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화.
탄자니아의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북부 외곽 지역에 자리한 메레데시 산맥.
원래는 개발이 많이 이루어지지 않은, 기본적인 수도나 전기 설비조차도 제대로 깔리지 않은 낙후된 구역이었지만 지금은 생각보다 꽤 준수한 형태의 마을로 발전한 상태였다.
“어서 오십시오. 멀린 님. 저는 매지컬 컴퍼니의 자원 개발 담당 업무를 맡고 있는 박진철 과장이라고 합니다.”
“저는 양구혁 대리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메레데시 산맥에 자리한 매지컬 컴퍼니가 소유한 광산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조성된 작은 마을. 그곳에 상주하고 있던 회사의 직원들과 조우한 나는 깍듯이 인사를 허리 굽혀 인사를 하는 그 둘에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다들 반가워요. 여기서는 멀린이라고 하지 마시고 철수라고 불러 주세요.”
“예……?”
“제가 마법사 복장을 하고 있지 않고 일반적인 옷을 입고 있잖아요? 괜히 사람들한테 이상한 오해를 사고 싶지 않아서 이렇게 온 거니까 그냥 평범하게 대해 주세요.”
“아……. 알겠습니다.”
그 말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서로 시선을 교환하던 두 사람. 하지만 현재 광산의 상황에 대해서 보고를 시작하자 이 둘은 얼마 지나지 않아 평정심을 되찾았다.
“현재 본사에서 지시한 대로 광산 전체가 폐쇄된 상태입니다. 매몰 사고와 관련한 조사를 위해서 간간이 탄자니아 정부에서 보낸 조사관들이 광산을 드나들고 있는 중이긴 합니다만 크게 문제가 되는 상황은 없습니다.”
“음……. 최근에 부상자랑 사망자가 여럿 있다고 들었는데 광산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의 분위기는 어떠하던가요?”
“조금 동요하고 있기는 하지만 사망한 유족에게 막대한 보상금을 지급하기도 했고 부상자들한테도 치료비 일체를 비롯해 생활비를 지원하고 있는 중이라서 다행히 회사에 원한을 품는다거나 적개심을 드러낸다거나 하는 일은 없습니다.”
“다른 주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광산이 완전히 폐쇄되고 회사가 이곳을 아예 떠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하고 있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오, 그래요?”
“네……. 이 일대에 조성된 마을의 부대 시설과 기본 인프라들 대부분이 저희가 거의 무상으로 지어 준 것이나 다름없는 곳들이거든요. 월급 자체도 이곳 탄자니아의 기준이 아니라 한국의 급료를 기준으로 하다 보니 이렇게 말하기는 조금 쑥스럽지만 사실 여기 주변 사람들이 제일 일하고 싶어 하는 회사가 바로 저희 회사입니다.”
1인 GDP가 고작 1,100달러에 그치는 빈국인 탄자니아.
이런 낙후된 국가에서 자그마치 평균 연봉의 30배인 3만 달러를 지급하고 있었기에 이곳 인근 지역에서 살고 있던 여러 부족민들은 강력한 매지컬 컴퍼니의 지지자이자 후원자들이었다.
[ 움베페는 일하고 싶다. 여기 광산 폐쇄되면 안 된다. 우리 동생들을 학교에 보낼 수 없다. ]
[ 우리 정부는 이런 낙후된 곳에 조금도 관심이 없다. 그대들이 없다면 우리는 또다시 비참하고 빈곤한 삶을 되풀이해야 한다. ]
[ 그대들의 회사는 이 마을의 은인이다. 절대 이곳을 버리지 말아 줬으면 한다. ]
의료, 교육, 식수, 전기……. 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인프라조차도 제대로 누리지 못한 채 살아가던 지역의 부족민들. 하지만 수십 조에 달하는 막대한 자금을 거의 뿌리다시피 하며 이 광산의 확보를 최우선으로 둔 덕분에 3번에 걸친 사고 속에서도 이곳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여전히 매지컬 컴퍼니를 지지하고 있었다.
“역시……. 무리해서 있는 돈 없는 돈 팍팍 끌어들여서 쓰기를 참 잘했네요. 여기 노동자들까지 죄다 돌아서서 일 안 하겠다고 파업하면 더 머리 아플 뻔했는데 최소한 저희 편이 있기는 하네요.”
“그렇긴 합니다만……. 이렇게 무기한 생산이 중단된 상태로 임금을 지급하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상황이라서 하루빨리 광산을 열어야 하는데 참 큰일입니다.”
내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박진철 과장. 그리고 그런 그의 말에 나는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요. 그래서 제가 최대한 빠르게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 여기에 직접 왔잖아요? 이제부터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니까 안심하고 사고가 난 현장이나 좀 둘러보죠.”
“아…….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차를 타고 이동한 지 10분이 지났을까?
굳게 자물쇠로 잠긴 철문 앞에 당도한 나는 차에서 내려 광산의 입구 앞에까지 걸어갔다.
