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81화.
한미 정상 회담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온 레너드 대통령.
지구 반 바퀴를 돌아오는 기나긴 비행을 마치고 돌아온 상황에서 일반적이라면 휴식을 취하며 여독을 풀었겠지만, 백악관으로 복귀한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긴급하게 비상 NSC(National Security Council) 회의를 개최하는 것이었다.
“그럼 지금부터 긴급 국가안보 회의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현 시간부터 논의되는 내용에 관해서는 그 어떠한 방식으로의 누설, 유출 혹은 암시조차도 철저히 금지됩니다. 모든 정보는 제1급 국가 기밀로 지정되며 이를 위반할 시에는 국가 반역죄로 간주합니다.”
국무부 장관과 국방부 장관을 시작으로 합참의장, CIA 국장을 비롯한 고위급 장성과 정보기관의 수장들까지 모두가 한데 모여 있는 자리. 그야말로 미국 정부의 핵심 중추이자 최고위 국가 기밀에 접근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자들만이 모인 이곳에서 레너드 대통령은 모두를 향해 말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계획을 세우고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는 아주 신빙성 있는 첩보를 입수했네. 이 첩보를 뒷받침해줄 수 있는 의심 가는 정황이나 움직임과 관련해서 파악한 정보들을 전부 보고하게.”
러시아가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는 레너드의 이야기. 하지만 그런 그의 말에 회의실 안에 있는 이들은 레너드의 기대와는 다르게 아주 합리적이고 신빙성 있는 근거들을 가지고 그의 주장에 반박했다.
“현재 저희가 가진 감시 자산을 통해 파악한 바로는 특별한 군사적 움직임을 보이지는 않고 있습니다. 대통령님.”
“러시아 정부의 자금 흐름의 현재 상황을 분석한 바에 따르면 현재까지 보유 자산을 유동화하거나 전쟁 자금을 마련하거나 물자를 비축하는 등의 움직임을 보이지는 않습니다.”
“미국 내에 거주하는 러시아 정부의 고위층 자녀들의 현황을 확인했는데, 본국으로 돌아가거나 귀국을 준비하는 등의 움직임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바로 어제 러시아 대사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특별하게 저희에게 바라는 요구사항이 있다거나 불만을 품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보였습니다. 주러 대사관 역시 별다른 특이사항이 없다고 보고했습니다.”
합참의장, 재무부 장관, 국토안보부 장관, 그리고 국무장관까지······. 저마다의 영역에서 러시아가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는 징후를 파악할 수 있는 근거가 있는지 철저하게 확인한 결과, 그 어떤 부분에서도 뚜렷한 정황을 파악할 수 없었다.
“정말로······. 단 하나의 전쟁 준비 움직임도 발견하지 못했다는 말인가?”
이러한 보고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리며 다시 물어오는 레너드 대통령. 하지만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기색이 적나라하게 느껴진다 하더라도 없는 정황을 만들어서 내놓을 수는 없었기에 모두가 그저 서로의 눈치를 보며 입을 다물 뿐이었다.
“외람됩니다만, 대통령님. 그 정보가 어디서 나온 것인지 그 출처를 알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이런 어색한 침묵 속에서 총대를 메고 입을 연 국무장관. 캐서린 듀란트.
그녀는 안경을 고쳐 쓰며 날카로운 눈빛으로 책상 위에 올려 있는 몇 가지 보고서를 집어 들며 말했다.
“현재까지 나온 모든 정보를 종합해 보았을 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을 감행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합니다. 코덱스 바이러스로 발생한 전 세계적 경기 침체와 소비 부진으로 인해서 원자재의 가격이 폭락해 러시아의 재정 부담과 경제적인 취약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진 상태입니다.”
코덱스 바이러스로 인해서 극심한 경제 불황을 겪은 원자재 시장. 특히 원유와 천연가스가 주력인 러시아는 역사적인 저점을 찍은 에너지 가격으로 인해서 그 타격을 정통으로 얻어맞은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도로예코프 쿠친이 전쟁을 단행하게 된다면 그건 즉, 러시아의 경제적 파탄으로 치닫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유럽 연합을 비롯해 미국과 전 세계적인 여러 국가의 규탄과 경제 제재를 받게 될 것이며, 이로 인해서 붕괴한 경제로 인해 극심한 내부적인 반발에 부딪히게 될 겁니다.”
“이미 크림반도를 강제 합병한 러시아가 다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다는 건 영구 집권을 꿈꾸는 쿠친으로서는 절대로 선택할 수 없는 결정입니다. 러시아가 전쟁해서 승리하든, 패배하든 전쟁을 시작한 당사자인 쿠친은 반드시 그 책임을 짊어지고 몰락할 수밖에 없는 너무나도 위험성이 높은 도박 수입니다. 대통령님.”
