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사람이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의식주 중 하나인 의복.
단순히 신체를 보호하고 중요 부위를 가리기 위한 기능적인 목적으로부터 시작해서 사치품이자 자신을 치장하고 나타내는 하나의 수단으로써 이용되기 시작하면서 이 의류 산업은 인류 문명이 탄생했을 당시와는 비교도 안 될 수준으로 커져 나갔다.
자그마치 1조 달러에 달하는 시장 규모에 육박하는 패션 시장.
그저 예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가죽으로 만든 가방 하나에 수백……. 아니 수천만 원에 달하는 거금을 쏟아붓고도 없어서 못 사는 이 기형적인 시장에서 삼진 물산의 패션 사업부는 냉정하게 말해서 많이 뒤처지고 있었다.
- 이번에 옷 새로 사려고 하는데 민폴 거 어떠냐?
- 민폴? 그걸 왜 돈 주고 삼?
- ㅋㅋㅋㅋㅋ 완전 틀딱 냄새나는 브랜드를 왜 사 입냐?
- 디자인도 후지고, 가격도 애매하고 완전 별로. 그거 살 바에는 차라리 돈 조금 더 보태고 말렌시아 거 사 입겠음
- 애초에 가격이 싼 건 이유가 있다. 진짜 민폴 제품들은 그냥 옷이 안 예쁨.
삼진 물산의 주력 브랜드인 민폴.
대부분의 수요층 역시 4~50대의 중장년층이었기에 유행에 가장 민감한 소비자들인 10대와 20대……. 특히 젊은 여성들에게 호응을 얻지 못한 민폴은 젊은 세대가 기피하는 브랜드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런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삼진 그룹의 이용수 회장.
그렇기에 그는 자신이 가진 인맥을 총동원해 전 세계의 유명한 패션 브랜드의 사업 담당자들을 한자리에 전부 불러 모았다.
“와……. 진짜 대박이지 않냐?”
“그러게……. 말렌시아가. 나이스. 구띠. 부이비 통. 가라. 에르데스, 유니글로, H&B. 그냥 들어 본 브랜드 담당자는 전부 다 모였네.”
“우리 삼진 물산에서 보자고 해서 이렇게 달려올 사람들이 절대 아닌데 라인 업이 왜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만들어진 거지? 회장님께서 직접 주관하셔서 그런 건가?”
일반적인 하청 업체들도 아니고 삼진 물산에서 감히 오라 가라 하기에는 너무나도 그 체급이 거대한 거인들의 모임. 아무것도 모르는 채, 그저 시키는 대로 회의를 준비하며 참여 명단을 본 삼진 물산의 직원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시끄럽게 수군거렸다.
“아마도 이번에 우리 삼진 물산에서 새롭게 준비하는 신규 사업 때문 아닐까?”
“뭐? 신규 사업?”
“너 아직 모르는구나? 이번에 공장 하나 매지컬 컴퍼니에서 협조 요청 들어와서 라인 설비 조정하고 공정도 추가하고 아예 싹 다 뜯어고쳤다고 하잖아. 아마도 거기서 뭐 새롭게 준비하고 있는 거 아닐까?”
“그래……?”
현재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마법과 관련한 기술을 다루고 이를 기반으로 한 혁신적인 제품을 탄생시키는 기업. 매지컬 컴퍼니.
이들이 삼진 물산과 관련해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는 소문에 삼진 물산 내에서는 온갖 기대와 흥분에 가득 찬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었지만, 정확히 어떤 제품을 만들려고 하는 것인지는 철저하게 비밀로 숨기고 있었기에 그 누구도 새로운 사업의 실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바로 지금 이 순간까지는 말이다.
삼진 물산의 초청을 받고 모인 전 세계의 패션 브랜드의 담당자들.
이들은 이용수 회장의 제안을 받고는 하나같이 자신의 귀를 믿을 수 없다는 경악한 표정을 지으며 회의실에 앉아 있었다.
“회……. 회장님. 죄송하지만 방금 뭐라고 말씀하신 겁니까?”
이 회의에 참석한 모든 이들을 대표해서 질문을 던지는 세계 1위의 패션 기업인 나이스의 담당자. 제발 이 모든 게 장난이길 바라는 것 같은 그의 간절한 눈빛에도 불구하고 이용수 회장은 확고한 얼굴로 재차 자신의 제안을 다시 말해 주었다.
“저희 민폴과 협력해서 여기 있는 이 디자인의 제품들을 전 세계 시장에 판매할 새로운 파트너를 모집한다고 했습니다.”
삼진 물산의 대표 패션 브랜드인 민폴과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신상품을 출시하자는 제안.
패션 시장에서 다른 브랜드의 회사와 협력해서 신상품을 런칭하는 것은 업계에서도 이상할 일은 아니었지만, 문제는 그 신상품이라는 것이 충격적……. 아니, 제정신이 아니라는 거였다.
“오 세상에 맙소사…….”
“Holy Shit…….”
“이건 아무리 봐도 조금…….”
