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화.
한국을 양분하는 두 개의 거대 정당인 대한국민당과 민주시민당.
보수와 진보를 표방하는 정당으로서 이 둘은 상반된 가치를 내걸며 평소에도 극렬하게 대립하는 사이였지만, 지금은 그 관계가 평소보다도 더욱 최악으로 치달은 상태였다.
- 대선을 앞두고 본격적인 신경전을 벌이기 시작한 두 여야.
- 흑색선전으로 상대를 공격하기 시작한 정치권. 건전한 공약 싸움은 없었다.
- 끝나지 않은 양원철 의원의 부동산 게이트. 대선의 향후 변수로 작용할 것.
- 과연 다음 대선의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이제 6개월을 조금 남기고 있는 20대 대통령 선거. 하지만 이번 선거는 이전의 여느 대통령 선거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승리가 매우 중요해진 상황이었다.
[ 이번 대선은 대한국민당이나 민주시민당이나 사활을 걸고 승리하기 위해서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야 하는 아주 중요한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의 여론 조사 데이터들을 분석해 본 결과, 지역별로 고정적으로 나오던 정당별 지지율이 예전과는 다른 패턴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기존의 콘크리트 같던 지지자들이 전부 부동표로 돌아섰다는 의미인데……. 아무래도 최근의 발생했던 여러 이슈가 원인인 것으로 보입니다. ]
양원철 의원의 돌발적인 폭로로 시작된 국회의 부동산 게이트.
여당이고 야당이고 할 것 없이. 너도나도 수많은 의원이 관련 비리에 연루되었다는 의혹과 물증이 기자들에 의해서 쏟아져 나오고 있었기에 전체적으로 대다수 국민이 정치권 전체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 탄생하게 될 20대 대통령…….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부동산 비리 의혹에서 다음 대선에서 어느 당이 승리하게 되느냐가 곧 이 모든 사태의 희생양이자 제물이 될 대상이 누군가인지를 결정짓게 될 절체절명의 순간이었기에 두 당은 그 어느 때보다도 비장한 각오로 전쟁에 돌입한 상태였다.
그 누구든 말 하나, 행동 하나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과도하게 의미를 해석하고 부여하는 등, 긴장감이 잔뜩 피어나는 정치권의 분위기. 그렇기에 원래라면 대한국민당의 이재식 의원은 절대 윤기열 대통령의 제안을 수락할 수 없었다. 그랬다가는 상대 진영에게 유리한 정치적 입지를 내어 주게 될 가능성이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비서실장의 눈물겨운 노력 덕분에 절대 불가능할 것 같았던 이 만남은 결국 성사되고야 말았다.
“여당이나 야당이나 시국이 시국이기에 여러 문제로 정신없을 텐데, 이렇게 바쁜 와중에도 이렇게 와 줘서 고맙소.”
“아닙니다. 대통령님께서 부르신다면 당연히 찾아뵈어야죠.”
“허허허. 안 그래도 퇴임하고 나면 우리 민주시민당의 신임 당 대표와 한번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 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만나게 되었군요.”
돌연 자살로 생을 마감한 양원철 의원을 대신해 민주시민당의 새로운 당 대표로 선출된 안희문 의원과 잠깐의 담소를 나누기 시작한 윤기열 대통령. 하지만 옆에서 그 둘의 대화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이재식 의원은 불편한 기색을 여실히 드러내며 이들의 말을 끊었다.
“말씀 중에 죄송하지만 대통령님. 지금 같은 당 출신끼리 오찬이라도 하자고 모인 것이었습니까? 안희문 의원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이후에도 여러 일정으로 바쁜 상황이니 오늘 부르신 용건부터 처리했으면 좋겠군요.”
아무리 야당의 대표라고는 하지만 감히 일국의 대통령에게 보이기에는 너무 무례한 태도. 하지만, 이미 임기도 거의 끝나 가는 상황에서 그런 체면치레까지 해 줄 생각은 없다는 듯, 이재식 의원은 직설적으로 물었다.
“마법을 불법으로 규정하자니……. 도대체 무슨 연유로 그런 생각을 하신 겁니까?”
최근 전 세계를 뜨겁게 만든 화제의 단어. 마법.
미국 대통령의 마법 입국 선언으로 전 세계가 커다란 관심을 보이는 그 마법을 법적으로 금지하자는 윤기열 대통령의 제안에 이재식 의원은 호기심을 느꼈다.
“의원님들도 최근 한국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사건을 알고 계실 겁니다. 바로 각성자들과 관련된 것들이죠.”
이재식 의원의 물음에 몇 가지 자료들을 탁자 위에 올려놓으며 이야기를 시작한 윤기열 대통령. 그리고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거의 모든 자료를 공유해 주며 마법과 각성자들의 위험성에 대해 설파하며 최대한 이 둘을 설득했다.
