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화.
[ 긴급 속보입니다. 오늘 오전, 서울 소재의 A 고등학교 2학년 교실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그로 인해 교실에 있던 학생 수십여 명이 크게 다쳐 인근 병원으로 긴급하게 후송되었습니다. 현재까지 사상자는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거대한 굉음과 진동이 건물 전체를 뒤덮을 정도로 위력이 강했다고 합니다. ]
[ 지금 저는 폭발이 발생한 학교 현장에 나와 있습니다. 경찰이 이미 현장을 통제하고 있어 출입이 제한되고 있지만, 완전히 깨진 2층의 유리창들만 봐도 당시 상황이 얼마나 위험했을지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학교 관계자들은 현재까지 말을 아끼고 있어 정확한 사실 여부는 확인할 수 없지만, 당국은 세간에 제기되고 있는 폭탄 테러 의혹부터 모든 가능성을 올려놓고 수사를 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
오늘 어느 한 고등학교에서 벌어진 사태에 대해 연신 떠들고 있는 언론들.
아직 정확한 원인이 규명되지 않아 온갖 추측과 의혹들이 나돌고 있었지만, 즉각적으로 수사를 개시한 경찰의 조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윤기열 대통령에까지 직통으로 보고되었다.
“그러니까……. 이번 사태가 또 다른 각성자로 인해서 발생한 일로 보인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사건이 일어났을 때, 해당 교실에 있었던 학생들이 모두 엄준식이라는 학생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푸른빛의 무언가를 똑똑히 목격했고, 그 이후에 온갖 기물들이 허공에 떠올라 사방으로 날아다니는 초자연적인 현상이 발생했다고 일관되게 진술했습니다.”
한두 사람이 아니라 수십 명이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던 마나의 존재. 거기에 준식의 인터넷 검색 정보를 훑어본 결과, 이들은 그가 각성자라는 사실을 똑똑히 증명할 수 있는 여러 가지의 증거물들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최근 인터넷에 해당 학생이 남겼던 게시글들과 검색 기록들입니다. 2페이지를 보시면, 디X라는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주로 활동했던 이력을 확인할 수 있는데, 거기에서 그는 자신이 각성자라는 사실을 밝히는 내용의 글과 함께 인증 사진까지도 게시했습니다.”
자신이 각성자라는 사실을 마치 자랑하듯이 인터넷에서 올려놓은 준식. 그리고 그 증거물을 살펴보고 있던 윤기열 대통령은 어처구니가 없는 표정을 지으며 보고를 이어 가고 있는 경찰청장을 향해 물었다.
“일진들을 참교육하고 오겠다……. 그렇다면 그 말은 설마 이번에 일어난 사고가…….”
“그렇습니다. 해당 각성자는 오랜 기간 학교에서 소위 일진이라고 불리는 불량한 동급생들에게 지속적인 괴롭힘을 받아 왔던 상태였습니다. 그로 인해 같은 반인 동급생들 모두에게 깊은 원한을 품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최근 마나를 각성하고 난 이후에 힘을 얻게 되자 그 힘을 이용해 복수하려다가 이번 사태가 벌어진 것입니다.”
가끔 학교 현장에서 벌어지곤 하는 극단적인 사건 사고들.
오랜 괴롭힘을 당한 끝에 흉기를 들고 가서 상대를 찌른다거나 학교에 불을 지른다거나 하는 이런 우발적이고 충동적인 사고였지만, 마나를 통한 복수를 하는 경우는 또 처음이었기에 윤기열 대통령은 수사 보고서에 포함된 현장의 사진을 몇 장 살펴보더니 이내 골치 아프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언론에서 떠들고 있는 것처럼 폭탄 테러나 그런 것이 아니라니 다행이지만 이것 역시 심각한 사안 아닌가? 비록 이번 사건에서 사망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하지만, 각성자 한 사람이 이렇게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은 다시 말해 향후 각성자들이 늘어날수록 이와 비슷한 상황이 계속해서 발생할 수 있다는 말 아닌가?”
각성자에 의해서 발생한 범죄.
일개 고등학생 한 사람이 만들어 낸 일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완전히 파괴된 교실.
단단한 철골 구조의 의자와 책상이 모조리 망가지고 부서진 채 나뒹굴고 있는 것을 보면 그 현장에서 죽은 사람이 없다는 것이 정말 천운이라고 할 정도로, 그가 발산했던 힘은 분명 어마어마할 정도로 파괴적이었다.
“그래서……. 그 엄준식이라는 학생은 지금 어떻게 됐나?”
“처음 발견했을 당시에는 매우 위중한 상태였지만 다행히 주한미군으로부터 긴급하게 공수받은 레드 포션을 이용해서 다행히 목숨을 살릴 수 있었습니다. 현재 생명의 지장은 없습니다만 의식은 아직 회복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그런데…….”
보고를 이어 가던 경찰청장. 하지만 그는 이내 손에 들고 있는 보고서의 무언가를 살펴보다가 이내 말을 멈추고는 잠깐 고민하는 듯한 얼굴로 입을 실룩거렸다.
