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마법에 대해 강력한 규제로 방향을 틀어 버린 한국.
그러한 정부의 태도 변화에 가장 비상이 걸린 곳은 바로 삼진 그룹이었다.
“어떻게 됐어요? 상황 설명하니까 좀 알아듣던가요?”
언론 보도가 나자마자 직접 나서서 정치권과 은밀하게 접촉을 시도한 이호준 회장. 하지만 일이 잘 풀리지 않은 것인지 일정을 마무리하고 돌아온 그의 표정은 어둡기만 했다.
“민주시민당 쪽을 설득하는 건 아무래도 틀린 것 같네. 윤기열 대통령의 입김이 너무 강하게 들어선 것 같아. 전혀 요지부동이야.”
“삼진 그룹의 신제품인 엘릭시르와 타임리스가 마법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말해 줬는데도 그런다고요?”
공식적으로 삼진 그룹과 매지컬 컴퍼니……. 그리고 나와의 연관성이 드러난 적은 단 한 번도 없는 상황. 그렇기에 이호준 회장은 최근 삼진 그룹에서 발표한 혁신적인 신제품들이 마법과 연관된 것들임을 넌지시 알려 주며 이번 법안의 추진이 얼마나 성급하고 무지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두 당의 지도부에게 최대한 설득하려 했지만, 별 소득은 없었다.
“아무리 막대한 경제적 부가 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 하더라도 현 정권은 기본적으로 자신들이 통제할 수 없는 미지의 힘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상태이네. 설사 정말로 마법이 가지고 올 혜택이 크다 하더라도 일단 엄준식 사태와 같은 사회적 피해와 부작용이 클 걸 우려해 일단은 전부 금지할 방침이라고 하더군.”
“그래서……. 몇몇 머저리 같은 놈들이 사고치고 다니는 게 걱정돼서 아예 금지하겠다는 건가요? 도대체 그러면서 무슨 깡으로 원자력 발전소는 돌리고 있대요? 그거 터지면 한 수만 년 이상은 주변 일대가 초토화되지 않나? 도대체 뭔 생각으로 그러고 있대요?”
별말도 안 되는 논리를 들먹이며 금지 법안을 추진하는 정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는 나의 물음에 이호준 회장은 피곤한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알고 있는 몇몇 의원들을 통해서 확인한 바로는 민주시민당이나 대한국민당이나 완전히 금지할 생각은 아니었네. 정확히 말하자면 대한국민당에서는 전혀 다른 꿍꿍이를 가지고 있다고 봐야겠지.”
“대한국민당이요?”
민주시민당이 말하는 것에는 무조건 반대를 표명하던 평소 행실과는 다르게 무슨 일인지 마법에 대한 규제 법안에 대해 같은 입장을 발표한 대한국민당. 그리고 그들은 이호준 회장에게 자신들의 진정한 속내를 따로 밝혔다.
[ 마법이 정말 그러한 막대한 혜택을 가지고 올 수 있다면, 우리도 충분히 마법에 대한 당의 뜻을 바꿀 의향은 있습니다. 하지만 회장님께서도 아시다시피 현재 국회의 다수당은 저희가 아니라 민주시민당입니다. 원하시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라도 삼진 그룹이 이번에 저희에게 힘을 실어 주셔야 할 겁니다. 만약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회장님께서 우려하시는 그 법안은 저희가 앞장서서 저지하도록 하겠습니다. 허허허. ]
“그러니까……. 대선에서 승리만 할 수 있게 도와만 준다면 언제든지 민주시민당의 뒤통수를 치겠다는 말이네요?”
“그렇네. 애초에 대한국민당은 마법을 금지할 생각이 아닌 눈치야. 그저 이번 사태를 정략적으로 이용해 정치적 이점을 챙기고 나아가 각성자들과 마법에 대한 통제와 규제를 강화할 명분으로 써먹으려는 속셈인 것 같더군.”
“하긴, 부동산 게이트로 완전히 원수지간이 돼서 사생결단을 내겠다고 벼르던 둘이 언제 그렇게 사이가 좋아졌나 했네요. 결국 앞에서는 협력하는 척하고 뒤에서 칼 꽂아 넣을 기회를 노리고 있던 거네요?”
“대선이 코앞이지 않나. 어떤 더럽고 추잡한 일이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할 때긴 하지. 그래도 다행인 점은, 대한국민당은 현재 우리와 협상할 용의가 충분히 있다는 것이네. 그리고 지금 상황에서는 이들과 손을 잡는 것 말고는 별다른 선택지가 없기도 하니 자네도 그들의 제안을 진지하게 고려해 보는 게 좋을 걸세.”
