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
53화.
추석 연휴에 벌어진 BMC 역대 최악의 방송 사고.
Magical Survival.
시청률이나 대중들의 관심도는 그야말로 대박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높았지만,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나의 폭탄 발언 때문에 그 후폭풍은 그야말로 방송사 사장이 직접 나서서 사과문을 발표했음에도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 진짜 방송사는 저런 미친놈을 왜 사전에 거르지 않고 그대로 내보냈을까?
- 온 가족끼리 보다가 정말 당황했습니다. 7살 아이가 보고 있는 방송이었는데 제정신인가요?
- 아니 복장부터 뭔가 이상함을 못 느꼈나? 그렇게 섭외할 사람이 없었음? BMC?
- 로또 1등 번호? 자기가 노스트라다무스도 아니고 그걸 어떻게 맞힘?
- 시청률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하지만 공영 방송에서 이딴 자극적인 반응이 말이 되냐?
- 뮤튜브도 아니고 방송국에서 이런 짓을 벌인다는 게 진짜 한심하다.
나에 대한 비난과 욕설이 담긴 댓글도 많았지만, 그것보다는 복장부터 시작해서 이미 광기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점철된 또라이를 무슨 생각으로 출연시켰냐는 방송국에 대한 질책과 비난이 더 많은 상황. 나 하나로 인해 BMC 전체가 신나게 욕을 얻어먹으며 때아닌 고초를 겪는 것을 살펴보며 나는 아쉽다는 얼굴로 입맛을 다셨다.
“쩝. 아쉽네. 이렇게 되면 앞으로 BMC는커녕 아무런 방송국에는 출연도 못 하게 생겼네.”
만약 방송사에 출연 금지 블랙리스트 같은 명단이 있다면 거기에 최상단을 차지하게 될 것 같은 분위기. 하지만 그런 방송국 분위기와는 다르게 내 뮤튜브 채널은 역대 최고의 성장세를 보이며 구독자 수가 연일 최고 기록을 갈아 치우고 있었다.
[ 구독자 수 71만 ]
내 방송을 제대로 시청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일단 찾아와 보고 구독을 누르고 있는 시청자들. 그리고 그런 그들에게 화답하기 위해서 나는 정규 방송 시간이 되자마자 방송을 켜고 내 뮤튜브를 찾아온 모든 이들을 변함없는 한결같은 태도로 맞이했다.
“오늘도 안녕하냐 이 무식하고 미개한 인간들아.”
이제 보던 사람들은 거의 익숙해진 나의 인사였지만 신규 유입이 많아서 그런 건지 빠르게 달리기 시작한 물음표. 거의 갈고리로 채팅창이 가득 찬 상태였지만, 그 사이사이로 경악한 시청자들의 댓글이 내 눈에 들어왔다.
- ???
- 저게 뭔······.
- 와, 진짜 방송하고 그대로네. 저렇게 입고 다닌다고?
- 컨셉 진짜 ㅋㅋㅋㅋ. 완전히 미쳤네.
- 아무리 봐도 BMC 놈들 제정신이 아니었네. 이런 영상을 보고도 출연시켰다고? 도대체 무슨 깡으로?
평소와 같은 복장을 하고 있었지만, 그런 내 모습을 보고 경악하고 있는 사람들. 하지만 나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태연하게 이들에게 말했다.
“채팅 반응 보니까 어째 신규 유입이 많아 보이긴 하는데 다들 얌전히 닥눈삼 해라. 닥눈삼 뭔지 알지? 괜히 헛소리하다 정지당하지 말고. 전에도 한번 경고했지만 정지당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안 풀어 주니까 후회할 짓 하지 마라.”
괜히 내 관심 한번 끌겠다고 오만 이상한 짓을 다 하다가 차단당한 이들만 수천 명을 넘어가고 있는 상황. 그렇게 강력한 경고와 함께 방송을 시작하자 이내 경쾌한 알림음과 함께 커다란 메시지가 화면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 만물척척 류박사 님이 1,000,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
100만 원이나 되는 거액의 후원 알림. 수백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대형 뮤튜버도 쉽게 볼 수 없는 거액의 후원이 방송을 시작한 지 불과 5분도 채 되지 않아서 터지자 이내 온갖 반응들이 또다시 쏟아지기 시작했다.
- 미친? 누가 이런 곳에 100만 원을 태움?
- 초절정 미녀 여캠 방송이면 몰라, 이런 중딩 새끼가 관종질 하는 거에 돈을 쓴다고?
- ㅋㅋㅋㅋㅋ 씨발 돈이 진짜 썩어나누.
- 이런 데 하꼬 새끼한테 쓸 돈 있으면 그냥 기부나 하는 게 인생에 더 도움이 될 듯.
