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73화.
미국의 CIA와 NSA.
일본의 내각조사실.
중국의 국가안전부.
러시아의 KGB와 이스라엘의 모사드를 비롯해 그 이외에도 셀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정보기관이 존재하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자국의 국가안보와 국익의 수호.
전 세계에서 가치 있는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며 그 정보를 활용해 어떻게든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이용하기 위해서 그 어떤 방법도 주저하지 않는 정보기관들은 농담이 아니라, 말 그대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오늘만 사는 놈들이 대부분이었다.
“요인 납치, 암살, 테러, 선동, 기밀 탈취······. 아주 온갖 악랄한 짓들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해대는 놈들이야. 거짓말은 기본에 어떻게든 다른 사람의 감정을 자신들의 수단으로 어떻게 이용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전문적인 훈련으로 배운다고. 아주 악질이지?”
영화를 통해서 너무 미화되었지만 사실상 국가의 허락을 받은 사기꾼이자 도둑놈이며 살인범에 불과한 이들. 어떻게 보면 교도소에 처박힌 흉악범들과 딱히 다를 바가 없는 험악한 남자들에게 목표물이 된 지금의 상황은 사실 아영에게 있어 아주 위험천만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었다.
[ 그러면 지금이라도 도와주는 게 어때? 하나도 아니고 지금 아영을 노리는 놈들만 해도 다섯이 넘잖아. ]
고도로 훈련된 정보요원들. 자신의 기척을 숨기고 타인의 의심을 사지 않는 데에는 특화된 이들이었기에 아직 서로의 존재를 제대로 알아채지 못한 것 같았지만, 너무나도 인접한 곳에서 똑같은 한 사람을 감시하고 있다는 사실은 정말 혼자 보기 아까울 정도로 황당한 장면이었다.
“내가 나서서 뭐하게? 어차피 저기서 먼저 움직이려고 만반의 준비를 다 해 놨잖아.”
5개국 중에서 가장 먼저 행동에 나서기로 한 듯한 중국의 국가안전부 요원들.
이들이 서로 나누고 있는 대화를 마법으로 조종하는 작은 날벌레를 통해서 은밀하게 엿듣고 있던 나는 대략 중국이 꾸미고 있는 계획에 대해서 파악할 수 있었다.
[ 목표물은 매일 밤 10시에 혼자 운동을 하려고 집 근처의 공원으로 향한다. 그때를 노려서 일단 해당 목표물을 납치하고 인천으로 최대한 빠르게 이동한다. 납치에 필요한 차량은 이미 준비된 상태이니 고속도로를 벗어나면 차를 한번 갈아타도록. ]
[ 인천에 준비된 안전 가옥에서 목표물을 포섭한다. 가능한 최대한의 조건을 제시하여 회유하도록 하지만, 혹시라도 포섭에 최종적으로 실패할 시에는 그때는 현장의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판단해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최대한의 정보를 수집한다. ]
아영을 납치해 인천으로 강제로 끌고 가 포섭하고 최대한 정보를 뽑아내겠다는 이들의 계획. 물론 아영이 자진해서 모든 것들을 자백한다 하더라도 그녀의 말을 진정으로 믿어줄지에 대해 선 의문이었지만, 이들의 목표는 간단하면서도 명료했다.
[ 그 어떤 이유로도 우리가 관련되어 있다는 증거물을 남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최우선 목표다. 혹시라도 목표물을 데려가기에 상황이 여의치 않는다면 반드시 제거하도록. 우리 중화 인민 공화국의 영광을 위하여! 제군들의 건투를 빈다. ]
아영이 죽든 말든, 그것과는 상관없이 자신들이 원하는 정보만을 빼내면 그만인 이들.
국익이라는 대의명분을 앞에 두고 모든 수단을 정당화하며 자신들이 원하는 결과만을 도출해내면 거리낄 게 없는 인간 병기에 불과한 이들이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나는 딱히 이들의 계획에 놀라거나 당황스러워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중국의 행보에 절로 미소가 피어올랐다.
