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세계 초강대국이자 그 어느 국가보다도 강력한 힘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
이들이 세계적인 패권을 유지하고 지켜 나갈 수 있는 것은 방대한 영토와 풍부한 천연자원을 비롯해 강력한 군사력과 튼튼한 경제와 같은 여러 요인들이 작용해 가능한 것이었지만, 이러한 요인 중에서 가장 큰 원동력이자 밑바탕이 되는 것은 다름 아닌 진보한 기술력이었다.
[ 과거 미국은 B-2라는 스텔스 폭격기를 1990년도에 이미 개발을 완료해 실전 배치에 착수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3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어느 나라도 그 폭격기를 능가하는 폭격기를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죠.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기술력은 어쩌면 우리의 예상 범주를 아득히도 뛰어넘었을지도 모릅니다. 외부에 공개된 것보다도 훨씬 더, 그리고 뛰어난 기술들을 보유하고 그것을 공개할 시기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
최소 수십 년……. 아니, 어쩌면 한 세기의 격차가 날 정도로 뛰어난 첨단 과학 기술을 무수히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매년 막대한 연방 예산을 이러한 기술 투자에 아끼지 않는 미국. 그렇기에 다른 국가들과의 기술력 격차를 유지하고 더 벌려 나가고 있었기에 레너드 대통령은 돌연 한국에서 들어온 보고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방금 뭐라고 했나? 성능 제원이 어떻게 된다고……?”
최근 한국에서 발생한 통신망 분쟁과 관련해서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던 백악관. 안 그래도 공식적으로나 비공식적으로나 이번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 물밑에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었는데 이걸 해결하겠다고 돌연 연구소에 틀어박혀 칩거에 들어갔던 멀린이 만들어 낸 결과물을 받아 든 레너드 대통령의 눈은 미친 듯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이……이게 도대체 뭔가. 지금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이걸 현실에 구현할 수 있는 기술력이 있다는 말인가?”
전자적 신호가 아닌, 마나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마나 네트워크 시스템.
마나 링크(Mana Link).
멀린이 새롭게 개발하고 있는 이 네트워크의 중계기와 서버 역할을 해 줄 마나석의 성능을 보며 그는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다시금 물었다.
“100Tbs의 전송 속도에 100EB의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는 용량? 이건 그냥 단순한 발명품 정도의 수준이 아니지 않은가?”
현재 최첨단 통신 기술을 모조리 동원해도 실험실 같은 제한된 환경에서나 간신히 테라급의 전송 속도를 구현하고 있는 상황. 상용화까지는 아직 갈 길이 먼 수준이었기에 100테라비트의 전송 속도를 문제없이 구현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다.
게다가……. 세계적인 회사 고글이 지구 방방곡곡에 설치해 둔 방대한 데이터 센터들의 용량을 모조리 다 긁어모아도 고작 20EB를 간신히 넘어서고 있는 상황에서 갑자기 등장한 엑사급 용량의 저장 장치는 그야말로 파격을 넘어선 혁명이나 다름없었다.
“멀린의 말에 따르면 이론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한 수준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마나 네트워크 시스템. 속칭 ‘마나 링크’라고 하는 이 기술은 현재 인류가 사용하는 전자기적 신호와는 전혀 다른 체계로 운용되는 것이기에 최대 성능을 발휘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했습니다.”
마나를 기반으로 한 네트워크망과 다르게 전자기적 신호를 이용한 열등하고 저급한 전력 기반 체제로 구축되어 있는 지구상의 네트워크 시스템. 그 중간에서 불필요하고 비효율적인 일종의 변환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그 성능에는 많은 저하가 발생했다.
“만약 지금 당장 상용화에 나선다면, 데이터의 저장 용량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지만 속도는 1Tbs의 정도로 통신망을 구축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자그마치 100분의 1로 감소하는 송수신 속도. 하지만, 그럼에도 이 정도면 현존하는 그 어떤 통신망보다도 우월한 수준의 속도와 성능을 자랑하는 것이었기에 레너드 대통령의 표정은 점점 복잡해졌다.
“보안성과 안정성은 어떻게 되나?”
“그 점에 대해서는 아직 공유한 것이 없어서 내부적으로 확인과 검증 절차는 거쳐야 하겠지만……. 일단 기본적으로 네트워크 자체의 보안성은 의심할 여지 없이 강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0과 1로 이루어진 기존의 기계어가 아니라 마법을 기반으로 구동하는 시스템이기에 아마 이 지구상에서 멀린을 제외하고 그 마나 링크라는 시스템 자체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제작자 본인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시스템.
그렇기에 해킹이나 네트워크망 자체를 위협할 수 있는 여러 문제들에 대해서 분명 엄청난 보안적인 이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했지만, 그에 따른 치명적인 문제 역시 존재했다.
“다시 말해……. 멀린이 있어야만 유지될 수 있는 네트워크라는 말이지.”
네트워크의 구조와 시스템을 이해하고 다룰 수 있는 사람이 지구상에서 단 한 사람인 상황. 물론 그 성능이 너무나도 매력적이기에 이 기술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지만, 지금 당장 공개하기에는 너무나도 시기상조라는 생각이었기에 그의 표정은 복잡하게 변해갔다.
