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북한 정찰총국 산하의 사이버 해킹 범죄 조직 라자루스.
이들이 다른 컴퓨터들을 해킹하기 위해서 만들어 낸 바이러스와 악성 코드는 셀 수조차 없을 정도로 많았지만, 그중에서 가장 악질적인 바이러스는 바로 랜섬웨어 프로그램이었다.
온갖 자극적이고 호기심 넘치는 제목의 글이나 이메일에 심어 두고 사람들을 유혹하고 내부에 프로그램을 깔고 실행하자마자 컴퓨터 내부의 모든 파일을 무차별적으로 암호화해 절대 알아볼 수 없게 만들어 놓고 돈을 주라고 협박하는 사이버 인질극이나 다름없는 랜섬웨어.
대부분의 일반적인 사용자들이라면 이러한 상황에 놓이면 돈을 주느니 차라리 모든 데이터를 포기하고 컴퓨터를 포맷하는 길을 선택했겠지만, 그건 지금 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이들에게 해당하는 일은 아니었다.
- 뭐냐 이거? 바이러스 먹은 것 같은데 혹시 누구 아는 사람 있냐?
어느 한 인터넷에 올라온 사진 한 장. 전형적인 랜섬웨어에 걸려 있는 컴퓨터의 바탕 화면의 모습이었지만, 그 바이러스가 띄워 놓은 안내문의 내용은 일반적인 것들과는 사뭇 달랐다.
[ 당신의 컴퓨터는 앞으로 3일간 정지되었습니다. ]
- 이는 컴퓨터에 빠져 매일같이 인생을 낭비하는 당신이 갓생을 살게 하도록 내린 일시적인 조치입니다. 당신이 컴퓨터를 포맷하거나 프로그램을 종료하려는 시도는 모든 데이터를 복구 불가능한 상태로 만들 뿐만 아니라 치명적인 부품 손상을 초래할 수 있으니 허튼수작은 하지 않기를 강력히 권고합니다. 3일 후에 모든 파일이 복구되며 해당 프로그램은 완전히 자동으로 삭제되니 안심하고 갓생을 즐기시기를 바랍니다.
돈이나 가상 화폐를 자신들의 계좌로 송금하라는 내용이 아니라 그저 3일 동안 쉬고 오라는 이상한 요구를 하는 바이러스. 그 엉뚱한 조건을 보며 사람들은 황당해했다.
- ㅋㅋㅋㅋㅋ 어떤 새끼가 만든 바이러스냐? 갑자기 뼈 때리는 문구네.
- 야. 바이러스 걸린 거에 감사해라. 너 갓생 살라고 조언하잖아.
- ???: 너 컴퓨터 3일 압수.
- 그냥 조금 머리 좋은 개발자가 장난으로 만든 프로그램 아님?
그저 지금의 상황을 일종의 장난이자 단순한 웃음거리로 정도로 넘어가는 사람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들은 이게 단순한 장난이나 농담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 긴급 속보입니다. 최근 인터넷을 통해 랜섬웨어 바이러스가 확산하고 있어 한국 정부가 사이버 위기 경보를 4단계인 심각으로 격상했습니다. 격상 이유와 관련해서 세부적인 내용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미국과 중국, 러시아, 일본, 독일 등 여러 국가의 금융 전산망 시스템에 해당 바이러스에 감염된 상태라는 확인되지 않는 정보가 세간에 나돌고 있고 한국의 금융 당국도 이에 바짝 긴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
[ 미국 재무부가 긴급 기자회견 브리핑을 통해 미국의 4대 은행 중 두 곳인 웰스 파고와 뱅크 오브 아메리카의 전산망 서버가 정체를 확인할 수 없는 이들에 의해 사이버 테러 공격을 당했다고 밝혔습니다. 현재 수사 당국과 여러 전문가가 총력을 다해 이들의 전산 시스템을 복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해당 은행을 이용하는 모든 고객의 금융 정보를 안전하게 보호하고 추가적인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이번 주말을 포함해 3일 동안 해당 은행들에 대한 모든 긴급 거래 정지를 명령했습니다. ]
[ 시청자 여러분의 컴퓨터는 무사하십니까? 지금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는 랜섬웨어 바이러스에 대한 경계심이 최고조에 이르렀습니다. 영국의 재무장관이 1시간 전에 영국의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이 해당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는 루머가 사실이라고 공식 시인했습니다. 이로써 현재까지 해당 바이러스에 일본과 중국,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중앙은행까지 감염된 국가로서는 4번째입니다. ]
그 어느 기업이나 컴퓨터보다도 보안이 철저한 금융 전산 네트워크.
