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인공 마법 만세!-111화 (111/242)

111화.

정치인이란 무릇 대중의 관심을 받고 사는 존재들이다.

매번 선거철만 되면 쏟아지는 수많은 경쟁 후보들.

그들 사이에서 당내 경선을 시작으로 본 선거까지 이어지는 끝없는 정쟁 속에서 정치인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유권자들의 뇌리에 강렬하게 박아 넣어야 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아무리 좋은 공약과 획기적인 정책을 제시하거나 인망이 두텁더라도 투표에서 승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기에 노련한 정치인들은 대개 특정 상황에서는 필요 이상으로 과장해서 자극적인 연출을 하곤 했다.

그리고 이번 대선에서 가장 큰 화두로 떠오른 주제는 다름 아닌 마법에 관한 것이었다.

- 한국 방문 후 첫 번째 공식 일정으로 이호준 후보를 만난 레너드 대통령.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외교 참사에 불거진 윤기열 대통령 패싱(Passing) 논란.

- 친 마법 정책을 추진하는 레너드 행정부. 이번 방한을 반 마법으로 돌아서는 한국 정부의 움직임에 대한 암묵적인 경고이자 압박이라 외교 전문가들은 분석.

- 여아의 대선 후보들.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사상 초유의 국정 농단이자 내정 간섭이라 강렬하게 비난. 외교부는 레너드 대통령의 정치 개입 발언에 전혀 사전 협의가 없었다고 해명.

- 이호준 후보. 과연 미국 대통령과 어떤 비공개 논의를 가진 것인가?

대선 후보로서는 사상 최초로 미국 대통령과 공식적인 만남을 가진 이호준 후보. 직접적인 표현으로 하지 않았을 뿐이지, 이 정도면 거의 미국 대통령의 지지를 얻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전폭적인 지원을 받자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 미국 대통령이 직접 방한해서 저럴 정도라고……?

- 아니, 도대체 왜 저렇게까지 이호준을 밀어주는 건데?

미국 내부에서도 논란이 있을 정도로 그 어떤 국제 외교와 정치 전문가들도 감히 그 의중을 파악할 수 없는 레너드 대통령의 돌발적인 방한 행보. 그리고 그 방한의 목적이 아직 대선에 승리조차 하지 못한 일개 후보에 지나지 않는 이호준을 만나러 온 데 있다는 사실에 그의 외교적 역량과 정치적 능력에 대한 재평가가 조금씩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 미국으로서도 어쩌면 삼진 그룹의 회장으로 오랜 시간 역임했던 이호준 후보가 더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판단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삼진 그룹이 미국 시장에서 차지하는 영향력과 비중이 높을뿐더러, 어쩌면 그 어떤 외교관들보다도 워싱턴의 고위 정치인들과의 연줄이 더 많을 수도 있습니다. 세계적인 기업인 삼진 그룹을 이끌었던 수장이었던 만큼,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도 외교적 역량이 높을 수 있죠. 미국 대통령이 만나러 직접 한국까지 찾아왔다는 사실이 이러한 가설을 증명해 주는 명백한 증거 아니겠습니까? ]

[ 여러분이 조금 착각하는 것이 있는데요, 수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대한민국 1위의 기업을 경영하는 것은 일반인 수준의 안목과 판단력으로는 절대 불가능합니다. 사내 정치라는 말이 괜히 존재하겠습니까? 이호준 회장의 정무적 능력은 이미 삼진 그룹의 지난 성장을 보면 충분히 검증된 것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

단순히 재계의 거목이자 평생을 경제인으로만 살아온 이호준 회장이 아니라, 진정한 대권 주자로 선두를 따라잡기 위해 치열하게 달려 나가고 있는 이호준 후보로 바라보기 시작한 사람들. 그리고 이어지는 여론 조사의 결과가 그러한 변화를 방증하고 있었다.

- 긴급 속보. 이호준 후보. 최신 여론 조사 결과 지지율 25% 달성. 유진철 후보를 제치고 지지율 2위 달성.

- 유진철 후보 22%. 이호준 후보 25%. 최창식 후보 28%. 두 후보의 지지율을 흡수하며 무섭게 상승하는 이호준 후보. 과연 그의 무모한 도전은 성공할 것인가?

- 예상치 못한 여론 조사 결과에 마음이 조급해진 여야. 비상 회의 소집.

절대 깨지지 않을 것이리라 생각했던 지지율이 흔들리며 기존의 판세를 깨부수고 2위에 등극한 이호준 후보. 이미 성장세가 둔화한 다른 후보들과 다르게 아직도 계속해서 상승 중인 그의 지지율을 보며 대한국민당과 민주시민당은 크나큰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거 정말이지 예상외의 결과로군요.”

