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인공 마법 만세!-66화 (66/242)

66화.

66화.

무료 논문 게재 플랫폼. Arxiv.

전통적으로 행해지는 까다로운 정식적인 논문 심사를 받지 않고 그저 날 것의 초안 그대로를 그 누구든 자유롭게 올릴 수 있는 이 사이트에는 하루에도 수백 개가 넘는 논문이 올라왔다. 그리고 이곳에 새롭게 올라온 하나의 논문이 초록빛의 텍스트로 반짝이며 수많은 이들을 유혹했다.

[ 워프(Warp)는 이론적으로 가능할 수도 있다. ]

과학자라면······. 아니 물리학을 연구하는 학자라면 다들 한번은 상상해 봤을 SF의 꽃이자 상징과도 같은 초 미래적인 과학 기술. 워프.

이것을 주제로 한 논문이라는 사실은 이내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수많은 여러 사람의 이목을 끌었지만, 그 댓글의 반응은 그렇게 좋지만은 않았다.

- 워프? 또 어떤 관심병 걸린 놈이 또 말도 안 되는 논문으로 어그로 끄냐?

- 하여간 관리자 이 새끼들은 이딴 논문도 못 거르네. 일하는 건 맞냐?

- 저번에는 누가 상온초전도체 개발했다고 헛소리하더니 이번에도 또 그놈이네.

- 에라. 워프가 가능하면 나는 이미 리만 가설을 해결했겠다.

자유롭게, 그리고 무료로 논문을 올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 반대급부로 그 어떤 검증 절차를 밟지 않아서 그 논문의 사실 여부와 질적 수준을 전혀 확인할 수 없는 상황. 그렇기에 온갖 저급하고 허무맹랑한 주장이 가득 담긴, 논문이라고 부르기에는 부끄러울 정도로 쓰레기 같은 글들도 매일 같이 올라왔기에 그 논문을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게다가······.

- 그런데 이거 초록이 진짜 골 때리는데? 어지간한 인간은 아닌 것 같다.

- 한국대학교의 이명찬 교수는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 머저리 같은 똥 멍청이다······? ㅋㅋㅋㅋ 이거 완전 또라이 아냐?

논문에 관한 핵심적인 내용을 요약하는 초록(Abstract)에다가 자기 교수의 실명을 거론하며 욕을 적어놓은 빠꾸 없는 패기에 실소를 금치 못하는 이들. 그리고 이내 전혀 들어본 적 없는 생소한 이름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 김영희?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인데

- 한국대학교 교수 욕하는 거 보니까 거기 대학원생이거나 교수겠지. 그런데 왜 소속을 아예 안 적고 비워놨데?

평화롭고 권태로운 논문 사이트에 어느 날 갑자기 올라온 머리부터 발끝까지 어그로가 철철 흘러넘치는 하나의 게시물. 그로 인해 수많은 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영희의 논문은 조금씩 화제가 되어가며 뜨겁게 달구어지기 시작했다.

당사자인 영희만 까맣게 모르는 상태로 말이다.

*

“······.”

너무나도 싸늘한 분위기의 연구실. 평상시에는 그래도 여러 이야기가 오가며 차분하지만 조금은 시끌벅적하게 일을 했겠지만, 지금 영희가 있는 이 방 안에는 그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고 있었다.

“저기 선배님······. 혹시 제가 도와드릴 일이······.”

“너한테 뭐 바라는 거 없으니까 말 걸지 말아줄래?”

평소라면 친근한 미소를 지으며 온갖 잡다한 업무를 쏟아주고 갔을 석사 4학기의 선배. 하지만 그는 영희가 말을 걸자 그 어느 때보다도 싸늘한 표정으로 철저히 그녀를 무시했다. 그리고 그것은 비단, 그만이 아니었다.

“진짜 무슨 낯짝으로 연구실에 다시 온 거지?”

“나중에 교수님 오시면 또 한바탕 하시는 거 아냐?”

“어휴. 나 같으면 당장 자퇴서 내고 때려치웠다.”

“하여간 조금 안다고 주제도 모르고 잘난 척하는 헛똑똑이들이 문제라니까.”

마치 대놓고 들으라는 듯이 서로 속닥거리고 있는 같은 연구실의 대학원생들. 영희를 욕하고 있는 사람 중에 직접 그 상황을 목격한 사람은 세 사람도 안 되는 상황이었지만, 이들은 그저 소문만 듣고 일방적으로 지도 교수를 깔아뭉갠 미친놈으로 영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건······. 제가 원해서 그런 게 아니라······!”

무어라 항변하려고 입을 열었던 영희. 하지만, 그녀는 말을 꺼내자마자 거칠게 연구실 문이 열리며 등장한 이명찬 교수 때문에 아무런 해명도 하지 못했다.