“머리 아프군…….”
이 기술이 시장에 공개되었을 때 발생하게 될 여러 후폭풍들을 고민하며 깊은 생각에 잠긴 레너드 대통령. 그리고 그는 문득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각료들에게 물었다.
“어떻게……. 자네들은 이번 기술은 어느 정도 등급으로 분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멀린이 마법을 기반으로 만들어 내는 여러 제품과 기술들이 가진 잠재력과 그 후폭풍을 고려해서 4단계의 등급으로 나누어진 분류 체계를 만들어 낸 미국 정부.
그리고 그 등급은 다음과 같았다.
영향력이 국지적이고 경미한 수준의 1단계인 안전 등급. 그리고 영향력이 방대하지만 경미한 수준의 2단계인 혼란 등급.
여기까지가 멀린에게 대중들에게 공개하는 것을 그리 막지 않는……. 일종의 그린 존(Green Zone)에 해당하는 영역의 등급들이었다.
하지만 그 이상의 등급들은 미국조차도 감히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후폭풍을 몰고 오는 수준의 위험천만한 기술들이었다.
전 지구적인 수준으로 산업 구조와 경제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3단계인 재앙 등급.
그리고…….
미국이 가진 그 어떤 과학 기술력으로도 감히 따라갈 수 없으며 특정 국가나 산업 구조 전체를 완전히 파괴하거나 파멸에 가까운 수준으로 만들어 버리는 절멸 등급.
이 4개의 단계 중에서 멀린이 만들어 낸 이 마나 링크에 대해서 회의실 안에 앉아 있는 각 분야의 장관들은 하나같이 동일한 판단을 내렸다.
“이 기술이 공개되면 기존의 통신 인프라와 네트워크 산업 전체가 완전히 쇠퇴하게 될 것입니다. 비단 한국의 통신사들만이 아니라 미국의 대형 통신사들과 전 세계의 모든 통신망 자체가 무의미한 골동품 신세로 전락하게 될 것입니다.”
“이건 명백한 절멸(Annihilation) 등급입니다. 대통령님.”
미국의 통제 범위를 넘어서는 너무나도 급격한 변화와 혼란을 초래할 수 있는 위험한 기술. 그렇기에 백악관의 캐비넷 각료들은 마력 발전 시스템과 같이 이 마나 링크도 미국의 국익에 심각한 위협을 초래할 수 있다고 판단했고 이 생각에 레너드 대통령도 동의했다.
“끄응…….”
한국의 통신사들을 엿 먹이겠다며 열의에 불태우고 있는 멀린에게 이것도 공개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며 설득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레너드 대통령은 이번에는 또 어떻게 이 상황을 설명해야 하나 고심하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하지만, 그 순간.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어느 한 보좌관이 자신의 휴대폰을 힐끗 살펴보더니 이내 비서실장에게 무어라 속삭였다.
그러자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돌변하는 데이몬드. 그리고 그는 다급하게 대통령에게 말했다.
“큰일 났습니다. 대통령님.”
“무슨 일인가?”
“이미 늦은 것 같습니다. 정보가 외부에 유출되었습니다.”
“뭐……. 뭐라고?”
삼진 그룹의 비밀 연구 시설인 위진 연구소의 철통같은 보안 아래에 개발 중인 마나 링크. 그와 관련한 정보가 밖으로 새어 나갔다는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뜬 레너드 대통령이었지만, 이내 그 정보를 누설한 장본인이 누구인지를 확인하고는 입을 벌렸다.
[ 최근 뉴스를 보는데 방송에서 제 마법 강의 때문에 엄청나게 폭증한 트래픽으로 통신사들이 죽겠다고 아주 난리더군요. 뮤튜브에서 발생하는 어마어마한 트래픽 때문에 스트리밍 서비스도 중단되고 기존 영상들도 죄다 저화질로 바뀌어서 깜짝 놀랐었는데 여러분도 아마 저랑 비슷한 불편들을 겪으셨겠죠?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불편했다면 제가 그 망할 통신사들을 대신해 사과드리죠. ]
온갖 기자들을 모아 놓고 아무런 논의 없이 기자 회견을 벌이고 있는 멀린.
그 특유의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최근 벌어진 논란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 요금 인상? 설비 증설을 위한 비용 청구? 솔직히 말해서 그만한 품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기만 한다면 전 충분히 웃으면서 감수할 수 있어요. 뮤튜브에서 벌어들이는 수익만 해도 달에 수백억 단위니까 그 이익을 나눌 용의는 있어요. ]
[ 그런데……. 몇 년 전에 약속했던 설비 구축은 하지도 않고 자꾸 저를 언급하면서 데이터 부담이 어쩌니 설비 증설 비용이 어쩌니. 요금 인상은 불가피하다느니 아주 돈 뜯어먹는 명분으로 저를 이용해 먹는데. 그러면 제가 빡이 칠까요? 안 칠까요? ]
통신사들의 생각이나 주장에 반대해서가 아니라 가만히 있던 자신을 물고 넘어지는 것에 심사가 뒤틀려 버린 멀린. 그리고 그 이유로 통신사들을 엿 먹이겠다는 일념 하나로 터무니없는 성능을 가진 통신 시스템을 만들어 낸 그는 모두에게 선포했다.
