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83화.
핵전쟁과 함께 멸망해 버린 인류. 그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에서 1년이라는 시간을 버텨오다 결국 끔찍한 죽음을 맞이하고 과거로 돌아온 지 어느덧 1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이 시간 동안에 나는 삼진 그룹의 거대한 변화를 이끌어냈다.
[ 삼진 바이오의 신약이 FDA의 최종 승인을 받고 판매 허가를 받았습니다. 이로써 삼진 바이오는 10년도 넘게 꿈꿔왔던 신약 개발이라는 숙원을 이루어내고 천억 달러에 달하는 규모를 가진 중증 신경 치료제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되었습니다. ]
[ 삼진 전자의 신제품. 타임리스의 사전 예약 신청자 수가 한국에서만 3천 20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폭발적인 주문량으로 인해 출시일까지 물량을 확보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 예상되지만 오늘도 삼진 전자의 생산 공장은 불이 꺼질 줄 모르고 24시간 가동하고 있습니다. ]
삼진 전자와 삼진 바이오의 비상.
수십 조······. 아니, 수백조 원 이상의 어마어마한 이익을 거두게 될 것이리라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극찬할 정도로 엄청난 흥행을 거두고 있는 삼진 그룹. 그토록 갈망하던 신약 개발에 성공하고 앰플을 압도적인 격차로 찍어누르며 향후 수년 이상 세계 시장을 석권할 것이 분명한 상황이기에 이호준 회장은 진심으로 지금 이 순간 죽어도 여한이 없을 정도로 벅차고 보람차다고 느끼고 있었다.
“정말 고맙군. 이 모든 게 자네 덕분이네. 내가 죽기 전에는 이룰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고작 1년 만에 전부 이루게 된다니. 정말 마법 같군.”
“마법 같은 게 아니라 진짜 마법이니까요.”
관용적 표현이 아니라 정말 마법적 지식을 가미한 제품들을 출시해서 그가 바라던 꿈을 현실로 만들어준 상황. 그리고 그런 이호준 회장에게 나는 너무 그렇게 좋아하지 말라는 듯이 조금은 시큰둥한 얼굴로 말했다.
“그래도 이 정도로 너무 만족해하지는 마세요. 앞으로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저희가 나아가야 할 길이 얼마나 멀고 험한데요.”
고작 기업 하나 성공적으로 경영하는 수준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나의 계획. 이 지구 문명 전체를 한 번도 제대로 접해본 적 없는 마법으로 개혁하기에는 손을 대야 할 곳도, 그리고 들어가야 할 자금도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많았다.
“쪼잔하게 뭐 몇십조 벌었다고 좋아하지 마시고 우리 한번 꿈을 크게 잡아보죠. 앞으로 3년 내로 영업 이익 100조 달성하는 거예요. 어때요?”
“100조 말인가······?”
“네. 삼진 바이오야 지금까지 이익이랄 것이 없던 회사니까 그렇다 치고 삼진 전자는 그래도 한 50조 언저리는 벌고 있지 않았나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2배만 더 먹어보죠.”
“······.”
3년 내로 매출도 아니고 영업 이익을 2배로 뻥튀기시키라는 말에 마치 미친놈 보는 듯한 눈빛으로 가만히 나를 응시하는 이호준 회장. 그리고 그는 한참을 침묵하다 이내 물었다.
“······. 최근에 돈을 쓸 일이 많은가 보구먼.”
“아휴, 장난 아니죠. 회사 하나 키우는데 무슨 돈이 그렇게 많이 들어가는지 원······. 진짜 죽겠어요. 아영도 저 볼 때마다 무슨 돈 귀신이라도 붙은 것처럼 매번 돈돈돈 하면서 바가지 긁고 있다니까요?”
들어오는 수익이라고는 없고 오로지 나갈 돈만 가득한 매지컬 컴퍼니. 일반적인 수준의 작은 중소기업이었다면 이미 수백 번은 더 파산하고도 남았겠지만, 삼진 그룹에서 가지고 온 막대한 자금을 통해서 아직도 좀비처럼 살아남을 수 있었다.
