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화.
13억 인구. 세계에서 4번째로 방대한 영토. 막대한 군사력.
아시아를 넘어서 전 세계의 패자가 되기 위한 시도를 이어 나가는 자칭 대국(大國).
중화인민공화국.
이러한 중국의 국제적인 항구 도시인 상하이에 최고위부 권력자 한 사람이 직접 행차했다.
“이것이 그 마나석이라는 물건인가……?”
“그렇습니다.”
탄자니아 정부가 진 막대한 채권을 갚아 주는 것을 대가로 해서 얻어 낸 최상급 마나석. 어마어마한 거금을 들여 입수한 물건이 다행히 별 탈 없이 성공적으로 중국 영토 내로 들어오는 데 성공하자 두 눈으로 직접 마나석을 보기 위해서 상하이까지 온 사람은 다름 아닌 중국의 핵심 정보기관인 국가안전부장 진 페이였다.
전 세계의 여러 정보기관들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마나석.
그런 마나석을 앞에 두고 그는 다른 사람들이 그러하던 것처럼 영롱하게 푸른빛을 빛내며 강렬하게 그 존재감을 주위에 발산하는 마나석을 한참 동안이나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걸 가져오는 데……. 100억 달러나 들였다고 했었나?”
“정확히는 130억 달러입니다. 저희 중국수출입은행이 기존에 탄자니아 정부에게 지급했던 100억 달러의 부채를 전부 말소 처리하고 30억 달러를 추가로 대출해 주는 조건으로 거래를 성사시켰습니다.”
탄자니아에서 직접 마나석과 관련한 거래 협상부터 시작해 중국으로까지 밀수입하는 과정 일체에 깊숙하게 관여했던 뤼 첸. 일평생을 수출입은행에서 일해 온 일개 은행 간부인 그로서는 절대 단 한 번도 마주할 일 없는 중국 공산당의 핵심 권력자인 진 페이.
그를 마주한 뤼 첸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가득 어려 있었지만, 혁혁한 공을 세운 상황에서 마주한 것이기에 그 사이에는 묘한 자신감도 피어오르고 있었다.
“……. 조국을 위해서 아주 큰 일을 해냈군.”
“아닙니다. 위대한 공화국의 자랑스러운 인민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며 겸양을 떠는 뤼 첸. 하지만 그런 그의 말에 국가안전부장은 피식 웃으며 답했다.
“과한 겸손은 오히려 독이 되는 법이지. 그 누구도 확보하지 못해 쩔쩔매던 귀중한 물건을 찾아낸 자네의 능력은 칭찬받아 마땅하네.”
“국가안전부장님께서 그리 말씀해 주시니 황송할 뿐입니다.”
“……. 조만간 따로 부르도록 하지. 그 전까지는 본인의 직무에 충실하고 있게.”
“알겠습니다.”
자신의 역할은 여기서 끝이라는 것을 깨달은 뤼 첸. 그는 축객령을 내리는 국가안전부장에게 허리 굽혀 깍듯이 예를 표하고는 이내 마나석을 둔 채로 발걸음을 옮겼다.
“…….”
홀로 남아 한참을 가만히 서서 마나석을 바라보던 진 페이.
그리고 그는 갑자기 혼자서 헛웃음을 내뱉으며 중얼거렸다.
“그토록 미국과 한국 내의 첩보망을 총동원해 어떻게든 작은 정보 하나라도 얻으려 애를 쓰고도 허탕만 치던 그 물건이 이렇게 쉽게 수중에 들어오다니……. 역시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군.”
마법 입국을 선언하고 전혀 예측할 수 없는 행보를 걸어가는 미국.
그런 미국의 속셈과 앞으로의 계획을 이해하기 위한 첫걸음으로 그는 주변에 대기하고 있던 이들에게 지시했다.
“물건을 베이징에 있는 연구소로 안전하게 전달해라.”
그간의 노력이 너무나도 허탈하다는 듯이 미묘한 표정을 짓던 그는 이제 다 되었다는 듯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제 드디어 그 미국 놈들이 도대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 확실하게 알 수 있겠군.”
* * *
중국 정부가 수많은 우여곡절 속에서 겨우 확보한 마나석을 씹고 뜯고 맛보고 실컷 즐기는 동안. 미국 정부 소속의 정보 요원인 에밀리는 멀린의 일방적인 통보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뭐……. 뭐라고요? 뭐가 사라졌다고요?”
자기의 두 귀를 의심하는 듯한 얼굴로 되묻는 에밀리. 마치 방금 자신이 들은 말이 농담이길 간절히 바라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능글맞은 미소를 이죽거리며 화상으로 통화를 하고 있는 어린 소년은 그런 그녀의 기대를 처참하게 짓밟았다.