마법을 철저히 배격해야 한다는 윤기열 대통령의 생각에 진심으로 동조하는 민주시민당과 다르게 언제든지 입장을 바꿀 수 있다는 의향을 내비친 대한국민당. 비록 지금은 국회의 과반을 차지하지는 못한 야당의 신세지만, 오랜 시간 쌓아 온 이들의 정치적 영향력은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기에 대한국민당의 지지와 견제는 분명 현재 상황에서 큰 도움이 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들이 원하는 게 뭔데요?”
“자네의 전폭적인 지지와 협조. 자네가 공권력에 불응하고 대립하는 이전과 같은 사태를 또다시 재현하고 싶지 않은 모양새야.”
“그 말은 제 목에 기어코 목줄을 채우고야 말겠다는 의미인 것 같은데 그러면 현 정권이랑 다를 게 뭐죠?”
“이전처럼 강압적인 방식으로 자네를 통제하지는 않겠지. 나도 무어라 확답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겠지만, 내가 대한국민당에게 전해 들은 입장은 그게 전부네.”
“그것참……. 미국이 아주 신나서 춤을 출 만한 이야기네요.”
안 그래도 한국 정부의 헛짓거리를 보자마자 득달같이 연락해 오며 이참에 완전히 넘어오라며 끈질기게 나를 설득하고 있는 미국 정부. 모르긴 몰라도 아마 그곳에서는 한국 정부가 나의 심기를 끝까지 건드려 내가 폭발하기만을 물 떠 놓고 기도하는 중일 것이다.
“……. 설마 미국으로 완전히 넘어갈 생각을 하는 건 아니겠지?”
“전에는 그럴 생각 없었는데 요즘 돌아가는 꼴을 보니까 플랜 B로 진지하게 고려는 하고 있어요. 제 누나나 아영이 격렬하게 반대하고 있어서 좀 그렇긴 한데, 상황이 불가피하면 넘어갈 수밖에 없죠.”
어깨를 으쓱하며 생각 중이라는 나의 대답에 이호준 회장의 표정은 아까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변했다. 그리고 이내 긴장된 목소리로 물어왔다.
“그러면 우리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 건가?”
“뭐…….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이 마무리할 수밖에 없는 거 아닌가요? 마법을 불법으로 규정하겠다는데 여기서 뭘 더 하겠어요? 어차피 미국에도 다른 기업들은 많은데요 뭐.”
“!!!”
멀린의 정원을 통해서 재배되는 살살이풀을 시작으로 상용화를 준비 중인 수많은 혁신적인 의약품들. 거기에 타임리스를 시작으로 앞으로도 수많은 혁신적인 마법 제품들을 내놓으며 대한민국에서……. 아니, 전 세계를 아우르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할 준비를 하고 있던 이호준 회장은 나의 냉정하고 차가운 반응에 눈을 부릅떴다.
“에이, 아직 확실하게 결정한 것도 아니고 뭘 그렇게 놀라고 그러세요? 제가 생각한 계획이 실패하고 고를 선택지가 없을 때의 이야기니까 벌써 그런 표정 짓지 마세요.”
“자네가 생각한 계획이 따로 있나……?”
“조금 과격한 것부터 미온적인 것까지 여러 가지 있죠. 예를 들어 보자면 일단…….”
내가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던 계획을 몇 가지 이야기하자 이호준 회장의 얼굴은 아까보다 훨씬 더 새까맣게 변해 갔다.
[ 저거 봐. 내가 전부터 말했지만, 보통 인간들이랑 다르게 주인은 진짜 악랄하다니까? 어떻게 악마도 아니고 인간이면서 이런 같잖은 문제를 그런 끔찍한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 건데? ]
내 계획을 들으며 딴지를 걸며 투덜거리는 용용이. 그리고 그런 그의 생각에 동의하는 듯, 이호준 회장은 연신 헛기침을 해 대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 누군가가 죽거나 크게 다치는 그런 방법 말고 혹시 정상적인 해결 방안은 따로 없는 건가?”
마법에 대한 위협적인 인식을 줄이기는커녕 마법사로서 대한민국 사상 최악의 악당이 되려는 듯한 멀린. 사상 최악의 정치적 대참사를 막기 위해 이호준 회장은 에둘러 물어 왔고, 나는 그런 그의 물음에 히죽 웃으며 은근히 중얼거렸다.
“음……. 온건적인 방법이라면 한 가지 있기는 한데…….”
“그게 뭔가?”
그런 방법이 있다는 말에 눈을 빛내며 다급하게 물어 오는 이호준 회장. 그리고 그런 그에게 나는 묘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간단해요. 마법에 그 누구보다 친화적인 사람을 이번 대통령 선거에 출마시켜서 당선되게 만드는 거죠. 그러면 괜히 정치적인 문제들로 신경전을 벌이며 기 싸움 할 것 없이 원만하고 간단하게 여러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죠?”
“마법에 친화적인 사람……? 그런 사람이라면…….”
