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61화.
평범(?)한 일상을 이어오던 30대 중반의 체육 교사 김두식.
운동에 어마어마한 열정을 가지고 있고, 또 과거 국가대표까지 했었던 선수 출신이라는 것 말고는 그다지 특별한 것이 없던 그의 일상에는 크나큰 변화가 생겨났다.
“선생님. 왜 그렇게 운동 열심히 하세요······?”
“허억······. 허억······. 일이 좀 있어서 그런 거니 신경 쓰지 마라······.”
“저기 김 선생. 혹시 요즘 무슨 일 있어? 안색이 엄청 안 좋은데?”
“아닙니다. 그냥 조금 피곤해서요.”
“······. 병원이라도 한번 가 보게나. 그렇게 내버려 두다 큰 병 생겨.”
수업을 받는 학생들이나 지나가다 마주치는 선생님마다 걱정스러운 얼굴로 한 번씩 물어볼 정도로 힘들어 보이는 두식. 하지만 그때마다 아무런 일 없다면서 어물쩍 넘어갔기에 그 누구도 정확한 속사정을 알지 못했지만, 오직 나만이 두식이 힘들어하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흐음······. 중량을 자그마치 5배나 높였는데도 생각보다 멀쩡하게 돌아다니네.”
그의 전신에 걸어놓은 저주 마법.
죄악의 무게(The Weight of Sin).
처음에는 가볍게 2배로 시작했지만, 어느새 5배까지 그 강도가 올라간 저주는 일반인이라면 걷는 것조차도 불가능할 수준으로 그의 전신을 옥죄며 짓누르고 있었다.
“자······. 오늘도······. 운동장 10바퀴부터 가볍게 시작하자······.”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조금도 쉬지 못하고 전력을 다해서 기존에 수행하던 그 극한의 체력 단련을 이어가야만 하는 두식. 제아무리 강철 체력을 자랑하는 한 마리의 고릴라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던 그였지만, 인간의 한계를 오래전에 벗어난 이 가혹하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 그는 그 특유의 열정을 잃어버린 채 마치 시체처럼 비척거리며 운동장을 뛰었다.
“선생님······. 뭔가 이상한 거 같지 않아?”
“그러게······. 엄청 음울해졌지?”
“전에는 팔팔했는데 요즘은 왜 저렇게 좀비처럼 변했지?”
“그러게······? 여자친구랑 뭐 헤어지기라도 하셨나?”
아이들조차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수군덕거리는 상황. 하지만 그런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역시······. 아주 모범적인 학생이라니까? 농땡이 피우지 않고 착실하게 가르침을 따르고 있으니까 가르치는 보람이 있네. 이래서 선생님을 하는 건가?”
[ ······. 이게 가르치는 거라고? 그냥 가학적으로 고문하는 거 아니었어? ]
“그건 또 무슨 헛소리야?”
[ 아니, 도대체 주인이 뭘 가르친 건데? 그냥 지금까지 한 거라고는 매직 미사일을 난사해서 흠씬 패 준거랑 저주 마법 걸어놓고 스스로 육체를 혹사하게 만드는 거밖에 없었잖아. ]
자그마치 한 달이라는 시간에 걸쳐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이어진 개인 교습.
하지만 그 짧지만 기나긴 시간 동안 두식은 그 어떠한 이론적인 교습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저 교육을 빙자한 일방적이고 또 교묘한 폭행과 괴롭힘만을 당하고 있었을 뿐. 그렇기에 용용이는 안쓰럽다는 듯이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렸다.
[ 어휴······. 진짜 내가 다 불쌍하더라. 나도 솔직히 제자 가르칠 때 좀 혹독하고 엄한 수준으로 가르치는 성향이긴 한데 이 정도는 아니라고. ]
최소한 자세한 설명이라도 하고 과제를 부여하는 용용이. 하지만 그런 그와 다르게 나는 거의 일방적인 수준으로 주입식 교육을 하고 있었다.
“너도 아영을 보면 알잖아. 마나를 느낀다는 게 말로 해서 되는 거냐? 그렇다고 멀린의 정원에 데려가서 기약 없이 수련하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그냥 직접 몸으로 느끼고 체화하는 게 맞지. 그러니까 이렇게 편법이지만 확실한 방식으로 가르쳐주고 있는 거잖아. 솔직히 저 선생님으로서는 나한테 감사하다고 엎드려 절해야 하는 상황일걸?”
“끄으으으윽······.”
이를 악물고 부르르 떨리는 한 손으로 팔굽혀펴기를 하는 김두식. 거의 터질 것처럼 새빨개진 얼굴로 흉측하게 일그러진 표정을 지은 채 아득바득 운동을 이어가는 그의 모습을 보며 모두가 질린다는 표정을 짓고 있을 때 나는 여유로운 얼굴로 품에 안고 있던 용용이의 머리에 턱을 괴며 히죽 웃으며 말했다.