“혹시라도 수익금 미리 당겨줄 수 있으면 당겨주세요. 아영이 무척 좋아할 거예요.”
자금 융통에 언제나 심각한 어려움이 있어 고심하고 있는 아영.
불과 몇 달 전에 듣도 보도 못한 괴한들에게 납치당해서 중국으로 끌려갈 수도 있었다는 것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매일 같이 바쁘게 내가 부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밤늦게까지 일하고 있는 그녀를 위해서 나는 이호준 회장에게 대신 돈을 달라는 부탁을 해 주었다.
“용수 그 녀석이 말하기를 레드 포션의 개발로 미국 정부로부터 받은 지원금도 자네가 전부 다 가져갔다고 하던데? 설마 그 돈도 다 썼다는 말인가?”
레드 포션의 개발로 한화로 100조 원에 달하는 자금 지원을 약속했던 미국. 물론 아직 미국으로부터 받은 돈은 고작 30조 원에 불과했기에 그 전부를 다 받은 것은 아니었지만, 일개 개인이 다 쓰기에는 너무나도 천문학적인 수준의 자금 규모였기에 돈이 부족하다는 나의 말에 이호준 회장은 경악한 표정으로 물어왔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나는 너무나도 당당하게 답했다.
“네. 생각보다 얼마 안 되던데요?”
“······. 도대체 어디에다가 그 돈을 전부 다 쓴 건가?”
“음······. 그게 전에 듣긴 했었는데 저도 정확히는 기억이 잘 안 나긴 하는데······.”
그 돈을 전부 어디에다 썼는지는 아영이 상세하게 말해주기는 했지만, 전혀 주의 깊게 듣지 않고 한 귀로 흘려듣고 있었기에 어렴풋하게만 떠오르는 기억의 조각들. 그것들을 하나하나 맞춰가며 나는 떠듬떠듬 이호준 회장에게 말해주었다.
“보자······. 탄자니아 정부랑 협상하고 기존에 탄자나이트 채굴하던 업체랑 협상해서 광산 채굴권 전부 매입하고 허가받는데 대략 4조······. 광산 지역에서 채굴 반대 시위 벌이고 있던 부족민들 구슬리고 지역 인프라 깔아주는 데 6조······. 거기에만 10조 쓰고 나머지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온갖 광산들 쇼핑하고 다녔을 거예요.”
최상급 마나석의 핵심인 탄자나이트를 제외하고는 다른 것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 상황. 하지만 그런 나의 설명을 듣고 있던 이호준 회장의 표정은 그야말로 황당함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러면······. 광산 채굴권 사들이느라 그 많은 돈을 다 썼다는 말인가?”
“아마 그럴 거예요.”
“······.”
뭔가 할 말이 정말 많아 보이는 이호준 회장. 하지만 어차피 자기 회사도 아니고 알아서 잘 돌아갈 남의 회사에 감 놔라 배 놔라 훈수를 두고 싶지 않았는지, 그는 작게 고개를 흔들고는 깊은 한숨을 토해내며 화제를 돌렸다.
“뭐······. 자네나 아영 양이나 어련히 생각이 있을 테니 아무 말 하지 않고 넘어가도록 하지. 그건 그렇고 자네와 한 약속과 관련해서 조금 곤란한 일이 하나 생겼네.”
“곤란한 일이요? 뭐 때문에 그러시는데요?”
“그게 말이네······. 자네랑 약속한 대로 새롭게 생태 부지로 조성할 곳들을 확보하려고 하는데 이상한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아졌네.”
마나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무한 동력의 스마트폰. 타임리스를 개발하는 데 도움을 주는 대신, 최소 천만 평 이상의 멀린의 정원을 만들기로 약속했던 이호준 회장.
하지만, 그런 그의 처음 약속과 다르게 그 용지 매입 과정은 어마어마한 난항을 겪고 있었다.