갑작스럽게 터져 나간 고액의 후원금에 또다시 폭주하는 시기심과 질투심에 가득한 채팅들.
하지만 물론 지금까지 후원이 아예 없던 것은 아니었다.
반말부터 하대에 예의범절이라고는 쓰레기통에 박아 버린 나에게 존댓말을 한번 들어 보겠다는 이유로, 아니면 이상한 이론 강의만 주저리주저리 쏟아 내지 말고 마법 하나 보여 달라는 이유로 만원에서 5만 원 선에서 간간이 터져 나왔지만 이런 식으로 초고액의 후원금을 투척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기에 나는 쏟아지는 수많은 악의적인 채팅들에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 다 닥쳐 봐. 너희들 때문에 뭐라고 하는지 안 보이잖아.”
일시적으로 채팅을 전부 얼리고 난 후에야 비로소 후원한 사람이 남긴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 안녕하세요 멀린 님. 이번에 출연한 방송 잘 봤습니다. 그 방송을 보고 의문점이 하나 생겼는데 혹시 질문 하나 해도 괜찮을까요?
일반적인 어그로라 하기는 너무나도 예의 바르고 정중한 메시지. 몇만 원 던져 주며 존댓말이나 마법이나 조금 보여 주라며 나를 광대 취급하는 다른 이들과는 무언가 다르다는 것을 느낀 나는 잠깐 그 메시지를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뭐가 궁금한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해 보세요.”
모두가 침묵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던져진 만물척척 류박사라는 닉네임의 처음 보는 유저가 던진 질문. 그리고 그건 그 누구도 감히 상상하지 못했을 정도로 길고 난해하며, 또 심오한 이 우주에 대한 의문이자 고찰이었다.
- 이번 방송에서 보니 당장 오늘 있을 로또 1등 당첨 번호를 말했더군요. 거기서 하나의 의문점이 생겼습니다. 멀린 님은 미래를 이미 결정된 것으로 바라보고 있는 겁니까? 불확정성의 원리에 입각한다면 현대 물리학에서 미래의 시간과 사건은 아직 확실하게 정해지지 않았다고 보는 게 정설입니다. 또한,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채팅창을 그야말로 빼곡하게 채워 버리는 질문 내용. 게다가 그 내용조차 해당 전공자가 아니면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온갖 복잡하고 낯선 용어와 이론들이 수두룩했지만, 나는 그 질문의 요지를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 미래 예지라는 것이 이론적으로 정말 가능한 것인가? ]
과학적인 이론을 통해서 내가 벌인 짓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듯한 그. 익명인 인터넷 세상에서 질문을 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나는 모니터 너머로 자그마치 100만 원이라는 거액을 후원하면서까지 나의 관심을 끌고 싶어 하는 그의 절박함만큼은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흐음······. 생각보다 빠르네요. 이렇게까지 내 강의에 충실한 학생이 있을 줄이야.”
내가 예상한 것보다 무척이나 빠른 반응.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이 지구 어디에선가 내가 하는 강의가 어디 중2병에 걸린 광기 어린 미친놈의 헛소리가 아니라 천문학적인 가치를 가진, 인류 최초의 마법 강의라는 것을 눈치채고 깊이 파헤치고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채팅창을 바라보다 이내 보드마카를 집어 들고 카메라를 향해 말했다.
“좋아요. 오늘 진도는 아니지만, 고액의 후원금도 받았고 처음으로 인간다운 수준의 질문도 받았는데 기분 좀 쓰죠. 오늘 특별 강의로 간다. 애들아. 어려워 뒤질 수도 있으니까 귀 열고 똑바로 들어라.”
* * *
방송을 열었을 때 실시간 시청자가 자그마치 4,000명이 넘었던 방송.
하지만 자그마치 1시간 25분 동안 이어진 나의 특별 강의에 인내심이 바닥나 대거 이탈해 버린 시청자들 때문에 나의 방송을 듣는 시청자들의 수는 이내 처참할 정도로 줄어들어 있었다.
[ 실시간 시청자 수 : 21명 ]
자그마치 99%나 추락해 버린 수치. 일반적인 뮤튜버라면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된다면 당장에라도 준비한 콘텐츠를 죄다 집어 던지고 먹방이든 뭐든 화려한 똥꼬쇼를 하며 시청자들을 붙잡기 위해서 안간힘을 썼겠지만, 나는 시청자들이 이탈하든 말든 쥐뿔도 신경 쓰지 않고 계속해서 하던 강의만을 이어 갈 뿐이었다.