“그러니까……. 각성자들을 제대로 통제할 수 없게 될 경우, 나중에는 이번에 고등학교 교실에서 벌어졌던 것과 다르게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는 대규모 인명 참사가 곳곳에서 발생하게 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입니다. 만약 냉혹한 살인마나 악질 범죄자가 강력한 힘을 얻고 이를 악용하고 다닌다면 어떻게 막으시겠습니까? 각성자와 마법은 결국 사회 전체에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피해를 불러오는 재앙과도 같은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그렇기에 지금부터 마법을 철저히 금지하고 각성자들에 대해서는 강도 높은 통제와 감시를 의무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각성자들을 잠재적인 사회의 위협이자 불안 요인으로 보자는 윤기열 대통령의 주장. 그리고 그의 생각을 입증해 줄 아주 확실하고 명백한 사례가 존재하고 있었다.
“의원님께서도 아시겠지만……. 이미 우리 정부가 통제하지 못하는 각성자가 이미 밖을 나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가 늘어난다면, 앞으로 공권력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대한민국의 군대를 농락하고도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은 최초의 각성자. 멀린.
미국 정부의 강력한 비호 속에서 이미 한국의 통제 범위를 벗어난 그의 존재는 분명히 권력을 손에 쥐고 있는 권력층들에게는 아주 심각한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으음…….”
윤기열 대통령의 생각에 100% 동의하지는 않더라도 분명 일부는 납득할 만한 이야기들. 그렇기에 두 의원의 표정은 사뭇 진지해졌다.
“대통령님께서 무슨 생각이신지는 이해합니다. 하지만, 미국 정부에서 그런 위험성을 파악하지 못한 것은 아닐 텐데……. 과연 마법과 각성자들의 탄압이 국익을 위한 것일지 조금 우려되는군요.”
다른 곳도 아니고 전 세계를 압도하는 패권 국가이자 슈퍼 파워를 가진 초강대국인 미국이 마법을 기반으로 한 개혁을 주창하고 있는 상황. 그리고 그러한 이들의 입장에 따라 전 세계에 조금씩 그 변화와 변혁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기에 그와 전혀 반대의 길을 걸어가겠다는 말이 이재식 의원은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그 순간, 윤기열 의원이 꺼낸 한 가지 서류가 그 분위기를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멀린에 대해 조사하던 와중에 입수한 정보입니다. 확인해 보니 양원철 의원의 아들과 문제가 있었더군요.”
“……. 그게 지금 무슨 말씀이십니까?”
양원철 의원의 아들을 폭행하고 학교 폭력으로 처리되어 1달 동안 정학 먹은 멀린의 기록. 그것을 보여 주며 윤기열 대통령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양원철 의원의 행동이 이상하지 않았습니까? 자신의 정당을 비롯해 본인까지도 파멸할 수 있는 사실을 아무런 정치적 목적도 없이 갑작스럽게 폭로했다는 사실이?”
모두가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던 양원철 의원의 폭로. 하지만 마법이라는 퍼즐 조각을 끼워 놓자 그 모든 정황이 들어맞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그 멀린이 양원철 의원의 아들과의 문제 때문에 원한을 품고, 그걸 보복하기 위해서 마법으로 스스로 그러한 폭로를 저지르게 했다……. 지금 그 말씀이십니까?”
“정확한 물증은 없습니다만,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 아니겠습니까?”
평소라면 터무니없는 헛소리라며 일축할 가정. 하지만, 마법이라는 비현실적인 개념이 존재한다고 밝혀진 이상, 그 어느 것도 절대 불가능하지 않았기에 이재식 의원은 윤기열 대통령의 물음에 아무런 대답도 내놓지 못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고 통제하지 못하는 힘이 방종에 가까운 수준으로 사람들 사이에 퍼져 나가는 것은 결국 우리 사회 전체를 무너뜨릴 것이라는 말입니다. 각성자들이 하나의 특권 계층이 되어 일반인들 위에 군림하게 되는……. 어쩌면 과거의 계급제 사회가 다시금 부활할지도 모릅니다.”
“……. 무슨 말인지는 알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저까지 불러서 하는 이유는 뭐 때문이죠? 금지 법안을 처리하겠다고 한다면 그건 예전에 하시던 대로 민주시민당의 힘만으로도 강행할 수 있는 일 아닙니까?”
국회에서 이미 과반의 의석수를 차지하고 있는 거대 여당인 민주시민당.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법안을 민주시민당 단독으로 강행 처리해 온 적이 허다했기에, 이준식 의원은 인제 와서 자신에게 의견을 물어 오는 윤기열 대통령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건 어느 한 당의 의견으로만 일방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니까요.”
“……?”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 보죠. 만약 제가 민주시민당이랑 마법에 관한 금지 법안을 단독으로 강행 처리한다면, 의원님이나 대한국민당은 가만히 있을 겁니까? 분명 대선을 의식해서라도 그에 대한 반대를 표명하시겠죠. 대선의 승리를 위해 국론을 분열시키겠죠.”
정치의 기본적인 생리인 반대를 위한 반대.
