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68화.
삼진 그룹의 회장이자 대한민국 경제계를 이끄는 수장과도 같은 위치에서 수십 년을 살아온 이호준 회장은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남다른 식견과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다.
[ 이번 정부 입찰은 그냥 적당히 관심 있는 척만 하고 빠져. 그다지 이익이 될 것 같지도 않고 오히려 대기업이 다 먹어치운다고 빌미만 줄 공산이 커. ]
[ 이번 대선에 누굴 밀어주냐고? 이번에는 대한국민당 쪽이 낫지 않겠어? 저번에 만났던 그 민주사회당 쪽 사람은 눈빛이 영 마음에 들지 않던데. ]
평생 수많은 결정 속에서 언제나 삼진 그룹에 이익이 될 법한 가장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며, 자신에게 다가와 손을 내미는 사람들의 속내를 한순간에 파악해내는 본능을 가진 이호준 회장. 그렇기에 그는 지금까지 한 번도 사람을 대하는 데 있어 큰 혼란을 겪은 적이 없었지만, 최근에는 달랐다.
“그래서······. 이제 성공적으로 우리 누나도 제가 만들어가는 마법 혁명이라는 대업에 동참하게 되었어요. 참 잘된 일 아닌가요?”
히죽 웃고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쭉쭉 빨아 마시며 자신이 저지른 일로 인해 벌어진 결과를 흡족해하는 멀린. 그는 지금껏 만나본 수많은 이들과 다르게 이호준 회장이 유일하게 그 속내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는 인간이었다. 돈에 대한 특별한 욕망도, 그렇다고 권력이나 명성에 대해서도 그다지 큰 야망이 없어 보였다.
마법 혁명이라는 대업을 해 나가겠다며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하는 그에게 이호준 회장은 조금 황당하다는 눈빛을 지으며 물었다.
“그러니까······. 자네 누나가 한국 대학교로부터 고소를 당하고 언론에 오르내리는 와중에도 나보고 가만히 있으라고 한 이유가 지금의 상황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는 말인가? 한국 대학교가 전 세계의 학계를 경악하게 만드는 아주 뛰어난 인재를 가차 없이 내쫓고 그것도 모자라 고소까지 하며 벼랑 끝으로 내모는 상황을 연출하기 위해서······?”
멀린과 손을 잡으며 그의 유일한 혈육인 누나 영희도 멀리서 면밀하게 주시하고 있던 이호준 회장. 원래라면 그녀에 관한 이야기가 언론 기사로 뜨자마자 즉각적으로 이 상황에 개입해 최대한 조용히 묻어버리려고 했지만, 그것을 막아선 것은 다름 아닌 멀린이었다.
“그렇죠. 정확히 말하자면 누나를 좀 더 부각하기 위해서 극적인 연출을 하려고 그 시기를 기다린 것이긴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고소를 해서 스스로가 병신이라는 것을 인증한 건 한국 대학교죠. 누가 칼 들고 협박한 것도 아니고, 교수 한 명 말만 철썩 믿고 고소를 한 거부터가 좀 어이없지 않아요?”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여론. 미국을 비롯해 소위 과학계의 주류라고 할 법한 수많은 연구 기관과 학자들로부터 영희의 논문과 관련한 극찬을 아끼지 않고 있었기에 그녀의 이미지는 한순간에 새롭게 재탄생했다.
학계의 이단아이자 미친놈에서 천재적인 능력과 발상을 가진 슈퍼스타로 말이다.
“그래서······. 이제 누나를 데리고 뭘 어쩔 속셈인 건가?”
“아마 학교를 세울 것 같아요.”
“학교······. 말인가?”
“마법이 이 세상에 공개되고 난 이후. 아무리 뮤튜브를 통해서 마법을 배울 수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체계적으로 마법을 가르쳐 줄 수 있는 교육 기관 정도는 있어야 할 거 아니에요. 그렇다고 제가 하나하나 전부 다 가르쳐주기에는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하고 또 정신적으로도 너무 귀찮을 것 같거든요.”
“그 말은······. 자네 누나를 통해서 마법 학교를 세우고 운영하겠다는 말인가?”
