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화.
99화.
100년 전만 하더라도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는 최악의 빈국이자 약소국이었던 대한민국.
하지만 격정적이던 세계사의 커다란 흐름 속에서 한국은 고작 반세기 만에 선진국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비슷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경이적인 고속 성장을 이루어냈습니다. 국민 전체가 온 힘을 합쳐 근면 성실하게 일하며 많은 헌신과 노력 속에서 일구어낸 경제적 번영입니다. 한강의 기적을 통해서 아무것도 없던 폐허 속에서 오늘날 한국은 세계적으로도 매우 튼튼한 경제력을 가진 국가로 탈바꿈했습니다. ]
한때는 식민지 시대까지 겪으며 나라를 빼앗기는 치욕까지 겪었지만, 수많은 이들의 노력과 헌신 속에서 결국 어엿한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며 가난을 탈피할 수는 있었다고 극찬하는 사람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하자면 그 모든 번영은 자력으로 얻은 결과가 아니었다.
[ 오늘 새벽, 북한이 대륙간 탄도 미사일인 ICBM으로 추정되는 발사체를 발사했습니다. 해당 발사체는 동해에서 북쪽으로 60 Km 떨어진 공해상으로 추락한 것으로 군이 발표했습니다. 이는 북한의 핵 개발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고도화되고 있다고 전문가들이 분석했습니다. ]
[ 북한과의 통일과 관련한 문제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닙니다. 북한은 과거 공산 진영이었던 중국과 러시아가 자유 진영인 미국의 세력권과 직접적으로 부딪치지 않게 하는 완충지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 북한이 남한에 흡수통일되어 사라지게 된다면 결국 우리는 중국과 국경을 맞닿게 될 수밖에 없는데 그건 어느 쪽에서도 바라지 않는 상황일 겁니다. ]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강력한 나라들.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감히 싸워볼 엄두조차 나지 않는 강대국들의 패권 경쟁 사이에 둘러싸인 한국. 거기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북한의 존재까지 있었기에 대한민국은 경제적 번영과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매일 같이 반복해야만 했으며, 이러한 강대국 중 하나에게 긴밀하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 자주국방을 실현하기 위해서 전시 작전 통제권을 미국으로부터 다시 환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생각이 틀렸다는 건 아닙니다. 전시 작전권은 당연한 우리의 주권이겠죠. 하지만, 정말로 우리가 북한을 비롯한 모든 외세의 위협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
[ 이전 정부에서 미국의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시스템을 한반도에 전진 배치하는 것을 수용했던 것 때문에 중국과의 외교 관계는 파국에 치달았습니다. 그렇게 될 걸 알면서도 정부는 그러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죠. 한미동맹의 필요성과 그 중대성은 한국인이라면 정치적인 성향과는 관계없이 그 누구도 감히 부정할 수 없습니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그건 정말로 종북주의자겠죠. ]
자유 진영의 리더이자 전 세계와 전쟁을 하더라도 이길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패권 국가. 미합중국.
한미상호방위조약이라는 군사동맹을 바탕으로 자그마치 60년이라는 동맹 관계를 이어 나가고 있는 미국은 한국이 지금의 자유와 번영을 누릴 수 있게 해 준 장본인이자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수많은 외세의 위협으로부터 지켜준 든든한 방어막이자 버팀목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오랜 기간 한국과 우호적이고 긴밀한 동맹 관계를 유지했던 그 미국이······. 처음으로 한국 정부를 향해 강력한 적대감과 분노를 품게 되었다.
“저 대통령님······. 무슨 이유로 저를 부르셨는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이른 새벽 시간부터 갑작스럽게 백악관으로 소환당한 주미 한국 대사. 조환철.
제대로 된 영문도 모른 채 잠을 자다가 불려온 것 같은 그를 그저 묵묵히 바라만 보고 있던 레너드 대통령은 이내 나지막하면서도 분명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대사님의 표정을 보니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나 보군요. 아니면, 모르는 척하고 있는 건가요?”
싸늘함이 잔뜩 풍기는 레너드 대통령의 차갑고 냉소적인 목소리.
외교관으로서 수십 년을 살아왔던 환철은 그러한 그의 어조에서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는 굳은 얼굴로 물었다.
“······. 한국에서 벌어지는 상황이라 하시면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 것인지······.”
그 말에 레너드 대통령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저, 태블릿 PC에서 하나의 영상을 틀어 탁자 위에 올려놓을 뿐이었다.
