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인공 마법 만세!-79화 (79/242)

79화.

79화.

미국의 46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레너드.

아직 임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임 대통령으로서 가장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시기에 그는 매우 이례적인 행보를 단행했다.

[ 미국의 레너드 대통령이 첫 외교적 순방의 목적지로 대한민국을 선택했습니다. 취임한 지 한 달이 조금 넘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너무 이른 시기의 외국 방문이라는 의견이 많은 상황인데요, 이번 순방이 북한의 핵 문제를 비롯해 중국을 견제하며 한미 동맹의 굳건함을 과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인다고 외교 소식통이 밝혔습니다. 이로써 윤기열 대통령은 4년 만에, 그리고 임기 중에 2번째로 미국과의 정상회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

한국과의 정상회담을 하겠다고 먼저 제안해 오며 적극적으로 만남을 추진한 미국 정부. 대내외적으로는 북한 문제를 논의하고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 정부의 적극적인 외교 정책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그 실상은 완전히 달랐다.

“하하하.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Mr. President.”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레너드 대통령님.”

화기애애하게 웃으며 서로의 손을 맞잡고 공식적인 정상회담의 일정을 소화하는 두 대통령.

북한의 핵 개발과 인권 문제와 관련한 공동 성명을 발표하고 양국 간의 경제적 협력을 강화하고 규제를 완화하는 등, 여러 정책과 관련한 이야기를 했지만, 그중에서 미국은 꽤 커다란 선물 보따리를 한국에 제공해주었다.

- 긴급 속보. 한국의 미사일 사거리 제한 지침 완전 폐지.

- SLBM과 MRBM과 같은 준중거리 탄도 미사일의 개발과 운용이 현실화되나?

- 외교 전문가들. 자주국방을 실현하기 위한 위대한 도약으로 평가.

42년간 한국의 미사일 개발과 전력 강화를 제약하던 지침의 폐기. 미국과 호의적인 보수 정권조차도 이룩하지 못했던 그 결실을 윤기열 대통령이 이룩해내었다는 사실에 여당과 야당 모두가 호평하는 아주 이례적인 장면이 연출되었지만, 막상 그 역사적인 업적의 주인공인 윤기열 대통령의 심기는 그다지 즐겁지만은 않았다.

“후······. 외교적 행사라는 것은 참 답답한 것 같습니다. 이렇게 카메라가 없이 둘이서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 이렇게 길고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니 말입니다. 대통령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허허······. 이제는 뭐 익숙해진 지 오래입니다. 일국을 통치하는 국가원수로서 언론의 주목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요.”

카메라와 수행원 그 무엇도 대동하지 않고 그저 오직 단둘이 산책로를 걸으며 대화를 나누는 시간. 불과 30분으로만 예정된 짤막한 행사에 불과했지만, 레너드 대통령이나 윤기열 대통령이나 이 시간만큼을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에 정말 재미있는 일을 벌이셨더군요.”

부드러운 어조였지만 잔뜩 가시가 돋은 윤기열 대통령의 말. 그리고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는 레너드는 부정하지 않고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화답했다.

“미국의 국익을 위해서 부득이하게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내정 간섭······. 아니, 협박이나 다름없는 그런 공갈을 쳐야 할 만큼 중요했나 보군요.”

설사 자신이 중국과 우호적인 노선을 조금 탔다고 한들, 설마 미국이 한미 동맹의 근간을 들먹이며 협박하리라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윤기열 대통령. 그렇기에 그는 굴욕적으로 미국 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님께서도 이해해주시리라 믿습니다. 미국과 한국이 긴밀한 동반자 관계라 하더라도 언제나 양국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법은 아니니까요. 가끔은 이러한 충돌도 불가결한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그때는 서로의 이익에 따라 행동할 수밖에 없는 거겠죠. 대통령님께서 중국의 눈치를 보며 저희가 구축하려고 했던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시스템의 전진 배치를 무력화했던 것처럼요.”

“······.”

