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이 지구상에 남아 있는 공산주의 체제의 몇 안 되는 국가들 중 하나이자 한국을 비롯해 동북아시아 전체의 화약고로 불리는 깡패나 다름없는 유사 국가.
북조선 인민 민주주의 공화국.
김씨 일가의 세습 독재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철저한 봉쇄와 세뇌 정책을 일관하고 있는 이곳 북한은 오래전부터 일찍이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두 눈으로는 차마 보기 어려울 정도로 처참하게 무너져 가고 있었다.
[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기 전까지, 전 세계가 모두 힘을 합쳐 고강도의 경제 제재를 가할 것입니다. 국제 연합은 이미 안보리 결의를 통해서 북한의 미사일 도발과 핵무기 전력 증강을 위한 모든 군사적 도발 행위에 엄중한 조치를 취하고 있으며, 미국은 이와 별개로 북한과 거래하는 모든 기업과 국가에 대한 추가적인 독자 제재안(Secondary Boycott)을 발동할 것입니다. ]
핵무기 하나에 모든 것을 올인하며 자급자족과 독자생존을 부르짖고 있는 북한.
하지만 변변찮은 자원이라고는 하나 없는 저주받은 한반도 땅에 자리 잡은 이들에게 스스로의 자력갱생은 그저 말뿐인 허상에 지나지 않았다.
석유와 철강, 목재, 고무, 식량 등 꼭 필요한 자원들부터 시작해서 북한에서 생산할 수 없는 고급스러운 사치품들까지 중국을 비롯해 여러 비밀스러운 경로로 수입해 오는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화폐.
달러.
자신들이 가장 증오하고 경멸하는 국가의 화폐가 인민들 사이에서 자국 화폐보다 더 신뢰와 믿음을 사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서도 북한의 정보기관인 정찰총국 제5국은 이 달러를 벌어들이기 위한 공작에 매일같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김선일 대좌 동무. 보고드릴 일이 있습니다.”
“무슨 일인가.”
잔뜩 귀찮은 표정으로 담배를 입에 문 채로 말하라고 부하에게 손짓하는 선일은 이내 떠듬거리며 보고하는 그의 말을 듣고는 얼굴을 잔뜩 일그러트렸다.
“중국 놈들이 이번에 저희가 들여온 필로폰과 대마의 가격을 이전 가격보다 더 낮춰 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뭐야?”
“중국 당국의 단속이 심해진 것도 있고……. 남조선에서도 마약 관련해서 최근 시끄러운 탓에 예전처럼 장사하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그래서 위험을 자기들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라 예전 가격만큼 쳐주기는 조금…….”
퍼억.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날아온 선일의 군홧발에 복부를 정통으로 얻어맞고 무릎을 꿇으며 쓰러져 신음하는 부하. 제대로 맞았는지 식은땀을 흘리며 제대로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지만, 선일은 계속해서 무자비하게 그에게 발길질을 날리기 시작했다.
“이 간나 새끼가 중국 아새끼들이 그런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하면 혓바닥을 뽑아 버리고 와야지 그걸 나한테 보고하러 오면 되겠나! 우리 인민들이 피땀 흘려 정성 들여 만든 상품의 가격을 후려치는 그런 반동분자 같은 새끼들에게 질질 끌려다니면서 니가 정찰총국의 요원이 가당키나 하갔어? 앙?”
안 그래도 한번 꼭지가 돌리면 분이 풀릴 때까지 미친개처럼 날뛰는 것으로 유명한 선일. 그는 한참 동안 자신의 부하를 밟아 대고는 이내 거친 숨을 몰아쉬며 한순간에 피투성이가 된 그의 눈에 얼굴을 들이밀며 으르렁대며 말했다.
“너. 지금 정신 똑바로 차려라. 우리가 지금 북한을 떠나서 중국에 온 목적이 뭔지 잊었나?”
“아……아닙네다!”
“우리 지도자 동지께서 내리신 위대한 과업을 성공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 고국을 떠나 이 머나먼 외국에서 머무르고 있는 거다. 네놈 말대로 그 쌍간나 새끼들이 원하는 대로 가격을 깎아 주기 시작한다면, 그 새끼들이 이번 한 번으로 만족할 거라고 생각하나?”
“…….”
“두 번은 세 번이 되고 결국에는 우리 물건들의 가격을 계속해서 후려치려 들겠지. 그러면 우리의 과업은 실패하게 되고 그 책임은 누가 지게 될 것 같나?”