이미 한번 우크라니아를 침공한 전적이 있던 쿠친.
그로 인해서 러시아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영구 집권의 기틀까지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이미 압도적인 정치적 기반을 다진 그가 또다시 새로운 전쟁을 벌인다는 가정은 그 가능성이 너무나도 희박했다.
“미국의 외교수장으로서 감히 조언 드리자면, 쿠친이 또 다른 전쟁을 벌일 가능성은 극히 낮습니다. 그러기에는 얻을 수 있는 이익에 비교해 잃을 수 있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큰 사고나 문제만 일으키지 않는다면 모든 권력자의 꿈이자 로망인 종신 집권이 가능한 러시아의 독재자 쿠친. 그런 그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불확실한 전쟁을 시작한다는 것은 전혀 상식적이지 않은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런 국무장관의 주장에 동의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곳곳에서 튀어나왔다.
“맞습니다. 대통령님. 러시아가 지금 당장 전쟁을 준비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저희와 같이 러시아도 코덱스 바이러스로 인해 망가진 경제와 민생을 처리하는 데에 당분간 주력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긴밀하게 전 세계의 국가들과 협력해야 하는 시기인데 전쟁과 같은 극단적인 움직임을 단행하기란 어려울 것입니다.”
군사, 경제, 외교수장을 비롯해 수석 보좌관들이 연이어 전쟁은 일어날 수 없다며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상황. 만약, 지금 이 이야기가 그저 레너드 대통령 혼자만의 불안이나 의구심 속에서 꺼낸 이야기라고 한다면 그 역시도 이들의 확신에 찬 이야기를 믿고 흘려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꺼냈던 당사자는 상식을 벗어난 규격 외의 존재.
약간은······. 아니, 완전히 미친 것 같다는 것이 흠이었지만 그가 하는 이야기가 전혀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직감했기에, 레너드 대통령은 손을 들어 모두의 입을 다물게 하고는 이내 말했다. 아니, 미합중국의 행정 수반이자 군 통수권자로서 명령했다.
“자네들의 의견은 잘 들었네. 하지만, 만약의 그러한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는 것을 상정하고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모든 시나리오와 옵션을 검토하고 싶군.”
“예······?”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레너드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각 정부 부처의 수장들.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지시를 내렸다.
“합참은 1년 후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적으로 침공한다는 가정하에 일어날 수 있는 전쟁 시나리오를 최대한 이른 시일 내로 작성해서 보고하게. CIA를 비롯한 정보기관들은 모든 감사 자산을 총동원해서 러시아의 내부 상황을 파악하고 실시간으로 보고할 수 있도록. 그리고······. 재무부에서는 혹시라도 전쟁이 발발할 시, 즉각적으로 그들의 자금을 동결할 수 있도록 모든 자금줄을 파악하고 대비하고 있게.”
그저 의구심이나 불안 하나만으로 실행하기에는 너무나도 막대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지시들. 마치 전쟁이 일어날 것을 이미 단정한 듯한 레너드의 지시에 모두의 얼굴에는 의구심이 피어올랐지만, 국무장관인 캐서린은 피곤한 얼굴로 안경을 벗어 내리며 말했다.
“······. 국무부에서는 유럽 연합과 전쟁을 가정한 대응 방안을 협의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너무 적나라하게 접근하지는 말게. 러시아에 괜한 자극을 줄 수 있으니.”
“최대한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접촉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자신의 의중을 파악한 듯한 국무장관의 답변에 레너드 대통령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 그렇다면 이제 다른 안건과 관련해서 이야기를 좀 해보도록 하지.”
“······. 또 다른 안건이 남았습니까?”
회의가 마무리되었다고 생각해서 서류를 정리하고 있던 이들. 하지만, 또 다른 안건이 있다는 레너드 대통령의 말에 움직임을 멈추고는 의아한 얼굴로 일제히 그를 바라보았다.
“그래. 이건 CIA 국장이 추가로 설명할 걸세. 에드워드.”
“······?”
레너드 대통령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반대편에 있는 CIA 국장에게로 쏠렸다. 그리고 에드워드는 잠깐 헛기침을 하더니 이내 입을 열어 최근에 벌어졌던 작전의 개요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최근 CIA에서 실행한 작전. 기묘한 이야기(Strange Thing)를 통해서 최근 대한민국 내에서 미국의 국익과 직결되는 중요한 인적 자원 하나를 포섭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국무장관님도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아, 그 이아영이라는 여성 말이군요. 잘 알고 있죠.”