“하여간 화끈하다니까. 인구가 너무 많은 대국이라서 그런가? 인명 경시 사상은 아주 화끈하구먼. 마음에 들어.”
장기매매나 인신매매, 강제 수용소를 비롯해 다양한 인권 유린이 자행되는 중국.
길 가다가 누가 차에 치여 쓰러져도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고 갈 길을 가며, 호신용품으로 칼을 소지하고 다니다 수틀리면 칼을 꺼내서 휘두르고 다니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나라답게 일단 회유하기보다는 납치부터 하고 보려는 이들의 계획에 나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 도대체 어떻게 할 생각인데? 이러다가 진짜 납치당하면 주인만이 아니라 다른 성가신 벌레들도 잔뜩 끼게 되는 상황이잖아. ]
나만 아영을 주시하는 것이 아니라 사라져줬으면 하는 다른 불청객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상황. 만약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먼저 선수를 치게 된다면 이내 감시조로 따라붙고 있던 다른 나라의 정보요원들까지 이 상황에 끼어들게 되는 아주 머리 아픈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용용이는 답답하다는 듯이 뭐라도 좀 하라는 듯이 연신 투덜거렸다.
하지만, 나는 그런 그의 말에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면 오히려 좋지.”
[ 뭐······? 그게 도대체 어떻게 좋은 건데? ]
내 말에 황당하다는 듯이 따져 묻는 용용이. 하지만 그런 그에게 나는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고 그저 오래된 옛 선현의 교훈이 가득 담긴 사자성어 하나를 알려주었다.
“용용이 너는 모르겠지만, 이 세상에는 이이제이라는 말이 있어. 굳이 내가 움직이지 않아도 알아서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이 될걸?”
*
“하아······. 하아······.”
매일 밤에 혼자 달리기를 하러 공원으로 나서는 아영. 턱 밑까지 호흡이 차오를 때까지 뛰는 그녀는 최근 들어서 하나의 버릇이 생겨났다.
[ 별 건 아닌데요. 아영을 납치하려고 요즘 호시탐탐 노리는 인간들이 있는 것 같거든요. ]
자기를 납치하려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말만 툭 던지고 사라진 멀린. 그로 인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미묘한 기분이 최근 들어서 계속 들고 있던 아영은 달리기하는 와중에서도 연신 뒤를 돌아보며 주변의 사람들을 유심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 아무도 없네.”
텅 비어있는 공원.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조용한 공원이기에 그 누구의 방해나 간섭도 없이 아영은 편하게 달리기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이상함을 자각하고는 이내 달리던 발을 멈추고는 가만히 서서 떨리는 눈동자로 중얼거렸다.
“아무도······. 없다고······?”
천만의 인구가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안 그래도 땅덩이가 좁은 곳에서 그녀가 매일 뛰는 공원은 그리 규모가 크지 않았기에 조금만 뛰어도 금방 산책을 하는 여러 사람을 자주 만나볼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이 공원 안에서 그 누구도 마주치지 못했다.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아줌마나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어느 아저씨도. 매일 같이 밤공기를 마시며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워대는 꼬장꼬장한 할아버지도······. 평소에 자주 발견하던 사람들조차도 완전히 사라진 오직 그녀만이 있는 비어있는 공원을 둘러보며 아영은 비로소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지만. 그 깨달음은 너무나도 늦었다.
“자네 이름이 이아영 맞나?”
어둠을 뚫고 가로등 불빛 사이로 걸어오는 어느 건장한 남성. 처음 보는 날카로운 인상에 분명 서투른 듯한 억양의 한국말이었지만, 분명하게 그는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만나서 반갑네. 김춘식이라고 불러주게. 이 한국에서는 그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거든.”
“누······누구세요?”
당황한 얼굴로 뒷걸음질하며 더듬거리며 묻는 아영. 하지만 그녀는 몇 걸음 물러서지도 못하고 뒤에 서 있는 누군가에게 부딪히고는 당황한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당신들······. 도대체 나한테 왜 이래.”