마법사 망토와 고깔모자.
멀린이 평소에 입고 다니는 그 의상을 자기들 브랜드의 상표를 달고 정식으로 출시하자고 제안하는 이용수 회장을 담당자들은 그를 마치 미친놈 보는 듯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신음했다.
유치찬란하기 짝이 없는 제품. 다른 회사에서 이런 제안을 했다면 고려할 가치도 없이 곧바로 욕지거리를 한바탕 쏟아 내 주고 자리를 박차며 나갔겠지만, 이 회의실 안에 앉아 있는 이들 중에서 그런 정신 나간 짓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왜냐하면…….
“뭐가 어떻길래 그러세요? 저는 마음에 들기만 하는데?”
이 유치찬란한 복장을 매일같이 입고 다니는 당사자가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이 회의실 제일 상석에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시죠. 애초에 여러분이 이 회의에 참석한 것도 결국 삼진 물산이……. 아니, 제가 만들어 낸 원단이 탐나서 오신 거잖아요? 제품이 마음에 안 드시면 그냥 가셔도 돼요. 전 가는 사람 안 잡거든요.”
경악한 표정으로 무언가 떨떠름해 보이는 반응을 보이는 이들을 보며 일말의 주저 없이 회의실을 나가는 문을 가리키며 손을 흔드는 멀린. 하지만 이 회의실에서 자리를 박차고 나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자그마치 4개의 마법이 중첩되어 있는 원단.
삼진 물산에서 보낸 샘플을 통해서 이 원단이 가진 성능을 알게 된 회사의 최고 윗선에서는 이미 담당자들에게 협상에 임하기 이전부터 혼동이나 곡해의 여지가 없는 명확하고 확고한 지시를 내린 상태였다.
[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그 원단을 확보해 오게. ]
[ 삼진 물산이 경쟁사인 유니글로에게도 연락을 취한 것을 확인했네. 반드시 우리 H&B에서 이 제품의 공급 계약을 따내야 하니 목숨을 걸고 협상에 임하게. ]
[ 만약 이번 협상에서 그 원단을 얻어 내지 못한다면……. 그걸로 자네는 우리 회사와의 인연은 영원히 끝이라고 생각하게. ]
[ 돈이 얼마나 들든 상관하지 않으니까 무조건 확보해. 알겠어? ]
엎드려 개가 되어 짖는 수모와 굴욕을 겪게 되더라도 반드시 원단의 공급 계약을 따 오라고 닦달하는 경영진들.
그렇기에 이들은 절대적인 갑이나 다름없는 멀린의 심기 불편해 보이는 반응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앞다투어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 아하하하하! 아닙니다.”
“말이 잠깐 헛나왔네요. 실례했습니다.”
“마음에 안 들긴요. 아주 흥미로운 제안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협상이란 협상은 해 보지도 못하고 회의실에서 쫓겨날까 진땀을 흘리는 이들. 하지만 그런 그들의 조심스러운 반응에 멀린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흥미로운 제안이긴요. 무슨 말을 그렇게 빙빙 돌려서 해요? 유치찬란하고 정신 나간 제안이라고 생각하고 있겠죠.”
“예……?”
“그렇잖아요. 별무늬 디자인을 없애고 색상을 중후하고 고풍스러운 걸로 바꾸면 뭐 해요? 그래도 결국 망토와 고깔모자라는 그 본질은 변함이 없는데요. 무슨 자기가 만화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도 아니고 이런 망토 펄럭거리며 다니라고 하면 좋아할 사람은……. 자기가 슈퍼히어로라고 믿는 미친놈이거나 중2병 걸린 놈들일걸요?”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이 되는 것은 아니듯이, 아무리 디자인과 색상에 변형을 주더라도 현대인들의 미적 감각과 관념으로는 절대 호감을 살 수 없는 제품들. 그리고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패션 업계의 전문가들이었기에 멀린의 지적에 이들의 표정은 시시각각으로 변해 갔다.
“그런 사실을 잘 알면서……. 도대체 왜 저희에게 이런 제안을 하시는 겁니까?”
이게 얼마나 미친 짓인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멀린.
그렇기에 왜 세계적으로 명성과 명망이 드높은 브랜드 가치를 가진 의류 회사들을 불러다가 이런 제안을 하느냐는 누군가의 물음에 그는 피식 웃으며 답했다.
“여러분에게는 그럴 만한 힘이 있으니까요.”
“……?”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이 대우주의 진리와 같은 불변한 것이 아니에요. 지극히 주관적이고, 상대적이며 또 유동적이죠. 과거 뚱뚱하고 배가 잔뜩 튀어나온 여성의 모습이 아름다움의 대표적인 상징이었다면, 이제는 날씬하고 뼈밖에 없는 여성이 아름다움의 가치를 대표하죠. 불과 수십 년 전의 과거만 되돌아봐도 우리가 생각하는 미의 관념이 얼마나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다들 아실 텐데요?”
고작 1년만 지나도 빠르게 바뀌는 대중들의 트렌드.