북한을 떠나 중국에서 비밀리에 외화벌이를 위한 마약 유통을 관리하고 있는 총책인 정찰총국 소속의 김선일 대좌를 비롯해 자신과 그 휘하의 모든 요원들이 임무 실패에 따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 분명했다. 그렇기에 그는 비로소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죄송합니다. 대좌 동지.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지금 바로 확실하게 처리하고 난 이후에 다시 보고드리겠습니다.”
무언가 한바탕 일을 치를 것 같은 기세로 그가 나가자 비로소 선일의 옆에서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던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역시 우리 선일 대좌 동지가 화끈한 성격인 건 내 대학교 시절부터 알고 있었지만 역시 대단하구만. 하급 전사들 다루는 솜씨가 아주 입이 떡 벌어질 수준이야.”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이죽거리고 있는 안경을 쓴 남자.
서로 잘 알고 지내던 사이인 것처럼 농담을 던지던 그는 이내 히죽 웃으며 선일의 신경을 살살 긁기 시작했다.
“그래도 역시 그 아편 장사라는 게 말이지. 우리가 달성해야 할 외화를 벌어들이기에는 조금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이 많다 이거지. 자네도 이 콤퓨터에 더 관심이 있었으면 훨씬 더 수월하게 할당량을 달성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그러면 이렇게까지 골머리를 쌓으면서 부하들을 갈구지 않아도 됐을 텐데 자네 동무로서 그게 참 아쉽단 말이지.”
“……. 헛소리하지 말고 날 찾아온 용건이나 말하지. 박광진 동무.”
정찰총국 5국 산하의 사이버 전력부대 소속. 박광진 대좌.
라자루스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 해킹 그룹을 이끌고 있는 그는 자신의 오랜 친우의 날선 반응에 히죽 웃으며 그에게 작은 USB 하나를 건네주었다.
“이게 뭐지?”
“나랑 이번에 작업 하나 하지 않겠나?”
“뭐라……?”
외화벌이라는 같은 목표를 위해서 일하고 있었지만, 마약 거래와 해킹이라는 전혀 다른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두 사람. 그렇기에 갑자기 작업을 같이하자는 동무의 제의에 선인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 제안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내가 계획한 대로 이게 만약 성공한다면…….”
“우리는 아마 10억 달러 이상의 자금을 손에 거머쥘 수 있게 될걸세.”
* * *
판달리아 사상 최강의 존재이자 드래곤 로드. 용용이.
비록 지금은 중국산 짝퉁 인형 속에 들어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 뛰어난 지성과 강력한 자아를 가지고 있는 영혼만큼은 여전했기에 그는 새롭게 연결된 마나 링크를 통한 네트워크에 접속하는 것에 금방 적응할 수 있었다.
[ 정말이지……. 이 세상은 놀라움의 연속이군. ]
끝도 없이 펼쳐진 방대한 지식과 정보의 바다.
감히 그 끝을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정보와 데이터들이 가득한 이 네트워크를 이제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게 된 용용이는 자신의 그 견고하고 강력했던 자아마저도 흔들릴 정도로 그 방대하고 압도적인 정보량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는 또 깊은 흥미를 가지고 이 세상에 빠르게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 판달리아의 세계와는 전혀 다른 방식과 체계를 가지고 진화해 나간 문명이라……. 흥미롭군. 정말 흥미로워. ]
비록 마나가 존재하지 않아 몬스터들과 같은 강력한 개체들은 존재하지 않는 세계라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연약하기 그지없는 인간이 살아남기에는 험난하고 가혹한 자연의 생태계. 하지만 그 속에서 인간이라는 종족이 살아남고 또 나아가 이 지구 전체를 지배하기까지 그 일련의 과정을 살펴보며 용용이는 감탄하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 과학이라는 개념은 마법과는 분명 그 결이 다르지만, 충분히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군. ]
과학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판달리아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진보한 문명을 건설한 세계. 비록 앞으로의 미래가 멸망이라는 최후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그것만 막아설 수 있다면 충분히 가치가 있는 지식들이었기에 용용이는 그 어느 것도 가리지 않고 모든 것들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농업. 음악. 기술. 전자. 건설. 게임. 예능. 법. 도덕…….
인류의 탄생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이룩한 모든 유산들을 무차별적으로 훑어보고 관조하고 있는 용용이. 주인으로부터 그저 이야기를 단편적으로 주워 들을 때와는 다르게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폭넓게 이 세상에 대한 이해를 넓혀 가던 용용이는 이내 불쑥 들려오는 목소리에 집중이 깨질 수밖에 없었다.