대통령의 직권을 통해서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만들었던 일. 본국에서 잘 살던 외국인을 하루아침에 미국인으로 만들어버리는 그 서류에 직접 서명했던 국무장관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CIA 국장의 말에 화답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서······. 아주 중요한 물건 하나를 입수할 수 있었습니다.”
“중요한 물건 말입니까······?”
“여기, 이것을 봐 주십시오.”
우우우우웅.
미국의 중추이자 핵심 지도층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 모여 있는 자리. 그곳 한가운데에 강렬한 푸른 빛을 내며 반짝이고 있는 마나석을 CIA 국장이 내려놓자 모든 이들의 표정은 각양각색으로 변했다.
“이건······.”
“도대체 뭡니까 이게?”
감히 시선을 돌릴 수 없을 정도로 기묘한 존재감을 뿜어내는 처음 보는 물건. 크리스털 안에서 반짝거리고 있는 푸른빛의 그 미증유의 힘을 본능적으로 감지한 듯한 이들은 그저 멍하니 그 마나석을 한참 동안 쳐다만 볼 뿐이었다.
“상급 마나석(Mana Stone)이라는 물건입니다. 그 하나에 자그마치 작은 도시 하나의 전력을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막대한 양의 에너지가 저장되어 있죠.”
“그게 도대체 무슨······?”
“마나석······. 그게 도대체 뭡니까?”
의아한 얼굴로 물어오는 그들은 이어지는 에드워드의 폭탄선언에 그야말로 경악했다.
“저희가 입수한 모든 정보를 종합해 본 바에 따르면······. 이 세상에 마법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 앞에 놓인 그 물건이 바로 마법이 존재한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물입니다.”
마법이 실제로 존재한다.
다른 곳도 아니고 초강대국인 미국의 최고 권력자들이 모여 있는 긴급 NSC 회의 안에서 나오리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을 충격적인 발언. 무슨 상상 속에서 사는 어린아이도 아니고 지독히도 가혹한 현실 속에서 반세기는 더 살아온 CIA 국장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에 모두는 그저 침묵했다.
“마법······.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이는 대통령님께서도 직접 확인하신 사안입니다.”
“······?”
그 말에 일제히 또다시 돌아가는 시선들. 마치 레너드 대통령을 바라보며 저 정신 나간 소리가 사실이냐고 물어보는 듯한 눈빛에 그는 한숨을 내쉬며 일어나서는 입을 열었다.
“믿기 힘든 것은 사실이겠지만······. 최소한 우리가 지금까지 알지 못하는 초자연적인(Supernatural) 무언가가 새롭게 나타났다고 생각해주면 좋겠군.”
대통령의 긍정과도 같은 발언에 더한 충격을 받은 듯한 이들. 그리고 연이어 에드워드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감당할 수 없는 충격적인 정보들에 이 자리에 앉아 있는 모두는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저 정신 나간 복장의 어린 소년이 마법사라는 말입니까······?”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이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모니터에 나와 있는 어느 한 소년을 가리키며 묻는 합참의장. 그리고 그런 그의 물음에 에드워드는 다 체념한 듯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코드 네임. 멀린. 현재로서 저희가 파악한 유일한 마법사입니다.”
“이런 미친······.”
“오 맙소사······.”
저런 반쯤 미쳐 보이는 소년이 마법사라고 주장하는 대통령과 CIA 국장. 직접 마법을 눈으로 보지 않은 자들로서는 도무지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에 여기저기서 탄식과 침음성이 터져 나왔지만, 레너드 대통령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일어나서 말했다.
“받아들이기 어렵겠지. 이해하네. 나 역시도 직접 두 눈으로 보지 않았다면 절대 믿지 못했을 테니까. 하지만, 마법은 실존하며 우리는 이제부터 그로 인해서 일어나게 될 거대한 변화를 바로 눈앞에 둔 상태네. 그렇기에 그러한 변화를 맞이하기 위한 대비를 시급하게 해야 하네.”
“변화 말입니까······?”
마법의 출현과 그로 인해서 완전히 급변하게 될 세상.
그에 대한 변화에 대처하게 신속하게 미국의 사회 구조와 모든 국가 시스템을 근본부터 완전히 새롭게 뒤바꾸기 위한 새로운 국가의 재탄생(Rebirth)을 그려가며 레너드 대통령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모든 이들을 향해서 야심 차게 앞으로의 계획을 말했다.
“앞으로 우리의······. 아니, 미국의 최우선 과제이자 목표는 환경보호네.”
내일은 러시아와 전쟁을 하게 되더라도 오늘은 일단 나무부터 심고 보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