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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마법 만세!-75화 (75/242)

75화.

75화.

“으으으······.”

눈을 떠 보니 낯선 천장이 보였다.

잠깐 현재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듯, 멍한 표정으로 익숙하지 않은 천장을 우두커니 바라보던 아영. 하지만 그녀는 이내 어제의 기억을 떠올리고는 화들짝 놀라며 몸을 벌떡 일으켰다.

“뭐······뭐야! 여기는······?”

무슨 창고 같은 느낌의 허름한 공간.

야구방망이와 글러브, 매트리스와 뜀틀, 거기에 온갖 공들이 잔뜩 쌓여 있는 이곳에 누워있던 그녀는 이내 자신의 몸을 덮고 있는 휘황찬란한 별빛 망토를 보고서야 자신을 이곳으로 데리고 온 사람이 누구인지를 깨달았다.

“멀린님······? 멀린님!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으응? 어, 아영. 드디어 일어났어요?”

아영은 옆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던 멀린을 발견하고는 이내 그를 거칠게 흔들며 깨웠다. 그러자 퍼뜩 잠에서 깨며 일어난 그는 입맛을 쩝쩝 다시며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아영을 반겼다.

“어제 밤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분명 자신을 납치하려고 하는 정체불명의 남자에게 강제로 끌려가던 것을 마지막으로 기억이 완전히 끊긴 아영. 자신이 어떻게 된 것인지 전혀 모르기에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물었지만, 나는 기지개를 켜며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전에 말했잖아요. 아영을 납치하려고 주변에 얼쩡거리는 인간들이 몇 있는 것 같다고요. 도대체 사람이 경각심을 가져야지 경고해줘도 그렇게 야심한 시각에 밖을 혼자서 돌아다니면 어떻게 해요? 어제 제가 아영 구하느라 얼마나 애먹었는지 아세요?”

“제가······. 어제 납치당할 뻔했다고요······?”

“네. 그래도 제 말을 듣고 그 귀걸이를 끼고 있었으니까 망정이지, 그거 없었으면 어제 아영은 죽었을 수도 있었어요. 알아요?”

“이······. 귀걸이가 도대체 뭔데요?”

듣고도 못 믿겠는지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되묻는 아영. 하지만 그녀는 이내 자신의 귀에 걸려 있는 귀걸이를 매만지며 물었다.

“우주방어라는 녀석이에요. 상급 마나석에 온갖 방어 마법을 떡칠해놓은 녀석이죠. 대전차 미사일을 정통으로 맞아도 흠집 하나 없이 끄떡없는 방어력을 가진 실드를 펼칠 수 있으니 어제와 같은 위기 상황에서 버티기에는 안성맞춤인 기능성 아티팩트죠.”

“아티팩트······요?”

이 현대 문명의 과학 기술로도 구현할 수 없는······. 정말 마법이라고 할 수 있는 기적을 발현할 수 있는 최초의 아티팩트. 그것도 내가 직접 심혈을 기울여 그야말로 최고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의 수식으로 새겨넣은 녀석이었기에 그 효과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압도적인 성능을 자랑했다.

“네. 한정적이긴 하지만, 그것만 있으면 아영도 제한적으로 마법을 사용할 수 있어요. 어제와 같이 착용자가 막대한 충격으로 인해 의식을 잃으면 자동으로 발동하기도 하지만, 시동어로 발동시킬 수도 있으니 참고하세요. 그 이외에도 위치 추적이나 은신, 소리 제거, 아주 단거리지만 블링크 마법까지도 내부에 탑재되어 있으니까 아마 도망쳐야 하는 상황에서는 꽤 유용할 거예요.”

“······. 그래서 저한테 이 귀걸이를 끼고 있으라고 한 거군요.”

시큰둥하게 말하는 내 설명을 듣고 멍하니 자신의 귀에 걸려 있는 푸른빛의 귀걸이를 매만지는 아영. 그리고 그런 그녀에게 나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아, 인식장애 마법도 들어가 있으니까 아마도 다른 인간들은 그거 끼고 있는지도 모를 거예요. 그냥 신체 일부라고 생각하고 벗지 마세요. 잃어버리면 다시는 안 만들어줄 거예요. 그거 만드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요?”

그냥 앓는 소리 하는 게 아니라 그녀가 끼고 있는 우주 방어는 정말로 내가 가진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서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작품이었다.

하나의 아티팩트를 제작하는 데 있어서 마법 하나를 발현할 수 있는 마나 회로를 새겨넣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하나의 아티팩트에 여러 개의 다중 마법을 발현할 수 있도록 중첩해서 마나 회로를 새겨넣는 것은 그 난이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어마어마한 일이었다.

저마다 다른 효과와 기능을 가진 마법들. 그렇기에 완전히 다른 형태의 술식으로 이루어져 있었기에, 그 모든 마나 회로가 서로 충돌하지 않고 발현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최소 수백 개가 넘어가는 모든 변수를 고려하며 술식을 변형해야 했다.