처음 예상했던 것과 다르게 위협적으로 치고 올라오는 이호준 후보를 두고 해결책을 논의하기 위해서 양당의 지도부를 대표하며 모인 안희문 의원과 이재식 의원. 원래라면 대선 정국에서 이러한 만남을 가질 리가 없었겠지만, 이호준 후보라는 공동의 적을 두고 이들은 또다시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소. 민주 시민당도 이미 예상했겠지만, 유진철 후보는 이미 끝났소. 이호준에게 지지율을 야금야금 잠식당하면서 지지율이 성장하기는커녕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떨어지지 않고 있소. 이런 상황에서 반전을 기대하기란 어렵지.”

“…….”

이미 민주 시민당 내부에서도 암울한 분위기가 잠식해 가고 있는 상황.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경쟁 상대인 이재식 의원에게 듣자 안희문 의원은 조금은 날이 선 반응을 보였다.

“그래서 뭐 어떻다는 거요? 설마 후보 단일화라든가 사퇴 선언이라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겠지?”

“…….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할 리가 있겠소? 애초에 지금 상황에서 후보 단일화나 사퇴를 선언했다가는 다수의 이탈표가 이호준 후보에게로 흘러갈 수 있소. 우리로서는 유진철 후보가 무슨 일이 있더라도 끝까지 대선을 완주하길 바라는 상황이오.”

치욕적인 항복 선언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는 이재식 의원. 그리고 그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했다.

“그 대신,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 철저하게 이호준 후보를 깎아내리고 공격하는 충실한 싸움꾼 역할을 해 주면 하는 게 내 생각이오. 유진철 후보가 직접 이호준 후보에 대한 여러 의혹들을 제기하고 터트려 준다면 지금의 폭발적인 상승세를 이어 가는 지지율도 한풀 꺾일 수밖에 없겠지.”

비록 2위에서 3위로 밀려났다고는 하지만, 20%가 넘는 지지율을 자랑하는 유진철 후보. 그런 그의 말 한마디가 가지는 영향력은 이 아슬아슬한 대선 정국에서 충분한 유효타를 날릴 수 있었기에 이재식 의원은 달콤한 목소리로 안희문 의원을 꼬드겼다.

“……. 유진철 후보가 그런 제안을 수락할 리가 없을 텐데.”

“만약 이 제안을 거절하고 현재 상태로 대선 정국을 이어 간다면 정말 이호준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될 수도 있소. 한낱 욕심 때문에 민주시민당이나 대한국민당의 후보가 아닌 무소속 후보가 승리할 수 있다는 전례를 남기고 싶다면 원하는 대로 하시오.”

대한민국 정치판에 확고하게 뿌리내린 양당제의 구도.

그 양당제의 혜택을 받는 대한국민당이나 민주시민당이나 누구도 그 철옹성 같은 구조를 무너뜨리고 싶지는 않았기에 안희문 의원의 고민은 점점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 좋소. 그 대신, 조건이 있소.”

“조건이라면 어떤 걸 말하는 거지?”

“장관을 비롯해 고위직 인사에 우리 쪽에서 추천하는 사람들을 일부 기용하시오. 그렇게만 해 준다면 이번 대선은 우리가 양보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설득하겠소.”

인사에 일부 개입하겠다는 안희문 의원. 그런 그의 말에 이재식 의원은 잠깐 멍하니 그를 바라보다 이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핵심적인 요직들까지는 불가능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인사들에 대해서는 최대한 민주 시민당의 의견을 반영하도록 후보님께 말씀드려 놓겠소.”

그렇게 타결된 두 당의 협상. 그리고 이들이 곧장 논의한 것은 다름 아닌 준식이 법이라 불리는 법안의 통과였다.

“각성자들의 의무 관리와 마법의 사용 및 이용 금지에 관한 법률……. 이것을 원안 그대로 법제사법위원회의 심사를 올리기로 의결했고 당장 다음 주에 본회의 통과를 앞두고 있으니 혹시라도 민주시민당 내부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철저히 단속해 주기 바랍니다.”

“윤기열 대통령님께서 직접 법안의 발의를 의욕적으로 밀어붙였던 것이니 국무회의 심의와 대통령 공포까지도 속전속결로 처리될 겁니다. 하지만 이호준 후보가 우리를 공격하는 빌미로 쓰이는 것이 아닌지 조금 우려가 되기도 하는군요. 국민적인 합의가 제대로 이루어진 법안이 아니기에 저희가 파악한 바로는 반발 여론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각성자들에 대해서 그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자유권과 개인의 권리를 박탈하는 법. 어쩌면 위헌적인 요소까지도 충분히 성립된다고 보일 정도로 그 규제의 폭과 강도가 상상 이상으로 높았기에 이와 관련한 부정적인 목소리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그러한 반발 여론보다 시급한 것은 바로 이호준 후보의 무서운 추격을 억누르는 것이기에 이재식 의원은 굳은 얼굴로 그러한 우려를 일축했다.