“야! 김영희! 너 미쳤어? 어? 이게 보자보자하니까 진짜 눈에 뵈는 것도 없지?”

“네······?”

잔뜩 화가 난 듯한 얼굴로 고성을 터트리며 험악한 기세로 다가오는 이명찬 교수. 하지만 나름대로 어제의 무례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를 드리려고 마음먹고 있었던 영희는 갑작스러운 그의 격한 분노를 마주한 채 당혹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하지만 그런 영희에 분노에 더 화가 난 듯한 이명찬 교수는 거의 주먹을 한 대 날릴 것처럼 온몸을 부르르 떨면서 평소의 그 인자한 노교수의 모습을 완전히 벗어던진 채 잔뜩 일그러진 표정으로 그녀를 노려보며 으르렁댔다.

“이 새끼가······. 내 앞에서 대놓고 논문이 뭐 틀렸느니 뭐니 할 때 별말 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 뒀더니 인터넷 네 멋대로 논문을 올려? 그것도 소속도 똑바로 적지 않고 무소속으로?”

“예······? 그게 무슨······?”

“모르는 척 연기는 그만두지 못해! 이 가증스러운 것이······. 감히 석사 1년 차 주제에 나한테 지적하는 것도 모자라 공개적으로 전 세계의 학자들 앞에서 내 얼굴에 똥칠해? 네가 그러고도 학계에서 멀쩡히 남아있을 수 있을 것 같아?”

“꿈도 꾸지 마! 내가 가진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네 녀석이 이 대한민국 어디에서도 발붙이지 못하게 완전히 묻어버릴 테니까! 나 이명찬이야 이명찬! 어디 너 같이 새파랗게 어린놈이 감히 상대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보여?”

마치 불구대천의 원수를 보는 것처럼 강렬한 적의를 드러내며 독기를 품은 이명찬 교수. 생각보다 과격한 그의 반응에 당황한 영희는 이내 침착하게 정신을 가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자······잠시만요. 교수님. 뭔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은데······.”

“오해? 오해라고? 지금 이걸 보고도 나한테 오해라는 말이 나와!”

파악.

흥분을 이기지 못해 영희 얼굴에 던져버린 수 페이지의 종이들. 바닥에 흩날리며 떨어진 그 종이들에 빼곡하게 적혀져 있는 무언가 친숙한 공식들을 보며 영희는 동공 지진을 일으키며 황급히 그 종이들을 집어 들었다.

“이건······.”

Arxiv의 로고와 함께 자신의 이름 석 자가 선명하게 박혀 있는 논문. 그리고 그 초록에는 맹세컨대 그녀가 적지 않은 매우 자극적이고 도발적인 문구가 저자의 의도로 초록에 적나라하게 들어가 있었다.

[ 수업 시간에 교수가 쓴 논문이 틀렸다고 조용히 알려줬는데 헛소리하지 말라고 사람 말 무시하고 병신 취급하길래 너무 엿 같아서 이 논문을 쓰게 됨. 이게 무슨 내용이냐면······. ]

“······.”

적나라하게 이명찬 교수가 최근에 발표했던 논문의 제목까지 친절하게 언급하며 그를 공개적으로 저격한 상황. 그리고 그것을 보고 나서야 영희는 비로소 이명찬 교수가 왜 이렇게 격노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게다가 그녀는 곧장 이러한 사태를 만들어낸 주범이 누구인지조차도 눈치챘다.

“하아······. 이 망할 새끼가······.”

자신의 하나뿐인 동생이자 갑자기 완전히 돌변해버린 자칭 위대한 대마법사 멀린.

김철수.

그가 아니라면 이런 정신 나간 희대의 미친 짓을 벌일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에 영희는 철수가 범인이라는 것을 확신했지만,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사실 이 논문은 제가 올린 게 아니라 동생이 올린 거예요.’

마치 화려한 불꽃 패드립을 날리고 판사한테 사실 우리집 고양이가 썼다고 해명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변명. 아무리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이 상황을 설명해봤자 절대 본전도 못 찾을 거라는 생각에 영희는 이를 악물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집에 가면 두고 보자······. 진짜······. 죽었어.”

어떻게든 관계를 개선해보고자 노력하려던 영희.

하지만 상항이 이렇게 된 이상 이명찬 교수와는 완전히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상황이었다. 아니, 어쩌면 이 대한민국에서는 그 어떤 학계에도 발을 붙이지 못하게 되었을 공산이 컸다.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인 한국대학교에서 자그마치 20년 동안 정교수로 재직했던 이명찬 교수의 영향력은 감히 무시할 수 없는 명실상부한 최고봉에 가까웠으니까.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네······.’

눈을 감으며 생각을 정리하고 이내 결심을 굳힌 영희.

그리고 그녀는 씩씩거리는 이명찬 교수 앞에 진심으로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건넸다.

