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북한의 외화벌이를 위한 임무를 수행하는 정찰총국 제5국.
마약 거래를 비롯해 인신매매와 무기 밀반입 등과 같은 범죄를 일삼으며 외화를 벌어들이기 위해서 국가적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이들 중에서 최근 가장 뛰어난 실적을 보여 주는 것은 다름 아닌 사이버 해킹이었다.
랜섬웨어를 통해서 기업과 개인이 보유한 데이터를 가지고 협박하며 돈을 뜯어내고.
악성 앱을 통한 보이스 피싱으로 어수룩한 사람들의 돈을 강탈해 가고.
나아가 최근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가상 화폐 거래소를 해킹해 모조리 쓸어 가기까지……
매일같이 중국 정부의 눈길을 피해 힘들게 마약을 팔며 외화를 벌어들이는 선일은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내심 가만히 앉아서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막대한 수익을 벌어들이고 있는 자신의 대학 동기인 광진을 부러워하고 또 시기하고 있었다.
컴퓨터 조금 두들기면 어마어마한 액수의 달러가 찍혀져 나오는 것을 보며 그저 운이 좋다고만 생각했던 선일은 자신의 동기가…… 아니, 그의 팀이 이루어 낸 성과와 계획을 보며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엄청나군…… 고작 10명이서 이런 말도 안 되는 계획을 준비했다니.”
방글라데시 중앙 은행의 모든 권한을 장악한 라자루스.
단순히 은행 내 정보망을 훔쳐보는 수준이 아니라, 실제로 보유하고 있는 모든 자산을 외국으로 옮길 수 있는 스위프트 전산망까지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상황 속에서도 이들은 자금 탈취를 실행으로 옮기지 않았다.
“방글라데시의 중앙은행은 미국의 연방준비은행에 대부분의 외화 보유고를 예치해 놨지. 우리가 노리는 것은 바로 그 자금이야. 자그마치 10억 달러나 되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자금이지.”
10억 달러.
고작 필로폰이나 대마 조금 파는 수준으로 만지는 푼돈이랑은 감히 비교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막대한 금액. 그것을 한 방에 털어먹을 생각을 하고 그 모든 계획을 철저하게 준비해 놓은 광진은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작전 개시일은 다음 주 목요일. 방글라데시의 은행 업무가 모두 끝나고 난 이후인 저녁 7시로 잡는다. 그러면 돈을 전부 빼내기 위해 필요한 최대한의 시간을 확보할 수 있네.”
금토를 휴일로 하는 방글라데시와 토일을 휴일로 하는 미국.
두 나라 사이의 시차까지 고려한다면 최대 5일까지 해킹 사태가 벌어졌다는 것을 두 은행이 서로 알아챌 수 없도록 시간을 벌 수 있었다. 그리고 그사이에 10억 달러를 모조리 누구도 찾을 수 없도록 완벽하게 세탁해서 수사 당국의 추적을 따돌리게 해야 했지만, 그것은 고작 10명으로 이루어진 라자루스의 팀의 힘만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마약 거래를 위해서 평소에도 수십 명이 넘는 많은 인력들을 데리고 다니는 선일의 팀에 힘을 빌려야만 했다.
“선일 동지랑 휘하의 팀 전원이 필리핀의 마닐라로 가서 대기하고 있으면 우리가 만들어 놓은 유령 계좌에 중앙은행으로부터 탈취한 자금 일체가 송금될 거네. 그러면 그걸 가져다가 인출해서 카지노를 통해 그 자금을 세탁하면 되는 거지.”
자그마치 10억 달러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카지노에서 세탁하는 계획.
그 내용은 간단했지만, 규모 자체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기에 선일은 조금은 복잡하다는 표정으로 작전 개요가 담긴 계획서를 살펴보고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네. 3일 뒤에 조용히 필리핀으로 이동해서 작전 기일까지 대기하도록 하지.”
“절대 어떤 사소한 실수도 용납해서는 안 되니 부하 관리에 만전을 기하라우. 최고 사령관 동지께서도 이번 작전에 매우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니 말이네.”
정찰총국을 넘어서 북한의 최고 지도자인 김정은까지도 주시하고 있는 작전.
만약 실패하기라도 한다면 그때는 정말 상상하기도 싫을 정도로 끔찍한 후환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성공한다면 그것은 곧…… 인민의 영웅이 되어 찬란한 미래가 이들 앞에 펼쳐진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선일을 긴장한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비장한 얼굴로 말했다.
“알겠다. 내 목숨을 걸고 문제없이 과업을 달성하고 돌아오겠네. 그리고 나와 내 부하들에게 이런 천금 같은 기회를 준 것에 대해서는 동무에게 정말 고맙다고 생각한다.”
평소에는 차갑고 무뚝뚝한 선일이 처음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하자 광진은 어색한 듯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퉁명스럽게 화답했다.