“두고 보라고. 이 방식이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마나에 각성하고 말 테니까.”
[ ······. 만약 실패하면? ]
“그러면······. 뭐 저렇게 몸 축내다 수명 한 10년쯤 더 깎이는 거지.”
너무나도 무책임한 내 답변에 용용이는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이내 깊은 한숨과 함께 나지막한 그의 구시렁거림이 들려왔다.
[ 주인은······정말이지······. ]
*
모두가 학교를 떠나간 저녁 6시.
11월의 쌀쌀해지는 가을 무렵에 짧아진 해는 이미 산 너머로 사라진 지 오래였고, 어둑해진 분위기 속에서 조용해져야 할 학교에서는 연신 격렬한 굉음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퍼어엉. 퍼퍼퍼퍼펑.
내가 만들어놓은 마법진으로부터 쉴새 없이 쏟아져나오는 매직 미사일.
그 넓은 체육관 한가운데에 서서 오직 두 팔로 사방에서 날아오는 매직 미사일을 막아내고 또 버텨내야 하는 두식. 비록 제압용에 위력을 최대한 낮췄다 하더라도 이미 수십······. 아니, 수백 개의 매직 미사일을 막아선 그의 두꺼운 팔은 이미 피투성이로 흉측하게 변해 있었다.
“크으으윽······.”
한 발 한 발 막아낼 때마다 고통에 가득한 얼굴로 신음하는 두식.
이 이상 훈련이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해 보이는 상태. 하지만 나는 그런 상황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꾸 무식하게 그렇게 막으려고 하지 말고요. 마나를 끌어 올려서 팔에 둘러서 방어해 보라니까요? 마나로 막아내면 진짜 아무것도 아닌 공격인데 뭐 이거 가지고 죽을 것처럼 앓는 소리 하고 그러세요?”
아주 적은 마나로도 충분히 방어할 수 있는 수준의 위력.
하지만 그 한 줌의 마나도 제대로 끌어 올리지 못하는 두식을 보며 나는 한심하다는 듯이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 노력하고 있다.”
“아니, 노력만 하지 말고 결과로 보여달라니까요? 마나도 충분히 느낄 수 있고, 체내에도 마나가 많이 축적되어 있는데 도대체 왜 그걸 통제하지 못하는데요?”
한 달의 시간 동안 이어진 매직 미사일 찜질과 저주 마법이 걸린 상태에서 이어진 과격한 운동들. 그 마법들이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과정에서 미세하게 손상되고 파열된 그의 육신은 회복하는 동안에 이전과는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해가고 있었다.
“자기 육체의 자그마치 5배나 되는 무게를 버텨낸다는 게 일반적인 인간이 가능한 수준으로 보여요? 이미 기존의 한계를 벗어났는데 아직도 그 사고의 틀을 벗어나지 못해서 허덕이는 꼴이라니 참······.”
육체적인 강도와 저항력은 마나를 운용하는 데 무리가 없을 정도로 단단하게 단련되었음에도 평범했던 과거의 자신의 모습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는 두식. 하지만 그는 그런 나의 자조 섞인 중얼거림에 조금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모르겠다······. 분명히 내 몸에서 무언가가 느껴지는 건 맞는데, 그 어떤 방법으로도 아무리 노력해도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있다.”
자신의 몸속에서 느껴지는 이질적인 기운들. 전신에 고르게 퍼져있는 충만하면서도 또 강렬한 에너지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지만, 두식은 이 기운을 조금도 운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게 다 노오력이 부족해서 그런 거예요. 노력. 그 무엇보다 자유분방하고, 그 무엇보다 비정형화된 마나를 운용하기 위해서는 확고하고, 조금도 흔들리지 않으며, 굳건하고 강렬한 의지가 필요한 거예요. 바로 저처럼요.”
쿠우우우웅.
나의 의지에 따라서 체육관 전체를 휘몰아치는 강력한 마력의 파장. 두 발로 감히 감당하고 서 있기 힘든 수준으로 몰아치는 마력의 폭풍 속에서 두식은 잠깐 버텼지만 이내 휘청거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다시 말해서······. 선생님은 의지박약 그 자체라는 거죠. 고릴라라고 불릴 정도로 강대하고 근육으로 잘 단련된 육체를 가지고 있을지는 몰라도, 그 속에 숨어 있는 정신만큼은 어린아이보다도 나약하고 유약하기 짝이 없다는 말이죠.”
