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각성자들의 의무 관리와 마법의 사용 및 이용 금지에 관한 법률.
이름도 어마어마하게 긴 이 법안을 윤기열 정부에서 임기가 끝나기 전에 통과시켜 공식적으로 공포하려던 게 가능했던 이유는 바로 국민적인 관심이 생각보다 극히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마법? 그게 금지하면 뭐 달라지는 게 있음?”
“어차피 각성자들이 아니면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는데 그런 거 신경 써야 하나?”
“마법……? 그게 도대체 뭐시당가…….”
“그런 이상한 법 가지고 싸울 시간 있으면 제발 민생 법안이나 좀 신경 쓰지. 에잉…….”
마나를 느낄 수 있는 각성자들의 수는 두 손에 다 꼽을 정도로 극소수인 상황. 법안과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얽히는 이들이 없다시피 한 상태인 데다가 마법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친숙한 10~20대를 제외한 나머지 세대에서는 그게 무엇인지조차도 잘 모르고 있었기에, 기본적으로 언론에서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것과 달리 국민 대부분의 반응은 담담한 것이 현실이었다,
하지만…….
[ 마법이 아직도 개쩐다는 걸 인정하지 못하겠냐? ]
멀린이 그런 사람들의 가슴에 불을 질러 버렸…… 아니, 네이팜탄을 냅다 꽂아 버렸다.
아직 대중에 공개된 적 없는, 삼진 바이오에서 극비리에 추진하고 있는 개발 프로젝트를 수억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채널에서 대놓고 공개해 버린 그의 기행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거대한 후폭풍을 몰고 왔다.
- 와. 무슨 다 죽어 가는 심각한 부상을 저렇게 순식간에 치료하냐?
- 진짜 빨간약이네. 앞으로 저거만 있으면 어디 찢어진 정도의 부상은 꿰맬 필요도 없을 듯.
- 어머머. 한 번 먹으면 열흘 동안 밥을 안 먹어도 배가 안 고프다고? 저건 진짜 탐난다.
- ㄹㅇ;; 저거면 다이어트약이랑 보조제 시장은 그냥 초토화하는 수준 아니냐?
대체재라고 할 수 있는 것을 이 지구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압도적인 성능과 효능을 자랑하는 마법의 제품들. 그런 제품들을 보며 한 번은 써 보고 싶다는 호기심과 관심을 사람들이 보내 올 때, 그 누구보다도 무서울 정도로 집착하며 말 그대로 눈이 뒤집힌 사람들이 있었다.
- 머리가…… 풍성하게 자라난다고?
- 저거……. 진짜냐? 형 진지하다. 농담하지 말고 진짜 죽어 버린 모공이 되살아나냐?
- 자라나라 머리머리? 그거 어디서 파는 제품임? 누가 좀 알려 줘라.
남자라면 결국 나이를 먹고 겪게 되는 비운의 저주. 탈모.
본인의 의자와는 관계없이 제멋대로 모공에서 가출해 버린 머리털로 인해 대머리가 되어 온갖 놀림과 조롱을 당하고. 수십…… 수백만 원을 발모제와 의약품, 그리고 두피 마사지 기기에 쏟아부으면서도 결국에는 반짝반짝 민들레가 되어 버리며 동시에 지갑까지 털려 버리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했던 남성들.
그 모든 희망이 그저 헛된 꿈이라고 생각하며 결국 포기했던 중년의 남성들이 기적의 발모제에 관한 소식을 접하자, 기존의 여론은 완전히 뒤바뀌어 버리기 시작했다.
- 전국의 모든 탈모인이여! 모두 결집하라! 자라나라 머리머리가 우리의 진정한 희망이다.
- 이거 보고 이호준 뽑기로 결심했다.
- 자라나라 머리머리. 내 삶의 빛이요. 내 모공의 희망. 나의 영혼. 나의 모든 것.
- 이호준을 뽑으면 여러분의 모공에도 안식이 깃들 것입니다. 우리 모두 풍성충이 되는 그날을 위해서 오늘도 기도합니다. 전능하신 이호준이여! 영원한 빛으로 날 보호하소서.
- 오늘부터 마법에 대한 나의 지지를 철회한다. 오늘부터 마법과 나는 한 몸으로 일체가 된다. 따라서, 마법에 대한 모든 공격은 나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
- ㅋㅋㅋㅋㅋ 머머리들 발작하는 거 개웃기네.
- 대머리 함부로 욕하지 마라. 너희는 언제 머리가 비어 본 적 있느냐?
탈모라는 피를 타고 이어지는 사악한 저주에서 해방되겠다는 커다란 대의를 놓고 하나로 결집한 남성들. 지금껏 진보와 보수로 나누어 서로를 욕하고 비방하며 단 한 번도 제대로 의견이 통합된 적 없던 이들이 지금만큼은 하나 된 목소리로 힘을 합쳐 외치기 시작했다.