“말만 하지 말고 나중에 평양에 돌아가면 크게 한턱 쏘라우.”
그렇게……
방글라데시의 중앙은행을 털어먹겠다는 라자루스의 이 무모하지만 기상천외한 해킹 작전이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다.
* * *
지독히도 폐쇄적인 네트워크를 운용하고 있는 북한.
거의 대부분의 일반 인민들에게 인터넷이라는 문물은 평생에 접할 기회조차 없는 것이 현실이었지만, 그렇다고 네트워크망이 북한에서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중국을 통해서 연결되어 있는 네트워크 통로.
비록 그 접속망이 지극히 제한적이고 폐쇄적으로 운영되고 있어 해킹 자체가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었지만, 그 어떤 보안 시스템도 용용이의 접근을 막아설 수는 없었기에 이미 북한의 네트워크망과 서버들은 용용이의 놀이터가 된 지 오래였다.
[ 주인. 그 인간들 작전을 방금 시작한 거 같은데? ]
“그래?”
[ 엉. 방금 방글라데시의 중앙은행에서 자기들 계좌에 있는 돈 싹 다 인출해 달라는 요청을 미국에다가 넣었어. 지금 처리 중인 것 같은데. 어떻게 할까? ]
뉴욕의 연방준비은행에 성공적으로 들어간 북한의 자금 인출 요청. 만약 특별한 이변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 자금은 무사히 그들의 손에 들어갈 가능성이 컸다.
북한의 만행을 막으려면 지금이라도 움직여야 하는 상황.
하지만 나는 그런 용용이의 이야기에 그저 여유롭게 미소 지으며 나지막하게 되물었다.
“너는 다 준비됐어?”
[ 준비가 되긴 했는데…… 이거 이래도 되는 건지 잘 모르겠네…… ]
“뭐가?”
[ 주인이 지금 하려는 이거…… 저 북한 놈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을 거 같은데. 정말 이런 식으로 멋대로 해도 되는 거 맞아? ]
자신이 저지르려는 일에 대해서 조금은 후폭풍이 두려운 것인지 주저하고 있는 용용이. 하지만 나는 그런 그의 물음에 피식 웃으며 말했다.
“용용아. 너가 아직 인간에 대해서 잘 모르는구나.”
[ 뭐……? ]
“인간은 자고로 말이지. 남에게 아주 비극적이고 슬픈 일이 일어나도 그저 쯧쯧거리면서 혀만 차고 아무것도 하지 않지. 많은 경우에는 오히려 팝콘을 들고 그 상황을 구경하고 즐기기도 하고 말이야. 괜히 남의 집 불구경이랑 싸움 구경이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볼거리라고 하는 게 아니거든.”
전 세계에서 최빈국 중 하나이자 존재감도 없는 방글라데시의 중앙은행이 털려 봤자 잠깐의 화제만 될 뿐, 그 누구도 이들에게 적극적으로 도움의 손길을 건네줄 리가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이번 상황을 비단 방글라데시의 문제만이 아닌, 전 세계의 문제로 만들어 버릴 생각이었다.
“남의 집 불타는 줄 알고 신나서 구경하러 달려왔는데 알고 보니 우리 집이 불타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을 때의 그 기분이 어떤지 알아? 나도 경험해 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아주 X 같을걸?”
잠깐 앞으로 벌어질 일을 상상하던 나는 작게 웃고는 이내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이걸 이 지구촌 전체의 문제로 만들면, 아주 자연스럽게 함께 힘을 합쳐 사악한 악당인 북한을 조지려 달려들게 된다는 거야. 그럼 누구한테 좋은 일이겠어? 방글라데시 아니겠어?”
불을 지르려는 방화범을 사전에 붙잡을 생각은 하지 않고 옆집, 윗집, 아랫집 가릴 것 없이 사방에 기름을 뿌려 대는 나를 보며 용용이는 질린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 …… 진짜 주인은 정말이지…… ]
말도 안 나온다는 듯이 신음하는 용용이. 하지만 나는 그런 그의 반응을 가볍게 무시하고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자…… 그럼 용용아. 어디 한번 우리 북한을 이 세상에서 제일 악랄하고 사악한 희대의 개새끼로 만들어 볼까?”
[ 정말 한다……? ]
여전히 자신이 하려는 일이 맞는 것인지 의문인 듯한 용용이. 하지만 나는 그런 그에게 단호한 어조로 명령했다.
“지금 당장 전 세계의 모든 은행에서 닥치는 대로 모든 자금을 다 끌어모아서 그 계좌로 쑤셔 넣어 버려. 너무 이상한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만 해서.”
미국만이 아니라 독일. 영국. 프랑스, 중동, 일본, 러시아…… 심지어 중국까지.