하지만 이번 문제에서 대한국민당이 그런 정치적 수를 두지 않았으면 한다는 윤기열 대통령의 저의를 파악한 이재식 의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니까……. 대통령님께서는 이번 문제가 정치적 논쟁거리가 되지 않고 최대한 신속하게 처리되기를 바라시는 거군요. 저희가 처음부터 그 뜻을 같이하고 있다는 모습을 대중에게 보여 주면서 말입니다.”
“흑색선전과 진흙탕 싸움을 잠깐 멈추고 두 여야 모두가 중대한 문제 앞에서 초당적인 협력을 하고 있다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 주는 것도 지금 상황에서는 나쁘지 않을 겁니다. 이렇게 말하기는 뭐하지만……. 지금까지 역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여야가 이렇게 낮은 지지율을 보여 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 말입니다.”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여당이나 야당 그 둘 모두에게 냉담한 반응을 보여 주며 투표를 아예 포기하겠다며 염세적인 반응을 보이는 대중들. 그리고 그로 인해서 도무지 누가 승리할지 예측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안개가 자욱한 대선 레이스를 해 나가고 있는 와중이었기에 이재식 의원은 윤기열 대통령의 마지막 말에 마음이 기울었다.
“대통령님께서는 정확히 어떤 식으로 법안을 구상하시는 건지 구체적으로 말씀해 보시죠.”
* * *
윤기열 대통령과 두 여야의 대표가 회동을 마친 후.
이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대한민국 전체를 발칵 뒤집을 법안을 발표하고야 말았다.
[ 최근 엄준식이라는 각성자에 의해서 발생했던 사태를 통해서, 마나와 마법이라는 힘이 얼마나 우리 사회에 심각한 위협을 줄 수 있는지를 깨달았습니다. 통제할 수 없는 강대한 힘은 결국 사회 전체의 거대한 재앙과 파멸을 불러올 것입니다. 그렇기에 대한국민당은 마법이라는 힘에 대한 강력한 통제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였으며, 민주시민당과 함께 의논하여 관련 법안을 조속히 입법 추진하기로 하겠습니다. ]
[ 모든 각성자는 기본적으로 국가의 의무적인 통제와 지속적인 감시를 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보입니다. 인권 문제도 고려하겠지만, 어느 정도 특수성을 고려하여 신중히 고심하고 결정하겠습니다. 민주시민당 역시 마법이라는 것이 불러올 심각한 위협을 고려하여 최대한 억제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대한국민당과 일치합니다. ]
[ 통제되지 않은 각성자들과 마법은 분명 우리에게 커다란 재앙과 참사를 불러올 것입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사회 전체의 안전을 지켜야 하는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비록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지만 저는 마지막 순간까지 저에게 부여된 직무를 성실히 수행할 것입니다. 저는 그 어떤 순간에서도 인명이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두 여야와 함께 국민 전체가 안전한 대한민국을 확립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엄준식이라는 어느 한 각성자의 폭주로 일어난 아찔했던 대참사를 언급하며 두 여야가 합심해서 추진하는 법안.
[각성자들의 의무 관리와 마법의 사용 및 이용 금지에 관한 법률.]
일명 '준식이 법'이라고 불리는 이 법에 대해서 TV와 인터넷이 뜨겁게 달구어지기 시작했다.
- 뭐임? 왜 갑자기 마법을 금지시키겠다는 거임?
- 마법사들 전부 아X카반에 가두겠다는 거 아니냐 ㅋㅋㅋ
- 각성자 되면 5급 공무원 시켜 주겠다며! 이제는 왜 갑자기 범죄자 취급이냐?
- 미국은 각성자들한테 엄청 호의적이던데……. 이게 맞아……?
돌연 입장을 완전히 바꿔 버린 정부의 발표에 당황하는 사람들. 하지만, 이에 대한 찬성 여론도 만만치 않았다.
- 저게 맞지. 무슨 각성자 됐다고 공무원 대우임?
- 이번에 엄준식인가? 걔가 벌인 짓 보니까 엄청 위험해 보이긴 하더라.
- ㄹㅇ ㅋㅋ. 걸어 다니는 폭탄이나 다름없는 것들 아닌가?
- ㅋㅋㅋㅋ 어차피 나는 각성자 아니니까 관심 없음.
- 누가 각성자 되라고 목에 칼 들이밀면서 협박이라도 했나? ㅋ
찬반으로 갈려서 이와 관련해서 싸우기 시작한 인터넷 댓글들.
그리고 그 상황 속에서 멀린은 정말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TV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저 무식하고 미개한 새끼들이 또 헛짓거리하네. 또 무슨 개 같은 수작질이야?”
대놓고 떠먹여 주는데도 싫다고 뱉어 버리는 한국 정부. 그런 그들의 움직임에 강렬한 현타가 밀려드는 멀린은 진심을 담아 고민했다.
“그냥 저것들 싹 다 쓸어버리고 미국으로 도망가 버릴까?”
오늘따라 흑마법이 마려운 멀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