[ 마법을 전폭적으로 허용하라! 마법 금지 법안에 반대한다! ]
[ 이호준! 이호준! 이호준! 이호준! ]
[ 자라나라 머리머리의 출시를 법적으로 허가하라! 허가하라! ]
[ 우리도 머리가 풍성해지고 싶다! ]
비어 버린 머리를 반짝이며 추운 날씨에도 굴하지 않고 나와서 준식이 법의 반대 시위를 벌이기 시작한 중년의 아저씨들. 민주시민당과 대한국민당을 강력히 지지하던 핵심 세력이 고작 발모제 하나에 뒤흔들리며 급격하게 이탈해 버리는 그 현상은 결국, 대한민국 헌정 사상 한 번도 벌어진 적 없는 거대한 이변을 만들어 내고야 말았다.
[ 예……. 대선 전에 마지막으로 공개할 수 있는 최종 여론 조사에서 정말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습니다. 계속해서 2위 주자로 달리고 있던 이호준 후보가 최창식 후보를 제치고 지지율 1위를 경신했는데요. 그 지지율이 자그마치…… 56%입니다. ]
[ 삼자 구도로 진행되던 대통령 경선에서 한 후보가 50%가 넘는 과반의 지지율을 차지하는 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상황입니다. 유진철 후보와 최창식 후보가 각각 19.4%와 21.6%로 간신히 지지율 20% 선을 유지하고는 있습니다만, 그 이외에 아직 부동층으로 남아 있던 유권자들이 전부 이호준 후보에게로 마음이 기운 상황입니다. ]
[ 이러한 결과가 나타난 것은 마법 금지 법안을 강력하게 밀어붙였던 여야의 움직임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마법이 가진 위험성에만 모두가 집중하고 있던 상황에서 유권자들에게 유일하게 마법에 친화적인 태도를 견지해 오던 이호준 후보 말고 다른 선택지가 없었죠. ]
[ 멀린이 방송에서 보여 준 마법의 효용성과 그 가치를 파악한 대중들로 인해서 이호준 후보에게 지지율이 쏠린 상황입니다. 시간이 조금이라도 더 있었다면 다른 후보들도 지금이라도 기존 공약을 철회하고 새로운 대응 전략과 방법을 모색하겠지만, 아쉽게도 지금 판을 뒤엎기에는 그들에게 남아 있는 시간이 없군요. ]
공식적인 여론 조사 결과도 공표할 수 없는 최종 다지기에 들어간 상황.
앞으로 대통령 선거까지 정확히 6일도 남지 않은 이 순간에 수많은 정치 평론가들과 여의도의 전문가들은 거의 확정적으로 깨달았다.
앞으로 5년간 대한민국을 통치하게 될 청와대의 진정한 주인은…….
민주시민당도, 대한국민당의 후보도 아닌.
일평생 정치권에 제대로 발 한 번 담가 본 적 없는, 평생을 기업인으로 살아왔던 이호준 회장이라는 것을 말이다.
모두가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성적표를 받아 들고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이 상황 속에서 기적과도 같은 새로운 역사를 쓴 당사자인 이호준 회장은 그 누구보다도 얼빠진 얼굴로 자신의 앞에 있는 한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때요? 제가 말했죠? 괜히 불가능한 일을 시키는 게 아니라, 상황만 적당히 잘 이용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요. 물론 경쟁 상대인 여야가 합심해서 머저리 같은 짓들만 골라서 한 덕분에 일이 수월해진 건 사실이지만……. 아무튼 제 덕분에 이렇게 대통령이라는 자리에까지 앉아 보게 되셨네요.”
의기양양한 얼굴로 히죽거리며 중얼거리고 있는 멀린.
그리고 그는 탁자 위에 놓여 있던 황금빛 물약 한 통을 집어 들곤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렇게 좌파니 우파니 그렇게 이 악물고 싸우던 사람들이 결국 이 자라나라 머리머리 하나 때문에 손에 손잡고 한마음이 되는 걸 보면 진짜 허무하지 않아요? 결국 자신이 평생을 추구하던 신념조차도 결국 머리털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버릴 수 있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는 말이잖아요. 도대체 그놈의 대머리가 뭐라고 이 추운 날에도 길거리에 나와서 피켓 들고 마법 찬성을 외치게 만드는 걸까요?”
이미 청년 세대부터 노년층까지. 나이와 성별에 상관없이 모든 유권자의 매료시킨 삼진 바이오의 신제품들. 하지만 그것들은 멀린이 만들어 내려고 하는 수많은 마법 제품 중에서 아주 일부에 지나지 않았기에 이호준은 확신했다.
앞으로 자신이 통치하게 될 이 대한민국은…….
마법이 없으면 생활 자체가 안 될 정도로 전 국민이 마법의 혜택을 받으며 지금과 전혀 다른 형태의 국가로 빠르게 변화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여당과 야당에서 나에게 긴밀하게 접촉해 왔네.”
여론 조사의 결과를 입수하고 승산이 없다는 암울한 현실을 누구보다 빠르게 직시한 이들. 그렇기에 앞으로의 생존을 모색하기 위해서 차기 대통령의 유력한 후보인 그에게 이미 사전 협상을 시작한 상태였다.