전 정권에서 미국과 합의했던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시스템. 중국의 심기를 건드려 발작하게 만들던 그 시스템의 배치를 강렬히 반대하며 막아왔던 장본인인 윤기열 대통령은 레너드 대통령의 말에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이해를 구하고자 이 만남을 제안한 거 아니겠습니까? 비록 우리 정부가 했던 일을 대통령님께서 불편해하시는 것은 이해합니다만,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서 분명 대통령님께서는 많은 것을 얻어가게 될 겁니다.”

전 정권에서 완전히 파탄 나던 중국과의 외교 관계를 성공적으로 복원시키면서 동시에 미국과의 관계도 우호적으로 유지하고 동시에 한국의 자주국방을 실현하기 위해서 미사일 사거리 제한 지침을 폐지하는 위업을 달성한 대통령.

거기에 미국의 새로운 신임 대통령이 극찬하며 또 존경한다며 카메라 앞에서 온갖 극찬을 늘어주면서 체면치레를 엄청나게 해 주었기에 분명 레너드 대통령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서, 그 여자를 미국으로 데려가실 생각이오?”

이미 미국인으로 국적이 변경되면서 자동으로 한국 국적을 상실한 이아영. 윤기열 대통령은 삼진 그룹이 개발한 살살이 풀과 레드 포션의 핵심 개발자가 바로 그녀라는 정보를 뒤늦게 입수했지만, 그러한 뛰어난 능력을 갖춘 인재를 미국에 두 눈 뜨고 빼앗긴다는 기분이 들어서 여간 배가 아픈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런 그의 물음에 레너드 대통령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비록 그녀는 이제 완전한 미국인이지만, 가능한 한국 내에서 활동하고 싶다는 뜻을 이미 밝혔습니다.”

“뭐요······?”

“마음 같아서는 미국으로 데리고 가고 싶은 것은 사실입니다만 본인이 남고 싶다는데 어쩌겠습니까? 미국은 자유로운 국가인데. 모쪼록 이전 사태와 같은 보안 사고가 벌어지지 않고 한국 내에서 안전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신경 써 주시기 바랍니다.”

그녀를 미국으로 당장에 데려갈 것으로 생각했던 윤기열 대통령. 하지만 그런 그의 생각과 다르게 한국에 내버려 두겠다는 말에 완전히 얼어붙었다. 그리고 그저 하염없이 먼저 앞서서 제 갈 길을 가는 레너드 대통령의 뒷모습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도대체 무슨 꿍꿍이로 이런 일을 벌이는지 그 의중을 파악하려 애쓰며 말이다.

*

정상회담의 3일 차.

이번 방문의 마지막 일정까지 소화하고 난 이후 기자들의 카메라 세례를 받으며 레너드 대통령은 호텔로 들어갔다. 그렇게 그는 모든 일정이 끝나고 바로 다음 날 아침에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돌아갈 예정이었지만, 그런 공개된 계획과는 다르게 그에게는 또 다른 일정 하나가 남아 있었다.

“반갑습니다. 대통령님. 저는 위대한 대마법사 멀린입니다. 여기 이 친구는 판달리아에서 온 드래곤 로드. 용용이고요. 인사하세요.”

예정된 시간에 정확히 그와 만나기로 약속한 호텔 방 안에 등장한 나. 하지만 이렇게 불쑥 튀어나올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것인지 화들짝 놀란 듯한 표정의 레너드 대통령과 비서실장은 나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 왜 그런 표정을 지으시고 계세요? 여기서 이 시간에 보기로 한 게 아니었나?”

너무 묘한 반응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시간과 장소가 적힌 메시지를 확인하는 나에게 정신이 되돌아온 레너드 대통령은 연신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크흐흠······. 맞네. 잠깐 당황해서 할 말을 잃은 것뿐이네.”

마법사라고는 했지만, 정말 두 눈으로 마법과도 같은 현상을 목격하자 이 모든 것이 그저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은 레너드 대통령.

그리고 그는 너무나도 진지한 표정으로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정식으로 인사하지. 미합중국의 대통령. 레너드 R. 제프리라고 하네. 레너드라고 부르게.”