그런데, 2개나 3개도 아니고······. 자그마치 12개의 마법이 내장되어 있는 아영의 귀걸이.

전지의 권능을 가진 나에게 그 모든 것은 그저 당연한 것에 불과했지만, 고작 엄지손톱 정도의 마나석에 새겨져 있는 마나 회로는 용용이조차도 감히 파악할 엄두가 나지 없을 정도로 난해하고 복잡했으며 또한 그 양조차도 어마어마했다.

[ 아무리 봐도 주인이 받은 권능은 말이 안 되는 수준이야······. 도대체 어떻게 저런 말도 안 되는 물건을 만들어낼 수가 있는 건데? 나도 소싯적에 아티팩트 만드는 데 심취했던 적이 있어서 잘 알거든? 나조차도 최대로 중첩한 게 겨우 8개였는데 저건 정말이지······. ]

용용이조차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우주방어.

수천······. 수만 개가 넘는 크고 작은 수식이 전부 얽혀 마치 톱니바퀴처럼 절묘하게 돌아가며 마나 회로를 따라 흐르는 마력을 기반으로 작동하는 이것은 그야말로 하나의 작품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너무나도 완벽하고 또 아름다웠다.

게다가······.

[ 저렇게 작은 크기의 마나석에 그 방대하고 복잡한 술식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새겨넣는다니······. 반도체인지 뭔지 하는 기술이 왜 주인이 대단하다고 하는지 알겠어. 저건 아티팩트를 제작하는 데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아주 혁명적인 물건이야. 저거만 있으면 내가 포기했던 여러 아티팩트들도 만들 수 있겠는데? ]

그야말로 마법의 본산지인 판달리아에서도 감히 만들어낼 수 없는 최고의 아티팩트라고 할 수 있는 수준. 하지만, 그것을 끼고 있는 아영은 그 가치를 아는지 모르는지 별 감흥이 없는 얼굴로 가만히 앉아있을 뿐이었다.

“알겠어요······. 이왕 주신 선물이니 잘 끼고 다닐게요. 그리고······.”

“구해줘서 고마워요.”

정말 쑥스럽다는 듯이 살짝 빨개진 얼굴로 기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아영.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라 정말 당황하기도 했지만, 무섭기도 했기에 정말로 위기에 처한 상황에 등장해서는 자신을 구해줬다는 말에 아영은 눈앞에 앉아있는 중학생 모습의 멀린이 처음으로 든든하다고 느껴지고 있었다.

“뭘요. 아영 씨는 저랑 같이 이 세상을 구해야 하는 위대한 대업을 해야 하는데 당연히 고용주인 제가 챙겨야죠.”

별거 아니라는 듯이 손을 휘저으며 히죽 웃어 보이는 멀린. 그런 그의 반응에 여전하다는 듯이 작게 미소 지은 아영은 이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그보다······. 여기는 어디인가요? 왜 집에 안 데려다주신 건가요?”

축축한 곰팡내가 여기저기서 밀려드는 음산한 공간. 그녀가 누워있던 곳도 흙먼지가 잔뜩 묻어있는 더러운 매트리스였기에 아영은 이런 곳에서 날밤을 꼬박 샌 멀린을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며 물었다.

“아, 제가 다니는 학교의 체육관 창고에요. 어제 갈 데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여기에 올 수밖에 없었거든요.”

“예······?”

“지금 아영을 잡으려고 서울 일대에 경찰이랑 군대들이 쫙 깔린 상태거든요.”

“뭐······뭐라고요?”

공개적으로 그녀의 신상이 언론에 노출된 건 아니었지만, 이미 비밀리에 아영의 신병을 확보하기 위한 군경의 총력 작전이 서울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 어제 공원에서 벌어졌던 사건의 원흉이자 목격자이기에 이미 그녀의 자취방에는 검은 양복을 입은 정보부 요원들이 쫙 깔려 있는 상태였다.

“어제 기억 안 나세요? 아영 씨를 납치하려고 한 사람들요.”

“그게 왜요······?”

“그 납치범들 말고도 아영을 따라다니면서 스토킹하던 사람들이 꽤 많이 있었거든요.”

“뭐······뭐라고요?”

내 말에 눈동자를 커다랗게 뜨며 되묻는 아영.

그리고 그런 그녀에게 나는 현재 상황에 대해서 정확하게 설명해주었다.

“아영을 납치하려고 했던 중국 스파이들이랑 한국, 미국, 일본······. 심지어 북한의 스파이들까지 전부 합세해서 서로 총격전까지 벌이고 다녔다니까요? 그거 때문에 경찰이랑 군대까지 몰려와서 어제 도망치느라 혼났다고요. 조금만 늦었어도 아주 큰 일 날 뻔했다니까요?”

“······. 그러니까······. 저를 사이에 두고 지금 한반도 인접국의 모든 요원들이 총출동해서 서로가 총격전을 벌였다는 말인가요? 저를 납치하겠다고?”