[ 최상급 마나석 한 개가 탄자니아로의 수송 과정에서 탈취됐어요. 마나석을 옮기던 배송 기사의 말에 따르면 정체를 알 수 없는 괴한들이 나타나서 순식간에 적재한 화물을 모조리 강탈하고 사라졌다고 하더라고요. 현지 수사 당국의 말로는 아마 인근 지역에 상주하는 갱단 조직의 소행 같다고 하긴 하는데……. 그렇게 적극적으로 수사에 나설 것 같지는 않아요. ]
매지컬 컴퍼니에서 극비리에 개발 및 생산 중인 마나석이 유출된 초유의 사태.
비록 마나석과 관련한 정보 자체가 외부에 드러난 적은 있다고는 하지만, 그 세부적인 실물이 유출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을 정도로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가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는 품목이었기에 이번 사건이 에밀리에게 가져다주는 충격은 어마어마했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마나석을……. 그것도 하필이면 최상급으로 보낸 건가요?”
탄자니아에 직접 가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선 멀린. 하지만 일을 해결하기는커녕 더 심각한 문제 상황을 만들어 버리는 그를 보며 에밀리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물었다.
[ 여기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낙후된 지역이더라고요. 전력 공급도 제대로 안 돼서 계속 새벽 시간마다 끊기길래 부족한 전력을 대신 공급할 수 있는 발전 시설을 구축하려고 했었죠. 아, 아영한테 그거 가지고 뭐라고 하지는 마세요. 제가 일부러 일을 번잡하게 하기 싫어서 괜히 말하지 말고 조용히 보내라고 지시해서 그런 거니까요. ]
“…….”
너무나도 당당하게 이 모든 게 자기 잘못이라고 말하는 멀린. 뻔뻔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조금도 위축되지 않는 그의 태도에 에밀리는 할 말을 잃었다.
“정말이지……. 멀린 님은 이게 지금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 줄은 알고 계시는 거예요?”
멀린의 마법적 지식과 현대 과학의 금속 공학이 가미되어 만들어진 산물.
인공 마나석(Artificial Mana Stone).
마나를 저장하고 또 출력할 수 있는 에너지 저장 장치의 역할을 하는 이 마나석은 지금 당장 시장에 출시해도 될 정도로 높은 수준으로 압도적인 성능과 효율을 자랑하는 상태였지만, 그런데도 공식적인 상용화 단계를 밟지 않고 있는 것은 마나석에 아주 치명적인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그 마나석의 성능과 위력이 외부에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석유나 천연가스 같은 에너지 자원으로 먹고살던 모든 국가는 그야말로 한순간에 파탄 나게 될 거예요. 미국 내에서 강력한 힘을 가진 정유 회사들은 물론이고 전 세계의 에너지 기업들이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마나석의 상용화를 막으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달려들게 될 거라고요.”
그냥 섣불리 시장에 공개하기에는 너무나도 압도적이고 파괴적인 영향력을 가진 물건.
단순한 기업들이 아니라 에너지 하나로 먹고사는 중동 국가들에게는 그야말로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기에 에밀리는 단순한 혁신 수준이 아니라 전 세계의 복잡한 국제 정치의 이해관계와 역학 구도를 완전히 엎어 버리는 경제적 핵폭탄이나 다름없는 물건을 아무런 상의도 없이 함부로 다루는 멀린을 보며 답답함을 느꼈다.
“혹시 러시아나 중동에서 보낸 암살자들한테 매일같이 시달리고 싶은 건가요? 도대체 왜 우리 미국 정부와 아무런 논의도 없이 그런 위험천만한 짓을 벌이는지 이해할 수 없네요.”
만약 그가 사전에 언질이라도 해 줬다면 중간에 어떠한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철저하게 사전 점검을 마치고 호위 병력이라도 따로 붙여서 안전하게 운반될 수 있도록 만반의 조치를 취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사태가 벌어지고 난 이후에야 사고가 난 이야기를 꺼내는 멀린.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지워지지 않고 있었다.
[ 그러게나 말이에요. 누가 훔쳐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자기가 얼마나 위험한 일을 저지르고 있는지 알았으면 좋겠네요. 그렇지 않나요? ]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요……?”
[ 모르는 척하지 마세요. 지금 이곳 탄자니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 그냥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는 것은 미국 정부도 이미 대충은 예상하고 있지 않나요? ]
허튼수작 부리지 말라는 듯이 빙긋 웃으며 싸늘한 목소리로 말하는 멀린. 그리고 그는 여유로운 태도로 손을 매만지며 말을 이어 나갔다.
[ 최상급 마나석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탄자나이트가 필수적이죠. 그리고 그 탄자나이트가 유일하게 생산되는 광산을 탄자니아 정부가 최근에 벌어진 수많은 사고들을 빌미로 도로 빼앗아 가려고 하고 있고요. ]
“…….”
물증이 없어서 그렇지, 철저한 대비와 안전 진단에도 계속해서 연달아 발생하는 사고. 그렇기에 미국 정부 역시 이러한 상황에 대해서 계속해서 의구심을 갖고 조사 중이었기에 에밀리는 멀린의 말에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 이건 탄자니아 정부가 독단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에요. 분명 제3국……. 그것도 미국을 대신해 선택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영향력을 가진 국가가 뒤에서 개입했을 정황이 커요. 아니, 분명 누군가 배후에 숨어 있어요. 그게 어디인지는 파악하지 못했지만……. 분명 그곳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사람이 따로 있을 거예요. ]
미국과 척을 지는 한이 있더라도 탄자니아 정부가 이런 짓을 감행할 수 있게 해 주는 든든한 뒷배가 있다는 멀린의 가정. 그리고 에밀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생각에 동의했다.