“그런데 뭐 말인가?”
“아니……. 아닙니다. 아직 정확하게 확인된 내용은 아니라서…….”
“감안하고 듣겠네. 일단 알고 있는 내용은 전부 빠짐없이 보고하도록 하게.”
“그게……. 담당 수사관 중 하나가 해당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그’가 엄준식 군을 방송 도중 언급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는 보고가 있어서…….”
“…….”
윤기열 대통령의 앞에서 절대로 언급하면 안 되는 금기의 단어인 멀린.
그 단어를 차마 언급할 수 없다는 듯, 경찰청장은 진땀을 뻘뻘 흘리며 에둘러 이야기를 꺼냈지만,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한 윤기열 대통령의 얼굴은 그야말로 북극의 얼음 폭풍이 밀려드는 것처럼 싸늘하게 변했다.
“대통령님. 이 내용은 차후에 정확하게 내용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니, 지금 말해 보게.”
“예……?”
“그 망할 꼬맹이가 무슨 소리를 지껄였는지 알아야겠어.”
분노로 번들거리는 눈을 빛내며 그가 벌인 짓이 무엇이냐고 물어오는 윤기열 대통령. 그리고 그런 그의 심상치 않은 반응에 경찰청장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이어 갔다.
“그것이…….”
마법과 마나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과 개념의 이해가 부족한 세상.
이 지구상에서 이러한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 경로가 지금으로서는 멀린의 채널밖에 없었기에, 경찰청장은 자신이 이해한 수준에서 이번 사태가 벌어진 경위에 대해 윤기열 대통령이 세상에서 가장 증오하는 사람인 멀린의 설명을 토대로 보고를 이어 가기 시작했다.
“마나는 그 어떤 에너지보다도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기에 정신이 멀쩡하지 않거나,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과도한 양의 마나를 운용하게 된다면, 통제력을 잃고 제멋대로 마나가 발현하게 되는 상태에 놓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를 마나 폭주라고 부르는데, 이러한 상태에 들어가게 되면 체내의 축적된 마나를 비롯해, 주변 대기의 마나까지 전부 연쇄적으로 반응하며 순간적으로 폭발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고 했습니다.”
“엄준식 학생 같은 경우에도, 현재 같은 반 동급생들과 싸움이 붙어 집단으로 구타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당황한 상태로 마나를 끌어올리다가 통제력을 잃고 마나 폭주를 일으키게 된 것이라 추정하고 있습니다. 다른 목격자들이 준식의 주변이 푸른색으로 빛났다고 진술한 내용 역시 마나 폭주 때 벌어지는 현상과 일치합니다.”
마법을 시전하거나 마나를 운용할 때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상식과 같은 조건.
명경지수와 같은 평정심과 부동심.
괜히 마법사들이 전투 상황이 발생할 때, 가장 안전한 후방에서 마법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었다. 방대한 수식을 계산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온 정신을 집중해 심장에 축적된 방대한 양의 마나를 운용해야 하는 마법사들. 제아무리 이들이 강대한 마나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멘탈이 흔들리거나 무너지는 순간, 자신을 지켜 주고 보호해 주던 그 든든한 마나는 순식간에 목숨을 앗아 가는 치명적인 흉기가 될 수 있었다.
고작 근육과 살점으로 이루어진 인간의 심장은 방향성을 잃고 붕괴하기 시작한 마나의 후폭풍을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연약했으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엄준식 학생이 죽지 않은 것은…….”
“예. 아직 그 서클이라는 것을 형성할 정도로 많은 마나를 축적하지 않았기에 즉사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멀린…… 크흐흠. ‘그’가 했던 방송 내용에 따르면, 서클을 형성하지 못한 채 전신의 마나 회로에 미량으로 쌓여 있던 마나가 전부여서 겨우 목숨만 건졌을 뿐이지, 모든 마나 회로가 손상되어서 앞으로는 마나를 운용조차 할 수 없는 신세가 되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마법의 재능이 있었음에도 제대로 된 성취도 못 이루어보고 마법사로서의 생명이 끝나 버린 준식. 그런 그의 상태에 대해서 경찰청장이 알고 있는 모든 내용을 보고받은 윤기열 대통령은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듯이 가만히 앉아 자신의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사건 보고서를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는 윤기열 대통령. 그리고 그는 갑자기 미친 듯이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크크크……. 크하하하하하하.”
“대통령님……?”
“괜찮으십니까?”
그런 그의 반응에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경찰청장과 비서실장. 하지만 윤기열 대통령은 한참을 킥킥거리며 웃더니 이내 무언가 광기로 희번덕거리는 눈으로 그 둘에게 한 가지 생각을 묻기 시작했다.
“자네들은 지금 이 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어떤 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상황이라면…….”
정치인으로 수십 평생을 살아온 윤기열 대통령.
대한민국의 행정 수반으로서 권력의 정점에까지 오르며 절대적이고 압도적인 지지율 속에서 한 나라를 통치했었기에, 그는 최근 모래성처럼 무너지기 시작한 자신의 입지를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다.