[ 통신사들이 트래픽을 감당하지 못해서 골골댄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고 그러면 제가 직접 하면 되죠. 그래서 결심했어요. 이번에 새로운 이동 통신망 회사를 새롭게 만들고 통신 사업에 뛰어들기로 말이에요. ]
[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매지컬 컴퍼니……. 아니, 매지컬 네트워크에서 처음으로 선보일 차세대 통신 규약이 될 강력한 보안성과 범용성을 자랑하는 신기술. 마나 링크를 말입니다. ]
우우우우웅.
“오 맙소사…….”
기자 회견에서 미친 듯이 터져 나오는 플래시와 함께 대중에게 그 모습을 드러낸 마나석. 절멸 등급의 위험천만한 신기술을 빠꾸 없이 공개해 버리는 그의 만행을 보면서 레너드 대통령을 비롯해 백악관의 관료들은 모두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침음성을 토해 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멀린은 자신이 새롭게 개발한 마나 링크의 성능과 제원을 설명하며 모든 기자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 마나 네트워크 시스템을 구성하고 가동하게 만드는 원리는 우리가 기존에 사용하는 컴퓨터와 크게 다를 건 없어요.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0과 1로만 이루어지는 기계어와 다르게 수백 가지의 룬어를 활용해서 그 프로그래밍을 구축한다는 거죠. 다시 말해서 이 마나 링크의 시스템을 기반으로 운영 체제를 구축한다면 그 컴퓨팅 파워는 타의 추종을 비교할 정도로 뛰어나다는 의미죠. ]
[ 게다가 그 시스템 아키텍처가 난해할지는 몰라도 그 덕분에 어마어마한 보안성을 자랑하죠. 특히 마나가 가진 영자적 에너지의 흐름이 언제나 변칙적이고 마력 패턴의 고유성이 존재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해킹과 데이터 탈취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뜻이죠. 이건 양자 역학을 이해하시면 편해요. 양자적으로 중첩되고 불확정성의 상태로 놓여 있는 데이터를 인위적으로 탈취하고 해독할 수 있는 인간은 어디에도 없을걸요? ]
양자 역학을 운운하며 온갖 복잡하고 난해한 이야기를 이어 가는 멀린.
전문가가 아니고야 제대로 이해할 수조차 없는 그 복잡한 설명이 끝나고 나자 쏟아지는 수많은 질문들 속에서 어느 한 기자가 멀린에게 물었다.
[ 이 마나 링크를 출시하기 위해서 매지컬 네트워크라는 이동 통신 회사를 새롭게 설립할 계획이라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혹시 일반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할 생각이십니까? 만약 그럴 계획이라면 기본적인 비용은 어느 정도로 책정할 예정입니까? ]
일반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한 B2C 사업이냐는 물음. 그리고 그 질문에 멀린은 히죽 웃으며 그에게 화답했다.
[ 아, 아주 좋은 질문이네요. 네. 제가 쓰기 위해서 만든 네트워크 시스템이니 당연히 일반 소비자들을 위해 아주 고품질의 만족도 높은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입니다. 물론 대용량의 빠른 네트워크 서버를 구축하고자 하는 일반 기업들을 위한 서비스 역시 마찬가지고요. ]
기존에 3대 통신사들이 나눠 먹고 있던 시장에 정면으로 뛰어들겠다고 선언하는 멀린.
그리고 그는 너무나도 신이 난다는 듯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비용은……. 생각해 봤는데 그냥 무료로 서비스를 제공할 생각입니다. ]
그 순간 침묵으로 얼어붙은 회견장.
자신이 들은 것이 사실인가 하는 얼빠진 표정으로 마이크를 붙잡고 서 있던 기자는 이내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 예……? ]
하지만 멀린은 농담이 아니라는 듯이 진지하게 다시 한번 카메라에 대고 똑똑히 자신이 한 말을 반복해서 말해 주었다.
[ 전부 무료입니다. 0원. 영어로는 Free. 일본어로는……. 뭔지 모르겠네요. 아무튼 돈 받을 생각 없어요. ]
그 순간 미친 듯이 술렁이기 시작한 회견장. 눈이 멀 정도로 쏟아지기 시작한 플래시 사이로 다급해진 기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도……도대체 왜 그런지 이유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이런 뛰어난 기술을 공짜로 제공하겠다니 어째서……? ]
그 이유가 너무나도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침을 꿀꺽 삼키며 멀린의 대답에 집중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이 순간만큼은 레너드 대통령조차도 긴장한 얼굴로 완전히 방송에 몰입하고 있었지만, 그가 내놓은 답변은 너무나도 허무했지만 동시에 완벽했다
[ 그냥요. ]
그리고 그 순간.
레너드 대통령은 저 17살에 요술봉을 들고 다니는 멀린이 그 어떤 이유로도 절대 자극하거나 도발해서는 안 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하고 제일가는 미친놈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마음속 깊이 되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