일반 대중들이 이용하는 인터넷과는 다르게 독립된 서버 안에서 운용되는 금융망에 침투한다는 것은 어지간한 수준의 해커로는 꿈도 못 꿀 일이었지만 이 바이러스는 단순히 전산망에 침입하는 것을 넘어서 완전히 시스템을 장악하고 나아가 한 국가의 모든 경제 정책과 주요 흐름을 관장하는 금융계의 심장부인 중앙은행에까지 칼을 꽂아놓았다.
한 해커가 이룩했다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거대한 위업.
하지만 그 바이러스를 확보해 코드를 뜯어서 분석해 보기 시작한 보안 전문가들은 이것이 비단 단순한 장난으로 만들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니까……. 그 바이러스가 블랙 등급의 수준이라는 말인가?”
미국 NSA 산하의 사이버보안국에서 분류해 놓은 등급 중에서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내린 적이 없는 최고 등급의 판정인 블랙 등급을 즉각적으로 내린 걸 보며 NSA 국장의 표정은 심각하게 변했다.
“그렇습니다. 프로그램의 정교화된 코드와 난해함. 그리고 그 복잡한 구조는 일반적인 다른 랜섬웨어와는 그 궤를 완전히 달리합니다. 특히 겉으로 보기에는 일반적인 랜섬웨어처럼 보이지만, 사용자가 프로그램을 제거하거나 삭제, 혹은 시스템 자체를 완전히 초기화하려고 시도한다면 그 안에 숨겨진 본성을 드러내게 됩니다.”
사이버보안국에서 가장 뛰어난 인재로 알려진 수석 분석가의 확신에 찬 브리핑. 그리고 그는 약간 숨을 작게 내쉬고는 지금까지 확인된 내용들을 보고하기 시작했다.
“해당 랜섬웨어 프로그램에 감염된 상태에서 컴퓨터를 종료하거나 시스템 초기화에 돌입하게 된다면, 그때부터 프로그램 내부에 숨겨져 있던 킬 코드(Kill-Code)가 활성화되게 됩니다. 그러면 무차별적으로 컴퓨터 안의 모든 데이터를 삭제하기 시작하고 나아가 메인 바이오스의 모든 리미트를 해제하고 시스템 내부의 전압을 비정상적으로 조작해 물리적으로 컴퓨터 자체를 파괴하기 시작합니다.”
“저희가 시도했던 그 어떤 방법으로도 현재 해당 랜섬웨어에 감염된 상태에서 시스템을 복구하거나 내부 데이터를 빼낼 수 없었습니다. 또한 프로그램의 코드 대부분은 도무지 그 작동 방식과 기능을 이해할 수 없는 생소한 것들이 대부분이기에 분석에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복구가 어려운 상황. 하지만 이미 미국의 주요 은행 중 2곳의 전산 서버가 완전히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었고 그 안에는 수십억 개가 넘는 고객들의 계좌와 방대한 금융 전산 데이터가 인질로 묶여 있었기에 NSA 국장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골치 아프군……. 아무런 조건도 없는 바이러스라니.”
보통은 금전적인 대가를 요구하며 자신의 계좌를 남기는 해킹범. 하지만 이건 3일 동안 기다리라는 아주 단순한 조건만 있을 뿐, 그 이상의 무엇도 요구하고 있지 않았기에 사실상 이 바이러스의 유포자를 추적할 만한 단서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온갖 인재가 몰려 있다는 미국의 저력은 역시나 남달랐다.
“이 바이러스를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배후 세력이 하나 있습니다.”
“……!”
근심에 빠져 있는 NSA 국장에게 넌지시 말을 꺼내는 수석 분석가. 그런 그의 말에 국장은 일순간 눈을 크게 뜨며 화색이 된 얼굴로 물어 왔다.