운동에는 그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광적일 정도로 집착하는 두식.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그를 가르치면서 삼진 그룹의 정보력을 이용한 조사까지 마친 상황이기에 나는 그가 그러는 이유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조금 과격하긴 하지만······. 여기서 자극을 한번 줘 볼까?'
마나를 각성하기 위해서 필요한 계기. 가장 확실하게 그를 자극하기 위해서 나는 충격 요법을 주기로 결심하고 그를 강하게 밀어붙이기 위해서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았던 그의 비밀을 꺼내들기 시작했다.
“팔을 다친 게······. 승부 조작에 가담하지 않아서 그에 따른 보복으로 인한 거죠?”
“······!!!”
갑작스러운 내 말에 일순간 경악스러운 표정을 짓는 두식.
그 누구에게도 이야기한 적 없는 과거의 이야기였지만, 내 입을 통해서 떠올리기조차 싫은 과거의 트라우마가 계속해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가오리 파인지 날치 파인지 어디 듣도 보도 못한 조폭들 제안 거절했다고 바로 늦은 밤 길거리에서 뒤치기 당했다면서요? 그로 인해서 올림픽 국가대표까지 선발됐던 유망주 권투 선수에서 하루아침에 아무 쓸모도 없는 폐인으로 전락해버렸고요.”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권투 종목으로 대한민국 최초로 금메달을 따겠다는 젊은 청년의 꿈을 앗아간 이들. 하지만 두식은 그러한 상황에서 좌절하고 절망했지만, 그 무엇도 하지 못했다.
“그래도 명색이 제 선생님인데 이렇게 말하면 죄송하지만······. 혹시 병신이에요? 다른 것도 아니고 일생의 꿈과 미래 자체를 빼앗아간 놈들이 누구인지도 뻔히 알고 있으면서 그걸 그냥 가만히 내버려 둔다고요?”
“······.”
“저 같으면 솔직히 뒤질 때 뒤지더라도 가스통 들고 사무실로 쳐들어가서 최소 몇 놈은 같이 데리고 갔을 거 같거든요. 제대로 된 증거도 없어서 결국 어중이떠중이 건달 하나 감방 가는 거로 끝났다면서요? 그래서······. 그거로 만족하세요?”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었지만, 거침없이 후벼 파인 두식의 트라우마. 그리고 그는 처음으로 그 열정 넘치는 체육 교사의 가면 뒤에 숨겨져 있는 어느 상처 입은 한 인간의 모습을 드러냈다.
“그만······.”
“그렇기에 선생님의 정신은 너무나도 유약하다는 거예요. 최소한 당한 만큼 복수를 해 주는 것은 기본적인 상식 아닌가요? 함무라비 법전도 몰라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팔 하나를 못 쓰게 만들었으면 최소한 똑같이 팔 하나는 작살 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겁쟁이처럼 이렇게 비굴하게 살아가면 그거로 행복한가요?”
“그만해!!!!!!”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독설을 쏟아붓는 나를 향해 고함을 내지르며 으르렁대는 두식. 그리고 나는 생생하게 그의 격렬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분노. 절망. 증오. 고통. 그리고······. 후회까지.
분명 그 감정의 원천은 어둡고 음울하기 그지없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렬하고 절박한 한 인간의 의지 속에서 그의 몸속에 잠들어 있던 마나에 념(念)이 깃들기 시작했다.
[ 이건······. ]
우우우우웅.
본인 스스로 자각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리고 용용이는 분명하게 그의 체내에서 맹렬하게 움직이기 시작한 마나를 느낄 수 있었다.
“지금의 그 감정을 분명하게 기억하세요. 선생님을 엿 먹인 새끼들에게 그 순간을 두고두고 뼈저리게 후회하도록 만들어버리겠다는 복수심, 그리고 분노. 가장 찬란했던 순간에 처참하게 짓밟혀버린 미래에 대한 절망,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후회와 자조까지. 그 정도로 강렬한 의지가 아니라면······.”
“마나는 선생님의 통제에 따르지 않을 테니까요.”
우우우우우웅.
또다시 날아오는 수십 개의 매직 미사일.
하지만 그것을 마주하고 있는 두식은 이전과는 조금 다른 기세로 그 매직 미사일을 향해 두 팔을 막아섰다.
파아아아아앙.
이전과는 전혀 다른 파공음.
그리고 그는 이전과는 다르게 꼿꼿하게 자신의 두 발로 서 있었다.
푸른빛으로 일렁이고 있는 두 팔로 얼굴을 가린 채 말이다.
“축하해요.”
처음으로 마나를 각성하고 스스로 통제하는 데 성공한 최초의 인간. 김두식.
마나를 처음으로 끌어 올려 놓고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서 있는 그를 앞에 두고 나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이 세상의 두 번째 마법사가 된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