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인공 마법 만세!-110화 (110/242)

110화.

한국의 정치는 원칙적으로는 다당제의 민주주의 국가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양당 체제를 띤 구조를 띠고 있다.

진보와 보수를 대표하는 민주시민당과 대한국민당.

그 이름은 수십 년에 걸쳐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여러 차례 바뀌어 왔지만, 기본적으로 이 두 당은 대한민국의 정치를 양분해 오던 거대 정당들이었고, 역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 두 당의 후보로 출마하지 않고서는 그 누구도 당선될 수 없을 정도로 그 영향력이 막강했다.

하지만 이번 20대 대선에서 전혀 예상치도 못한 사상 초유의 상황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 여론 조사 결과, 이호준 후보의 지지율이 모두의 예상을 깨고 지속적인 상승세를 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는 기존의 삼진 그룹이라는 거대 기업을 경영해 온 회장으로서 가지고 있던 영향력을 넘어서 실질적인 정치인으로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크게 주목할 만한 일이라고 보입니다. ]

[ 이호준 후보가 들고나온 공약을 면밀하게 살펴본다면,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정치적으로 이익이라고 판단되는 요소들을 속속들이 가지고 온 것으로 보입니다. 경제, 사회, 안보, 교육, 복지 등 어느 정책이든 한쪽으로만 편중되는 편향성을 띠지 않고 있다는 것이 중도층들에게는 꽤 매력적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제가 이전부터 강조하는 것입니다만, 이호준 후보가 무소속으로 나온 것이 현 상태에서는 가장 큰 이점이 아닐까 싶네요. ]

[ 민주시민당의 유진철 후보의 지지율이 24%. 대한국민당의 최창식 후보가 29%. 무소속인 이호준 후보가 19%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아직은 최창식 후보가 우세한 상황인데요, 대선까지 앞으로 많은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절대 안심할 수 있는 수치는 아니라고 보입니다. 아직 누구에게 표를 줄지 정하지 못한 유권자가 자그마치 25%가 넘는 상황이니까요. ]

역대 대통령 선거와 비교해 봐도 어마어마한 수의 유권자가 부동층으로 남아 있는 것으로 확인되는 여론조사들. 기존의 확고했던 틀을 깨부수고 대선을 삼파전으로 만들어 버린 이호준 회장을 향해 대한국민당과 민주시민당은 거의 발작에 가까운 수준으로 맹공을 이어 갔다.

[ 이호준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우리 대한민국은 재벌 공화국이 되고 말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기업들은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소위 재벌이라고 불리는 자들은 온갖 편법을 동원해 자신들의 배를 불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습니다. 부정부패가 만연한 이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서민과 민생을 위해서 유진철 후보에게 힘을 실어 주십시오! ]

[ 이번 대선에서 반드시 정권 교체를 달성해야 합니다. 모든 국민이 힘을 합쳐 닥쳐오는 난국을 헤쳐 나가도 모자란 이 시급한 상황에 이호준 후보는 개인의 사사로운 권력욕으로 이 대한민국을 위기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이호준 후보님! 진정으로 이 나라의 안위와 미래를 걱정한다면, 개인의 영달을 뒤로하고 최창식 후보에게 힘을 밀어주기를 바랍니다. 후보 단일화만이 정권 교체를 위한 유일한 방법이며 진정으로 애국을 위한 길입니다! ]

어떻게든 이호준 회장을 이번 대선 레이스에서 떨어트리고 싶어 안달이 난 여야.

하지만 삼진 그룹의 회장이라는 자리를 그냥 딱지치기로 딴 것도 아니고 수십 년이 넘는 오랜 시간 동안 치열한 기업 간 경쟁 속에서 살아남는 것을 넘어 최강자로 군림하던 이호준 후보의 정치적 능력과 판단은 생각 이상으로 날카롭고 명확했다.

- 전국경제인 연합회 회장. 이호준 후보가 당선되면 앞으로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고 발언해 논란. 개인적인 의견이라 해명했지만, 사실상 지지 의사 피력.

- 포괄적이고 강력한 환경 규제 공약에 이호준 후보의 지지를 선언하는 환경 보호 단체들.

- 이호준 후보의 국·공립 대학 등록금 무료화 공약에 관심을 가지는 청년층들. 공약의 실현 가능성은?

- 재향군인회. 국가유공자회. 이호준 후보의 합동 지지 선언. 국가를 위해 헌신한 군인들에 대한 진정성 있고 명예로운 예우를 기대한다.

기존 두 당의 핵심 지지층들에게 그야말로 파격적이고 귀가 팔랑거릴 만한 공약을 제시하며 빠르게 지지율을 뺏어 오고 있는 상황. 그것만 해도 이호준 후보와 경쟁하는 상대 후보들에게는 뼈아픈 타격이었지만, 이들이 꿈에서도 상상하지 못한 거대한 한 방이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날아들고 있었다.

