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 다음 뉴스입니다. 이호준 당선인이 차기 내각을 구성하기에 앞서 여야가 추천하는 인사를 고루 등용하겠다고 밝히며 큰 화제를 불러오고 있습니다. 모든 임명 과정은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루어질 것이며, 어떤 정치적인 편향성 없이 오로지 개개인의 능력만을 보고 중립적인 시각으로 후보자를 선정하겠다고 밝혔습니다. ]
[ 마법에 대해 계속 부정적인 태도를 고수해 오던 윤기열 대통령이 결국 기존 계획을 철회하기로 했습니다. 대한국민당과 민주시민당 역시 마법이 앞으로 대한민국의 국익과 세계 인류의 번성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발전하기를 바란다고 대변인을 통해 논평을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무분별한 방종과 방관은 심각한 부작용을 낳게 될 것이라는 우려는 여전하며 이에 대한 통제를 위한 제도와 보완책을 담은 새로운 법안을 신속하게 발의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
[ 마법을 기반으로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이호준 당선인. 새롭게 출범할 이호준 행정부는 과연 어떠한 미래를 그리고 있는 걸까요? 그가 주장하는 마법 혁명. 과연 어떠한 것들을 담고 있는지 한번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
어엿한 당선인 신분이 되어 본격적인 정치 행보를 시작한 이호준. 아직 공식적으로 임기를 시작하기까지 몇 달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었지만, 그는 벌써 삼진 그룹을 이끌던 회장일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이호준 당선인.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 자신감 넘치는 포부를 선언.
- 정치, 외교, 국방, 교육, 경제, 안보……. 모든 분야의 정책을 새롭게 정립할 것.
- K-마법 입국. 미국의 정책 기조와 발맞춰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는 이호준 정부.
처음부터 끝까지 과학 기술을 기반으로 세워진 문명에 마법이라는 개념을 강제적으로 이식하려는 거대한 개혁의 과정. 그리고 그 첫 출발을 한 미국을 따라 빠르게 추격해 나가기 시작한 상황 속에서 나 역시 그러한 이호준 당선인의 움직임에 발맞춰 하루하루를 바쁘게 보냈다.
“용용아. 어떻게 생각해? 이 정도면 괜찮겠지?”
서울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유휴 군사 시설로 남아 있던 어느 훈련소를 새롭게 정비 중인 나는 오랜 시간 공을 들여 거의 완성한 중첩 마법진의 뼈대를 공중에서 한번 내려다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 …….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이미 나는 저게 뭔지조차도 이해하는 걸 이미 한 달 전부터 포기한 상태였는데. ]
“뭘 또 그래? 너 그래도 명색이 드래곤 로드였다며? 그것도 가장 머리가 똑똑한 골드 일족이었다면서 왜 그렇게 다 앓는 소리를 하냐?”
[ ……. 이해도 어느 정도껏 해야지. 도대체 어떤 미친놈이 백 단위가 넘어가는 마법진을 중첩해서 그려 놓냐? 그건 인간의……. 아니, 내 영역도 이미 오래전에 벗어난 짓이거든? ]
내 말에 조금은 날카로운 어조로 신경질을 내며 대꾸하는 용용이.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내가 완성해 나가고 있는 마법진은 분명 이곳을 넘어 판달리아의 수준조차도 아득히도 뛰어넘는 그 무언가였다.
“나야 뭐 이게 어느 정도 수준인지 알고 하나? 그냥 대충 만들고 싶은 것을 떠올리니까 알아서 마법진이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건데. 이게 겉으로 보기만 복잡해 보이지, 생각보다 원리만 알면 규칙성도 있고 그리는 것 자체가 단순 노가다성이 짙어서 그렇지, 이해하는 건 막상 어렵지 않다니까?”
[ ……. 진짜 이럴 때 보면 주인이 얼마나 재수 없는 인간인지는 알고 있지? ]
수만 평에 달하는 훈련소 시설 영역 대부분을 커버하는 대단위 광역 마법진.
손이 크기로 유명한 드래곤조차도 감히 구상하기 부담스러울 정도로 거대한 규모인 데다가 마법진들의 그 수식과 구조는 생소한 데다 난해하기까지 했기에 용용이는 이게 쉽다는 내 말에 기가 막힌다는 듯이 투덜거렸다. 하지만 그래도 궁금하긴 했는지 은근한 목소리로 물어 왔다.
[ 그래서……. 이게 도대체 무슨 기능을 하는 마법진인데? ]
“아, 이거?”
용용이의 질문에 나는 히죽 웃으며 이 영역 안에 적용된 무수히 많은 마법을 읊기 시작했다.
“[되풀이되는 시간] [진실한 거짓, 그리고 거짓된 진실] [마력 집중] [미러 이미지] [헤어날 수 없는 영혼] [ 주시자의 눈 ] [ 길을 잃고 방황하는 양 ] [ 인식 왜곡 ]……. 뭐 대충 온갖 것들이 다 들어간 거지 뭐.”