“아직 확실하게 정하지는 않았어요. 당분간은 제가 전해주는 마법에 관련한 개념과 지식을 공부하고 자신만이 방식으로 정리하고 체계적으로 종합해보겠다고 한 상태에요. 마나를 느끼고 운용할 수는 있지만, 아직 그렇게 특출한 상태는 아니라서요. 지금 당장은 특별히 뭘 하지는 않겠지만, 조만간 많은 것을 하게 되겠죠.”
“조만간? 정확히 뭘 한다는 말인가?”
내 계획에 매우 관심이 많아 보이는 이호준 회장. 하지만 그가 시시콜콜 내가 진행하려고 하는 모든 것에 대해서 알아야 할 필요는 없었기에 나는 에둘러 미소를 지으며 화제를 돌렸다.
“그보다······. 제가 만들어준 회복 포션은 어떻게······. 미국 정부에서 마음에 든다고 하던가요? 아영에게 전해 들은 바로는 미군 측 관계자가 그 효능에 경악해서 온갖 질문을 쏟아내는 바람에 난리도 아니었다고 하던데요.”
두식의 어깨를 치료하기 위해서 겸사겸사 만들었던 하급 회복 물약. 판달리아의 세계에서는 조금 형편이 좋은 용병들이 쉽게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대중화된 물건이었지만, 이 지구에서는 괴물 같은 성능을 보이는 치료제였기에 그 파급력은 어마어마했다.
“기대 이상이었지······. 시범적으로 전장에서 테스트한 결과, 자네가 전해준 그 치료제로 조치한 부상자들 전원 무사히 생존한 상태로 귀환했다고 하더군.”
본래라면 100% 전장에서 사망했어야 할 이들. 하지만 현대 의학 수준으로도 괴물 같은 회복력을 자랑하는 회복 물약의 효능 덕분에 그들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미국 정부에서도 진지하게 논의 중인 것 같더군. 그 치료제······. 미군들 사이에서는 레드 포션(Red Potion)이라고 부르던데 그걸 민간에서도 활용할 수 있도록 대량으로 양산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에 대해서 우리 삼진에도 조심스럽게 물어오고 있는 상황이야.”
비단 전장만이 아니라 일반 병원의 응급실에서도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구할 수 있을 기적의 치료제. 물론 사용한다고 모든 부상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금방이라도 꺼질 것 같은 생명을 살리는 데에는 이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이 없었기에 그 상품성만큼은 어느 현존하는 의약품과는 비할 데가 없었다.
“뭐······. 그러려면 멀린의 정원이 아주아주 많이 필요하시겠네요.”
마나 집약진을 통해 마나의 농도가 가장 짙으며 동시에 판달리아의 식생이 구축되고 있는 인간의 출입이 철저히 금지된 인공 생태계.
멀린의 정원(Merlin's Garden).
살살이 풀을 비롯해 삼진 바이오가 차세대 신약으로 개발하려고 하는 모든 의약품의 원료가 되는 식물들이 유일하게 대량으로 키워낼 수 있는 영역이었기에 그 한정된 부지 안에서 키워낼 수 있는 살살이 풀의 양은 분명 한계가 있었다.
“그렇겠지. 그래서 지금 건설 중인 4개 말고도 나머지 6개의 부지도 최대한 빠르게 선정해서 즉각적으로 건설을 추진할 생각이라네.”
“호?”
본래 천만 평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양의 부동산을 매입하고 그곳을 생태 부지로 조성하라는 나의 계획에 이호준 회장은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았다. 자금 조성을 비롯해 여러 가지 문제들로 인해서 최소 5년 이상의 기간을 두고 땅을 매입하겠다고 했던 삼진 그룹. 하지만 내가 요구하지도 않았음에도 알아서 그 시간을 단축하겠다는 이호준 회장의 말에 나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잘 생각하셨네요. 이제 제가 말하는 게 무슨 의미인지 깨달았나 보군요.”