“그게 정말인가? 그 배후가 어디인가?”
“아직 정확히 확인된 바는 아닙니다만, 해당 프로그램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아주 일부분이지만, 비슷한 형태의 코드를 예전에 본 적이 있었습니다.”
전 세계에 퍼져있는 수많은 악성 코드와 바이러스를 하나하나 직접 뜯어 보고 분석했던 그였기에 알아볼 수 있었던 코드. 물론 대부분이 완전히 변형되고 바뀌어 나가 어지간한 전문가도 알아챌 수 없을 정도였지만, 수십만 줄이 넘어가는 생소한 코드 사이에서 그는 그 익숙한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2년 전. 한국과 중국 등의 아시아 일대에 대량으로 확산했었던 랜섬웨어입니다. 인터넷 포르노 사이트와 불법 도박 사이트를 통해 유포되었던 것으로 알려진 것으로 일명 ‘북극성’이라고 불리는 바이러스입니다.”
두 장의 종이를 꺼내 놓으며 정확히 일치하는 코드의 명령어를 가리키며 그는 단호한 어조로 국장에게 말했다.
“여기 이 코드들이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기본적으로 유사하거나 비슷할 수는 있겠지만, 여기 불필요한 오류 코드까지 100% 일치한다는 것을 보면 이건 동일인이 제작한 바이러스가 분명합니다. 물론 그 수준은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것을 보면……. 꽤 오랜 시간에 걸쳐 이번 공격을 준비한 것으로 보입니다.”
범인을 특정하기 위한 아주 약간의 가능성이라도 찾아낸 NSA 국장. 이제 대통령 앞에 가서 보고할 때 무엇이라도 할 말이 있다는 사실에 깊이 안도하며 그는 날카로운 눈빛을 빛내며 물었다.
“북극성이라……. 그 바이러스를 제작하고 유포한 이들이 누구인지는 밝혀냈었나?”
“그렇습니다. 2년 전. 북극성이라는 이름의 랜섬웨어를 제작하고 유포하고 최근까지 활발하게 활동하며 미국을 비롯해 여러 국가의 기업과 개인의 컴퓨터를 해킹하고 공격해 막대한 자금을 탈취하는 해킹 단체. 라자루스입니다. 그리고 현재 이들의 배후 세력으로 의심되는 국가는…….”
“북한입니다.”
“북한이라……. 그렇군. 그 빌어먹을 놈들이라면 이런 짓을 벌이기에 충분하지.”
이번 바이러스의 배후에 북한이 있다는 수석 분석관의 주장에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NSA 국장. 하지만 그는 이내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어 왔다.
“그런데……. 어째서 북한이 이런 터무니없는 바이러스를 만든 거지?”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돈을 요구하지 않고 그저 장난으로 만든 것 같은 바이러스.
이런 고도의 바이러스를 아무런 이유 없이 만들고 배포할 이유가 없었기에 그 둘은 여전히 이들의 꿍꿍이를 이해하지 못한 채 한참을 고심했다.
그 3일 동안 필리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로 말이다.
* * *
필리핀의 수도이자 관광과 유흥의 도시. 마닐라.
이곳에 있는 카지노를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거액을 베팅하고 다니며 돈세탁을 시작한 김선일 대좌의 작전팀은 한순간도 쉬지 않고 자신들의 임무에 몰입했다.
“와. 대박……. 이번 게임 하나에 천만 달러를 걸었다고?”
“쉿. 저기 저 사람이 5시간 동안 잃은 돈이 벌써 8천만 달러라고.”
“이런 미친……. 도대체 뭐 하는 사람들이지?”
주변에서 보는 사람들이 경악할 정도로 쉴 새 없이 엄청난 자금을 뿌려 대며 돈을 잃고 따며 자금의 출처를 추적할 수 없게 세탁하고 있었지만, 고작 수십 명이 소진하기에 240억 달러라는 돈은 천문학적인 수준이었다.
“지금까지 얼마나 처리했지……?”
꼬박 2일을 새며 카지노만 수십 곳을 돌아다니며 돈세탁에 매진한 선일. 그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지금까지의 실적을 물어 왔고 회계 장부를 맡고 있던 부대원 하나가 그의 물음에 답했다.