엄청나게 소름 끼치는 얼굴의 거구의 남성. 마치 자신의 도주로를 막으려는 듯이 어느새 사방에서 다가오고 있는 여러 사람의 기척을 느끼면서 아영은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겁먹지 말게. 저항하지만 않는다면 다칠 일은 없을 테니까 말이야. 그러니 얌전히 우리를 따라오게. 공원 입구에 차를 이미 준비했네. 어차피 비명 지르며 도움을 구해도 이미 이 공원 일대에는 아무도 없으니까 별 도움은 안 될 걸세. 허튼수작을 부릴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이미 만반의 준비를 다 해놨다며 아영이 저항할 의지조차 꺾어버리려는 이들. 하지만, 그렇다고 잠자코 이들을 따라갔다가 무슨 해코지를 당할지 모르기에 아영은 자신의 양팔을 붙들고 거칠게 잡아당기는 어느 한 남자에게 완강히 저항했다.
“꺄악! 어딜 만져! 싫어! 이거 놓으라고!”
물론 작은 체구의 성인 여성인 아영과 다르게 엄청나게 건장한 남성들에게 저항한다고 될 일은 아니었지만, 시끄럽게 하며 격렬하게 저항하는 그녀의 행동에 춘식은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휘둘렀다.
퍼억.
“······.”
정확히 사람의 급소인 목 부분을 가격당한 아영. 곧장 의식을 잃은 듯 바닥에 쓰러져 거동조차 하지 않는 것을 보고서야 그는 비로소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그래······. 이제 말 잘 듣는 참한 아가씨 같군.”
이제 조용히 아영의 신병을 확보하고 이동할 차량이 준비된 곳까지 데려가기만 하면 이번 작전에서 가장 위험성이 높은 부분은 성공적으로 끝나는 상황. 생각보다 순조롭게 끝나가는 것 같아서 이들의 표정에는 안도감이 어리기 시작했다.
“이제 남은 것은 차이나타운에 있는 안전 가옥에서 중국으로 넘어갈 배를 기다리면서 회유하는 것뿐이군. 보아하니 꽤 힘든 시간이 되겠어.”
“크크크. 약부터 좀 맛 들이게 하면 안 됩니까? 그러면 좀 더 고분고분해질 것 같은데.”
“아직은 안 된다. 이 계집년이 가진 가치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상태니까. 일단 데려가서 우리가 파악한 정보와 일치하는지부터 확인하고 그 이후에 포섭할지, 아니면 제거할지 결정······.”
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하며 먼저 아영을 데리고 걸어가던 부하의 뒤를 따라가던 춘식. 하지만 그는 하던 말을 전부 마치지 못한 채 갑자기 일어나는 이변에 발걸음을 멈추어섰다.
우우우우웅.
“저건······?”
의식을 잃고 부하의 어깨 위에 걸려있던 아영. 축 늘어진 그녀의 귀에서 강렬한 푸른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하고 이내 갑자기 밀려오는 거대한 충격파에 모두가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고 저 멀리 튕겨 나갔다.
콰아아아앙.
“끄으으윽. 도대체 뭐냐!”
수 미터 떨어져 있었는데도 꽤 얼얼한 통증이 밀려오는 타격에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상황을 확인하는 춘식은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며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저······저건······?”
지이이이이잉.
푸른색의 빛을 흩뿌리며 쓰러져 있는 아영의 주변에 펼쳐져 있는 무형의 역장.
상급의 마나석에 저장되어있는 마나를 기반으로 착용자가 위급한 상황에 자동으로 발동하게 만들어진 방어 아티팩트.
우주방어(宇宙防禦).
그 어떤 존재의 접근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이 강렬한 물리력을 가지고 모든 것을 밀어내고 또 막아내고 있는 이 푸른빛의 방어막 안에 들어가 있는 아영을 보며 이 상황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우두커니 서 있던 이들은 이내 다급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뭐해! 당장 저 계집애 끌어내지 않고!”