[ 삼진 그룹이 최근 전국의 부동산을 무차별적으로 사들이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시장에 나돌고 있습니다. 안 그래도 최근 폭등한 부동산 가격으로 인해 집 구하기 어려운 서민들이 힘들다고 한탄을 토로하는데 대기업이 주도적으로 이러한 가격 상승을 이끌고 있습니다. 이건 명백한 부동산 투기입니다! 삼진이 언제부터 투기 세력으로 변질한 겁니까? ]
[ 사들인 부동산에 생태 부지를 조성한다고요? 그렇게 해서 지역민들이 얻게 되는 이익이 정확히 뭡니까! 공장을 새롭게 건립해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도, 그렇다고 지역민들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생태 문화 공원을 만드는 것도 아닙니다! 일반 시민들이 출입할 수 없는 생태 부지를······. 그것도 수십만 평의 초대형 크기의 땅을 독점적으로 전용하기 위해서 조성하겠다는 것은 경기도지사로서 절대 허락할 수 없습니다! ]
[ 삼진 그룹은 부동산 투기를 중단하라! 이호준 회장과 삼진 그룹은 지금 당장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을 매각하고 부동산 시장 안정화에 일조하라! ]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파르게 올라가는 부동산 광풍.
물론, 그 가격 상승을 주도하는 것은 대단지 아파트들이었지만, 윤기열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 규제 정책으로 인해서 그야말로 안 오른 곳이 없다고 할 정도로 전체적인 가격 상승이 일어났기에 곳곳에서는 내 집 마련을 하지 못한 이들의 곡소리가 들려오고 있는 와중이었다.
“흐음······. 그러니까 삼진 그룹이랑 회장님이 정치권에서 뜨거운 떡밥이 되어버렸다는 거네요? 폭발적으로 상승해버린 부동산 가격이 어떻게 하다 보니 삼진 그룹에서 땅 투기를 한 것 때문에 발생한 문제로 몰아가기 시작했고요?”
서울, 경기와 같은 수도권 일대를 비롯해 부산, 강원, 제주, 전남······. 그야말로 지역을 가리지 않고 전국 곳곳에서 부동산 매입을 위한 물밑접촉을 해 오며 무차별적으로 대규모 토지를 사들이고 있던 것은 사실이기에 삼진 그룹은 지금 상황에서 딱 투기 세력으로 몰리기에는 아주 적당한 상대였다.
“그들로서는 우리가 아주 좋은 방패막이처럼 보였겠지. 정책적 실패를 인정했다가는 올해 있을 대선에서 정말 뼈아픈 손실이 될 테니까. 하지만, 그건 그렇게 우려할만한 일은 아니네. 정치인들이 그런 식으로 여론몰이를 하는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니까.”
“하지만······. 우리가 조성한 첫 번째 멀린의 정원과 관련해서 계속해서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는 게 걱정이란 말씀이시죠?”
경기도 광주랑 양평 지역 일대에 조성된 첫 번째 멀린의 정원.
유일한 살살이 풀의 재배지이자 삼진 바이오가 앞으로 개발할 새로운 신약들의 원료가 될 후보 식물들이 자라나고 있는 이곳은 아직 유일하게 이 지구에서 유일하게 판달리아의 식생과 생태계가 안정적으로 조성된 구역이었다.
“그렇네. 예전에도 한 번 이야기했었지만, 그곳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그 속도를 신속하게 하도록······. 이렇게 말하긴 조금 그렇지만 문제가 될 만한 일들이 있긴 했네.”
너무나도 속전속결로 신속하게 이루어진 매입 절차.
물론, 그것이 가능했던 가장 원론적인 이유는 토지 지가에 몇 배는 더 비싼 가격에 매입하겠다며 삼진 그룹이 호구를 자처하며 나선 것이 가장 주효했지만, 일반적인 부동산도 아니고 경기도에서 보유하고 있던 공공용지를 고작 한 달도 채 안 되는 기간 안에 모든 절차를 마무리하는 것은 분명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이상하군요. 이번 미국 정상 회담에서 분명하게 레너드 대통령이 윤기열 대통령에게 이야기한 거로 알고 있는데요. 삼진 바이오가 보유한 그 토지를 건들면 안 되는 걸 알 텐데, 설마 미국이 침 발라놓은 곳에 괜한 문제 삼을 이유가······.”