“에이, 그래도 매너가 있지. 어떻게 할아버지뻘인 사람을 경박하게 이름으로 부를 수가 있어요? 나름 한국이 동방예의지국이라고 부르던 곳인데. 대통령님이라고 불러드려야죠.”

“······. 편한 대로 하게.”

“이야기를 나누기에 앞서······. 일단 제 부탁을 원만하게 처리해줘서 감사하단 말씀을 먼저 드리죠. 제가 생각하던 것보다도 훨씬 더 조용하고 신속하게 문제를 해결하셨더라고요? 설마 그 상황에서 아영을 미국인으로 만드는 꼼수를 써버릴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아주 독특한 방식이기는 했지. 그걸 해결하는데 많이 곤란했던 것도 사실이고.”

내 말에 딱히 부정하지 않으면서 나름 생색을 내는 레너드. 그런 그의 반응에 나는 히죽 웃으며 하나의 선물을 꺼내 들었다.

“그래서 제가 특별히 준비했죠. 여기 이거 받으세요. 대통령님을 위한 선물이에요.”

“······. 이게 뭔가?”

황금빛으로 반짝거리는 작은 물약.

처음 보는 듯한 액체를 보며 의아한 눈빛으로 물어보던 레너드는 이내 이 물약의 정체를 알아차리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미 죽어버린 모공을 살려서 찰랑거리고 풍성한 머리카락을 자라나게 해 주는 발모제에요. 두피에 3일간 넉넉하게 발라주면 아마 한 달 뒤에는 새로운 모발들이 새싹처럼 자라나기 시작할 거예요.”

“!!!!”

모든 대머리가 위대한 위인은 아니지만, 뛰어난 업적을 이룬 위인은 모두 대머리라고 누가 말했을까?

이미 30년 전부터 모발들이 모조리 죽어버려 대머리가 되어버린 레너드 대통령.

하지만 그의 정치 인생 전체에 걸쳐서 황금빛의 가발을 써서 자신의 반짝거리는 두피를 철저하게 숨겨왔던 레너드였기에 그 누구도 그가 대머리라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의 가장 강렬한 콤플렉스이자 치명적인 정치적 결점이었던 처음 보는 어린 소년이 그 비밀을 알고 있다는 것만 해도 경악스러웠지만, 그의 눈앞에 놓여있는 해결책은 그야말로 온몸에 소름이 돋게 만드는 데 충분했다.

“그게······. 정말인가? 이걸 바르면······. 머리카락이 다시 자라난다는 게······?”

혹시라도 떨어뜨릴까 봐 겁이 나는지 부들거리며 간신히 그 병을 부여잡은 레너드 대통령. 그리고 그런 그의 반응에 나는 피식 웃으며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당연하죠. 그럼 제가 뭐 약 팔이 사기꾼이라도 되는 줄 아세요? 이건 대통령님께서 나름대로 노력하시는 것 같아서 제가 개인적으로 특별히 만들어 놓은 녀석이에요. 부작용도 딱히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마음 편히 쓰세요.”

“······.”

그리고 그런 내 말을 듣고 레너드 대통령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그저 가만히 나를 빤히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을 짓던 그. 그런 그가 입을 연 것은 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난 후였다.

“정말 흥미롭군.”

“뭐가요?”

“자네의 존재 말이네. 마법이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했다는 것도, 그리고 그걸 이 세상에 널리 전파하고 싶다는 자네의 의중도. 그리고 환경보호가 하고 싶다는 자네의 꿈도 전부 놀랍지. 하지만 그보다 더 흥미로운 점은······.”

처음에 CIA의 보고를 받았을 때만 해도 멀린이 그저 미친놈이라고 생각했었던 레너드. 하지만 직접 만나본 그의 소감은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정말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진또배기 마법사 멀린.

앞으로 그의 존재로 인해서 완전히 새롭게 변화할 이 지구의 미래를 가늠하며 레너드 대통령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는 눈으로 물었다.