“이제 이 세상은 자연 그대로가 가장 값진 가치를 자원이 될 것이란 말 말인가? 솔직히 말해서 그때는 그게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지 못했었지만······. 이제는 분명히 알겠네. 자연이······. 아니, 그 마나라는 에너지가 가진 가치는 그 어떤 석유나 석탄과 같은 자원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자연과 생태계가 보존된 구역에서 발생하는 풍부한 양의 마나.
이 마나가 앞으로 전 세계의 패권을 좌우할 아주 강력하고 중요한 자원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몸소 체험한 이호준 회장은 조금은 진지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서 자네가 말하는 그 생태 부지를 10곳으로 한정하지 않을 생각이네. 삼진 그룹의 재무 상태가 허락하는 만큼, 최대한 많은 곳에 자네를 위한 정원을 만들어주도록 하지.”
마음 같아서는 대한민국 국토 전역을 다 마나를 발생시키는 천연 구역으로 만들고 싶은 듯한 이호준 회장. 하지만 그런 그의 제안에 나는 피식 웃으며 무언가를 꺼내놓았다.
“그건 뭐 알아서 하시고 이거나 보시죠.”
“이건······. 또 뭔가······?”
“저번에 그 엘런 더스크인가 하는 아저씨가 우리한테 스토커처럼 엄청나게 관심 가지고 달라붙었잖아요. 타임리스처럼 자기들 자동차에도 그 기술을 적용할 수 있냐고요.”
타임리스와 같이 마나를 활용해 무한동력으로 자동차를 돌리고 싶어 안달이 났었던 엘런 더스크. 공개적으로 이호준 회장에게 온갖 구애를 다 하면서 TV 인터뷰와 SNS를 통해서 온갖 제안을 다 날리던 그를 위해서 나는 감히 거부할 수 없는 신제품을 만들었다.
“하급 마나석이에요. 석영이랑 니켈, 구리, 황동 등 이것저것 섞은 합금으로 만들었는데 이거로도 자동차 하나 굴리는 데에는 충분할 것 같더라고요.”
내 지시에 따라 온갖 실험을 하며 다양한 시제품을 만들어가고 있는 매지컬 컴퍼니. 아영이 경영하고 있는 그 회사에서 가지고 온 이 샘플은 내가 주입한 마나의 푸른빛을 은은하게 내며 범상치 않은 느낌을 풍기며 한껏 반짝이고 있었다.
우우우웅.
“마나석이라······. 마치 배터리 같은 녀석이군.”
“맞아요. 배터리랑 다를 바가 없죠. 일단 제작 과정에서 이미 마나 회로랑 수식은 전부 각인해놓은 상태라서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예쁘장한 수정이나 보석으로 보일 거예요. 현존하는 그 어떤 분석 장비로도 확인할 수 없게 이것저것 안전장치도 걸어놨으니 기술 유출 위험도 없고요.”
“그런가······?”
“네. 억지로 마나석을 훼손한다면 뭐 간신히 마나 회로도를 확인할 수 있겠지만 아마 모르긴 몰라도 목숨을 걸어야 할걸요? 섣불리 건드렸다가는 저장된 마나가 폭주해서 어마어마한 폭발을 일으키게 될 테니까요.”
내 사악한 미소에 이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손에 들고 있던 마나석을 황급히 내려놓는 이호준 회장. 그러고는 그는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회사 차린다고 하길래 뭘 하나 했더니······. 이런 괴물 같은 걸 만들어내고 있었군. 그래서 용량은 어느 정도 수준인가?”
“음······. 용량으로 따진다면 10 마나 코인 정도?”
“······? 그게 도대체 어느 정도인가?”
“아차차. 마나 단위로는 이해하기 어렵겠네요. 음······. 이 마나를 전부 전기로 변환한다고 가정한다면······. 대략 400KW 정도에요.”
“뭐······? 뭐라고? 400······?”
400KW.
현재 엘런 더스크의 회사인 데슬라에서 생산하는 최고급 모델인 데슬라 S의 배터리가 100KW인 것을 고려하면 그의 4배에 달하는 그야말로 괴물 같은 수준의 용량. 그것만 해도 경악스러운 수준이었지만, 그것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그 크기였다.
