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화.
92화.
어느 한 과학자가 자신의 모든 경력을 걸고 벌인 정신 나간 기행.
단순한 하나의 우스갯소리로 지나가는 듯한 표면적인 대중들의 반응과 다르게 미국 정부는 지금의 상황을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번 문제로 인해서 또다시 긴급 NSC 회의를 개최할 정도로 말이다.
“그러니까······. 류현진이라는 이 사람이 멀린의 뮤튜브를 보고 마법과 관련한 논문을 작성하고 그걸 토대로 과학 학술 세미나에서 해당 내용을 발표하게 되었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물론 그 둘이 직접적으로 만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하지만 뮤튜브를 통해서 최소 6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지속해서 교류해 왔고 또한 여러 질문들을 통해서 마법과 관련한 정보를 충분하게 습득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과학자로서 그 뛰어난 능력과 역량을 인정받아 외국인이자 동양인으로서 프린스턴 고등 연구소에 파견 연구원으로 들어올 수 있었던 류현진 교수. 그런 그의 신상 명세를 들춰보던 레너드 대통령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이번 유출의 경위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력 하나만큼은 아주 화려한 사람이군. 괜히 마법이라는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거기에 논문까지 작성한 게 아니었어.”
이건 CIA는 물론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던 상황이었겠다며 혼잣말로 무어라 중얼거리는 레너드 대통령. 그리고 그는 이내 자신의 앞에 놓여 있는 두꺼운 양의 종이 뭉치를 집어 들고는 빠르게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류현진 교수가 아무도 모르게 작성한 방대한 양의 연구논문.
수백 페이지가 넘어가는 그 내용을 모두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레너드 대통령은 자신의 앞에 올려져 있는 이 온갖 복잡하고 방대한 양의 과학 수식들과 더불어 철학적이고 현학적인······. 게다가 종교적이기까지 한 기록물이 가지는 가치를 어렴풋하게나마 파악할 수 있었다.
[ 우주의 근원에 관한 고찰과 마나의 존재론적 연구 ]
류현진 교수가 멀린의 뮤튜브 강의를 시청하며 이해하고 평생에 거쳐 쌓아온 모든 지식이 총망라하여 완전히 집대성되어있는 자료.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모든 이들을 향해 에드워드는 자신이 한국에 장기 체류하고 있는 에밀리로부터 보고받은 내용을 대신 전달하였다.
“멀린의 평가에 따르면······. 해당 자료는 마법서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마법적 내용이 잘 정리되어 있다고 합니다. 마나에 대한 지식이 아예 전무(全無)한 초보 마법사들이 공부하기에 아주 적절한 수준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에밀리 요원의 보고에 따르면 거의 극찬 수준이었다고 하더군요.”
이 세상의 유일무이한 마법사인 멀린이 극찬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부가적인 검증이 필요 없는 상황. 그렇기에 의외라는 듯이 국무장관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자신의 앞에 놓여 있는 그 연구기록을 다시금 뒤적이며 물었다.
“이 사람이 그 정도로 대단한 인물인가요······?”
“그렇습니다. 멀린은 이 사람을 구금하고 억압하기보다는 오히려 잘 구슬려서 미국 정부가 직접 거두고 전폭적인 지원을 해 주는 것이 좋을 거라고 했습니다. 그의 말로는······. 자신의 수제자나 다름없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수제자······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CIA 국장으로서 해당 인원을 포섭해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합니다. 겨우 뮤튜브 영상을 시청한 것만으로도 이러한 성취를 이루어낼 수 있는 인재라고 한다면, 저희가 추진하고 있는 마법 입국 프로젝트에 크나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리라고 기대됩니다.”
멀지 않은 미래.
마법의 지식이 자유롭게 퍼져나가고 마나라는 새로운 에너지원을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게 되었을 때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 미국이라는 국가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전해 새롭게 재탄생시키는 거대한 프로젝트.
