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100화.
멀린이 쏘아 올린 작은 공.
하지만 그 후폭풍은 비단 한국 사회만이 아니라 전 세계를 뒤흔들었다.
[ 아직도 내가 컨셉질에 빠진 정신 나간 중2병 또라이로 보이냐? 이 빌어먹을 미개한 인간 새끼들아? ]
[ 자, 아쉽지만 오늘 콘텐츠는 여기서 마무리해야 될 것 같네요. 저기 저 군인 아저씨들한테 붙잡혀서 어디 은밀한 곳에 끌려가게 될 것 같은데 정확히 어디로 가게 될지는 모르겠네요. 때릴 곳도 없는 저한테 설마 고문 같은 험악하고 반인권적인 짓을 하지는 않겠죠? 그래도 저는 나름 대한민국이 인권을 존중하는 선진국이라고 믿고 있거든요. ]
[ 그럼······. 이걸로 방송을 마친다. 이 미개하고 무식한 인간들아. 내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면 구독 좋아요. 알림 설정까지 해 놔라. 그럼 마바~. ]
손에 커다란 화염구를 만들고 사방에서 날아드는 총탄을 모조리 허공에서 멈춰 세우며.
수백······. 수천의 무형의 투사체를 만들어 반격을 가하며 단신으로 수십 명이 넘는 무장 군인들을 모조리 제압하기까지······.
마치 영화 속에서나 볼 법한 초능력자나 가능할 법한 일을 현실에서 보란 듯이 이루어내는 그 광경을 보며 사람들은 하나같이 경악하고 또 의구심을 가졌다.
저것이 정말 조작이 아니라 현실에서 일어난 일이 맞는지.
그리고······.
과연 자신도 저런 초인적인 힘을 가질 수 있을지 말이다.
하지만 그런 호기심과 기대감을 품고 멀린의 영상을 확인하기 위해서 찾아온 사람들이 마주한 것은 바로 흔적만 남아있는 그의 채널뿐이었다.
- 뭐냐? 영상 다 어디 갔음?
- 전부 비공개 처리된 것 같음.
마지막 방송이 끝나자마자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사라져버린 영상들. 하지만 사람들은 이미 마법의 존재와 그 위대함을 단편적으로나 목격했기에 이들은 이내 인터넷의 수많은 커뮤니티 사이트들을 돌아다니며 온갖 음모론을 퍼트리기 시작했다.
- 사실 이 세상에 마법사들이 인간들 사이에 숨어서 살아가고 있었음. 그리고 그 사실은 여러 국가의 최고 권력자들한테만 전해지고 있던 내용이었는데, 이번에 어느 한 마법사가 대놓고 마법을 사용해서 인간들한테 노출됐음. 그래서 그거 때문에 한국 정부가 지금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서 인간들의 기억을 지우려고 하는 중임.
- 필독! 혹시라도 선글라스를 끼고 검은 양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 문 열어달라고 하면 절대 열어주지 마세요. 그 사람들은 여러분의 기억을 지우기 위해 정부에서 파견한 마법사들이에요. 만약 문 열어줬다가는 여러분은 마법과 관련한 모든 기억을 잃게 될 거예요!
- 이 댓글을 읽으신 분들은 마법사가 될 수 있는 아주 절호의 기회를 잡게 된 것입니다. 축하드립니다. 마법사가 되고 싶으시다면 이 댓글을 복사해서 다른 사이트에 10개의 댓글을 남기시면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곧바로 마법사가 될 수 있을 거예요.
- 마법과 관련한 정보를 외부 세계에 유출하는 것은 심각한 국제마법협약의 위반사항입니다. 혹시라도 이와 관련한 내용을 주변 지인들에게 언급하지 마십시오. 그랬다가는 마법부 법령 제3조 21항에 따라 아X카반에 갇힐 수 있습니다.
온갖 괴상망측하고 허무맹랑한 이야기들이 난무하지만, 모두가 마법을 진지하게 언급하며 호기심과 관심을 드러내고 있는 상황. 평소라면 그 누구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법한 이야기였지만, 지상파 뉴스를 비롯해 인터넷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든 거대한 사건 하나에 여론은 전혀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지체되면 될수록 더욱 온갖 유언비어가 퍼져나가며 더욱 혼란이 가중되고 있는 최악의 상황. 그렇기에 이번 소동이 아무런 일 없이 잠잠해지길 바라고 있던 아영과 이호준 회장의 표정은 점점 심각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거······. 정말 곤란하게 됐군.”
“어떻게 하죠? 영상을 전부 비공개로 돌린 것 때문에 더 난리가 난 것 같은데······.”
나름대로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했던 둘.
멀린의 뮤튜브 계정을 알고 있는 아영은 모든 영상을 임시로 비공개로 전환했고 이호준 회장은 자신이 가진 영향력을 최대한 동원해서 이번 사태와 관련해 어디까지 얽혀 있는 것인지를 확인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번 사태는 이 둘의 영향력이나 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수준의 문제였다.