[ 아니……. 내가 알지도 모르는 마법의 이름을 말해 준다고 그걸 이해할 수 있겠어? 정확히 이것들을 통해서 뭘 하려는 거냐고. ]
“음? 말했잖아. 임시로 마법사들을 가르칠 학교를 만들고 있다니까?”
[ ……. 이것들이 학교에 필요한 마법진이라고? 무슨 9 서클 대마법진 만드는 것도 아니고? ]
딱 보기에도 이미 주인의 서클 수준을 아득히도 벗어난 것 같은 마법들.
마법진을 발동하고 유지하는 데 필요한 마나가 얼마나 될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지만, 그는 용용이의 말에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에이, 그래도 이거 평소에는 생각보다 그렇게 마나 안 잡아먹어. 물론 몇 가지 기능들을 활성화할 때는 무지막지하게 잡아먹기는 하겠지만, 그건 미리 준비해 놓은 최상급 마나석들로 어떻게 가능할 것 같아. 그래도 평상시에는 주변 10km 권역의 마나를 빨아먹는 것으로도 자급자족할 수 있는데 지금 당장은 그거로 만족해야지.”
안 그래도 일부러 사방이 숲으로 가득한 지역을 엄선해서 정한 구역. 새롭게 건물을 지을 필요도 없이 가장 필수적인 부대 시설이 전부 완비되어 있기에 이곳은 완벽하지는 않지만, 지금 바로 시작할 마법사 양성 프로젝트에는 아주 안성맞춤인 지역이었다.
“일단 이곳에서 먼저 테스트해 보고 괜찮으면 부족한 마나를 마나석으로 보충할 필요 없는 지역으로 옮겨서 진짜 엄청나게 거대한 규모로 지을 생각이야. 마나를 다룰 수 있는 각성자라면 누구든 입학하고 싶어 안달이 나고 가문의 영광이 되어 버리는 이 지구상에서 감히 비교 대상이 없는 그야말로 명실상부한 최고의 마법 학교로 만들어 버리는 거지.”
마법이라는 개념을 확고하게 이 세계에 전파하는 것은 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나를 대신해서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영역과 분야에서 저마다의 연구와 노력으로 마법이라는 학문의 꽃을 피워 내고 부흥시킬 인재들.
다시 말해……. 재능 있는 자들을 모두 일정 수준 이상의 경지에 이른 마법사로 만들어 놔야 할 필요가 있었기에 나는 그러기 위한 최적의 영역을 만들어 냈다.
[ 그래서……. 이 온갖 마법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이 마법이 뭘 하는 거냐고. ]
여전히 이해를 못 했다는 용용이의 물음.
그 물음에 나는 히죽 웃으며 답했다.
“무한회귀.”
[ 뭐……? ]
“이름은……. 불사장(不死場)이라고도 하고 아니면 크로노스 시스템(Chronos System)이라고도 하지. 뭐라고 부르든 상관없지만, 기본적으로 이 마법진의 영역 안에서만큼은 개개인의 시간이 나의 통제권 안에 있게 되는 거지. 다시 말해……. 그 누구든 머저리 같은 실수를 저질러서 죽거나 회복 불가능한 상처를 입게 되더라도 그 머저리 하나만 특정해서 멀쩡한 상태로 회귀시킬 수 있다는 말이지.”
시공간을 완전히 지배해 그 영역 안에서의 시간선을 자유자재로 주무르겠다는 멀린. 그런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무언가를 눈치챈 용용이는 경악한 얼굴로 소리쳤다.
[ 마……말도 안 돼. 죽은 인간을 되살리는 건 주인의 수준으로는 절대……. ]
“에헤이. 내가 언제 죽은 놈을 부활시킨대? 그냥 시간선만 조금 건드려서 예전 상태로 되돌리는 것뿐이라고. 컨트롤+Z도 몰라?”
부활과 회귀.
엄밀히 말하면 완전히 다른 개념이지만, 분명 죽은 자를 되살리는 역할을 하는 것은 똑같은 상황. 하지만 그 난이도에 대해서 논하자면 후자 쪽이 훨씬 더 현실성 있었기에 용용이는 내 말에 무언가 깨달음을 얻은 듯, 혼자서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 확실히……. 마법진이 존재하는 영역 내에서만 가능하다는 제한이 있기는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도 죽은 인간을 부활시키는 것도 가능은 하겠네. ]
“그렇지. 핵심은 영혼만 명계로 넘어가지 않게 붙잡고 있으면 되는 거잖아?”
[ 편법이지만 진짜 대단한 마법진이긴 하네……. ]
드래곤 로드인 용용이조차도 인정한 마법진.
언제나 빠꾸 없는 독설과 일침만 퍼붓던 그가 오랜만의 칭찬을 하자 나는 뿌듯함에 히죽 웃으며 말했다.
“이제 이것만 있으면 학생들이 죽을까 봐 걱정할 필요 없이 내 마음대로 마음껏 굴리면서 한계까지 밀어붙여도 되는 거야. 아니, 오히려 여러 번 죽이는 게 효과가 더 빠를 수도 있겠네.”