“여기가 탄자나이트가 채굴되는 광산의 입구인 건가요?”
“네. 혹시라도 붕괴의 위험이 있으니 너무 깊숙이 들어가지는 않으시길 바랍니다.”
안전모를 건네주며 조금은 불안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는 두 사람.
하지만 나는 피식 웃으며 손을 휘두르며 말했다.
“괜찮아요. 저는 그런 복장보다 훨씬 편한 게 있거든요.”
펄럭.
“……?”
“이건…….”
단순한 손짓과 함께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나타난 마법사 망토와 모자. 그리고 씨크릿 쮸쮸까지 들고 있는 것을 보며 둘은 깜짝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지만, 나는 이들의 반응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앞으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
[ 호오……. 확실히 여기 장난 아닌데……? ]
“너도 느껴지냐?”
[ 그럼. 이렇게 강렬하게 마나를 빨아들이고 있는데 이걸 지고의 종족인 내가 모를 리가 없지. 이 정도면 미스릴이 대량으로 매장되어 있는 것은 분명하겠네. ]
“미스릴이 아니고 탄자나이트.”
[ ……. 아무튼. 판달리아에서는 미스릴이라고 불렀다고. ]
판달리아에서는 강력한 아티팩트나 무구를 만들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물질이자 신의 금속이라고 불리우던 미스릴.
그 미스릴과 동일한 성질을 보이는 이 탄자나이트는 분명 이곳에 매장되어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우우우웅.
나의 의지에 완벽하게 통제되고 있는 마나들이 이렇게 사방으로 강하게 끌어당겨지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이건……?”
“오오오…….”
나의 몸에서 일렁거리고 있는 푸른빛의 마나.
그 마나가 사방으로 퍼져 나가자 이내 빛 하나 없이 새까맣던 동굴 전체에서 푸른빛으로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역시 마나 흡수율이나 축적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극상이네……. 괜히 신의 금속이라고 불리는 건 아니었던 건가?”
내 마력을 끝도 없이 받아들이며 반짝거리고 있는 탄자나이트 원석 조각.
고작 손가락 두 마디 정도로 작은 크기의 그것을 집어 들고 유심히 살펴보고 있자 뒤따라오고 있던 박진철 과장은 조심스럽게 물어 왔다.
“저기……. 이게 정확히 어떤 건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아, 이거요? 탄자나이트예요.”
“…….”
그걸 누가 몰라서 물어봤냐는 듯한 눈초리로 가만히 바라보는 그에게 나는 히죽 웃으며 말을 이었다.
“우리 회사가 야심 차게 준비하고 있는 마나석……. 그중에서도 최상급 마나석을 제작하기 위해서 핵심적으로 들어가는 원료죠. 이게 왜 대단하냐면요, 마나 저항이 0이에요. 0.00001 같은 소수점 장난도 없이 아예 빵. 제로 그 자체예요.”
“마나 저항이요……?”
“대충 마나를 운용할 때 가해지는 부하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저항이 높을수록 마나의 출력이나 운용되는 양에 따라서 해당 물질에 가해지는 대미지가 커지죠. 대충 전기 저항이랑 비슷한 개념 같다고 하면 좀 이해가 쉬울까요?”
마력의 효율적인 운용과 출력 향상을 위해서는 반드시 고려되어야 하는 마나 저항.
그리고 놀랍게도 이 탄자나이트는 그러한 저항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이론상으로는 무한에 가까운 출력으로 마나를 운용해도 이 광물 자체에는 아무런 대미지가 들어가지 않죠. 물론 크기에 따라서 저장할 수 있는 마나량의 한계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이 탄자나이트를 이용하면 마나석의 효율 자체가 정말 미친 수준으로 늘어나죠.”
크기만 원하는 만큼 크게 만들 수 있다면, 대도시 하나가 통째로 들어갈 만한 규모의 섬도 하늘에 띄울 수 있게 해 주는 동력원이 되어 줄 탄자나이트. 그렇기에 이 귀중한 가치를 지닌 광물은 그 누구에게도 넘겨줄 수 없었다. 심지어 그 대상이 미국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렇군요……. 정확히 이해는 안 되지만 대단한 광물이라는 것은 알겠습니다.”
내 말에 묘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둘. 하지만 아직 이 탄자나이트의 가치를 잘 모르는 듯한 그들을 바라보던 나는 이내 벌떡 일어나서는 말했다.
“그렇기에 이런 같잖은 테러를 저지른 새끼를 반드시 찾아내서 기필코 응징해야 한다는 말이죠. 남의 사업장에 폭탄이나 설치해서 폭파시키는 이런 돼먹지도 않은 짓거리를 저지른 X간에게는 그에 걸맞은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하지 않겠어요?”
아무런 장비도, 전문적인 지식이나 인력도 없이.
갑자기 확신에 찬 얼굴로 폭탄 테러를 저지른 놈들에게 정의의 심판을 내리자는 나를 보며 그 둘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예……? 테……. 테러요?”