“맞아요. 만약, 그 마나석이 탄자니아에서 운반 도중에 사라졌다면……. 그리고 탄자니아 정부가 마나석 수색에 비협조적으로 나선다면 그건 분명 멀린 님이 생각하시는 상황일 가능성이 높죠. 저희도 그래서 그 배후를 추적하기 위해서 이미 전부터 조사를 하고 있는 중이에요.”
다른 나라와 수상한 거래를 하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는 미국 정부. 하지만 범인이 누구인지를 아직은 찾지 못했다고 말하는 에밀리에게 멀린은 작게 웃으며 말했다.
[ 그렇게 힘쓰며 애써 찾으려고 노력 안 하셔도 돼요. 어차피 조만간 알게 될 테니까요. ]
“네……?”
[ 잊었어요? 마나석……. 그것도 최상급 마나석은 원자력 발전소 한 기와 맞먹는 수준의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품고 있다는 사실을요. 그거 하나만 있으면 제가 머물고 있는 이 지역의 마을뿐만 아니라 이 일대 전체에 아주 풍족한 전력을 생산하고 공급할 수 있죠. ]
이 일대 지역 전체의 전력 수요를 100%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양의 에너지를 품고 있는 최상급 마나석. 그것도 한계 용량까지 마나를 꽉꽉 채워 놓은 상태로 운반 중이던 그것은 고작 강도나 약탈꾼들 따위가 감당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 그렇게 강대한 마나가 들어가 있는 마나석을……. 마법사도 아닌 비전문가가 함부로 가져다가 이거저거 실험해 보며 만진다? 그건 그냥 핵폭탄을 5살짜리 어린아이한테 맡기는 거랑 다를 바가 없는 정신 나간 짓이죠. 약은 약사에게. 마법은 마법사에게. 이게 상식인데 도대체 무슨 깡으로 그거 가져간 건지 저는 솔직히 잘 이해가 안 되네요. ]
일반적으로 자연에서 발생하는 마나석이 아니라 방대한 전력 생산을 위해 발전용으로 특화되어 제작된 인공 마나석.
마나석 내부에는 한계 이상으로 가득 채워진 마나를 통제하고 안정적으로 운용하기 위해서 필요한 온갖 수식들이 마나의 폭주를 막고 있었고, 거기에 혹시 모를 도난이나 탈취 상황을 우려한 여러 가지 안전 조치와 안배들이 들어가 있었다.
[ 혹시라도 강제로 마나석을 뜯어본다거나 분석해 본다고 해체한다거나 하는 이상한 짓을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네요. 그거 전문적인 지식도 없는 일반인이 함부로 건드렸다가는 마나 폭주가 일어나서 최소 반경 1km 일대는 흔적도 없이 날아가 버릴 텐데 말인데요. ]
함부로 뜯어보았다가는 강력한 마력 폭발과 함께 흔적도 없이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릴 최상급 마나석. 적절하게 활용했을 때는 아주 뛰어난 에너지원이지만, 자칫 잘못 건드렸을 때는 친환경 무공해 핵폭탄이나 다름없는 위험천만한 물질의 행방을 두고 멀린은 정말 걱정이라는 듯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에밀리는 조금도 진심이 담겨 있지 않은 표정의 멀린을 보며 문득 무언가를 깨달았다.
“자……잠깐. 지금 설마…….”
일순간 충격을 받은 표정을 짓는 에밀리. 그리고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 이 모든 걸 일부러 의도하신 건 아니죠?”
에밀리의 머릿속에서 빠르게 맞춰지기 시작한 수십……. 수백 개의 퍼즐 조각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물음에 멀린은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그저 작게 웃으며 광기 가득한 눈빛으로 한마디를 툭 던질 뿐이었다.
[ 걱정하지 마세요. 어차피 도둑질해서 아무도 모르게 강탈해 간 물건인데 그걸로 무슨 대참사가 벌어지더라도 항의할 수 있는 정신머리를 가진 사람은 어디에도 없을 테니까요. ]
고작 컴퓨터 본체 정도에 불과한 크기로도 원자력 발전기 1기와 동급일 정도로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품고 있는 최상급 마나석을 일부러 분실한 멀린. 그리고 이 사건이 어딘가에서 가져올 거대한 참사를 머릿속에 떠올리던 에밀리. 그리고 그녀는 이번 일을 통해서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 이참에 에밀리도 잘 알아 두세요. 저는 제 사람이나 물건에 함부로 손대는 걸 세상에서 제일 싫어한다는 사실을요. ]
무슨 일이 있어도 이 미치광이 마법사의 소유물을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