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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마법 만세!-54화 (54/242)

54화.

54화.

수십 년의 세월 동안 삼진 그룹을 책임지던 이호준 회장.

60이 넘어서며 노쇠해진 그는 사실 5년 이내로 모든 것을 자신의 후계자가 될 자식에게 물려주고 난 후 은퇴하기로 했었다.

삼진 그룹이 전 세계의 수많은 기업과 비교했을 때 최정상은 아니었지만, 한국에서만큼은 정점에 오른 회사로 성장시킨 그는 이제 앞으로의 미래는 자신이 아닌 후대의 몫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차근차근 그룹 내부의 여러 일을 정리해가고 있었지만, 어느 한 소년의 만남과 함께 그 모든 계획은 완전히 뒤엎어졌다.

[ 이 삼진 그룹을······. 대한민국에서······. 아니, 전 세계에서 그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는 강력한 부(富)를 가진 기업으로 만들어주도록 하죠. ]

본인을 위대한 대마법사라고 소개한 어린 소년. 멀린.

고작 중학생 수준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감히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의 회장인 자신을 앞에 두고도 너무나도 당당한 그의 태도에, 그리고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기적적인 효능을 가진 식물들을 보며 이호준 회장은 누가 봐도 경악할 만한 일을 저지르고야 말았다.

자신의 장남이자 앞으로 그룹의 미래를 이끌어갈 차기 후계자를 완전히 내쳐버리는 짓을 말이다. 하지만, 그는 그 선택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고 있었다.

왜냐하면······.

고작 6개월도 되지 않는 이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이미 아진 그룹은 자신들이 감히 감당할 수 있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거대한 변화를 지금 이 순간도 겪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회장님. FDA 측에서 저희가 신청한 신약의 심사를 패스트 트랙(Fast-Track) 절차에 따라 신속하게 진행하겠다고 알려왔습니다.”

최소 심사에만 10개월이 넘게 걸리는 FDA의 심사 절차. 우선 심사를 하더라도 6개월이라는 기간이 지나야만 했지만 패스트 트랙은 달랐다. 빠른 경우에는 한 달 만에 심사를 마무리하고 신약에 대한 승인까지 받을 수 있는 신속 심사 제도.

어지간한 상황이 아니고서야 받을 수 없는 이 절차를 삼진 바이오의 신약인 엘릭시르에 적용해 주겠다는 FDA의 우호적인 태도는 미국 정부가 이번 신약에 얼마나 많은 관심을 보이는지 짐작할 수 있는 방증이었다.

“그 까탈스러운 작자들이 아무 이유 없이 그런 제안을 하지는 않았을 텐데? 우리한테 뭘 바라고 그런 제안을 한 거냐?”

“아무래도 미 국방성 쪽에서 FDA에 압력이 들어간 것 같습니다.”

“국방성······? 그건 또 무슨 소리냐?”

미합중국의 모든 군무를 책임지는 미 국방성. FDA와는 전혀 관련 없는 이들의 이야기가 이용수 사장의 입에서 튀어나오자 이호준 회장은 황당하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그게······. 조금 정치적인 문제가 뒤섞여 있는 것 같습니다. 일단 최근에 미군에서 벌어졌던 사건이 몇 가지가 있는데······.”

현재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여러 분쟁에 깊숙하게 발을 들이밀고 있는 미국. 그렇기에 아무리 피해를 최소화하려고 노력한다 하더라도 사상자와 부상자는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러한 지속적인 인명 손실은 세계적인 여러 분쟁 속에서 전쟁을 지속해야 하는 미국 행정부로서는 부담이었다.

“흠······. 그러니까 미국 정부와 공동으로 전시에 활용할 수 있는 부상 치료제를 개발하자고 제안했다 이 말인가?”

“그렇습니다.”

그렇기에 획기적으로 사망자와 부상자를 줄일 수 있는 치료제의 개발이 절실한 상황.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등장한 살살이 풀은 미 국방성이 애타게 원하던 꿈속에서나 존재하는 의약품이나 다름없었다.

“그 대신, 개발한 치료제에 대해서는 10년간 미군에 우선 공급 및 납품해야 하며, 타국에 판매할 시에는 미국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뭐 조건 자체는 나빠 보이지는 않지만, 굳이 이런 제안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나? 어차피 원한다면 미국 정부와 공동 연구를 하지 않더라도 우리 힘으로도 독자적으로도 충분히 개발할 수 있을 텐데.”