[ 레너드 미국 대통령. 공식적인 방한 계획 발표. ]

한국 외교부를 그야말로 반쯤 뒤엎어 버린 미국 대통령의 급작스러운 한국 방문.

의전과 일정에 대한 공식적인 사전 협의도 거의 없다시피 한 상태로 거의 일방적으로 한국에 입국한 레너드 대통령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곧장 이호준 후보와의 만남을 가졌다.

“반갑습니다. 이호준 회장님.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만 이렇게 직접 만나 뵙는 건 처음인 것 같군요. 듣던 대로 아주 강렬한 인상을 풍기시는군요.”

“아닙니다. 대통령님. 이렇게 만나 뵙게 돼서 정말 영광입니다.”

수십 대의 카메라 앞에서 웃으며 이호준 후보와 서로 악수하며 친밀한 사이를 연출한 레너드 대통령. 그리고 그는 적나라하게 그를 밀어주는 듯한 발언을 했다.

“이호준 후보가 현 정권과 다르게 마법에 우호적인 정책을 구상하고 있다는 사실에 호기심을 느끼고 이호준 후보와의 만남을 일정에 포함하게 되었습니다. 사회 전반에 걸쳐 어떤 방식으로 마법 개혁을 구상하는지 개인적으로 아주 궁금하군요.”

“이번 방한에서 다른 후보들을 만날 생각은 없습니다. 어차피 다들 마법에 반대하는 공약을 발표하지 않았습니까?”

“한국에서 추진하고 있는 마법 금지 법안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많은 관심과 우려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법에 대해 어떠한 선택을 하든, 미국은 오롯한 주권을 가진 한국의 선택을 언제나 그래 왔듯이 존중할 것입니다.”

짧지만 굵은 기자들과의 회견.

미국 대통령이 직접 한국 대선에 개입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에 정치권 전체가 실시간으로 불타오르고 있는 와중에 이호준 후보는 이 모든 사태를 주도한 나와 함께 레너드 대통령과 은밀한 만남을 가지고 있었다.

“제 부탁을 들어줄 거라고 별로 기대는 안 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용케 와 주셨네요? 말도 안 되는 개소리라고 죄다 뜯어말리지 않았어요?”

다른 것도 아니고 일국(一國)을 통치하는……. 그것도 초강대국인 미국의 대통령을 오라 가라 하는 정신 나간 부탁을 해 놓고는 정말 올 줄은 몰랐다는 듯이 중얼거리는 나를 보며 레너드 대통령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 전례가 없는 일이긴 했지. 하지만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는 생각하네.”

“제가 내걸었던 조건이 정말 탐나기는 했나 보군요?”

“그렇고말고.”

이번 일로 인해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온갖 논란에 휩싸여 시끄러워질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다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 레너드 대통령. 그런 그의 말에 무언가 불안함을 느낀 나는 혹시나 하는 얼굴로 물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몇 명이나 확보하신 건데요?”

“현재로서는 200명이네.”

“……. 그렇게 많이요?”

“그렇네. 이 정도는 충분히 받아 줄 수 있는 수 아닌가?”

“……. 그건 그렇긴 한데……. 피곤하긴 하겠네요.”

깊은 한숨을 푹 내쉬며 투덜거리는 나와 무엇이 그리 좋은지 웃고 있는 레너드 대통령의 대화를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이호준 회장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혼란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멀린 군……?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가?”

레너드 대통령에게 도대체 무슨 조건을 내걸었냐는 이호준 회장의 물음.

그리고 그런 그에게 나는 손가락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전에 제가 마법사들을 양성하는 학교 세우겠다고 한 거 기억하세요?”

“그……. 우로보로스인가 뭔가 하는 그거 말인가?”

“네. 이번에 와서 회장님하고 사진 좀 찍어 주면 미국의 각성자들을 우선 선별해서 가르치기로 약속했거든요. 아무리 못 해도 최소한 서클 형성까지는 시켜 주기로 하긴 했는데……. 200명은 좀 너무한 거 아니에요?”

“미국이 보여 준 성의만큼 자네도 최선을 다한 성의를 보여 주리라 믿고 있겠네.”

내 볼멘소리에 실실 웃으며 답하는 레너드 대통령. 그런 그의 말에 나는 할 말을 잃고 지그시 그를 바라보다 이내 투덜거리며 말했다.

“……. 조금이라도 미개하고 무식한 놈들은 모조리 다 퇴학시켜 버릴 거니까 그런 줄 아세요.”

“그래도 한 절반만큼은 무사히 졸업시켜 주게나.”

“그건 노력해 보죠.”

대한민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속속들이 튀어나오고 있는 각성자들.

그들의 힘을 적절하게 통제할 수 있도록 하는 학문인 마법을 이 세상의 유일한 마법사인 멀린이 직접 가르쳐 준다는 말에 이호준 회장의 머릿속의 셈법은 복잡하게 돌아갔다.

“그렇다면……. 혹시 우로보로스를 어디에 세우려는 건가?”