“생각보다 행동이 빠르네요. 여론 조사 결과가 나온 지 아직 하루밖에 안 됐는데 벌써 백기를 들고 투항하는 거예요?”
“말하자면 그런 셈이지. 두 곳 모두 내부적인 논의를 거친 결과 준식이 법의 지지를 철회하기로 했다고 하더군.”
“뭐……. 어차피 제 방송이 나간 이후로 법안 통과를 위한 절차가 흐지부지된 상태 아니었던가요? 이미 게임이 다 끝난 상태에서 그게 뭐 새롭다고…….”
이미 대머리 아저씨 군단들의 격렬한 반대 시위 속에서 쏙 들어간 준식이 법에 관한 논의들. 대선과 관계없이 어차피 무산될 것이 확실한 상황이었기에, 나는 이호준 후보의 말에 별거 아니라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혹시라도 차기 대통령에 당선되게 된다면 자신들과 함께 좋은 관계로 협력하길 바란다고 하더군.”
“협력이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었던 사람들이? 하여간 정치인들 태세 전환하는 모습 보면 정말이지……. 얼굴에 철판 깐 게 아니라 아주 티타늄으로 도금해 버린 거 아니에요? 이건 진짜 우X르도 엉엉 울면서 갈 수준이네.”
그새 자신들이 밀던 후보를 칼같이 손절하고는 이호준 후보에게 손을 내밀며 최선의 방향을 모색하고 있는 냉정한 정치판. 비정하기까지 한 민주시민당과 대한국민당의 물밑 제안을 들으며 감탄하고 있던 그때, 이호준 후보는 진지하게 나를 향해 물어왔다.
“자네는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
“그걸 왜 저한테 물어보세요?”
자신이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물어오는 이호준 후보의 물음에 내가 의아한 눈초리로 되묻자, 그는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 이내 다시금 물었다.
“……당연한 거 아니겠는가? 지금 이 상황 모두가 자네가 설계한 그림 속에서 벌어진 일이네. 상상도 하지 않았던 정치판에 내가 몸을 담은 것도. 그리고 현실적으로 모두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던 이 대선에서 승리하게 된 것도 전부 말이야.”
거의 협박에 가까운…… 아니, 완전한 공갈 협박에 떠밀려 대통령이라는 권좌를 향한 위대한 도전을 시작한 이호준 회장. 그리고 그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이 모든 것을 현실로 만든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킹 메이커(King-Maker)나 다름없는 자네에게 이런 정치적인 조언을 구하지 않는다면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지 오히려 내가 묻고 싶네.”
정치에는 전혀 뜻이 없었던 이호준 회장. 그렇기에 나라는 지지기반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정치적 자산이 없던 그는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물어왔지만, 나는 그런 그에게 원하는 답을 제시해 줄 수 없었다.
“그거야 회장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셔야죠.”
“뭐라고……?”
“전부터 말했지만, 저는 이 나라가 어떻게 굴러가든 전혀 관심 없어요. 제가 오직 신경 쓰는 것은 마법이 이 세계에 빠르게, 그리고 안정적으로 정착하게 하는 것. 그리고 죽어가는 환경과 생태계를 복원하고 답도 없이 적은 마나를 판달리아와 비교해도 꿇리지 않는 수준으로 회복하는 것. 이 두 가지 말고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아요.”
이 세계의 멸망을 막고 마법이라는 개념을 강제적으로 이식하는 것.
그것이 나의 유일한 목적이자 사명이었기에 나는 아무래도 정말 상관없다는 의사를 그에게 명확히 했다.
“뭘 하든 상관없어요. 회장님이 원하시는 대로 이 나라를 통치해 보시죠. 기본적으로 제가 간간이 하는 부탁들만 들어주신다면 그 이외의 자잘한 문제들은 뭐든 좋으니까 원하시는 대로 처리하세요. 솔직히 말해서…… 회장님도 분명 꿈꾸는 방향이 있으실 거 아닌가요?”
“…….”
내 말에 아무런 대답 없이 그저 멍청한 표정으로 나를 가만히 바라보던 이호준 회장. 그리고 그는 갑자기 미친 듯이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크크크……. 크허허허허허.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자네는 정말 독특한 인간이야.”
“용용이랑 비슷한 소리를 하시네요. 안 그래도 그런 소리 자주 들어요.”
내 허리춤에 매달린 용용이가 매일같이 하는 소리를 똑같이 하는 이호준 회장. 그는 나의 대답에 작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며 말했다.
“자네가 원하는, 그리고 내가 원하는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서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서 협력하도록 하지.”
나의 충실한 조력자이자 파트너가 되어 줄 이호준 회장……. 아니, 대한민국의 차기 대통령.
그런 그의 손을 맞잡으며 나는 눈을 빛내며 말했다.
“어디 한번…… 이 나라에 마법 맛 좀 제대로 보여 줄까요?”
7일이라는 시간이 지난 후.
마지막 여론 조사의 결과를 뒤집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이 대한민국은 나에 의해 이미 정해져 있던 미래의 운명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삼진 그룹의 회장으로서 평생을 살다 평화롭게 세상을 떠날 한 사람이 대한민국의 제20대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변화를 시작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