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화.
82화.
2021년 3월을 장식한 레너드 대통령의 첫 번째 국정 연설.
세재 혜택과 긴급 재난 지원금을 비롯해 강력한 경기 부양책을 비롯해 앞으로 그가 그려갈 미국의 미래에 관한 거대한 로드맵을 발표할 것이리라 생각했던 대중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환경 문제에 관련한 이야기만 늘어놓은 그의 이야기에 어마어마한 충격을 받았다.
[ 기후위기를 비롯한 수많은 환경 문제는 우리 미합중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인의 심각한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강력한 환경 규제를 새롭게 신선할 것이며 개발 제한, 생태 보전 구역을 대폭 확대하는 ‘그린 아메리카’를 추진하겠습니다. ]
경제와 관련한 이야기는 쏙 빼놓고, 처음부터 끝까지 환경 이야기로만 가득한 레너드 대통령의 국정 연설. 이제 막 임기를 시작한 신임 대통령이자 앞으로 4년 동안 미합중국을 이끌어갈 그가 환경 문제에 완전히 빠져 있다는 것이 알려지자 그 여파는 어마어마했다.
[ 다음 뉴스입니다. 레너드 대통령이 당선 이후 첫 번째 정책으로 환경 문제를 꺼내 들었습니다. 코덱스 바이러스로 인해 침체한 경기를 회복시키기 위한 대대적인 경제 부양책을 꺼낼 것이라고 언급했던 백악관 내 고위 관계자들의 이야기와 다르게 돌연 환경 문제를 꺼내 든 레너드 대통령의 첫 번째 국정 연설은 이례적이라는 평이 우세합니다. ]
[ 일시적인 감세 정책과 코덱스 지원금에 관련한 이야기를 기대했던 탓일까요? 시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레너드 대통령의 발언 이후 나스닥 지수와 다우 종합 지수는 각각 –5%, -3% 동반 하락 마감하였습니다. ]
경제와 관련한 그 어떠한 대책이 나오지 않자 실망하며 급락한 주식 시장. 그리고 이어서 그가 공개한 로드맵과 관련해서 수많은 전문가의 날 선 비판이 연이어 쏟아지기 시작했다.
[ 환경 문제도 중요합니다. 지구 온난화와 기후 변화는 날이 갈수록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지고 있고, 또 탄소 배출량 감축은 목표치를 채우지 못하고 매번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 현실의 빈곤과 가난입니다. 코덱스 바이러스로 인해 중산층이 무너지고 소득 격차가 그 어느 때보다도 극심해진 상황인데 이런 상황에서 강력한 환경 규제라고요? 레너드 대통령이 제정신인지 의심해봐야 할 것 같군요. ]
[ 개발 제한? 생태 보전 구역? 도대체 레너드 대통령은 이런 정책들을 통해서 어떻게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려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환경 보호? 좋습니다. 그 대의를 부정할 사람은 없죠. 하지만 충분한 논의 없이 이런 식으로 일방적으로 강력한 규제 정책들을 밀어붙인다면 분명 반대 세력의 어마어마한 저항에 부딪히고 말 겁니다. ]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그저 꿈과 이상만이 가득한 몽상가라며 레너드 대통령을 비난하는 이들. 정치적으로 그 어떤 이익이 없을 환경 문제를 거론하며 오히려 지지율을 깎아 먹고 반대 세력들이 공격할 건수를 제공하는 그의 행보를 워싱턴의 잘난 정치 전문가들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것은 분명 레너드 대통령이 그리고 있는 그 누구도 감히 가늠하지 못할 거대한 규모의 그림이었다.
“앞으로 미국 내 국립 공원과 생태 보전 지역의 규모를 대폭 확대할 예정이에요. 기존의 계획된 대규모 개발 계획은 어쩔 수 없겠지만, 향후 추가적인 대규모 개발은 최대한 억제할 수 있는 방향으로 법안이 마련될 거예요.”
CIA의 요원이었지만, 이제는 한국에 상주하며 나와 미국 정부와의 중간 다리 역할을 맡게 된 에밀리. 그녀는 아직 그 어디에도 공개되지 않은 레너드 행정부의 환경 규제 법안의 초안을 나에게 내밀며 앞으로 추진할 환경 보호 정책에 관한 세부적인 설명을 해 주었다.
“말씀하신 대로 국립 공원에 민간인의 출입을 완전히 금지하는 구역으로 지정하는 것에 대해서는 많은 검토를 거쳤지만, 법적인 문제와 여론의 반발을 비롯해 여러 현실적인 문제들 때문에 전면 폐쇄는 어려울 것 같다는 결론이 났어요.”
“그래요? 그건 아쉽네요.”
미국에 존재하는 수십 개의 방대한 규모의 국립 공원들. 영토가 방대한 만큼 아직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천혜의 자연과 생태계들이 널리 퍼져 있었지만, 이곳 전부를 폐쇄하고 민간인의 출입을 막아서는 것은 제아무리 미국이라고 하더라도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다면 멀린의 정원을 미국 내에 구축하는 것은 조금 곤란하겠는데요? 마나의 농도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높아지게 되면 그곳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에게 영향이 가요. 마력으로 인해 급격한 변이와 진화가 일어나게 된다면 살살이 풀과 같은 유익한 효능을 가진 개체도 탄생하게 되겠지만, 대부분은 사실 엄청나게 위험 하거든요.”