[ 해외 토픽입니다. 한국에서 오늘 마법사라고 주장하는 어느 한 소년이 나타났습니다. 자신을 멀린이라고 부르는 이 소년이 자신의 뮤튜브 채널에서 생방송으로 스트리밍했던 영상이라고 하는데 한번 보시죠. ]
[ 서울 한복판에서 군대와 교전을 벌인 소년. 그가 보여주었던 그 모든 것들은 정말 마법이었던 걸까요? 영상 자체가 조작되거나 CG를 통해 연출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많은 목격자가 촬영한 여러 증거 영상들과 증언을 종합해보면 그럴 가능성은 희박할 것 같습니다. 과연 한국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
“이게 도대체 무슨······.”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듯이 놀란 눈으로 입을 벌리며 멍하니 뉴스를 시청하고 있는 그.
하지만 그의 무지는 레너드 대통령은 분노를 잠재우기는커녕 오히려 더 증폭시킬 뿐이었다.
“한번 설명해 보시죠. 한국 정부는 어째서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고 조용히 은둔하고 있던 이 세상의 유일한 마법사를 건드려서 이러한 커다란 혼란을 촉발했는지 말입니다.”
이미 한국을 넘어서 전 세계로 퍼져나가기 시작한 마법의 존재.
CNN이나 BBC를 비롯한 수많은 주류 언론사에서까지 관련 내용을 대서특필하며 의구심을 드러내는 상황이기에 이제는 정보를 막고 통제하려 해도 불가능한 수준에 이른 상태였다.
다시 말해······.
비밀리에 마법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국가로의 개혁과 건설을 준비하던 미국의 비밀 프로젝트인 마법 입국이 전 세계에 노출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
그렇기에 레너드 대통령은 새롭게 등장한 마법이라는 혁신적이고 파괴적인 변화를 불러올 지식을 그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선점할 기회를 완전히 날려버린 한국 정부에 격분할 수밖에 없었다.
“마법······. 말입니까?”
미합중국의 대통령 입에서 튀어나온 마법이라는 단어.
도무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대화 주제에 환철은 도대체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연신 입을 뻐끔거렸다. 그리고 그는 이내 무언가를 깨달은 듯, 눈을 크게 뜨고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말씀은······. 대통령님께서는 마법의 존재를 아니, 아까 그 영상 속에 등장했던 소년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의미입니까?”
한국 정부도 모르고 있던 정보를 태평양 너머에 있는 미국이 어떻게 알고 있었냐고 듯이 물어오는 대사의 물음에 레너드 대통령은 숨기지 않고 진솔하게 답을 해 주었다.
“그의 존재를 알게 된 경위에 대해서 모든 것을 세세하게 말해줄 수는 없겠지만, 접촉한 지는 꽤 됐습니다. 이미 멀린은 우리 미합중국 정부와 협력하기로 손을 잡았고, 계속해서 현지에 파견한 요원들과 긴밀하게 소통하면서 마법과 관련해 여러 가지 도움을 주고 있었습니다.”
살살이 풀과 그것을 기반으로 한 레드 포션의 개발과 공급.
마나석의 양산과 데슬라와의 배터리 공급 및 개발 지원.
거기에······.
자그마치 1,200만 평에 달하는 멀린의 정원의 건립까지.
그야말로 미국이 앞으로도 세계의 명실상부한 패권국으로서 그 지위를 지켜나가는 데 꼭 필요한 핵심적인 인물. 마음 같아서는 이미 일찍이 가족을 비롯해 일가친척까지 전부 미국으로 이주시키고 철저하게 보호하고 싶었지만, 본인이 거부하는 바람에 가만히 내버려 둔 결과 이러한 사달이 일어났다는 점에서 레너드 대통령은 깊이 후회하고 있었다.
‘일찌감치 한국 정부에 건드리지 말라고 언질을 뒀어야 했나······.’
설마하니 이런 초대형 사고가 벌어질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레너드 대통령. 너무 안일했다는 반성과 함께 그는 몹시나 당황해 어쩔 줄 몰라 혼란스러워하는 표정의 한국 대사를 보며 다시 한번 머리에 피가 쏠리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이를 갈았다.
‘저런 멍청한 놈들 때문에 모든 게 다 꼬여버렸군······.’
이제 전 세계가 똑똑히 마법의 존재를 눈치챈 상황.
중국이나 러시아······. 그 이외에도 수많은 적대국이 마법이라는 힘이 가진 가치와 위력에 매료되어 어떻게든 손에 넣으려고 숨 가쁘게 경쟁할 것을 떠올리며 그는 지끈거리며 밀려오는 두통에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시간을 다투는 일이니,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죠. 한국 정부가 체포한 멀린······. 한국 이름으로는 김철수라는 소년을 즉각 풀어주시죠.”