살살이 풀을 재배하는 것이 가장 문제일 뿐, 신약 개발 자체는 살살이 풀의 성분인 넥타르의 효능이 너무 압도적이고 막강하기에 큰 문제가 없는 상황. 이미 신경 치료제 말고도 상처나 골절, 심지어 손상된 장기와 신체의 수복 및 재생과 관련한 신약 개발도 빠른 속도로 진척되는 중이었기에 미국 정부의 제안은 그다지 혹할 만한 것은 아니었다.

“······. 그렇긴 합니다만, 제가 생각할 때는 미국 정부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단순한 프로젝트의 협력을 넘어서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현존하는 바이오산업 전체를 완전히 뒤엎을 수 있을 정도의 파괴력을 가지고 있는 살살이 풀. 이런 말도 안 되는 사기적인 원료를 현재 생산하고 또 재배하는 것은 삼진 바이오가 유일했기에 이는 곧, 의약계의 패권을 쥐고 있던 자들에게는 커다란 위협이나 다름없었다.

“자신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파트너인지, 아니면 사전에 밟아버려야 할 적인지를 분간하기 위한 일종의 시험인가?”

“굳이 패스트 트랙 절차를 통해 심사를 받아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만약 이 제안을 거절하게 된다면 그에 따른 여러 보복이 알게 모르게 이어지겠죠.”

비단 바이오만이 아니라 수많은 사업을 미국 시장에서 벌이고 있는 삼진 그룹. 거기에 한국과 미국의 정치적 역학 관계까지 고려한다면 미국 정부와 척을 져서 좋을 것은 하나도 없었다.

“쉽게 말해서 살살이 풀의 종자를 비롯해 우리가 가진 살살이 풀의 데이터를 전부 제공해달라는 의미겠군. 좋아. 그쪽에서 원하는 게 그거라면 그렇게 하도록 해.”

“그래도 되겠습니까?”

“어차피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미국이라면 어떻게든 손에 쥐게 될 테니까. 환심을 살 수 있을 때 제공하는 편이 낫겠지. 게다가······.”

“우리가 가진 건 살살이 풀만이 아니지 않은가?”

멀린의 정원이라고 이름 붙여진 삼진 바이오의 생태 부지.

그곳에서 자라나고 있는 온갖 희귀하고 위험천만하기 짝이 없는 생명체 중에서 이미 몇 가지의 엄선된 종자들이 새롭게 조성된 재배지에서 대량으로 자라나고 있었다.

“헤르데시 허브, 구름버섯, 아르덴 베리, 케이프 독초······. 그 이외에도 우리만이 유일하게 재배할 수 있는 식물들이 자라나고 있지. 차후에 이것들을 기반으로 한 신약까지 시장에 공개된다면 미국 정부조차도 막을 수 없겠지.”

살을 주고 뼈를 취한다.

지금 당장 살살이 풀을 넘겨준다 하더라도 그 이후로 시장에 쏟아져나올 수많은 혁신적인 효과를 지닌 신약들. 아무리 미국 정부라고 해도 일방적으로 그 모든 것들을 다 강탈하듯이 빼앗아 갈 수는 없었기에 이호준 회장은 너무나도 진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 삼진 바이오가 시장 전체를 독식하게 될 텐데, 조금은 자비롭게 나눠줄 필요는 있지 않겠나? 너무 많은 욕심을 부린다면 그것은 또 다른 문제를 만들게 될 테니까.”

아무리 애를 쓰더라도 삼진 바이오가 시장 전체를 장악하게 되는 건 막을 수는 없었다. 막말로 대머리들에게 탈모의 저주로부터 해방해 줄 수 있는 기적의 약초. 헤르데시 허브만 세상에 공개해도 벌어들일 금액은 도무지 가늠조차 되지 않을 지경이었기에 이호준 회장은 연신 기분 좋은 웃음을 흘리며 이용수 사장에게 말했다.

“적당히 미국 정부를 자극하지 않는 선에서 비위도 좀 맞춰주면서 처리하도록 해라. 안 그래도 삼진 전자 문제와 관련해서도 이래저래 여러 말이 나오는 상황이니 말이야.”

삼진 전자에서 새롭게 개발한 신제품. 타임리스.