이것을 준비하는 데 있어서 류현진 교수가 꼭 필요한 인재라는 점에 있어서 에드워드 국장의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좋네. 그렇다면 그 류현진이라는 교수에 대해서는 CIA에서 직접 포섭 작전을 진행하도록 하게. 어지간하면 원하는 조건을 최대한 맞추어주고 가족이나 친인척까지도 전부 미국으로 데려오길 바란다면 국무부와 논의해서 진행하게.”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대통령님.”
류현진 교수의 신병에 대한 논의를 마무리한 레너드 대통령. 하지만 그는 이번 사태가 근본적으로 벌어진 원인에 대해서 생각하고는 이내 골치가 아프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 멀린이 운영하는 뮤튜브 채널. 당분간이라도 채널 운영을 한시적으로 중단하는 것에 대해서는 뭐라고 하던가?”
이번 사태가 벌어지게 된 시작점이자 원흉인 뮤튜브 채널.
[ 너도 할 수 있어! 마법사가 되는 법. ]
지루하기 짝이 없는 강의식 영상에 그 누구도 진지하게 영상을 시청하거나 귀담아듣지 않고 있었기에 레너드 대통령나 미국 정부의 그 누구도 그렇게 크게 우려하지 않고 있었다.
한국어라는 아주 극소수의 인구만이 사용하는 언어로 보기만 해도 정신이 아찔해지는 마법사 복장을 한 소년이 무어라 주저리주저리 설명하고 있는 사이비 종교 같은 마법 강의.
그것을 정말 진지하게 탐닉하고 연구하고 또 무언가 성과를 내게 될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일이 극악의 확률을 뚫고 일어나버린 상황.
그렇기에 지금껏 내버려 두고 있었던 마법 강의를 가만히 지켜볼 수는 없었던 레너드 대통령은 어떻게든 이번 기회에 그 거슬리는 영상들을 인터넷상에서 모조리 지워버리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해당 제안은 멀린이 단칼에 거절했습니다. 본인은 자신이 알고 있는 마법의 지식을 그 누구에게도 차별 없이 동등하게 전파하고 가르칠 것이라고요. 그것을 배우고 받아들이는 건 개개인의 역량 차이가 있겠지만, 일단 자신이 진행하는 마법 강의에 이상한 수작질을 부릴 생각은 꿈에도 꾸지 말라고 하더군요.”
“정말이지 못 말리겠군······.”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린다는 듯이 손으로 관자놀이를 문지르는 레너드 대통령. 그리고 그는 혹시나 하는 얼굴로 넌지시 회의실에 앉아 있는 수석 각료들에게 은근히 물었다.
“혹시라도 강제적으로 채널 접속을 차단하는 방법을 쓰는 건 어떻겠는가?”
평소라면 강압적인 방법을 써서라도 이상한 짓을 하지 못하게 막았을 이들. 하지만, 그 상대는 절대로 함부로 자극해서는 안 되는 규격 외의 존재였기에 레너드 대통령의 떠보기 질문에 모두가 득달같이 입을 모아 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통령님. 혹시라도 그러지 않기를 강력하게 권고 드립니다.”
“해당 자산은 저희의 통제를 완전히 벗어나 있는 상식 외의 존재입니다. 괜한 일로 관계가 틀어졌을 때, 이를 수습할 수 있는 수단이나 방법이 없습니다.”
“CIA에서 멀린의 심리를 종합적으로 분석해 본 결과, 강압적으로 억압하거나 제한하는 행동은 극히 부정적인 반응을 초래할 가능성이 큽니다. 국가의 안위와 직결된 문제가 아니라면, 그의 의지에 반해 자극하는 행동은 최대한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절대로 그를 자극하지 말라며 거의 뜯어 말리다시피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 이들.
그리고 그건 단순한 불안이나 의심이 아니라 최근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묘한 이변들을 보고 느낀 공포심과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들이었다.
“한국의 정치권에서 최근 벌어진 사태를 생각하셔야 합니다. 대통령님. 삼진 그룹을······. 아니, 멀린의 정원을 건드렸던 이들이 그에 대한 대가를 어떻게 치르고 있는지 말입니다.”