“죄송합니다. 교수님. 논문과 관련해서는 저도 할 말이 없네요. 다시 한번 저의 무례와 예의 없는 행동들에 대해서 진심으로 사과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비록 자신이 아니라 빌어먹을 동생이 한 짓이지만 도의적인 책임감을 느끼며 대신 사과의 말을 건넨 영희. 하지만 그것을 끝으로 그녀는 지금까지 가슴 속에 담아왔던 솔직한 생각들을 속사포처럼 토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교수님도 대학원생을 조금은 인간적으로 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일요일 밤 9시에 문자로 대구에 친형 결혼식 때문에 가 있는 사람을 교수님 딸 공항 마중 나가라고 다음 날 아침까지 서울로 오라고 하는 건 정말 아니지 않나요?”

“지원금 타올 수 있는 사업이나 연구 용역 아니면 관심도 없지. 진짜 연구라고는 제대로 하지도 않아. 조금 똘똘해 보이면 데려다가 온갖 일만 무더기로 던져놓고 논문이나 학술지에 떡하니 이름만 올려놓는 건 논문 지도가 아닙니다. 도둑질이지.”

“도대체 왜 대학원생들한테 지급된 연구비를 다시 본인 계좌로 보내라고 하는 겁니까? 솔직히 말해서 우리는 그걸 횡령이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돈도 많으신 분이 도대체 뭐가 아쉬워서 그렇게 대학원생들 코 묻은 돈을 뺏어가세요?”

““너······. 너 미쳤어?”

자신의 치부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영희. 그런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지금껏 억눌려져 있던 대학원생들의 울분과 분노가 거침없이 튀어나오기 시작하자 이명찬 교수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웬만하면 안 하려고 했는데. 교수님이 매번 세미나 출장 가신다고 사모님한테 말해놓고 몰래 전국 방방곡곡 이진 여대의 그 교수님이랑 여행 다닌 거 다 알고 있어요. 저번 달에도 제주도로······.”

“그 입 닥치지 못해!”

자신의 불륜까지 폭로하려고 하자 빽 하고 소리를 지르며 영희의 입을 막은 이명찬 교수. 그리고 그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영희를 가리키며 말했다.

“너······. 내가 반드시 이 학교에서 퇴학시키고 만다. 아니, 넌 이미 퇴학이나 다름없어! 한국대학교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것도 모자라서 그런 식으로 거짓 소문이나 퍼트리며 나를 음해하려고 해? 지금 네가 올린 그 논문 때문에 전 세계의 학자들이 얼마나 우리를 비웃고 있는지 알아? 이거 봐! 네 녀석이 올린 그 논문 같지도 않은 쓰레기 글 때문에 사람들이······. 어?”

논문의 형식도 갖추지 못했고.

교수와의 불화를 적나라하게 적어놓은 자극적인 초록.

거기에 딱 봐도 어그로성이 다분해 보이는 제목까지.

그야말로 삼위일체를 이루며 온갖 부정적인 피드백과 혹평이 달려있던 그녀의 논문.

하지만 지금 이명찬 교수가 확인하고 있는 그녀의 논문에 달려있던 코멘트들은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 이거······. 뭔가 이상한데? 수학적으로는 전부 다 말이 돼. 군더더기라고 할만한 게 없는데?

- 흐음······. 아직 정확히 다 이해가 되는 건 아니지만 정말 흥미로운 공식이군요.

- 고정 좌표계? 시공간의 왜곡과 그에 따른 변곡점의 규칙성? 이런 건 처음 보는데?

- 이 논문 참고 문헌도 없는데? 도대체 어디서 이런 개념을 가지고 온 거지?

- 죄송하지만 이 논문 저자에 대해서 제대로 아시는 분 없습니까?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좀 나누어보고 싶어지는군요.

“이건······?”

그녀의 논문에 쓰여있는 공식들이 가진 가치를 알아보기 시작한 사람들. 그리고 그런 댓글이 하나도 아니고 수십 개가 우수수 달린 채 서로 댓글로 그녀의 논문에 대해서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는 것을 보며 이명찬 교수는 할 말을 잃었다.

“퇴학이라고요······? 굳이 그러실 필요 없어요. 안 그래도 저도 그냥 자퇴하려고 마음먹은 상태였으니까요.”

예상치 못한 상황에 하염없이 컴퓨터의 모니터를 바라보며 멍하니 서 있는 이명찬 교수에게 영희는 무언가를 결심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이내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상황에서 자신의 목에 걸려 있던 한국대학교 대학원생이라고 적혀 있는 목걸이를 벗어서 이명찬 교수의 앞에다 보란 듯이 내려놓고는 그 어느 때보다도 홀가분한 표정으로 한마디를 던지고는 떠나갔다.

“이런 곳은 이제 다니라고 해도 더러워서 못 다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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