. 우라노스의 건설.
멀린의 정원의 여러 마법 작물과 생명체들에 대한 삼진 바이오와의 합동 연구 개발.
삼진 물산과 여러 패션 브랜드와 함께 협업해서 만든 신개념 마법 망토의 생산.
거기에 새롭게 이번에 출범한 매지컬 네트워크와 관련한 업무까지…….
농담이 아니라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 수준으로 방대하고 또 살인적인 수준의 업무량. 그로 인해 대규모 인력 충원을 위한 신규 채용을 준비 중이라고는 하지만 당장 업무에 투입할 수 있는 인력이 그리 많지 않았기에 지금은 기존 직원들을 농담이 아니라 갈아 넣으면서 어찌어찌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쩝……. 당분간은 적당히 일 만들지 말고 조용히 있기는 해야겠네.”
아무리 내가 인권을 경시한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인간의 도리가 무엇인지 아는 고용주. 월급 준 만큼만 일을 시킨다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상식으로 머릿속에 탑재하고 있었기에 나는 어느 정도의 선을 지킬 수 있는 참된 인간이었다.
[ 주인. ]
“어? 왜.”
최근 마나 링크를 통해 접속할 수 있는 정보의 세계 속에 빠져 사느라 나에게 말을 걸 시간도 없이 혼자만의 시간(?)에 정신이 없는 용용이.
실시간으로 쏟아져 나오는 모든 정보를 관조하느라 정신이 없는 그가 현실에서 나에게 말을 거는 것은 근래에는 흔치 않은 일이었기에 나는 의외라는 듯이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무슨 일 있어? 웬일로 용용이 네가 먼저 말을 거냐?”
[ 주인이 저번에 이야기했던 나라 있잖아. 거기 요즘 뭔가 이상한 것 같은데? ]
인터넷을 통해 여러 국가의 기밀 정보망에 몰래 침투해 이것저것 들춰 보는 변태적인(?) 짓에 재미가 들인 용용이. 그가 또 무슨 이상한 정보를 물고 온 것 같은 묘한 어조로 말하자 나는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어디? 북한?”
[ 아니, 거기 말고. ]
최근 전 세계의 여러 국가에 집중적으로 두드려 맞고 있는 북한. 그들이 또 무슨 짓을 꾸미고 있나 싶어 물었지만, 용용이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나라를 언급했다.
[ 그 뭐냐……. 북한이랑 친한 나라 있잖아. 러시아. 거기 군사망에 올라온 정보인데 내용이 좀 수상한데? ]
“뭐……?”
[ 확인해 봐. 주인이 가진 그 스마트폰에다가 전송할 테니까. ]
과거, 전 세계를 멸망으로 몰고 올 세계 3차 대전의 가장 첫 신호탄을 쏘아 올렸던 나라.
러시아.
그들의 군사망에 올라왔다며 용용이가 보내 준 그 문서에는 이미 내가 경험하고 왔던 미래의 전철을 다시 밟고 있는 이들의 어리석은 첫걸음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 우크라이나 특별 군사 작전 명령서 ]
원래 역사로는 2022년 초에 시작되었을 전쟁.
나라는 변수로 인해서 그 전쟁의 발발을 사전에 입수한 미국 정부의 노력 덕분에 2022년에는 일어나지 않고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전쟁 자체를 완전히 없는 것으로 만드는 것에는 실패했다.
“그 화려한 똥꼬쇼에도 불구하고 고작 1년이라는 시간만 번 게 전부인가…….”
러시아와 그 주변국을 상대로 당근과 채찍을 현란하게 휘둘렀음에도 결국 바꿀 수 없었던 결말. 인류의 파멸을 향해 나아가는 이 강력한 운명의 흐름 속에서 나는 묘하게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주변에서 내 눈치를 보며 어색하게 고개를 숙이는 직원들을 바라보고는 중얼거렸다.
“피로 해소에 특효약인 회복 물약이나 잔뜩 만들어 줘야겠네.”
하여간 일복이 터진 매지컬 컴퍼니의 직원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