모든 비리가 까발려지고 속속들이 튀어나오는 명백한 증거 속에서 그야말로 파탄 상태에 빠져버린 대한민국의 정치권. 이미 여당이고 야당이고 가릴 것 없이 완전한 배신감과 불신에 찌들어버린 여론으로 인해서 다음 대선에서는 전혀 다른 제3당의 후보가 사상 최초로 지지율 1위에 달성하는 이변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지금 상황을 그저 가만히 내버려두라는 말인가? 언제 또다시 마법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등장할 지도 모르는데?”
이들의 조언이 마음에 안 드는지, 레너드 대통령은 답답하다는 듯이 언성을 높이며 되물었다.
“어쩌면······. 이미 저희가 막을 수 있는 단계는 지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뭐······?”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안경을 벗고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국무장관. 그리고 그녀는 이내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류현진 교수의 연구기록 중 일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읽어 내려갔다.
“멀린의 강의에 따르면, 마법적 지식이 없다 하더라도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마법은 그저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마나를 운용하고 이 우주의 법칙과 현상을 조작하기 위한 수단이자 체계에 불과한 것이지 반드시 필수적인 건 아니다.”
“기본적으로 마나를 인식하고 통제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면, 그리고 그 마나를 자신의 의지대로 조작할 수 있는 강력한 념(念)이 실리게 된다면······. 우리는 어쩌면, 초능력이라고 불리는 마법의 가장 기초적이고 원시적인 형태의 이적을 목도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류현진 교수가 기록해놓은 연구 자료에 따르면, 멀린의 마법 강의를 막는 것은 전혀 의미가 없었다. 왜냐하면······.
수십억이 넘는 인간들이 살아가는 이 지구에는 분명 초강대국인 미국조차도 파악할 수 없는 수많은 재능충이 세계 방방곡곡에 퍼져 자신들만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들은 분명 미국이 기대하고 있던 것보다도 빠르게 그 변화를 경험해나가고 있었다.
*
평화롭고 아름다운 천혜의 자연이 살아 숨 쉬는 지역. 강원도.
그곳 어느 산골짜기 작은 마을에 9살짜리 어린 소녀가 반 친구들이 모두 모인 앞에서 자신의 꿈을 발표하고 있었다.
“저는 나중에 커서 마법사가 되고 싶어요. 그래서 아픈 사람들도 치료해주고 나쁜 사람들한테서 모두를 지키는 그런 착한 마법사가 될래요.”
너무나도 순수하지만 동시에 유치찬란하기 짝이 없는 꿈.
비록 9살이라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어느 정도 세상 물정은 아는 아이들은 이내 그 꿈을 비웃기 시작했다.
“으에! 민서율이는 마법소녀가 꿈이래.”
“야! 이 세상에 마법이 어디 있냐? 그건 장래희망이 아니잖아!”
“우리 아빠가 마법 같은 건 없다고 그랬어! 민서율 너는 그런 것도 모르냐?”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서슬 퍼런 비판과 질타들. 그리고 그런 아이들의 반응에 담임 선생님이 손을 흔들며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자, 얘들아. 다른 친구가 발표할 때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돼요. 뭐가 되었든 서율이의 꿈을 이야기하는 시간이잖니? 그리고 서율이······. 마법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는 건 좋지만 우리가 오늘 그림 그리기로 한 주제는 어른이 되었을 때의 장래희망이잖니? 상상이 아니라 진짜 될 수 있는 직업을 생각해와야지.”
아이들의 반응도 잘못되었지만, 주제와 어긋난 발표를 한 것도 잘못이라며 지적하는 담임 선생님. 하지만 그런 그의 말에 서율이는 약간 움찔하더니 이내 조금 억울하다는 듯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선생님······. 마법사는 진짜로 있단 말이에요.”
“뭐······?”
“진짜에요. 제가 직접 봤다고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대답에 잠깐 당황한 것 같은 담임 선생님. 그리고 그는 이내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하하하. 서율이는 마법사가 진짜 있다고 생각하고 있구나? 그렇다면 이런 꿈을 꿀 수도 있겠네. 혹시 어디에서 본 건지 알 수 있을까?”
어디에서 봤냐고 물어오는 담임 선생님의 질문. 그리고 그 질문에 서율이는 너무나도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뮤튜브에서요.”