그러한 대중의 변화에 제일 민감한 곳이 바로 패션 업계였기에 이들 중 몇 명은 멀린의 말에 공감한다는 듯한 눈초리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아름다움은 그저 한 시대의 문화와 흐름을 상징하는 하나의 지표이자 관념에 불과해요. 수많은 미디어에 의해서 만들어진, 하나의 허상이자 헛된 것일 뿐이고 그 말은 즉……. 의도적으로 아름다움의 가치를 지금과 다르게 원하는 대로 바꾸어 나갈 수도 있다는 말이죠.”
“그게 무슨……?”
광기 어린 웃음을 흘리는 멀린. 그리고 그는 돌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모두를 향해 말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죠. 저는 여러분이 유치찬란하다고 생각하는 이 복장이 앞으로는 전 세계의 모든 대중들에게 멋있고, 아름다운 복장이라고 받아들여지길 원해요.”
“???”
“!!!!”
멀린의 야심 찬 목표에 충격적인 표정을 짓는 이들은 비로소 그가 이 자리에서 무엇을 제안하고자 하는 것인지를 깨달았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여러분 회사들이 가진 브랜드의 힘이 필요하죠. 무엇이든 신제품을 출시하면 그것이 뭐가 되었든 믿고 사 주는 소비자들이 전 세계에 포진해 있는 여러분들이 모두가 힘을 합친다면……. 우리는 전 세계인의 머리 속에 박혀 있는 아름다움의 가치와 관념을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 버리는 아주 반역적이고 혁명적인 개혁을 이룩해 낼 수 있는 것이죠.”
자신이 가진 권력을 이용해 유치찬란하기 짝이 없는 제품을 아름답다고 강요하려는 멀린.
지록위마(謂鹿爲馬) 그 자체나 다름없는 폭압적이고 터무니없는 발상이었지만 그것보다 더 터무니없고 어처구니없는 것은 바로 이것이 정말로 현실적으로 가능한 이야기라는 사실이었다.
“지금 말씀은……. 지금 이 회의에 참석하고 있는 모든 브랜드에서 이 망토와 모자를 최신 유행으로 만들어 주기를 바란다는 말씀이십니까?”
“확실히……. 이렇게 브랜드 파워와 최신 트렌드의 영향력이 큰 회사들이 전부 밀어준다면 그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일이긴 한데…….”
“그렇지만 저런 디자인을 도대체 어떻게…….”
복잡한 표정으로 심각하게 이 제안을 고민하기 시작한 담당자들. 그런 이들의 모습을 여유롭게 지켜보고 있던 멀린은 이용수 회장에게 눈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이용수 회장은 헛기침을 하며 모두의 시선을 모으고는 절대로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내밀었다.
“이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제안이라는 점은 저희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걸로 인해서 하락할 브랜드의 가치와 소비자들의 평판을 고려해서 한 가지 보상안을 제안하도록 하겠습니다.”
“보상안 말입니까……?”
“그게 뭡니까?”
“사실 이 망토를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핵심 원단은 따로 판매할 생각이 없습니다. 아무래도 앞으로 폭증하게 될 수요량을 생각하면 절대로 원단의 공급량이 따라가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거든요. 하지만, 만약 여러분이 우리 삼진 물산과의 협력 제안을 받아들이고 이 망토와 모자를 만들어 판매하신다면, 그 판매 실적에 따라서 회사별로 자유롭게 전용할 수 있는 원단을 무상으로 제공하기로 하겠습니다.”
“!!!”
“그 말씀은……. 이 마법사 망토를 팔지 않으면 원단을 따로 구입하거나 공급받을 수 없다 이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처음부터 협상의 여지조차 없었던 협상.
세계 시장을 홀로 완전히 씹어 먹고도 모자랄 사기적인 원단을 유일하게 생산하고 공급할 수 있는 삼진 물산의 이 변태적이고도 정신 나간 제안 앞에서 모두가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침묵하고 있는 순간.
그 침묵을 깬 것은 다름 아닌 멀린이었다.
“자……. 그럼 이 정도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은 드린 것 같으니 한번 여러분의 의사를 확인해 보도록 하죠. 때려죽여도 이딴 유치찬란한 의상은 우리 브랜드 로고 박고는 절대 못 팔겠다고 생각하는 사람?”
“…….”
모두가 서로의 눈치를 보며 이리저리 고개를 돌렸지만, 이 테이블에서 손을 드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리고 그런 이들의 모습에 멀린은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럼 세상 사람들에게 진정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직접 보여 주겠다는 아주 혁명적인 발상을 행동으로 옮기고 싶은 사람?”
말이 끝나기도 전에 누가 질세라 일제히 손을 번쩍 드는 세계적인 패션 회사의 담당자들.
만장일치로 모두가 나의 대업에 같이 함께하기로 했다는 것을 확인한 멀린은 생각만 해도 신이 난다는 얼굴로 좌중을 둘러보며 물었다.
“자……. 그럼 어디 한번 우리 모두 함께 아름다움의 반역을 시작해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