“마법. 그 판타지 속에서나 존재하던 마법이라는 것 하나 때문에 전 세계가 커다란 충격과 혼란에 빠져 있네. 각성자라고 불리는 이들이 마치 자신들이 다른 인간보다도 우월하기라도 한 것처럼 날뛰고 있고 앞으로 세상을 뒤바꾸게 될 놀라운 힘이라도 되는 것처럼 온갖 호들갑을 다 떨고 있지.”
마법 입국 선언을 시작으로 기다렸다는 듯이 마법에 대한 호의적인 입장의 논설과 기사를 쏟아 내기 시작한 미국의 저널과 언론사들. 정부의 입김이 강하게 서린 의도적인 움직임이었지만, 윤기열 대통령은 자신이 직접 경험했던 사례들을 보며 분명히 확신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마법이 가져오게 될 혼란을 아무도 생각하지 않고 있지.”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자동차를 막아 낼 수 있는 보호막을 만들어 내는 9살짜리 아이나.
각성자가 되어 자기가 마치 뭐라도 된 것처럼 의기양양하다 큰코다친 철없는 고등학생이나.
거기에…….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이자 경찰과 군 병력을 상대로 맞서 싸워 공개적으로 국가 권력을 무시하고 권위를 바닥에 내리쳐서 짓뭉개 버린 정신 나간 중학생이나.
나이와는 관계없이 평범한 인간으로서는 감히 손에 넣을 수 없는 강력한 이능을 가진 각성자들. 지금은 그 수가 매우 소수이기에 큰 문제는 없었지만, 윤기열 대통령은 이러한 각성자가 많아지게 될 경우 발생할 문제를 분명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미국의 방향성과는 완전히 역행하는 하나의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마법은 금지되어야 하네.”
“예……?”
“그게 무슨…….”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민서율을 포섭하기 위해서 각성자들에게 여러 가지 국가적인 혜택을 부여하는 법안과 정책 논의에 착수하라는 지시를 내렸던 윤기열 대통령. 그랬던 그가 돌연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자 그 둘은 정말 당황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이번 사건을 통해서 분명하게 마음을 정할 수 있었네. 여기, 이 아이가 저지를 뻔한 사고를 보게. 고작 동급생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최소 20명의 죄 없는 친구들을 모조리 다 죽일 뻔하지 않았나?”
“…….”
마나를 이제 막 각성한 상태였기에 천운이 따라서 사상자가 없었을 뿐이지, 그 위험성은 분명히 존재했던 상황. 그렇기에 그 누구도 윤기열 대통령의 물음에 대답할 수 없었다.
“이건 그저 시작에 불과하네. 만약 이러한 각성자들이 하나둘씩 늘어난다고 가정해 보지. 모든 인간이 바르고 착한 것이 아니듯, 분명 그들 중에서는 미치광이들이 나타나게 될 것이네. 현존하는 경찰과 군 병력으로도 막을 수 없는 누군가가 대놓고 범죄를 저지르거나 사람들을 학살하고 다니기 시작한다면, 그런 상황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건…….”
현존하는 공권력으로도 막아설 수 없는 최악의 악당이 탄생한다면, 그것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 윤기열 대통령. 하지만 그는 대답을 들을 필요가 없다는 듯이 스스로 그에 대한 답을 내렸다.
“멀린이라는 아이만 봐도 알 수 있네. 비록 미국 정부의 위협 때문에 풀어줄 수밖에 없었다고는 하지만, 그는 분명 치명적이고 위협적인 존재네. 우리가…… 어쩌면 미국조차도 통제할 수 없는 인간일지도 모르지.”
“…….”
침묵에 빠진 집무실.
그리고 그 침묵을 깬 윤기열 대통령은 가만히 생각에 잠겨 있는 비서실장을 향해 말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지만……. 내 임기가 끝나기 전까지 이 문제는 확실하게 매듭짓고 가야 할 필요가 있겠네. 비서실장.”
“예……?”
“대한국민당과 민주시민당 대표……. 두 사람 모두 같이 만나서 이야기 좀 나누자고 전하게.”
대선에 출마할 후보자들을 선출하고 이제 본격적으로 치열한 대선 레이스를 시작하게 된 여야의 지도부를 호출하는 윤기열 대통령.
그리고 그런 그의 지시에 비서실장은 조금은 의아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무슨 이유로 호출하는지 그 용건을 어떻게 전달하면 되겠습니까……?”
윤기열 대통령의 출신 정당인 민주 시민당은 몰라도 경쟁 상대인 대한국민당은 온갖 변명을 하며 이 만남을 회피하려고 할 것이 분명한 상황. 그렇기에 이들을 꾀어내기 위해서 무언가 혹할 만한 미끼를 던져 줘야 했기에 비서실장은 연신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윤기열 대통령은 굳은 결의에 찬 얼굴로 자신의 임기 중 마지막 업적이 될 목표를 이야기했다.
“이 대한민국에서 마법을 불법(不法)화하자고 전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