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화.
94화.
강원도 철원 인근에 자리한 어느 작은 시골 마을에서 벌어진 자동차 사고.
원래라면 이 사고는 지역 뉴스에서 아주 짤막하게 보도되고 스쳐 지나가게 될······.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안타까움에 혀를 차지만 그 누구도 기억하지 못할 사소하지만 비극적인 사건에 불과했어야 했다.
[ 어제 낮 3시 경, 강원도 철원 인근에서 안타까운 음주운전 사고가 벌어졌습니다. 어린이 보호 구역에서 자그마치 시속 100Km에 달하는 속도로 질주하던 차량을 미처 피하지 못한 아이 한 명과 아버지 모두 그 자리에서 사망했습니다. 운전자였던 김 모 씨는 경찰 조사 결과 점심과 함께 술을 먹은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만취한 채로 귀가하기 위해서 운전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에 경찰은······. ]
음주운전으로 인해서 흔하게 벌어지는 수많은 사망 사고의 사례 중 하나로 기록되며 죽었어야 했을 두 부녀. 하지만 멀린으로 인해 이 세상에 뿌려진 마법의 개념과 지식이 그 안타깝고 비극적인 운명을 완전히 뒤틀어버리고야 말았다.
[ 여러분은 SF 영화나 소설에서 등장하는 ‘실드’를 아십니까? 최근 인터넷을 통해서 실드가 현실에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어느 한 네티즌이 나타났습니다. 그가 올린 영상에서 선명하게 보이는 푸른색을 발산하는 반투명한 구체를 두고 합성 여부와 관련해 갑론을박이 벌어지며 큰 논란이 되고 있는데요, 한번 영상을 봐 보도록 하겠습니다. ]
[ 강원도에서 벌어진 의문의 미스터리한 사건을 여러분은 아십니까? 음주운전을 한 어느 운전자가 횡단보도를 건너는 어느 한 부녀와 충돌할 뻔한 아찔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목격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충돌하는 그 순간에 갑자기! 기묘한 푸른색의 구체가 나타나 이들을 지켜줬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
누가 찍었는지 모르겠지만, 인터넷에 올라온 그날 벌어진 사건 현장의 영상.
사고가 일어난 직후에 찍혀진 것으로 추정되는 그 영상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몰려든 사람들로 인해서 어수선하고 정신없었지만, 그럼에도 분명하게 수많은 논란을 불러온 화제의 장면이 고화질로 생생하게 담겨져 있었다.
[ 우우우우웅. ]
두 부녀를 마치 보호하듯이 감싸고 있는 반투명한 푸른색의 구체. 마치 SF 영화에서나 볼 법한 실드를 연상하게 하는 그것의 모습을 자세하게 찍는 것으로 영상은 끝이 났지만, 그 영상을 본 사람들은 완전히 반으로 갈렸다.
- ㅋㅋㅋㅋ 요즘 어그로 끄는 놈이나 끌리는 놈들이나 수준이 답도 없네.
- 딱 봐도 CG인거 티 나는데 그걸 모름?
- 저 현장에 직접 나가 있던 사람이다. 농담이 아니라 저거 진짜였음. 직접 만져도 봤는데 엄청 딱딱하더라.
- 그래서 저게 진짜 뭐 실드라도 된다는 거임? 헛소리를 해도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진짜 ㅋㅋㅋㅋ 어이가 없어서 웃음밖에 안 나온다.
- 실드는 이론적으로 가능할지는 몰라도 현실에서 구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기본적으로 실드는 대기를 플라즈마 상태로 만들거나 이온화해서 외부의 충격이나 공격으로부터 내부를 방어하는 구조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막대한 에너지가 필요로 하는데······.
- 저거 실제로 벌어진 사건이라니까? 경찰 오고 난리 난 사진 못 봤음? 목격자도 수두룩하고 영상 증거까지 있는데 왜 안 믿고 지랄임?
- ㅋㅋㅋㅋㅋㅋ. 진짜 망상만 오지게 하다가 현실이랑 판타지랑 구분 못하는 한심한 새끼들이 왜 이렇게 많지? 하여간 이따위 저급 어그로 밖에 못 끄는 잼민이 수준.
- 응, 느금마.
- 일침 날리니까 발끈하는 거 보소. 우리 잼민이 화났누? 부들부들?
- XXXX. XXXXXXX.