“한국 나이로 15······. 아니, 이제는 16살이겠군. 고작 십수 년밖에 살지 못한 자네가 어떻게 이러한 마법적 지식을 가지고 있는 거지?”

마법의 출처가 어디인지를 묻는 레너드 대통령.

그리고 그 물음에 나는 너무나도 솔직하게 대답했다.

“아, 그건 바로 이 친구 때문이죠. 인사해. 용용아. 이 지구상에서 제일 쎈 나라의 수장이야. 네가 이해할 수 있게 말하자면 제국의 황제 같은 느낌이지.”

[ 반갑다. 인간. ]

내 말에 퉁명스럽게 인사를 건네는 용용이. 하지만 그런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레너드 대통령은 정말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 지금 뭐하는 건가?”

“아까도 말했잖아요. 이 녀석은 그냥 인형이 아니라 판달리아라는 판타지 세계에서 넘어온 드래곤 로드. 용용이라고 해요.”

[ 아 주인, 용용이가 아니라 나는 페르도스라고! 좀 소개라도 제대로 해 주면 안 돼? ]

“시끄러. 페르도스가 뭐야? 촌스럽게. 넌 그냥 용용이야. 얼마나 어감도 좋아? 입에 착착 달라붙잖아. 용용이. 용용아. 아주 최고잖아.”

[ 아니, 내가 어디 갓 태어난 헤츨링도 아니고 이래 보여도 거의 한계 수명인 일만 년에 가깝게 살아온 드래곤 로드라고. 그런 유치한 이름으로 불리는 게 얼마나 치욕스러운지 알아? ]

“뭐래. 그럼 늙다리 도마뱀이라고 불러주랴?”

[ 아! 쫌! ]

“어? 이게 또 다른 인간 앞이라고 자꾸 가오 잡겠다고 반항하려고 그러네? 집에 가서 어디 터보 모드 맛 좀 볼래?”

대화를 나누다 말고 갑자기 진지하게 혓바닥을 내밀고 있는 아기용 인형을 들고 뭐라 옥신각신 싸우는 듯한 기색으로 무어라 중얼거리는 멀린.

그런 그를 황당하게 바라보던 레너드 대통령과 그의 비서실장인 데이몬드는 서로 미묘한 눈빛을 교환했다.

그리고 이내 데이몬드가 조심스럽게 다가가 그에게 물었다.

“자······잠깐만요. 멀린님.”

“네? 왜 그러시나요?”

“그······. 만약 그 인형이 일반적인 인형이 아니라 무언가 특별한 힘을 가진 인형이라고 한다면······. 혹시 그 손에 들고 계신 그것도 뭔가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겁니까?”

“아······. 이거요?”

내가 한 손에 들고 있는 유치찬란하고 블링블링한 요술봉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묻는 데이몬드. 그런 그의 물음에 나는 잠깐 요술봉을 내려다보다 이내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아뇨? 그냥 평범한 씨크릿 쮸쮸 요술봉인데요?”

“씨크릿······. 쮸쮸요?”

“네. 나중에 뮤튜브로 검색해보세요. 혹시라도 5살짜리 딸이 있다면 환장할걸요?”

그게 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는 표정의 데이몬드. 그리고 그는 내 대답에 더욱 혼란스러운 얼굴로 나에게 재차 물었다.

“그렇다면······. 그걸 들고 다니시는 이유가······?”

아무런 특별함도 없다면 그런 걸 왜 들고 다니냐는 물음. 그리고 그 물음에 나는 히죽 웃으며 답했다.

“귀엽잖아요.”

“······?”

그 순간, 레너드는 자신의 처음 생각이 맞았다는 것을 속으로 확신했다.

이 세상의 유일무이한 대마법사라는 멀린.

그가 위대한지는 모르겠지만, 레너드가 자신의 대통령직을 걸고 그에 대해서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나 있었다.

그는 레너드가 지금까지 살아온 65년 일평생 동안 만나온 그 어떤 인간보다도 더한······. 아니,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제대로 미친놈인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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