인간의 출입을 철저하게 금지하지 않는다면 언제라도 비명횡사할 수 있는 그야말로 진짜 야생인 멀린의 정원. 이미 한 번의 무단 침입자들로 인해서 그 위험성은 충분히 입증되었기에 나는 실제 위험성이 있는 사례들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충분한 경고를 해 주었다.
“마력으로 인한 변이는 저조차도 예측할 수 없는 영역이에요. 식물 같은 경우에도 사람을 잡아먹을 수 있는 식인 식물로 변할 수도 있고, 스치기만 해도 사망하는 맹독을 품은 곤충이 튀어나올 수도 있죠. 아니면······. 뭐 한 5배는 더 커다란 크기의 곰이 탄생할 수도 있고요.”
들어갔다간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생사를 장담할 수 없는 위험천만한 죽음의 숲이 되어버릴 수 있는 멀린의 정원. 최소 5배 정도의 마나 농도를 가진 구역으로 조성하여 판달리아와 최대한 비슷한 식생을 갖추고 마나의 생산량을 극대화하는 것이 그 목적이었기에 나는 이러한 부분에서는 절대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
“네. 그래서 제한적으로 로키산맥 일대를 군사 구역으로 지정해서 막아놓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어요. 그곳에 그 마나 집약진이라는 것을 설치해 주신다면, 민간인의 접근을 예방하고 비교적 안전하게 격리하고 통제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흐음······. 그럼 로키산맥 한 곳에만 설치해달라는 말씀이군요. 대략 그 규모는 어느 정도가 되는 거죠?”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현재로서는 4000ha 정도의 규모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4000ha······. 평수로는 자그마치 1200만 평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부지.
삼진 그룹이 사방팔방을 돌아다니며 천만 평 규모의 멀린의 정원을 구축하겠다며 애를 쓰고 있지만, 그 방대한 부지를 확보하지 못해 애를 먹고 있는 상황.
최소 5년······. 아니, 10년은 바라보고 있는 그 규모를 그저 맛보기 정도로 구축하려는 미국의 대범함에 나는 휘파람을 불며 말했다.
“이야······. 역시 땅덩이가 넓어서 그런가? 통이 엄청 크시군요. 그 정도면 아주 막대한 양의 마나를 해당 영역 내에 축적할 수는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에 따른 조건은 아시죠?”
“연구 단지나 재배 시설, 혹은 인간이 직접 활용할 수 있는 면적은 전체 면적의 1%로만 한정한다는 것 말씀이신가요? 네. 알고 있어요.”
“40ha의 면적만 미국 정부가 활용 가능해요. 그곳에서는 뭐 채집한 작물을 재배하거나 연구 단지를 세우거나 뭘 하든 상관하지 않을게요. 하지만, 나머지 구역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든 절대로 상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온전하게 보전해야 해요.”
마나 농도가 높아지면 자연스럽게 변이가 일어나며 판달리아의 식생으로 변화하게 될 생태계. 그곳을 그대로 보전하는 것이 가장 주목적이기에 나는 강조해서 에밀리에게 그 제한 조건을 말했다.
“그 점은 대통령님께서도 충분히 고려하시고 계신 사안입니다.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좋을 겁니다.”
믿어 달라는 듯이 확신에 찬 금색의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며 이야기하는 에밀리. 그리고 그녀는 이내 무언가를 꺼내더니 나에게 건네주었다.
“아, 그리고······. 이것도 받아두세요.”
“이게 뭔가요?”
“한번 열어보시죠.”
밀봉되어있는 작은 종이봉투. 그걸 받아들고 의아한 표정으로 봉투를 뜯어본 나는 이내 미국의 인장이 새겨져 있는 여권을 확인할 수 있었다.
“······. 여권이네요?”
나의 얼굴 사진과 함께 멀린이라는 이름으로 되어 있는 미국 여권. 하지만 그것을 받아든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아한 눈초리로 물었다.
“저번에 국적 자체는 바꿀 생각이 없다고 말씀드렸던 거 같은데요? 설마 아영처럼 저도 모르는 새에 멋대로 국적을 바꿔버리신 건 아니시죠?”
일전에 미국인으로 귀화할 생각이 없냐는 레너드 대통령의 물음에 나는 단호히 거절의 의사를 밝혔었다. 비록 미국과 협력 관계를 맺는다고는 하지만, 미국에서 살아본 적도 없거니와 제대로 여행조차 해 본 경험이 없는 상황.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초강대국의 나라를 안에서부터 집어삼키기보다는 잘 알고 있는 만만한 대한민국을 안에서부터 장악해나가기가 난이도가 훨씬 쉬웠기에 나는 절대 미국으로 이주할 생각이 없었다.