영상의 조작 여부를 가지고 서로 맞다 틀리다 논쟁을 벌이다 결국 패드립이 난무하는 진흙탕 싸움이 되어버린 상황. 하지만 이렇게 인터넷이 시끄러운 것과 별개로 해당 사건을 인지한 대한민국 정부는 그야말로 커다란 충격에 빠져 있었다.
“그게 지금 무슨 소리인가······? 초능력자가 나타난 것 같다니······?”
비서실장의 터무니없는 보고에 너무나도 황당하다는 눈으로 되묻는 윤기열 대통령.
하지만 혹시 정신 나갔냐고 물어오는 것 같은 대통령의 싸늘한 눈빛에도 불구하고 비서실장은 자신의 말을 주워 담지 않고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한 표정으로 다시금 말했다.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사실입니다. 대통령님. 여기 이 영상을 봐 주시기 바랍니다.”
태블릿을 건네주며 어느 한 영상을 실행하는 비서실장. 그리고 그 영상을 보던 윤기열 대통령의 눈동자는 그 어느 때보다도 동그래졌다.
[ 아빠! 이거야! 이거! 내가 말했던 그 이상한 기운! ]
어느 커다란 방 안에 아빠와 함께 앉아 있는 어린 소녀.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모르는 듯, 그저 아빠와 함께 있다는 사실이 좋은지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는 잔뜩 신이 난 목소리로 무어라 소리치며 손을 휘젓고 있었고 윤기열 대통령은 그 영상 속에서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다.
우우우우웅.
“이건······?”
어린 소녀의 작달막한 손에서 피어오르는 선명한 푸른빛의 기운.
그리고 이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는 그 영상에 나왔던 것과 완전히 동일한 반투명한 구체가 두 부녀를 감싸며 일렁이기 시작하자 그 소녀는 마치 칭찬해달라는 듯이 의기양양한 얼굴로 아빠를 향해 묻고 있었다.
[ 짜잔! 아빠! 이거 봐 바! 이 비눗방울 내가 그 이상한 기운으로 만든 거다? 잘했지! ]
두 눈으로 보고도 도저히 믿을 수 없는지 완전히 얼이 빠진 표정으로 멍하니 자신을 감싸고 있는 푸른빛의 반투명한 방어막을 바라보고 있는 아빠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종료된 영상. 그것을 다 보고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연신 돌려보던 윤기열 대통령은 이내 심각한 표정으로 비서실장에게 물었다.
“이거······. 도대체 어떻게 된 상황인지 설명해보겠나?”
“하나하나 상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2일 전, 15시 08분 즈음에 강원도 철원 인근에서 음주운전 차량 한 대로 인해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이 출동을 해서 현장에 나가봤는데 그것에서 영상에서 보신 두 부녀를 발견했습니다. 이후 조사 과정에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을 목격하고 그와 관련한 내용을 상부에 보고하면서······.”
그 어떤 과학적인 설명도 불가능한······. 그야말로 기존의 모든 상식과 이해를 벗어난 초자연적인 현상을 일으키는 9살의 소녀.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평범해 보이는 이 아이가 자신의 의지대로 일으키는······. 도무지 두 눈으로 직접 보고도 믿기 어려운 그 이적을 보며 윤기열 대통령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 세상에는 어쩌면 초능력이라는 것이 존재할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좋네······. 좋아. 자네 말대로 초능력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가정해보지. 그렇다면 이런 초능력자가 갑자기 나타나게 된 정황에 대해서는 특별하게 알아낸 게 있는가? 어떻게 그런 말도 안 되는 능력을 이런 어린 여자아이가 얻게 된 거지?”
나름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전통과 뼈대가 있는 나라인 대한민국.
만약 이러한 특별한 이능을 가진 자들이 과거부터 존재했었다면, 지금까지 단 하나의 관련 정보나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기에 윤기열 대통령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물었다.
“그건 제가 설명 드리겠습니다. 대통령님.”
그러한 대통령의 합리적인 의문에 앞에 나서는 국정원장.
그리고 그는 국정원이 이번 사건에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서 조사하고 파악한 모든 정보를 토대로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한 얼굴로 먼저 대통령의 양해를 구했다.
“지금부터 말씀드리는 것들은 정확한 정보가 아니기에 확인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충분히 그럴만한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기에 너무 터무니없고 허무맹랑해 보이더라도 끝까지 제 보고를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려나 싶어 이렇게까지 말하나 싶어 의아한 눈으로 국정원장을 바라보던 윤기열 대통령. 하지만 이어지는 국정원장의 말에 그는 단번에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 마법사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시작부터 깜빡이도 없이 결론부터 먼저 훅 들어오는 국정원장.