“현재까지 세탁을 마무리한 자금은 총……. 132억 달러입니다. 대좌 동무.”
“총 손실률은?”
“카지노의 환전 수수료와 세금, 그리고 의심을 피하기 위한 손실률까지 합치면 대략 30%입니다. 현재까지 남은 잔액은 약 70억 달러입니다.”
카지노만이 아니라 일반 ATM에 있는 모든 자금을 싹쓸이 인출해 가는 등 다른 곳에서도 온갖 방법을 활용해서 미친 듯이 돈세탁을 하는 부대원들. 하지만 그 자금 규모가 너무나도 천문학적인 수준이었기에 남은 자금도 어마어마했다.
“아직도 한참이나 남았군.”
그토록 달콤했던 달러의 냄새가 이제는 맡기만 해도 신물이 올라올 정도로 질리기 시작한 선일. 그는 아직도 모든 작전을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갈 길이 멀다는 것을 깨닫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지만, 부대원은 조금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대좌 동무. 이제 여기서 중단해야 할 것 같습니다. 카지노에서 저희를 알아보기 시작하고 있고 이제 길거리에서도 저희에 대한 이상한 소문들이 나돌고 있습니다.”
필리핀에 갑자기 나타나 카지노를 휩쓸기 시작한 동양인의 무리.
입소문이 안 날 수가 없는 상황이었기에 선일은 부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럴 수밖에 없겠지……. 그렇게 이틀 동안 미친 듯이 날뛰었으니 말이야.”
이 이상의 카지노 출입은 너무 위험도가 높다고 판단한 그는 이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며 부하에게 다시 지시했다.
“본부에 다시 한번 통신을 시도해 보라.”
“알겠습니다.”
지금까지 전혀 통신이 닿지 않았던 본부.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그 전화 속에서 엄청난 분노가 담긴 노호성이 터져 나왔다.
[ 이 쳐죽일 간나 새끼들이! 지금까지 뭐 하다가 이제야 연락을 넣는 기래? 너희들 지금까지 뭐 하고 있던 거야! ]
“대…… 대좌 동무!”
잔뜩 분노한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자 깜짝 놀라는 두 사람. 전혀 기대하지 않던 연락이 성공하자 선일은 황급하게 현재 상황을 보고하기 시작했다.
“정찰총국 소속 작전 대장. 대좌 김선일입니다. 지금까지 계속 보고를 하려고 했습니다만, 현지의 통신 문제로 미처 보고하지 못했습니다. 내려 주신 과업 수행에 목숨을 걸고 매진한 나머지 보고에 미흡했던 점 사죄드리겠습니다.”
[ ……. ]
그 말에 분노에 찬 고함이 사라지고 조용해진 스피커. 그리고 이내 차가운 목소리로 하나의 물음이 들려왔다.
[ 작전 상황을 보고하라. 10억 달러는 전부 세탁하는 데 성공했나? ]
돈세탁을 전부 끝냈냐고 물어 오는 정찰총국 책임부장의 목소리. 내부에서도 악명이 높은 핵심 간부 중 하나이기에 절대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사람이었지만, 그가 물어 온 액수에 선일은 당혹스러움에 자기도 모르게 질문이 튀어나올 수밖에 없었다.
“예……?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 뭐야? 설마 아직도 다 마무리하지 못한 건 아니겠지? ]
서로의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하고 당황해하는 상황.
그때 김선일 대좌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하며 자신들의 계좌에 들어온 자금의 액수를 보고했다.
“저희가 세탁하고 있는 자금은 전부 240억 달러입니다. 동무.”
[ ……. ]
그 말에 한참 동안 이어지는 침묵. 그리고 갑자기 거의 괴성에 가까운 고함이 울려 퍼졌다.
[ 그건 또 무슨 정신 나간 헛소리야! 이 빌어먹을 종간나 새끼들아! 240억 달러가 어디서 튀어나온 건데! ]
그리고 그 순간…….
선일은 뭐가 어떻게 흘러가는 건지는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일단 지금 자신은 뭔가 X 된 것 같다는 사실 하나는 확실하다는 걸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