“목격자들이 촬영한 멀린 님의 영상들이 SNS를 통해서 급속도로 퍼져나가고 있어요. 단순히 멀린 님의 뮤튜브 채널을 닫는 것 정도로는 사람들의 관심이 사그라들 것 같지 않아요.”
“멀린을 잡으라는 지시가 누구 선에서 떨어진 건지 조용히 알아봤는데······. 아무래도 청와대에서 직접 내려온 명령인 것 같네.”
“청와대라면······?”
“대통령이 직접 연루된 거라고 봐야겠지. 아무래도 마법과 관련해서 이미 모든 것을 눈치챈 것 같아.”
“그렇다면······. 저희는 어떻게 되는 거죠······?”
만약 한국 정부가 멀린의 정체를 비롯해 마법의 실체를 알아냈다고 한다면, 아영과 삼진 그룹으로 눈이 돌아가는 것은 그야말로 시간문제인 상황. 하지만 멀린이 대놓고 한국 군대와 교전을 벌이며 저항했기에 그런 그와 손을 잡고 은밀하게 협력해온 이 둘에게 한국 정부가 그 모든 사실을 알고 나서도 호의적인 시선을 보낼 가능성은 0%에 가까웠다.
“그건 나도 모르네······. 최악의 상황에서는 우리도 같이 엮어서 감옥에 보낼 수도 있겠지만, 그러지는 않겠지.”
“정말이지······. 도대체 생각으로 이런 미친 짓을······.”
다른 곳도 아니고 멀린이 반기를 든 대상은 다름 아닌 국가.
그것도 어디 저 멀리 떨어진 외국도 아니고 아영이나 이호준 회장이 평생을 살아왔고 둥지를 틀고 있는 이들의 본거지인 한국이었기에, 한국 정부와 대놓고 한바탕 싸움을 벌인 멀린으로 인해서 자신들에게 무슨 불똥이 튈지 모르기에 그 둘의 표정은 극도로 어두워졌다.
“끄으응······.”
“어떻게······. 멀린 님과 연락할 수단이 없을까요?”
아무런 언질도 없이 이런 초대형 사고를 쳐 버린 멀린. 하지만 방송이 끊긴 이후 그와 연락할 방도는 그 어떤 것도 없었기에 앞으로의 대처를 생각하는 이 둘의 고민은 시간이 갈수록 계속 깊어질 뿐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아영은 갑자기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한 자신의 휴대전화에 찍혀있는 발신자의 이름을 보고는 이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멀린의 번호로 걸려 온 전화인 것을 확인하고 다급하게 전화를 받은 아영은 이내 장난기 가득한 그 친숙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 전화를 바로 받는 거 보니까 안 그래도 목이 빠져라 저를 기다리고 있었나 보네요. 많이 놀라셨죠? ]
“멀린님!!!!”
반가움과 안도감. 그리고 분노가 뒤섞인 형용할 수 없는 감정 속에서 아영은 큰 목소리로 멀린을 불렀다. 그리고 이내 수많은 질문들을 속사포처럼 곧장 쏟아내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정신 나간 짓을 벌인 거예요? 혹시 다치거나 그러지는 않았어요? 지금 어디세요? 아니, 그보다······. 도대체 어떻게 저한테 연락을 할 수 있는 거죠?”
머릿속에 뒤죽박죽 섞여 있는 수많은 생각과 질문들.
그리고 그것들을 두서없이 쏟아내는 아영이었지만, 그에 대한 해답을 들을 수는 없었다.
[ 어휴······. 무슨 질문이 그렇게 많아요? 일단······. 어제 오후에 있었던 일은 전부 다 깔끔하게 해결됐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한국 정부는 저를 비롯해 아영이나 삼진 그룹이나 그 누구도 건들 수 없을 테니까요. ]
“예······? 그게 무슨······.”
아직 사태가 벌어진 지, 24시간도 지나지 않은 상황.
절대 말끔하게 해결될 수 없는 문제를 걱정하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멀린의 말에 아영과 이호준 회장은 일순간 의아한 표정으로 서로의 시선을 마주쳤다.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인가? 한국 정부가 우리를 절대 건들 수 없게 됐다니?”
아영을 대신해서 질문을 던지는 이호준 회장.
그리고 그는 전혀 상상하지도 못한 답을 듣고는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 미국 정부가 생각보다 이번 문제에 엄청 공격적으로 개입하더라고요. 뭐라고 했다더라······? 저를 당장 풀어주지 않으면 전략 폭격기가 평양이 아니라 서울을 향해 출격하게 될 거라고 진심으로 협박했다던데요? ]
“뭐······뭐라고? 미국 정부? 자네······. 미국과도 손을 잡았었나?”
[ 네. 그런데 얼마 안 됐어요. 아영이 정보부 요원들에게 납치당할 뻔했을 때니까······. 한 4개월 조금 넘었나? 저번에 미국 대통령이 한국에 정상회담 하겠다고 찾아온 적이 있었잖아요. 그때 만나서 서로 잘해보기로 쇼부 봤죠. ]
“뭐······뭐라고? 납치······?”