“예. 아영은 모르겠지만, 지금 정보기관들 사이에서 아영의 인기가 아주 하늘을 찔러요. 말하자면······. 최우선 확보 대상(Most-Wanted)이랄까요?”

“······.”

“제가 왜 그 귀걸이 벗지 말고 꼭 끼고 다니라는 건지 아시겠죠?”

이 모든 상황이 별 일 아니라는 듯이 가볍게 이야기하는 멀린. 하지만 그런 그와 다르게 아영의 머리는 온갖 복잡한 생각들로 인해서 지끈지끈 아파지기 시작했다.

“자······. 잠깐만요······. 아까 저를 감시하고 있던 나라 중에 한국도 있었다고요?”

“네. 가장 마지막에 따라붙긴 했는데, 아마도 국정원 쪽 요원으로 보이긴 했어요. 최근에 간첩들이 대놓고 싸돌아다니고 있으니까 뭔가 냄새가 나서 붙었던 것 같더라고요.”

“······. 그 말은 즉······. 이미 우리나라 정부도 저를 주시하고 있었다는 말이네요?”

“그렇죠. 사실 그건 너무 당연한 거 일이었죠. 삼진 그룹의 최근 이해할 수 없는 움직임과 매지컬 컴퍼니로 흘러가는 막대한 자금 흐름. 거기에······. 멀린의 정원의 명의까지. 아영을 무시하기에는 그 존재감이 너무 뛰어나잖아요. 이제야 이상한 걸 감지하고 주시하기 시작했다는 건 사실 너무 늦은 감이 없지 않아 있기도 하죠.”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삼진 그룹과의 계약을 주도적으로 체결한 장본인도.

멀린의 정원이라고 이름붙힌 그 삼진 바이오의 생태 정원의 명의를 이전받고 있는 것도.

거기에 매지컬 컴퍼니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그 대표 이사로 앉은 것까지도.

전부 이아영이라는 자신의 이름으로 되어 있는 상황.

지금까지 그 모든 것이 자신이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온갖 성가신 절차를 거쳐야만 한다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지만, 지금에 와서야 아영은 그가 굳이 자신의 이름으로 모든 것을 진행하려고 했던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멀린님······? 설마 이거 때문에 지금까지 저한테 다 서명하라고 한 거예요? 저를 방패막이로 세우려고······?”

이게 과연 인간이 할 짓이냐는 듯한 눈빛으로 추궁하는 아영. 그런 그녀의 물음에 나는 혓바닥을 작게 내밀며 능청스럽게 웃었다.

“에이, 제가 무슨 사탄도 아니고? 아영에게 그런 악랄한 짓을 저지르겠어요? 물론 그런 이유가 있는 것도 없지 않아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런 식으로 과격한 일에 휘말리게 될 거로 예측했던 건 아니에요.”

“······. 결국 방패막이로 써먹으려고 한 건 맞네요?”

“뭐······. 그건 부정하지 않겠어요. 지금까지는 제가 정부 기관에 노출되게 되면 매우 취약한 상태였으니까 조금은 조심할 필요가 있었거든요.”

고작 눈요기에 불과한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저 서클의 경지에서 국가기관의 주시를 받았다가는 꼼짝없이 붙잡혀 이용만 당하고 버려질 수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했던 안전장치들. 하지만 그로 인해서 다른 곳도 아니고 국정원의 주목을 받게 된 아영은 황망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하루아침에 눈떠보니 도망자 신세가 되어버린 아영.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 나는 단순명료하게 말했다.

“어떻게 하긴요? 그냥 자진해서 자수하시고 들어가서 솔직하게 말하세요.”

“솔직하게 말하라고요······?”

“어제 일. 솔직히 기절해서 아무것도 기억 안 나잖아요? 중국 요원들 본 거 말고 아영은 아무것도 모르니까 그냥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하세요.”

“예······?”

쓸만한 정보를 얻어내기 전까지는 그녀를 풀어줄 리가 없는 국정원. 하지만 이미 한국을 넘어서는 현시대 최고의 파트너를 낙점한 상태에서 그녀가 처한 이 곤경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셀 수도 없이 많았기에 나는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냥 맘 편히 생각하세요. 살면서 국정원의 비밀 심문실에 들어갈 일이 얼마나 많겠어요? 그냥 재밌는 구경 간다 생각하시고 설렁탕이랑 국밥 좀 얻어먹다 보면 별일 없이 풀려날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 설렁탕 먹을 때는 코로 먹지 마시고 꼭 입으로 꼭꼭 씹어 드시고요. 알겠죠?"

“그······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에요.”

마치 그럴 능력이 있다는 듯이 확신하는 나의 말에 의구심 가득한 눈빛으로 물어오는 아영. 하지만 나는 별다른 이야기를 해주지 않고 그저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일주일. 딱 일주일만 기다리세요.”

“당당하게 국정원 입구로 걸어나올 수 있도록 만들어드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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