머릿속으로 자신이 알고 있는 유력 정치인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는 듯한 이호준 회장. 내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그를 가만히 바라보던 나는 이내 피식 웃으며 손가락으로 그를 가리키며 말했다.
“바로 회장님 같은 사람 말이에요.”
그리고 그 순간. 이호준 회장은 마치 벼락을 맞은 사람처럼 완전히 얼어붙었다.
“뭐……. 뭐라고?”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 화들짝 놀라며 이호준 회장이 소리쳤다.
“왜요. 회장님 정도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죠. 대한국민당이나 민주시민당이나 최근 벌어진 온갖 비리와 부정부패로 인해서 지지율도 예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처참한 수준 아닌가요? 안 그래도 최근 여론 조사 보면 전부 부동층으로 돌아선 것 같은데, 이런 상황에서 재계 1위의 회장님이 출사표를 던진다면 아마 대선의 판도가 완전히 뒤집힐걸요?”
“…….”
이전에는 상상조차 해 본 적도 없는 생각.
하지만 이호준 회장의 냉철한 머리는 빠르게 그 가능성을 점해 보기 시작했고 이어서 그를 평생에 걸쳐 성공 가도를 걸어가게 도와주었던 본능이 또다시 심장을 미친 듯이 뛰게 했다.
‘충분히……. 가능성은 있다.’
이전과는 다르게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대선의 향방. 이제 선거까지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에는 충분히 많은 시간이 남아 있기에 이호준 회장은 만약 지금의 부동표를 전부 자신이 가져갈 수만 있다면…….
어쩌면 꿈에서도 그려 보지 못한 자리에 오를 수도 있었다.
물론…….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한테 목줄을 차이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는데……. 회장님이라면 지금처럼 파트너 같은 관계로 서로가 원하는 바를 잘 조율하면서 모두가 만족하는 윈-윈 사회를 구축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말이죠?”
그렇다고 절대적인 권력을 휘두르는 역대 대통령과는 전혀 다른 신세가 될 것 같기는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멀린의 그 은근한 제안에 이호준 회장은 조금은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나도 한평생 회사를 이끌어 오면서 더럽고 추잡한 일들을 많이 해 왔네. 내가 대선에 출마하겠다고 한다면, 여당이나 야당은 절대 나와 삼진 그룹을 가만두지 않을 걸세. 있는 죄는 물론이고 없는 죄를 만들어 내서라도 내 출마를 막겠지.”
“피차 더러운 건 회장님이나 상대나 다를 바 없지 않나요?”
“정치적 배경이 든든한 상대 후보들보다 나에게는 압도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하겠지.”
“아,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회장님에게는 제가 있거든요.”
“……?”
나의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짓는 이호준 회장. 하지만 나는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감 가득한 어조로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눈을 찡긋하며 그에게 말했다.
“제가 회장님의 든든하고 열렬한 지지자가 되어 드리죠. 제가 나이가 어리다 보니 투표권은 없지만, 원하신다면 뭐 같이 선거 운동도 뛰어 드릴 수 있어요. 그게 지지율에는 딱히 도움이 안 될 것 같긴 하지만 필요하시다면 제가 뭐든 힘을 보태 드릴 수 있다는 말이죠.”
“그렇지만 이건…….”
“그래도 정 싫으시다면 그냥 제가 미국 가 버리죠. 뭐.”
“크흐흠……. 아니네. 누가 싫다고 했나?”
자신이 여야 모두에게 십자포화를 당하는 한이 있어도 삼진 그룹이 앞으로 벌어질 마법 혁명에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며 도태되는 꼴은 죽어도 보기 싫은 이호준 회장.
그렇기에 그는 좋으나 싫으나 울며 겨자 먹기로 내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에잉……. 이러면 결국 용수 그 녀석에게 삼진 그룹의 회장 자리를 넘겨줘야 하는 상황이구먼. 앞으로 최소 10년은 더 가르치고 넘겨주려고 했건만.”
“걱정하지 마세요. 회장님이 대통령이 되면 회사를 말아먹으려고 해도 못 말아먹을 정도로 제가 팍팍 밀어드릴 테니까요.”
“자네나 나나 앞으로 정신없이 바빠지겠구먼. 정말 내가 대선에서 승리하기를 원한다면 정말로 전폭적으로 나를 밀어줘야 할걸세. 그렇지 않고서는 애초에 이건 승산이 없는 절대 불가능한 싸움이고 도전이니까 말이야.”
향후 대선까지 벌어질 수많은 난관과 고난의 가시밭길을 떠올리며 신음하는 이호준 회장. 그런 그의 다 죽어 가는 볼멘소리에 나는 히죽 웃으며 손을 내밀고는 화답했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리죠. 회장님. 아니……. 미래의 대한민국 대통령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