이 제품의 작동 원리부터 시작해서 어떤 기술이 적용되었는지에 대한 수많은 의문과 논란이 가득한 상황에서 여러 관계 기관과 기업들이 물밑 접촉을 시작하면서 하루하루 삼진 전자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상황. 그 어느 때보다도 삼진 그룹 전체가 전 세계의 이목을 받는 상황이었기에 이호준 회장은 삼진 바이오에 내려진 터무니없는 미국 정부의 협박 아닌 협박에도 그리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삼진 그룹이 가지고 있는 패는 너무나도 많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호준 회장의 말에 이용수 사장은 잠깐 고개를 끄덕이다 이내 한숨을 푹 내쉬며 근심스러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건 그렇고······. 지금 멀린 님의 상황을 그대로 내버려 둬도 되나 조금 우려스럽습니다.”

“음? 그게 무슨 소리냐?”

“······. 모르셨습니까?”

“뭘 말이냐?”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전혀 모른다는 듯이 눈을 끔뻑거리며 되묻는 이호준 회장. 그리고 그런 그의 반응을 보며 이용수 사장은 그가 최근 뉴스에서 대서 특필된 BMC의 방송 사고와 관련해서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었다.

“최근에 신문이나 뉴스 안 보셨습니까?”

“타임리스와 관련한 여러 문제를 처리하느라 여간 바빴어야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러는 게냐?”

공식적으로 멀린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삼진 그룹 내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상황.

대리인이자 위장에 가까운 아영을 통해 그와의 거래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이호준 회장의 가장 측근인 비서실장조차도 멀린의 존재를 잘 모르고 있었기에 그 누구도 업무에 복귀해 완전히 일에 빠져 사는 이호준 회장에게 BMC에서 일어난 최악의 방송 사고에 대해서 아무도 언질을 주지 않았다.

“이거 좀 보십시오······.”

“뭐냐 이게······?”

인터넷에 대서 특필된 멀린의 사진.

그 유치찬란하기 짝이 없는 요술봉과 함께 정신이 혼미해지는 복장을 한 채로 광기 어린 미소를 지은 채 대형 포털 사이트의 메인을 장식하고 있는 그의 모습과 함께 뉴스 기사는 그야말로 클릭을 하지 않고는 참지 못할 문구의 제목이 적혀 있었다.

- 로또 복권 1등을 예측할 수 있는 멀린. 그는 진정 마법사인가?

- Magic Survival과 정확히 들어맞는 1등 당첨 번호

- 사상 최대 당첨자 탄생. 1등 당첨자만 122,312명. 당첨금은 약 20만 원.

- 충격에 빠진 복권위원회. 강도 높은 신속 조사 착수.

- 조작인가? 예언인가? 1등 로또 번호의 유출?

“이······이게······. 도대체······.”

로또 복권의 1등 당첨 번호를 전 국민이 시청하는 지상파 방송에서 생방송으로 읊어줬다는 멀린. 그리고 그 번호가 실제 당첨 번호가 되어버리며 한순간에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인이 되어 버린 그를 보며 이호준 회장은 자기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무래도 저희에게 했었던 그 이야기가 농담이 아닌 것 같습니다.”

마법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숨기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고 이야기했던 멀린.

처음에는 그 말이 그저 농담이거나 천천히 자신들을 통해서 이 세상에 보여주겠다는 것으로 이해했지만, 지금 그가 하는 행보를 보면서 이호준 회장은 그것이 그저 자신만의 착각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 마법이 존재하냐고요? 믿거나 말거나. 아저씨 마음대로 하세요. ]

마법을 부정하지도······. 그렇다고 긍정하지도 않는 모호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그 누구도 감히 반박하거나 설명할 수 없는 상식 외의 기행을 벌이고 다닌다면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사람들은 삼진 그룹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마법이 실제로 존재하며 앞으로 이 세계에 거대한 변혁을 가져올 것이라는 생각을 말이다.

“이······.”

어떻게든 그러한 상황을 최대한 늦춰야 하는 상황.

마음 같아서는 이 생각 없이 무작정 행동하는 것 같은 철부지를 앞에 두고 온갖 잔소리를 퍼부어주고 싶었지만, 그랬다가 그의 심사가 뒤틀려서 삼진 그룹을 떠나가 버리는 리스크를 감당할 수 없었기에 이호준 회장은 떨리는 손으로 황급히 전화기를 꺼내 들고는 어딘가로 전화 걸었다.

“양 실장. 지금 인터넷에 떠도는 헛소문들. 묻어버릴 수 있나?”

마법을 이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 멀린이 싸지른 거대한 똥.

그 똥을 최대한 조용하게 수습하기 위해서 이호준 회장은 그날 한참을 전화기를 붙들고 진땀을 빼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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