“이······. 이상합니다. 아무리 타격을 줘도 멀쩡합니다.”
“크윽······. 젠장! 이게 도대체 뭐야!”
주변에 찾아볼 수 있는 물건들을 전부 이용해서 우주방어의 방어막을 공격하기 시작한 이들. 하지만, 상급의 마나석을 탑재한 덕분에 최소 벙커버스터에 준하는 관통력이나 폭발력이 아니고서야 뚫릴 리가 만무했기에 그녀를 보호하고 있는 역장은 그 강렬한 푸른빛을 내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비켜!”
탕탕탕.
그렇기에 조급함에 품에 숨겨두고 있던 총을 꺼내 아영을 향해 여러 발 발사한 춘식. 하지만, 그조차도 완전히 막아내고 있는 이 무지막지한 방어력을 가진 이 역장의 존재를 보면서 이들은 깨달았다.
“이런 미친······.”
자신이 납치하려고 했던 아영이라는 존재가 어쩌면 상부에서 파악하고 있던 것보다도 훨씬 더 엄청난 가치를 가진 존재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곤란하게 됐군······.”
“어떻게 할까요?”
이 의문의 역장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그녀를 어찌할 수도 없는 상황. 그렇다고 총까지 발사한 상황에 이곳에서 오래 머물 수는 없었기에 춘식은 이 작전이 실패했다고 판단하고는 곧장 철수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현 시간부로 모든 작전은 취소한다. 지금 당장 정해진 도주 경로로 안전 가옥까지 도주하고 그곳에서 탈출 계획에 따라 움직이도록. 오늘 본 것들에 대해서 신속하게 상부에 알리는 것이 가장 급선무······.”
하지만 춘식은 그 지시를 전부 끝마치지 못했다.
어딘가에서 날아온 총탄에 머리를 맞고 끈 떨어진 인형처럼 어느 작은 공원에 쓰러져 최후를 맞이한 춘식. 그리고 이어지는 총탄의 세례에 남은 수하들도 당황해하며 총격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적이다!”
“어디냐! 어디서 날아오는 거야.”
“이런 씨발. 도대체 이게 뭐야.”
공원 바닥 한복판에 누워 푸른빛을 반짝이며 의식을 잃은 아영. 그리고 그녀를 두고 사방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총격전을 벌이고 있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용용이는 이내 내가 한 말을 이해했다는 듯이 말했다.
[ 아, 이게 주인이 말하는 이이제이구나? 이제 이해됐어. ]
같은 목표물을 두고 서로 치열하게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 5개국의 정보부 요원들. 서로가 서로에게 총탄을 갈기며 대한민국 영토 안에서 대놓고 자기들끼리 생사를 건 혈투를 벌이고 있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며 나는 말했다.
“그러니까 우리는 굿이나 보면서 떡이나 먹으면 된다는 말이야. 어차피 이번 일이 아니더라도 슬슬 삼진 그룹을 넘어서 권력과도 손을 잡아야 할 필요가 있기는 했거든.”
나는 이번 기회를 통해서 어느 정부가 되었든 협상 과정에서 최대한 뜯어먹을 건 뜯어먹을 생각이었다. 그렇기에 어떻게 보면 미래의 마법 패권을 우선적으로 가져가게 될 각축전이나 다름없는 이 싸움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며 미리 준비해온 팝콘을 우물거리며 먹고 있었다.
[ 그래서······. 누구랑 손을 잡을 생각인 건데? ]
“아직 생각 안 해 봤는데?”
[ 뭐······? ]
“어차피 그 나물에 그 밥인데 그게 중요해? 어차피 다 속에 구렁이 한 백 마리는 들어가 있을 시꺼먼 놈들인데 다 똑같지. 그래도 굳이 정하자면 음······.”
앞으로 미래 파트너가 누가 되었으면 좋을지 가만히 생각하던 나. 하지만 이내 국제정치에서 서로 친구가 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요건을 떠올리고는 싱긋 미소 지으며 용용이에게 장난스럽게 말했다.
“이기는 편 우리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