“윤기열 대통령 쪽이 아니네.”
“그럼요?”
“국회 쪽이네.”
대한민국의 정치를 양분하고 있는 두 정당인 대한국민당과 민주시민당.
평소에는 서로가 못 잡아먹어 안달하며 아웅다웅 싸우느라 정신이 없었겠지만, 이번 문제만큼은 일치단결하여 삼진 그룹을 공격하고 있었다.
“평소라면 어느 쪽이든 한쪽만 잘 막아서면 됐는데 이번에는 양쪽에서 모두 적대적으로 우리를 공격하고 있어서 아주 곤란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네. 올해 대선이 있어서 그런지 어떻게든 자신들이 건수 하나 올리고 싶은 모양이야.”
“윤기열 대통령은 민주시민당 쪽 아니에요? 레임덕이 오긴 했나 보네요. 선거까지는 아직 한참 남았는데 벌써 통제를 아예 벗어나서 미쳐 날뛰는 걸 보면.”
어떻게 보면 소속 정당 출신인 현 대통령 얼굴에 침 뱉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 하지만 그런데도 발언의 수위를 높여가며 윤기열 대통령과 삼진 그룹을 공격하고 있는 민주시민당은 누가 보면 아예 다른 정당이 되어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 그쪽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겠지. 지금이라도 윤기열 정권과 거리를 두지 않는다면 이번 부동산 폭등과 관련한 문제에서 책임을 피할 수 없을 테니까.”
“대선이 코앞이라서 어쩔 수 없이 버려야 할 버림패가 되었다는 말이군요.”
“그렇지. 대한국민당은 전 정권의 치부를 드러내기 위해서, 민주시민당은 부동산 상승이 삼진 그룹이라는 대기업의 이기적인 투기로 인해서 일어난 불가피한 일이라며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 다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 우리를 희생양으로 삼을 속셈인 셈이지.”
아무리 돈이 많아도 살아있는 권력 앞에서는 어찌할 수가 없는 법.
앞으로 상황이 복잡해질 것을 예견한 듯한 이호준 회장은 살짝 자조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피곤한 한숨을 내쉬었다.
“음······. 지금 이 상황을 주도하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는 아세요?”
“주도자들 말인가? 우리 삼진 그룹을 건드릴 수 있는 정도라면 일개 의원 수준이 아니네. 당 전체가 합심해서 움직이고 있다는 의미니까 결국 민주시민당이나 대한국민당이나 둘 다 당 지도부들의 의사가 일치된 거라는 말이겠지.”
“그래요? 지금 양당 대표가 누구더라······.”
이호준 회장의 말에 스마트폰을 꺼내 들어 현재 국회를 장악한 두 정당의 지도자가 누구인지를 찾아본 나. 하지만 그러는 와중에 너무나도 익숙한 얼굴 하나를 발견하고는 이채 서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어? 이 아저씨는······?”
“왜 그러나? 뭐 아는 사람이라도 있나?”
“안다면 아는 사람이죠. 악연이라 그렇지.”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내 말에 의아한 얼굴로 되물으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호준 회장. 하지만 나는 그런 그의 물음에 대꾸하지 않았다. 그저, 새롭게 선출된 민주시민당의 지도부를 이끄는 당 대표의 사진을 가만히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길 뿐이었다.
[ 민주시민당 대표. 양원철. ]
작년에 우리 꽃순이를 무참하게 짓밟으려 했던 그의 하나뿐인 양아치 자식인 원석의 아버지. 그와 함께했던 추억(?)을 떠올리며 나는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 원석이 아버님은 또 언제 당 대표가 되셨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