“네······?”
한국 정부가 체포한 소년을 풀어달라는 미국 대통령의 요구. 하지만 그 말에 환철은 조금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잠깐을 고민하다 말했다.
“죄송합니다만 대통령님. 그건 미국 정부가 요청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닌 것 같습니다.”
자국민에 대한 조처를 당사국이 아닌 외국에서 결정한다는 것은 명백한 내정 간섭이라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기에 한국 대사는 그러한 그의 요구가 얼마나 부당한 것인지를 알기에 한국 정부의 대리인으로서 항변했다.
물론······.
그게 씨알도 먹힐 사항이 아니었지만 말이다.
“헛소리는 집어치우시죠.”
“지금 그게 무슨······.”
“전후 사정을 모른다고는 하지만, 대사님도 이미 머릿속으로 상황은 어느 정도 눈치채셨겠죠. 만약 마법이 정말로 존재하고, 그 힘을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활용할 수 있는 이가 있다면 앞으로 이 세상에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될지 말입니다.”
“······.”
어쩌면 지금까지 고착화하고 안정화되어있던 전 세계의 패권과 국제 정치의 역학 관계의 구도가 완전히 뒤집힐지도 모르는 격변의 세상. 그렇기에 레너드 대통령에게 한국 정부의 입장이나 내부 상황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우리 국방부는 이미 비상사태에 돌입했고 멀린의 구출 작전 계획을 수립하고 이에 필요한 모든 자원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만약 한국 정부가 지금으로부터 12시간 이내로 해당 인원을 석방하지 않는다면, 저는 미합중국의 대통령이자 군 통수권자로서 그 계획을 최종 승인할 겁니다.”
“대통령님······! 그게 지금 무슨 말씀이십니까?”
한국을 대상으로 군사 작전을 벌이겠다는 레너드 대통령의 통보.
다시 말해서 당장 풀어주지 않으면 무력 행사를 벌이겠다는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환철은 경악한 얼굴로 다급하게 물었지만, 레너드 대통령은 진지했다.
“대사님은 저에 대해서 잘 모르겠지만 저는 그리 참을성이 많은 성격이 아닙니다. 만약 우리 군이 작전을 수행하는 데 준비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면 이미 해당 작전을 실행하라는 명령을 내리고도 남았을 겁니다.”
“······.”
언제까지나 한국의 든든한 동맹국이었던 미국.
물론 그것이 국제 정치의 복잡한 역학 관계 속에서 필요에 의한 동맹이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서로가 같은 목적 아래에 그 우호 관계는 단단하고 굳건했다.
각국의 내부에서 밀려드는 수많은 반발 여론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한국과의 동맹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던 미국.
하지만 한국 사회 깊숙한 곳까지 단단하게 뿌리 박혀 있던 그 동맹의 근간과 믿음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렬하게 뒤흔들리고 있었다.
어느 정신 나간 중학생 소년 하나를 잡아들인 일 하나로 인해서 말이다.
“부디 제가 하는 말을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그랬다가는 한국인들이 내일 아침 가장 먼저 접하게 될 소식은 제가 합참의장에게 한국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이야기가 될 테니 말이죠.”
단순한 동맹 파기를 넘어서 순식간에 적으로 돌아설 수도 있다는 진심이 담긴 레너드 대통령의 경고. 그것을 들은 한국 대사는 이게 꿈인가 싶어 잠깐 멍하니 서 있다가 이내 고개를 숙이고는 조금은 비장한 얼굴로 말했다.
“······. 미국 정부의 뜻을 한국 정부에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허둥지둥 바삐 걸음을 옮기는 한국 대사.
집무실 밖으로 나서는 그의 모습을 잠깐 바라보던 레너드 대통령은 이내 피곤함 가득한 얼굴로 자신의 책상에 기대어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이내 인터폰을 눌러 누군가를 호출했다.
“성명문을 하나 준비해주게.”
그렇게······.
미국 대통령이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에 카메라 앞에 서서 이 세상에 마법이 실존한다고 발표하며 새로운 개혁을 선언하는······. 과거, 아영이 정신 나갔다고 생각하며 실소를 머금었던 그 장면이 정말 현실이 되고야 말았다.
'마법 입국 선언'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사에 한 획을 그은 역사적이고 위대한 하나의 거대한 사건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