“그러니까······. 자네 말은 내 손바닥 정도 크기의 이 마나석 하나만으로도······. 그렇게 어마어마한 양의 전력을 저장하고 또 활용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죠? 이게 또 좋은 점이 알아서 자가 충전도 해요. 주변 대기에서 마나를 흡수해서 알아서 축적하기도 하니까 그냥 시간이 지나면 마나석이 충전이 되기는 해요. 물론 대기 중의 마나 농도가 너무 적어서 충전량보다 소모량이 더 많아서 결국에는 전부 바닥인 날 거예요. 다시 말해······.타임리스처럼 무제한으로 펑펑 쓸 수 없다는 말이죠,”
전력 사용량의 차이 때문에 벌어지는 어쩔 수 없는 한계.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손에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도 아니고 자동차에 쓴다면 없는 것과 다름없는 가벼운 무게와 무지막지한 에너지 용량만을 생각한다면 이 마나석이라는 것은 전기 자동차와 배터리 산업 전체에 거대한 충격파를 몰고 올 것이 분명했다.
“머리 아프군······.”
“왜요. 탐이라도 나세요?”
“탐이 안 난다면 그거야말로 거짓말 아니겠는가? 하지만 그것보다는 우리 삼진 쪽에서 2차 전지와 관련해서 투자한 사업들에 대해서 생각 중이었네. 지금이라도 전부 중단시켜야겠어.”
내가 만들어낸 마나석과는 경쟁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일찌감치 사업을 접을 생각부터 하는 이호준 회장. 그리고 그런 그의 혼잣말 같은 중얼거림에 나는 히죽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시는 게 좋을 거예요. 나중에 중급이나 상급 마나석까지도 나오게 된다면 아무래도 배터리 산업 쪽으로는 가망이 없을 테니까요.”
최상급의 경우에는 하나의 소도시가 필요한 에너지까지도 충당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용량과 출력이 어마어마했기에 나는 앞으로 있을 그 어떤 경쟁에서도 패배할 자신이 없었다.
“알겠네. 그럼 일단 이 녀석은 내가 엘런 더스크에다가 전달하고 매입 의사를 넌지시 물어보도록 하지. 이거 하나당 가격은 어느 정도 수준이면 되겠나?”
“음······. 정확히 가격을 정한 건 아니지만 대충 만 원 정도로 생각하고 있어요.”
“뭐······? 뭐라? 마······만 원?”
수천만 원에 달하는 가격을 자랑하고도 하급 마나석과는 비교도 안 되는 용량과 무지막지한 크기를 자랑하는 배터리들. 그 성능과 수준을 고려한다면 솔직히 억 단위로 가격을 매겨도 싸다고 구매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녀석이었지만, 고작 만 원밖에 하지 않는다는 나의 말에 이호준 회장은 입을 벌렸다.
“사실 저는 이거로 돈 벌 생각이 없어요. 최대한 가격을 싸게 해서 시장에 보급할 생각이에요. 마나석을 사용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리고 이것이 대중화되면 될수록 마나라는 에너지가 가지는 가치는 훨씬 더 높아질 테니까요.”
지금 현재는 이용자를 최대한 많이 끌어모으는 것이 우선인 상황. 돈을 버는 것은 그 이후에 해도 늦지 않았다.
“그렇다면······. 도대체 뭐로 돈을 벌 생각이라는 건가? 설마 그냥 손해 보면서 팔겠다는 건 아닐 텐데?”
“그럼요. 제가 무슨 호구에요? 자선 사업가도 아니고 당연히 돈은 벌어야죠.”
마나석을 양산하고 그 마나석에 마나를 주입할 수 있는 충전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는 유일한 회사. 매지컬 컴퍼니.
앞으로 마나석을 이용하는 수많은 고객에게 멀린의 정원에서 생산하는 깨끗하고 순수한 양질의 마나를 아주 비싼 가격에 팔아먹을 생각을 하며 나는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이호준 회장에게 나의 꿈을 이야기했다.
“저는 말이죠. 이 지구 최고의 봉이 김철수가 될 거예요.”
물 대신 마나를 팔아먹는 봉이 김철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