“그런 건 아니니 오해하지 마세요. 혹시라도 미국에 입국할 일이 생기거나 필요한 일이 있을 때 사용할 수 있도록 편의상 만들어놓은 여권이니까요. 미국에 방문하실 때 해당 여권을 제시하면 어떠한 문제 없이 자유롭게 오가실 수 있을 겁니다.”
의외로 까다로운 미국 입국 절차. 단순한 여행만 하더라도 인터넷으로 사전에 여러 서류를 신청해야지만 들어올 수 있고, 또 조금만 수상하거나 이상해 보여도 곧장 입국 심사대에 붙들려 온갖 조사와 심문을 받게 되는 불상사가 벌어질 수 있기에 미국 여권을 들고 가게 된다면 그런 귀찮고 성가신 일들을 최대한 피할 수 있었다.
“뭐······. 그런 거면 감사히 받죠. 잘 쓸게요.”
“네. 멀린의 정원과 관련해서는 구체적으로 부지가 선정되고 모든 민간 폐쇄 절차가 전부 마무리되면 다시 관련해서 말씀드리도록 할게요.”
“레너드 대통령님한테도 연설 잘 봤다고 말 좀 전해주세요. 물론, 마법의 존재를 모르는 무식하고 멍청한 인간들의 엄청난 반발에 부딪히겠지만, 그런 반대 여론에 굴하지 말고 꼭 꿋꿋하게 밀고 가길 응원한다고도 전해주시고요.”
아직 마법에 관련해서는 미국 정부 내에서도 철저하게 기밀 사항으로 다루어지고 있는 상황. 그렇기에 레너드 대통령이 추진하려는 이 강력한 환경 규제 정책과 관련해서 이미 격렬하게 발작하며 저항하는 세력들이 연달아 들고 일어나 힘을 합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 셰일 가스 채굴 전면 중단? 잔뜩 뿔이 난 에너지 업체들.
- 유가 상승은 곧 민생 불안. 레너드 대통령은 현실을 부정할 것인가?
- 침체한 러스트 벨트와 직장을 잃은 노동자들. 레너드 대통령은 이들을 버렸다!
온갖 자극적인 기사들이 쏟아내면서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정면으로 충돌하려는 레너드 대통령의 친환경 정책을 막아서려고 온갖 로비와 여론몰이를 벌이려고 하는 이들. 이런 저항과 방해를 이겨내고 마법 혁명을 이루기 위한 그 초석을 쌓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오롯이 레너드 행정부가 감내해야만 하는 과업이자 숙제였다.
“······. 그 응원은 꼭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속 편한 나의 말에 묘하게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답하는 에밀리.
그렇게 그녀와의 만남을 마무리하려는 순간, 스마트폰에서 들려오는 알림 소리에 문득 그 내용을 확인한 나는 이내 떠나가려는 에밀리를 불러세웠다.
“아, 에밀리 잠시만요.”
“네······? 무슨 일 있나요?”
“그······. 하나 물어볼 게 있는데······. 혹시 데슬라의 회장인 엘런 더스크 있잖아요. 혹시 그 사람한테 제가 선물로 줬던 마나석 뺏어갔어요?”
“······. 일전에 조사하기 위해서 저희가 압수한 것으로 알고는 있습니다만, 왜 그러시는지요?”
“그게······. 그거 뺏기고 이호준 회장님한테 엄청나게 징징거리고 있나 본데요? 혹시 하나 더 남는 거 없냐고, 아주 성가셔 죽겠다고 저한테 이렇게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셨네요.”
“이호준 회장이라면······. 삼진 그룹의 회장 말인가요?”
“네. 저번에 제 부탁으로 엘런 더스크한테 넘겨줬었거든요. 그래서 그거 때문에 애먼 이호준 회장님한테 집착하고 있나 봐요.”
마나석과 관련해서는 전혀 아는 게 없는 이호준 회장. 하지만 그런 사실을 알 리가 없는 엘런 은 그런 그에게 매달려 거의 괴롭힘에 가까운 수준의 집착을 매일 하고 있었다는 것을 추측해볼 수 있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호준 회장이 나한테 이렇게 직접 장문의 문자를 보낼 리가 없었으니 말이다.
“······. 확인하고 조치해보도록 하죠.”
“최대한 빨리 돌려주세요. 제가 그걸 엘런 더스크에게 준 건 그냥 선물로 준 게 아니라 다 목적이 있어서 그런 거니까요.”
내가 계획하고 있는 마법 혁명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그. 하지만 그런 나의 계획에 대해서는 전혀 들어본 바가 없기에 에밀리는 그 황금빛 눈동자를 깜빡이며 되물었다.
“무슨 목적을 말하는 거죠?”
“화성이요.”
“······?”
“그를 통해서 화성을 수많은 동식물이 살아갈 수 있는 생태계를 가진 행성으로 테라포밍할 계획이에요.”
엘런 더스크의 일생일대 목표이자, 결국 내가 회귀하기 전의 미래에서는 실패했던 꿈. 그의 그 작고 소중한 꿈을 이번에는 마법을 통해서 현실로 이루어줄 생각이었다.
물론······.
새롭게 변화한 화성은 인간을 위한 곳이 전혀 아니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