저건 또 무슨 소리냐는 충격받은 눈빛으로 아영을 빤히 바라보는 이호준 회장. 왜 그런 큰일을 자신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느냐는 무언의 추궁에 아영은 입을 우물거리며 말했다.
“······. 안 좋은 이야기라서 굳이 말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보다······. 미국 정부가 개입한 거예요? 미국이 우리 정부를 압박해서 멀린 님을 풀어주게 된 거예요?”
[ 뭐······. 그런 셈이죠. 국정원이라고 해서 어쩌겠어요? 자기들 뒷배라고 해 봤자 결국에는 윤기열 대통령인데 미국과 손을 잡은 저랑은 인맥전으로 상대가 안 되죠. 뭐. ]
“그러면······. 이제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건가요?”
마법의 존재가 대놓고 세상에 노출된 상황.
너무 오랜 시간 동안 방치된 탓에 이제는 막을 수도, 수습할 수도 없는 그야말로 혼돈 상태에 빠져버린 지금의 사회를 보며 아영은 멀린에게 물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물음에 멀린은 사악한 웃음기가 담긴 목소리로 짤막하게 답했다.
[ 아, 지금 무슨 상황인지 모르고 있구나? 지금 TV 아무 곳이나 한번 틀어보세요. 아마 깜짝 놀랄걸요? ]
“네······?”
의아한 목소리로 되묻는 아영. 하지만 옆에서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호준 회장은 황급히 탁자 위에 올려져 있던 리모컨을 찾고는 이내 TV를 켰다.
그리고······. 그들은 TV를 통해 전 세계에 실시간으로 전파를 타고 송출되고 있을 레너드 대통령의 공식적인 성명 발표를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할 수 있었다.
[ 친애하는 미합중국의 국민 여러분. 우리 정부는 최근 지금껏 알지 못하던 새로운 미지의 개념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저를 비롯해 정부 각료의 그 누구도 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수많은 증거물과 실증적인 연구를 통해 얻은 결과들을 미루어 보았을 때, 우리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상상 속의 이야기에서나 존재하던, 그리고 언제나 농담처럼 받아들이던 그 마법이 정말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개념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
“뭐······뭐라고······?”
“지금 이게 무슨······.”
미합중국을 상징하는 독수리 인장이 박혀 있는 백악관에서 실시간으로 중계되고 있는 방송.
미국의 레너드 대통령이 그 어느 때보다도 진중한 얼굴로 읽어 내려가고 있는 그 성명문의 내용을 들으며 아영과 이호준 회장은······. 아니, 이 방송을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을 전 세계의 모든 이들과 똑같은 표정을 지었다.
도저히 제정신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이야기에 영혼이 빠져나간 것 같은 사람처럼 입을 벌리며, 그저 멍하니 레너드 대통령이 말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뿐이었다.
[ 수많은 혼란과 변화의 바람이 전 세계에 닥쳐올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수많은 고난과 격정의 파도가 몰아치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마법이 가진 힘은, 그리고 마나라는 새로운 에너지는 앞으로 우리 인류에게 수많은 혁신을 가지고 올 것이며 나아가 우리 인류 문명이 지금보다도 더욱 진보하고 번영할 수 있도록 해 줄 것이리라고 저는 믿습니다. ]
[ 마법입국(魔法立國)을 통해서, 우리는 자연과 진정으로 공존하며 조화롭게 화합하는 법을 배울 겁니다. 그저 허상에 지나지 않은 말이 아니라, 정말로 지속 가능한 성장 속에서 우리는 후손들에게 번영하면서도 동시에 더욱 아름다운 미국을 선사할 수 있게 될 겁니다. ]
[ 변화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무지를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새로운 도전을 피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마법을 받아들이고 이를 신중하게 활용할 수 있게 된다면, 우리 미합중국은 지금보다도 더욱 굳건해질 것이고, 더욱 강해질 것이며, 앞으로도 지금과 같이 찬란한 번영을 누릴 수 있을 겁니다. ]
[ 신은 언제나 여러분과 위대한 미합중국을 축복할 것입니다. 그럼 좋은 밤 되시기 바랍니다. God bless America. ]
10분 내외로 끝난 레너드 대통령의 짤막한 성명문.
하지만 미합중국 대통령의 입에서 튀어나온 그 발표로 인해서 이제 그 누구도 감히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언제나 상상 속에서나 존재하며 한낱 대중문화 속 설정이자 망상 따위로 취급하던 마법이······. 정말로 이 세상에 실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지금 이 상황을 보며 그 누구보다 즐거워하고 잇는 사람은 다름아닌 모든 사태의 장본인인 멀린이었다.
[ 이제 제대로 된 마법 혁명을 시작해야겠네요. 앞으로는 두 분 모두 엄청 바빠지겠는요? ]
이제부터는 뒤에서 몰래 깽판을 치는게 아니라 앞에서 대놓고 치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하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