제아무리 북한이라도 무턱대고 건드렸다가는 감당조차 할 수 없는 국가들만 골라서 용용이는 가장 커다란 주요 은행들의 보안망을 뚫고 들어가 시스템을 장악해 어마어마한 양의 자금을 멋대로 이체해 버렸다.
그리고…… 그 과정을 처리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5분도 채 지나지 않았다.
[ …… 다 끝났어. ]
“얼마나 넣어 줬어?”
해킹범들의 계좌에 얼마나 돈을 보냈는지 물어 오는 내 질문에 용용이는 짤막하게 답했다.
[ 230억 달러로 딱 맞춰서 보냈어. ]
230억 달러.
자그마치 한화로 25조원에 달하는 거금.
북한이 해 처먹으려고 했던 금액의 23배에 달하는 자금을 넣어 준 용용이에게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잘했어. 아주 낭낭하게 넣어 줬네.”
아직은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눈치채지 못한 각국의 은행들.
하지만 불과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관련 사실을 눈치챈 은행로부터 시끄러워질 것이 분명했기에 나는 필리핀에 대기하고 있는 북한 요원들을 위해 대신 시간을 벌어다 줄 생각이었다.
“용용아. 그 라자루스인지 뭔지 하는 것들이 만들어 놓은 바이러스로 지금부터 털린 은행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전산망을 마비시켜 버려. 한 3일 정도만 정신 못 차리게 만들어 주면 돼.”
[ 아니, 그렇게까지 해야 해? ]
“그럼. 미수랑 실제 범죄를 저지른 거랑 얼마나 차이가 큰데? 직접 실행에 옮길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과 여유를 주고 기다려는 줘야지. 아, 서로 연락조차 할 수 없게 저 요원들이 이용하는 모든 통신은 전부 다 차단해 버려. 알겠지?”
필리핀으로 가서 대기하며 돈세탁 작전에 돌입한 북한의 요원들.
그들의 움직임을 어느 은행의 ATM기 앞에 설치되어 있는 구닥다리 CCTV를 통해서 살펴보며 나는 사악한 미소를 히죽 지으며 팝콘을 집어 들었다.
“과연 얼마까지 해 먹을 수 있는지 한번 구경해 보자고.”
* * *
북한의 정찰총국 소속. 대좌. 김선일
그는 자신의 앞에 놓여 있는 낡은 ATM기의 찍혀 있는 숫자를 보며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을 지으며 파르르 떨고 있었다.
“이게 도대체가……?”
분명 10억 달러가 들어올 것이라고 이야기했던 자신의 동지의 말과는 다르게 이미 만들어 놓은 계좌들에게는 그것보다 훨씬 더 많은 자금이 들어와 있었다.
[ $ 6,900,000,000 ]
끝도 없이 이어진 0의 향연.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천천히 그 액수를 세어 본 선일은 자그마치 69억 달러가 한 계좌 안에 들어가 있다는 것을 보고는 하염없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이건…… 분명 뭔가 이상하다.’
4개의 유령 계좌들에 들어온 모든 액수를 종합하니 자그마치 240억 달러.
그리고 그 자금이 방글라데시만이 아니라 전혀 정체를 알 수 없는 수백, 수천 개의 계좌들로부터 동시다발적으로 들어온 상황이었기에 그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직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좌 동지. 상부와는 전혀 연락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계속 연락해 보라.”
“알겠습니다. 하지만 저희쪽 통신에 이상한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상부에 현재의 이상한 상황을 보고하려 해도 그 어떠한 방법으로도 전혀 연락이 닿지 않고 있었다. 언제 은행에서 해킹 사실을 깨닫고 자금 흐름을 추적해 계좌를 동결할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 하지만 이런 긴박한 순간에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었지만 돈세탁은 아직 시작도 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이번 작전의 총책임자인 김선일 대좌의 등에는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어쩐다…….’
예상치도 못한 상황 속에서 계속해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그는 이내 한시라도 빨리 움직여야 하는 상황에서 주저하다 결국 한 푼도 돈을 빼내지 못하고 계좌가 동결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하고는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안 돼. 그건 절대로 있을 수 없지…….”
최고 지도자가 직접 관심을 갖고 주시하고 있는 작전.
그렇게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에 그는 결국 닿지 않는 상부와의 연락을 포기하고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전부 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들어라. 지금부터 보물털이 작전을 시작한다.”
대기하고 있던 수십 명의 수하들의 눈을 하나하나 마주치며 그는 비장한 목소리로 외쳤다.
“계좌에 들어 있는 돈은 모두 240억 달러. 단 한 푼도 남기지 말고 모조리 다 털어 내고 우리 위대한 조국과 인민들에게 선물한다! 알겠나?”
“예!”
북한 정찰총국 소속의 김선일 대좌의 명령과 우렁찬 부하들의 대답과 함께 역사에 길이 남을 사건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자그마치 240억 달러나 되는 거금을 해킹으로 털어먹는 사상 최강, 최악의 금융 사고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