“······.”
하여간 뮤튜브가 만악의 근원이라고 다시금 생각하게 되는 선생님이었다.
*
미술 시간에 벌어진 그 사건 이후.
서율은 선생님의 전화를 받은 아빠에게 엄청 혼나고 휴대폰을 압수당했다.
“힝, 왜 내 말은 아무도 안 믿어주지······. 진짜 마법사인데······.”
휘황찬란한 요술봉과 마법사의 복장을 하고 있는 어느 한 소년이 영상을 통해 직접 보여준 수많은 마법들. 그것들을 전부 사실이라고 서율은 처음부터 굳게 믿고 있었고, 그녀는 전부는 아니지만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서 분명 그 영상들 속에 나와 있는 일부분을 따라해 가고 있었다.
[ 마나를 축적하는 데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숨 쉬기다. 한시도 쉬지 않고 들이마시는 그 공기 속에 들어가 있는 마나를 걸러내서 몸 안에 가둬놓는 게 가장 핵심이지. 쉽게 말하자면 눈에 보이지 않는 가상의 아가미를 만들어내라는 거야. 그러면 쉽게 마나를 모을 수 있지. 자 따라 해라. 후! 하! 후! 하! ]
“후으······. 하! 후으······. 하!”
자그마치 1 시간을 숨쉬기만 반복하는······. 평균 시청 시간이 30초도 채 되지 않는 그 정신 나간 영상을 틀어놓고 너무나도 진지하게 따라하던 서율. 처음에는 전혀 아무런 것도 느낄 수 없었지만, 그녀는 최근 자신의 몸에서 간지럽게 움직이고 있는 무언가 설명할 수 없는 기묘한 기운들을 분명하게 느끼고 있었다.
우우우웅.
두근거리는 심장 박동에 맞추어 몸속을 돌아다니며 곳곳을 간지럽히는 이상한 기분. 하지만 그리 싫지만은 않은······. 아니, 오히려 좋은 편에 속했기에 서율은 눈을 지그시 감고 그 기묘한 기운으로부터 느껴지는 감각을 한껏 즐기고 있었다.
‘포근해······.’
혼자서 히죽거리며 이상한 미소를 지으며 가만히 따사로운 햇살을 즐기며 운동장에 홀로 서 있는 서율. 그리고 그런 그녀의 모습을 발견한 몇몇 남자애들이 이내 또다시 그녀를 놀리기 시작했다.
“민서율! 또 혼자 이상한 짓하고 있대요. 너 딱 걸렸어!”
“으! 또 그 마법사니 뭐니 하는 이상한 거 따라하는 거야? 완전 이상해.”
갑자기 불시에 튀어나온 그 둘을 보고는 화들짝 놀란 서율은 이내 다급하게 말했다.
“아······아니야. 이상한 짓 안 했어!”
“웃기시네! 우리가 다 봤거든? 선생님이 너 뮤튜브에서 이상한 거 보고 따라하면 다 말하라고 했는데 일러버려야지~.”
“선생니이이이임!!!”
혀를 삐쭉 내밀며 선생님한테 이르겠다며 교실로 달려가는 두 명의 남학생을 보며 서율은 다급하게 그 둘의 향해 소리쳤다.
“야!! 그러지 마!!! 멈춰!!”
그 둘을 막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발현.
그리고 그 순간······.
쿠웅.
“크엑!”
빠르게 달려가던 그 둘은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히기라도 한 것처럼 뒤로 넘어지더니 이내 요란하게 울어대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아아앙!!!”
“나 피나!!! 흐에에에에에엥.”
마치 벽에 얼굴을 박은 것처럼 코피를 줄줄 흘리며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는 친구들. 그리고 그런 그 둘을 뒤에서 서율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그저 멍하니 서서 그 광경을 지켜볼 뿐이었다.
그렇게······.
마법이라고 하기는 한없이 부족하고 열등하고 원시적이지만······. 그럼에도 너무나도 순수한 최초의 마법이 자연적으로 발현되었다.
어느 동심 가득한 9살의 재능충 소녀 하나로 인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