“아니, 북한 놈들 관련해서 정보 좀 찾아보라는데 무슨 한 세월이나 걸리냐? 아직도 못 찾았어? 너 지금 무슨 딴짓거리하는 거 아냐?”
방금까지 뮤튜브에서 귀여운 고양이 동영상을 훑어보고 있던 용용이는 주인의 의심스러운 추궁에 뜨끔하며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 아,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보채는 거야? 나도 처음 경험해보는 건데 적응 시간이 좀 필요하단 말이야. ]
“벌써 2주도 더 지났거든? 아직도 적응이 안 됐다고?”
[ 뭐야? 벌써 2주나 지났다고? ]
“그래. 이제 슬슬 북한 놈들 소행 좀 알아보지? 이럴 거면 차라리 내가 그냥 아예 북진통일해 버리는 게 더 빠르겠다.”
방대한 인터넷의 세계를 돌아다니다 보니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있었던 용용이. 주인의 말에 그제야 현실을 자각한 그는 그제야 바쁘게 움직이며 관련 정보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 아! 알았어! 지금 바로 찾아볼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봐! ]
0과 1이라는 두 개의 전기적 신호를 가지고 이루어진 원시적인 네트워크에서 마나 링크를 통해 접속하는 초월적인 영혼체인 용용이를 막아설 수 있는 프로텍트는 그 어디에도 없었기에 그는 북한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정보라면 그 무엇이든 접근해서 읽어 보며 빠르게 최근의 동향들을 파악해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무언가 이상한 것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 뭐야 이거……? ]
“뭔데 그래? 뭐라도 찾았어?”
내가 눈을 빛내며 물어 오자 용용이는 자신이 발견한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방글라데시 중앙은행에 북한이 악성 코드를 심어 놓는 데 성공했다고?”
[ 그래. 내가 찾은 정보에 의하면 북한이 이미 몇 달 전에 은행 전산망을 장악했다는데? 지금 그걸 가지고 해킹을 준비하는 것 같아. ]
다른 곳도 아니고 한 국가의 중앙은행을 해킹하는 데 성공한 북한.
그것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그것보다 더 어처구니없는 사실은 몇 달 전에 이미 털렸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는 방글라데시의 중앙은행이었다.
“아니, 도대체 뭘 하면 중앙은행이 북한한테 털리냐? 그것보다 지금까지 그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건 이건 심각한 보안 문제 아니냐? 도대체 은행 관리를 어떻게 하고 다니는 건데?”
[ 그야 나도 모르지……? 그걸 왜 나한테 물어? ]
북한의 비정상적으로 뛰어난 해킹 능력과 은행의 허술한 보안과 무책임한 관리의 환장스러운 콜라보레이션으로 벌어진 상황. 그리고 그로 인해서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피해액은 자그마치…….
10억 달러였다.
“10억 달러……. 한화로 대략 1조 2천억 원…….”
한 해 국가 예산이 500조에 근접한 한국으로서는 그리 크지 않은 금액.
막대한 자금을 세계에서 벌어들이는 매지컬 컴퍼니조차도 한 분기면 메꿀 수 있는 수준의 액수에 불과했지만, 이렇다 할 만한 경제 산업이 없고 전 세계적으로도 최빈국 중 하나인 방글라데시에게 이 돈은 이들이 가지고 있는 외화의 전부라고 할 수 있을 만큼의 거금이었다.
“쩝……. 관리 똑바로 못한 본인 책임이긴 한데 이거 가져가게 두면 북한은 또 미사일이나 만들어서 쏴 대면서 어그로나 잔뜩 끌겠지.”
허무하게 북한의 군사력 과시와 김씨 일가 체면을 세우는 목적으로 순식간에 사라지게 될 돈. 이들을 엿 먹이기 위해서라도 그런 상황을 막아서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나는 용용이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북한 놈들이 철저하게 감시해 줘. 용용아. 그놈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곧장 나한테 말해 주고. 알겠지?”
[ 도대체 무슨 꿍꿍이야? ]
한국에 가만히 앉아서 뭘 어떻게 하려는 거냐고 묻는 용용이.
그런 그에게 나는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광기 어린 눈빛으로 작게 중얼거렸다.
“뭐……. 별건 아니야…….”
“달러가 그렇게 좋다는데. 원 없이 배가 터질 정도로 실컷 선물해 줘야지 뭐.”
전 세계가 눈에 불을 켜고 북한을 잡아 족치기 위해서 달려들 수밖에 없을 정도로 잔뜩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