“폭탄이라니 그게 무슨……!”
하지만, 이미 이 광산 일대에 전개된 나의 마력장에 의해서 작은 돌 부스러기 하나.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 하나의 움직임. 바닥을 기어 다니는 작은 이름 모를 벌레의 움직임들까지 모두 선명하게 인지되고 있었기에 나는 이번 매몰 사태를 일으킨 원흉이자 증거물이자 광산 동굴에서 절대 있을 수 없는 무언가를 분명하게 찾아낼 수 있었다.
쿠르르르르릉.
나의 손짓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돌무더기가 거대한 굉음을 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붕괴 사고가 벌어진 곳이 가파른 절벽 지형인 탓에 중장비가 들어올 수 없어 치우지도 못하고 그대로 방치되어 있던 현장. 크고 작은 암석 덩어리들이 공중에 떠오르고 그 사이사이에서 요술봉을 휘저어 무언가를 찾아낸 나는 히죽 웃으며 물어 왔다.
“광산에서 가끔은 다이너마이트 같은 폭발물을 쓴다고 듣기는 했는데……. 여기서 왜 이런 조잡해 보이는 장치가 되어 있는 폭탄이 후미진 암석 틈 사이에 설치되어 있는 걸까요? 이건 아무리 봐도 일반적인 산업용이 아닌 것 같은데 말이죠.”
“이……이건…….”
“세상에 맙소사…….”
믿을 수 없는 기적. 수색이나 조사조차도 불가능할 정도로 어둡고 좁은 매몰 현장에서 아무런 것도 하지 않고 처음 보는 형태의 폭탄을 찾아낸 멀린을 보며 그 둘은 입을 벌렸다.
“어때요? 이래도 지금까지 벌어졌던 붕괴 사고들이 그냥 우연히 벌어진 재수 없는 사고처럼 보이세요?”
“…….”
도무지 믿기 힘들지만 부정할 수 없는 증거 앞에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는 두 사람.
나는 얼빠진 얼굴을 하고 있는 이 둘에게 히죽 웃어 보이며 말했다.
“여기 이 광산에 출입했던 사람들 명단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다 가지고 와 보세요. 어디 한번 감히 이런 짓을 벌인 배후가 누구인지 한번 색출해 보자고요.”
* * *
멀린이 광산에서 실사를 뛰며 상황을 확인하는 동안.
그가 탄자니아까지 직접 행차했다는 것을 알아챈 미국 정부 역시 사태의 심각성을 눈치채고 즉각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탄자니아의 대통령. 필립 음팡고에게 만남을 요청해 설득을 시도하는 미국 대사.
“Mr. President. 부디 현명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시길 기대하겠습니다.”
계속해서 사고를 빌미로 매지컬 컴퍼니가 보유하고 있는 광산에 대한 채굴권을 도로 빼앗으려는 그에게 그 결정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 될 것인지를 열과 성을 다해서 설명했지만, 미국 대사의 갖은 노력에도 그는 시큰둥한 얼굴로 일관했다.
“대사가 한 제안은 깊이 고민해 보겠소. 잘 가시오.”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며 듣는 둥 마는 둥하며 대화를 마무리하고 축객령을 내린 음팡고. 그는 미국 대사가 집무실을 나서자마자 이내 자신의 충실한 보좌이자 사촌지간인 술루후에게 짜증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도대체 언제쯤이면 일이 다 해결되는 건가? 분명 다음에 또다시 사고가 벌어지면 미국 정부도 그때는 어쩔 수 없을 거라고 하지 않았나?”
“조금만 참을성을 갖고 기다려 보시지요. 대통령님. 지금 광산이 가동을 하지 않고 있어서 기회만 보고 있는 중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채굴이 시작되면 그걸로 그 회사는 끝장일 겁니다.”
이미 내부에서는 채굴권을 도로 빼앗기 위한 모든 사전 준비를 다 끝낸 상황.
하지만 광산이 가동을 시작하지 않아서 가만히 덫에 걸리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지만, 음팡고는 탐욕스러움이 가득한 눈빛을 번들거리며 이 이상은 참기 힘든 기색이었다.
“더 이상 기다리게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중국과 약속한 기한까지 앞으로 한 달도 채 남지 않았으니 말이야.”
자그마치 15억 달러의 빚을 중국에게서 지고 있는 탄자니아.
그 빚의 이자를 갚기도 급급해 허덕이고 있는 상황 속에서 이들은 전혀 새로운 방향으로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차피 그 광산 하나만 넘기면 중국에서 현재 지고 있는 채권을 모두 변제하는 것은 물론이고 30억 달러를 추가로 투자해 주겠다고 약조하지 않았습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차분하게 그를 안심시키는 탄자니아의 2인자이자 총리인 술루후.
그리고 그는 생각만 해도 신난다는 듯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그 광산만 잘 넘기면 아마 대통령님의 별장을 한 5채는 더 지으실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