[ 뭐……? ]
“그렇잖아. 너도 알다시피 마법 연구와 실험이 좀 위험해? 조금만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시도를 하려고 해도 거의 100명 중 99명은 다 마나 폭주로 뒈지거나 폐인이 되면서 허무하게 끝나 버리잖아? 어떻게 운 좋게 혁신적인 발견을 하더라도 비전 마법이랍시고 꼭꼭 숨기고 다니면서 직속 제자들에게나 전수하다가 결국 전승되지 못하고 사라져 버리는 경우가 태반이지.”
마법과 마나가 가진 위험성 때문에 극도로 안정적인 연구와 수련만을 추구하는 판달리아.
물론 살아남기 위해서 그들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그 때문에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마법을 기반으로 문명 전체가 발전하고 발달하기보다는 그저 현상 유지이거나 퇴보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곳에서는 네가 있던 판달리아의 전철을 밟고 그러면 안 돼. 아무리 병신 같은 짓이라 하더라도 뭐든 시도해 봐야지. 뒤질 때 뒤지더라도 똥이라는 걸 알면서도 찍어 먹어 보고 뒤지는 그런 악과 깡을 가진 놈들을 마법사로 키워 낸다면, 나중에 내가 없더라도 이 세상에 마법의 혁신과 발전을 불러오지 않겠냐?”
마법이 아니라 과학을 기반으로 발달한 세계.
그렇기에 매번 시간이 지날수록 진보하고 성장해 나가는 과학을 따라 마법 역시 계속해서 변화하고 발전해 나가야 할 필요가 있었다.
[ 그러니까……. 주인의 말을 요약하자면 앞으로 그 우로보로스인지 뭔지 하는 학교에 입학하면 뒤지든 말든 개의치 않고 죽어라……. 아니 죽을 때까지 계속 굴리겠다는 말이네? ]
정확히 내 의도를 알아차린 용용이.
그런 그의 추궁에 나는 히죽 웃으며 답했다.
“원래 사자도 새끼가 강하게 크라고 절벽에서 밀어 버린다고 하잖아. 나도 사랑과 애정을 듬뿍 담아서 강해지기 위해서 수십, 수백……. 아니, 수천 번을 죽게 만들어 줘야지.”
무수한 죽음이라는 시행착오를 극복하고 혹독한 환경과 압박 속에서 지옥보다 더한 고통을 받겠지만, 그러한 노력과 고통의 보상으로 끝없이 성장하고 자신의 재능을 극한으로 발현하게 될 이들.
앞으로 자라나게 될 푸르른 새싹들을 강인한 거목으로 키워 낼 생각에 나는 콧노래를 연신 흥얼거리며 히죽 웃으며 말했다.
“내가 만들려고 하는 이 학교에서 죽음만큼은 그 어떤 경우에서도 허용하지 않아.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죽음으로도 감히 탈출할 수 없는 그런 곳이라고 할까……?”
우우우우우웅.
씨크릿 쮸쮸를 휘두르며 99.99%에 달하는 공정률을 자랑하는 마법진의 마지막 남은 최종 마무리를 이어 가기 시작한 나.
그리고 이내 완성된 마법진은 푸르른 빛을 뿜어내며 주변 일대에 마나를 게걸스럽게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구구궁.
훈련장을 사방에서 감싸고 있는 푸르른 생태계에서 뿜어내고 생성해 내는 마나를 모조리 빨아들이며 주변 일대를 완전히 진공 상태에 가깝게 만들어 버리는 대규모 마법진.
하지만 아슬아슬하게 유지에 필요한 마나가 충족된 것인지, 나는 이내 훈련장 일대를 감싸는 무형의 구가 확실하게 형성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쿠웅.
비록 제한적이지만 완전히 나의 지배력 안에 놓인 시간.
머릿속으로는 이미 이론적으로 빠삭하게 알고 있었지만, 직접 이 마법을 구현하는 것은 처음이기에 나는 눈을 감고 지금 밀려드는 이 묘한 기분에 잠깐 적응하는 시간을 가졌다.
“파이어 볼.”
콰앙.
갑작스럽게 쏘아 낸 화염구에 강렬한 굉음을 내며 파괴된 건물.
터져 버린 벽 안에 황량하게 흔적만이 남은 내무실의 시설을 잠깐 바라보던 나는 이내 손을 내밀고는 가볍게 손목을 비틀었다.
쿠르르르릉.
그러자 마치 테이프를 되감듯이 복구되는 건물.
그것을 보며 마법진이 완벽하게 작동한다는 것을 확인한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제 이 정도면 첫 입학생들을 받아도 별다른 문제는 없겠네.”
[ ……. 왠지 그 입학생들이 불쌍해지는데 이 기분은 뭘까? ]
죽는 것조차도 허용하지 않는 인류 최초의 마법 학교. 우로보로스.
그 어떤 수단으로도 탈출할 수 없는 이 학교라는 이름의 지옥으로 악명이 자자할 이 시설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퇴학이나 졸업 말고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