“이호준 후보가 주장하는 모든 공약과 정책들은 이 대한민국을 마법으로 개혁하는 것을 기반으로 두고 있습니다. 그러한 그의 정책을 전부 무력화하기 위해서는 준식이 법의 통과가 우선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우리가 통과시킨 법안들에 대한 거부권을 사용할 수 있게 되기 전에 먼저 우리가 그의 발목에 족쇄를 채워 놔야 합니다.”

그 어떠한 정치적 기반 없이 행정부를 장악하게 될지도 모르는 이호준 후보.

하지만 마법에 대한 포괄적인 금지 법안이 이미 공식적으로 발효된 이후라면, 그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라도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법을 만들고 고칠 수 있는 입법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여전히 대한국민당과 민주시민당의 손에 놓여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된다면 이호준 후보라도 저희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게 된다는 말이군요……. 무슨 말인지는 알겠습니다.”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서 선제적으로 그를 견제할 대비책들을 마련해 두자는 이재식 의원. 그런 그의 말에 안희문 의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렇게 준식이 법의 신속한 통과를 위한 논의를 어느 정도 마무리하고 있던 차에, 보좌관 하나가 문을 두드리며 나타났다.

“의……의원님. 큰일 났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그러나?”

다급한 얼굴로 다가오는 보좌관을 보며 인상을 찌푸리는 이재식 의원.

지금 상황에서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논의를 하는 와중에 흐름이 깨진 것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내비쳤지만, 보좌관은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듯이 자신의 휴대폰을 내밀었다.

“멀린이……. 멀린이 지금 뮤튜브에서 생방송으로 스트리밍하고 있는데 지금 당장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도대체 뭐 때문에 그러는 건가……?”

의아한 눈초리로 휴대폰을 받아 든 이재식 의원은 그의 옆에서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지켜보던 안희문 의원과 함께 멀린의 방송을 시청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둘은 똑같이 경악한 얼굴로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 자, 요즘 대선 정국이라고 마법이 금지된다는 별 이상한 소리가 계속 기사로 뜨고 있는데, 너희가 마법이 실생활에 전혀 쓸모가 없다는 무식한 오해를 하는 것 같더라? 그래서 형이 오늘 마법이 얼마나 유용한 건지 제대로 보여 줄 테니까 잘 봐라. ]

[ 이 제품은 살살이풀을 정제해서 삼진 바이오에서 개발한 신제품인 레드 포션이다. 아직 시중에 공개된 적은 없지만, 미군 부대에 정식으로 보급되고 있는 응급 치료제지. 이렇게 심각한 부상이나 상처가 나도 그냥 무식하게 들이붓기만 하면 아주 말끔하게 회복되지. 아, 참고로 아프기는 더럽게 아프다. 그래도 뒤지는 것보다는 낫지 않냐? ]

[ 이건 구름버섯을 갈아서 반죽해서 만든 쿠키다. 맛이 더럽게 없다는 게 단점이지만, 일단 한번 위장에 들어가면 최소 10일 이상은 식욕이라는 감각을 느낄 수조차 없게 만들어 주지. 식탐에 뇌를 지배당해 뚱뚱한 사람들이 다이어트하고 싶을 때 이거 하나 먹으면 아주 효과가 죽여줄 거다. 참고로 0칼로리다. ]

[ 아마 이거로 게임은 다 끝날 것 같기는 한데……. 헤르데시 허브라는 걸 이용해서 만든 탈모 치료제. 자라나라 머리머리다. 이미 오래전에 죽어 버린 모공에 잘 발라 주기만 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새로운 머리털이 풍성하게 자라나게 해 주는 대머리들에게는 그야말로 꿈에나 그리던 기적의 제품이지. 두 달마다 꾸준히 발라 주기만 하면 문제없이 풍성한 머릿결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으니까 관리하기에 어려울 일도 없다. ]

마치 쇼핑몰에서 제품을 판매하는 호스트가 된 것처럼 온갖 제품들을 앞에 내밀며 열심히 그 효능들을 설명하고 있는 멀린. 그리고 하나같이 그 어디에서도 들어 본 적 없는 기상천외하고 충격적인 제품들을 내밀면서 사람들의 소비 욕구를 자극하던 그는 마치 자신들에게 들으라는 것처럼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속삭였다.

[ 도대체 무슨 깡으로 이 나라가 마법을 금지하려고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그 준식인지 뭔지 하는 미개하기 짝이 없는 법이 통과된다면 방금 내가 보여 준 모든 제품은 이 대한민국에서는 사용이 원천적으로 금지되겠네. 아쉽지만 어쩌겠냐? 뭐. 법이 그런 건데 감수해야지. ]

마법과 관련한 그 어떤 것도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법안.

하지만 누가 봐도 눈이 돌아갈 법한 물건들을 늘어놓고 있는 멀린은 광기 어린 얼굴로 똑똑히 두 의원을 바라보며 물었다.

[ 어떻게……. 이래도 마법이 개쩐다는 걸 인정하지 못하겠냐?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