그리고 그는 이내 꽤 기나긴 시간 동안 자신이 내린 그 결론에 대한 여러 근거와 증거들을 제시하며 대통령에게 마법사가 존재한다는 그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납득시키려고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그러니까······. 자네의······. 아니, 국정원의 판단은 이 김철수라는 소년이······. 진짜 마법사일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그 아이가 증언한 내용과 휴대폰 사용 기록을 종합해보면, 분명 이 소년이 운영하고 있는 뮤튜브 채널에 여러 차례에 걸쳐 접속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너도 할 수 있어······. 마법사가 되는 법······?”
보기만 해도 유치함이 팍팍 풍겨오는 제목의 뮤튜브 채널. 그 뮤튜브를 통해서 마법을 배웠다는 9살 어린아이의 증언을 믿는 것도 어려웠지만, 그 채널의 영상 하나를 캡처한 것으로 보이는 그 김철수라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윤기열 대통령은 정말 이게 최선이냐는 눈으로 국정원장을 바라보며 물었다.
“오······. 맙소사······. 이런 녀석이······. 초능력자······. 아니, 마법사라고······?”
5살짜리 여자애도 가지고 놀지 않을 것 같은 유치찬란한 요술봉과 꼬질꼬질한 인형을 들고 다니는 15살짜리 중학생 소년. 복장마저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로 괴상했기에 윤기열 대통령은 이게 정말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조차 어려워 보이는 표정이었다.
“······. 아직까지는 추정일 뿐입니다. 하지만 본인을 마법사라고 자처하는 그 김철수라는 소년의 과거 이력을 파악해본 결과, 충분히 이상한 정황들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로또 1등 번호를······. 정확히 맞췄다고······? 아, 그럼 작년에 뉴스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그 사건이 이 아이의 소행이었나?”
“그렇습니다. 그 때 그 사건으로 인해서 복권위원회를 비롯해 관련자들에 대한 강도 높은 감사까지 진행되었으나 별다른 문제점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당첨 번호 조작에 대한 어떠한 증거도 찾지 못해 그저 우연의 일치로 흐지부지 되었습니다만······. 그게 어쩌면 이 김철수라는 소년이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특수한 능력을 통해서 맞춰낸 것일지도 모른다고 판단했습니다.”
“머리가 아프군······.”
도무지 어느 하나 쉽사리 받아들일 수 없는 이야기.
그 누가 말해도 처음부터 끝까지 죄다 허무맹랑하고 정신 나간 것처럼 들릴 이야기였지만, 그것을 논하고 있는 이들은 분명 이 나라를 이끌고 있는 고위 권력자들이자 출중한 능력을 가진 엘리트들이었다. 게다가 거기에 초능력이 존재한다는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증거인 최초의 초능력자가 국정원의 비밀 안가 중 하나에 머무르고 있는 상황.
그렇기에 윤기열 대통령은 차마 비서실장과 국정원장의 요청을 단칼에 물릴 수가 없었다.
“지금 당장은 혼란스러우시겠지만, 이 모든 것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입니다. 대통령님. 뭐가 되었든, 분명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가진 이들이 나타났습니다.”
모르면 몰랐지, 능력자로 의심되는 이가 자유롭게 활보하고 있는 것을 그냥 방치하거나 내버려둘 수는 없는 상황.
그렇기에 국정원장은 결의에 찬 얼굴로 대통령을 향해 직언했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국가안보와 사회 안정을 지키는 직무를 수행하는 국정원장으로서 저는 이 ‘초능력자’라고 불리는 미지(Unknown)의 존재들이 출현한 것에 심각한 안보 위협이 발생했다고 판단했습니다. 따라서 차후에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국가안보의 위협에 선제적으로 대처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며 이에······.”
잠깐 말꼬리를 흘리며 고심하는 듯, 애매한 표정을 짓던 국정원장. 하지만 그는 곧이어 결정을 내린 듯 이내 진지한 얼굴로 하려던 말을 마저 이어갔다.
“국정원에서는 또 다른 초능력자로 의심되는 김철수라는 아이의 신병을 확보하기 위한 비밀 작전을 진행하려고 합니다. 이 작전을 허가해주시기를 대통령님께 정식으로 요청 드립니다.”
그 김철수라는 아이를 일단 붙잡아서 심문부터 하고 보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