이 세상 최초, 그리고 최고의 마법사를 양성하는 기관이 될 것이 분명한 우로보로스.

그렇기에 이것이 어디에 만들어지느냐가 앞으로 마법이라는 학문의 선도국이 달라질 수 있었기에 이호준 회장은 조금은 불안한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음……. 일단은 한국으로 생각 중이긴 한데 그거야 뭐 회장님 하시기에 달렸죠?”

“뭐……?”

“제가 말했잖아요. 만약 이번 대선에서 지게 되면 대통령이 누가 됐든 분명 저랑 회장님이 최우선적인 보복 대상이 되지 않을까요? 마법에 대해서 전면 금지를 때릴지 말지는 그건 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게 되면 다 정리하고 미국으로 본진을 옮겨야죠.”

당연한 거 아니냐는 듯이 피식 웃으며 말하는 멀린. 하지만 그 말에 이호준 회장은 걷잡을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한국을 버리고 미국으로 떠나가 버리겠다는 말이군.’

자신이 대통령에 당선되지 못한다면 삼진 그룹만이 아니라 어쩌면 한국의 역량과 산업 경쟁력이 헤아릴 수 없을 수준으로 퇴보하거나 완전히 도태될지도 모르는 심각한 상황. 고작 이제 16살의 어린 소년이었지만, 그와 너무나도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 미국 대통령의 모습을 바라보며 이호준 회장은 다시금 마음을 굳게 다잡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이번 선거에서 승리해야겠군…….’

비단 자신과 삼진 그룹의 안위를 위해서가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의 운명을 걸고 무조건 대통령에 당선되어야 하는 상황. 하지만 그러한 그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멀린은 너무나도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이 구상한 아이디어들을 레너드 대통령에게 신나게 설명하고 있었다.

“나중에는 학파를 여러 개로 나눠서 세분화해서 가르칠 생각이긴 한데요, 지금 그러기에는 수준들이 너무 낮아서 일단은 크게 3개로 나누어서 가르칠 생각이에요.”

“3개 말인가?”

마나 통제력과 마법적 지식. 그리고 마나 친화력.

마법을 습득하고 수련하는 데 가장 필수적인 3개의 재능을 극한으로 단련시키기 위해서 나눠 놓은 커리큘럼. 그리고 각각의 커리큘럼을 담당하고 지도할 교사들도 이미 전부 선정해 놓은 상태였다.

“네. 가르칠 교수들도 이미 정해 놨어요. 마법적 지식과 이론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제 누나랑 우리 착실한 구독자이신 만물 척척 류 박사님. 마나를 다루지 못하더라도 마법의 이론적인 분야에서는 이 둘을 따라갈 사람이 없을 거예요. 마나 통제력 쪽은 마나 폭주의 위험성이 있는 부분이다 보니까 제가 직접 가르칠 생각이에요.”

이론은 영희와 류현진 교수에게. 실전은 내가 나누어서 각각 가르칠 거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레너드 대통령. 그리고 그는 무언가를 깨달은 듯 이내 의아한 얼굴로 물어 왔다.

“아까 분야를 3개로 나눈다고 하지 않았나? 그럼 마나 친화력이라는 건 누가 맡아서 가르치는 거지?”

“아, 그거요? 일단은 생각해 둔 적임자가 있기는 한데 아직 확실하게 이야기하진 않아서요. 나중에 정해지면 말해 주려고 했었죠.”

“적임자라면……. 누구를 말하는 건가?”

적임자가 있다는 말에 깊은 관심을 내비치는 레너드 대통령. 그런 그에게 나는 묘한 얼굴로 손가락을 매만지며 은근하게 말했다.

“마나 친화력은 기본적으로 얼마나 육체가 마나에 노출되고 또 단련되어 있느냐를 나타내는 지표죠. 전신을 따라 퍼져 있는 마나 회로도 마치 근육이랑 같아서 여러 번, 그리고 자주 쓰면서 점진적 과부하를 일으켜야 성장하죠. 다시 말해……. 전신의 육체를 마나에 최대한 자극받아야 하는데, 그걸 저한테 배워서 아주 잘 아는 사람이 있거든요.”

“……?”

이 세상에서 마나 친화력이 극단적으로 높은 한 사람.

마법을 배우기에는 너무나도 멍청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마나 친화력을 빠르게, 그리고 강하게 단련시켜 줄 수 있는 열정적인 한 사람.

묘하게 불안한 표정을 짓는 레너드 대통령에게 나는 히죽 웃어 보이며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강한 확신에 찬 얼굴로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김두식 선생님이 죽을 만큼 아파도 죽지 않게 패는 법을 저한테 배워서 잘 알고 있거든요. 아마 아무도 안 죽이고 졸업시킬 수는 있을 거예요.”

“…….”

미국에서 찾아낸 200명의 유능한 각성자들을 맡기게 될 레너드 대통령.

하지만 뭔가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밀려오는 그는 자기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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