“결론적으로 미래는 결정되어 있다고 볼 수 있어요. 그렇기에 아주 약간의 정보라도 현재의 존재가 미래에 이어질 시간 속의 정보를 읽어 내릴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예지 능력이 되겠죠. 아까 아저씨가 말한 대로 미래가 정해지지 않았다면 예지 자체가 불가능하겠죠?”
- 그렇다면, 이미 정해진 미래는 불변(不變)한다는 말인가요? 인간의 자유 의지란 존재하지 않고 우리는 그저 결정된 미래를 위해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 전부란 겁니까?
“아뇨, 조금 제 말을 잘못 이해하고 있네요. 미래는 정해져 있지만, 불변한 것은 아니에요.”
이미 멸망해 버린 이 지구의 미래. 그 참혹한 미래를 바꾸기 위해서 다시 과거로 되돌아온 나는 이 셀 수 없는 철학적, 종교적 논쟁을 불러온 고찰에 확신에 찬 얼굴로 말했다.
“예지를 통해 본 결과에 대비하여 현재에 어떠한 변수가 새롭게 추가되게 된다면, 필연적으로 미래 역시 바뀌죠. 그렇게 된다면 그 변수로 인해 전혀 새로운 미래를 가진 시간선의 우주가 탄생하게 되겠죠. 태초에는 하나였지만, 두 개, 세 개······. 아니 무한에 가까운 다중 우주로 분화하게 된 것처럼 말이에요.”
나와 마법이라는 변수를 통해 완전히 새로운 시간선을 걸어가게 된 지구의 미래.
지금 당장은 그 변화가 사소할지 몰라도 앞으로는 내가 경험했던 20년과는 차원이 다른 새로운 미래가 펼쳐질 예정이었기에 나는 단언했다.
“그렇기에 미래 예지는 아주 불확실하다는 거예요. 그 어떠한 사소하고 작은 변수에 의해서 전혀 다른 결과로 도출되거든요. 특히나 엿보려는 미래가 바로 하루나 일주일 뒤가 아니라 수년, 수십······. 아니, 수백 년의 미래라면 더더욱 그렇죠.”
작은 소년의 죽음이 먼 미래에 수천만을 학살할 독재자의 탄생을 막고.
어느 사소한 독설 하나가 수백 년을 칭송받을 예술가의 붓을 부러뜨리고.
그 누구도 알지 못할 사소한 변화 속에서 완전히 달라질 수 있는 불안정하고 예측 불허의 미래. 그렇기에 미래를 볼 수 있는 수많은 예언가와 선지자 중에서 직관적이고 명확하게 그 사실을 이야기하는 경우는 쉽게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랬다가는······.
자신이 본 미래는 의미가 없어질 정도로 그 결과가 완전히 뒤틀려 버릴 테니까.
“제가 말했던 로또 번호 같은 경우는 말해도 굳이 크게 의미가 없죠. 어차피 죄다 헛소리로 치부하고 있고 또 그렇다고 로또 추첨을 취소하거나 아니면 뭐 방식을 바꾼다거나 하는 등의 극적인 변화가 생기는 것도 아니잖아요? 이렇다 할 만한 변수가 없어요. 변수가.”
당장에 임박한 미래이기도 하고 또 내 발언에 대한 로또 복권 위원회에서 그 어떠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은 상황. 이제 당장 한 시간 뒤에 로또 추첨이 예정되어 있었기에 내가 말한 미래가 변화했을 확률은 전혀 없었다.
“그렇기에 제가 본 미래는 변하지 않는 거예요. 아, 그래도 완전히 변하지 않은 건 아니겠죠. 혹시나 하면서 장난스럽게 제가 말한 번호를 산 사람은 분명 어딘가에 꼭 있을 테니까 아마 역사에 다시 없을 정도로 1등 당첨자가 어마어마하게 늘어난 미래로 변했겠죠?”
- ······.
침묵에 빠진 채팅창. 고작 시청자 수가 21명밖에 남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내가 한 이야기가 충격적이었는지 잠깐 이어진 침묵 속에서 또다시 류박사는 물었다.
- 그렇다면······. 마법은 정말 존재하는 겁니까?
내 방송을 보며 숱한 사람들이 했던 질문이었지만,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무게가 느껴지는 질문. 마치 이 세상의 진리와 그 해답을 달라는 듯한 그의 물음에 나는 히죽 웃으며 지금까지 해 왔던 답변 그대로를 내놓았다.
“글쎄요? 그건 사람마다 믿기 나름 아닐까요?”
“누군가는 신을, 누군가는 과학을, 누군가는 정의와 도덕을······. 우리는 수많은 것을 믿죠. 모든 인간은 저마다 자신만의 신념과 철학을 가지고 있어요.”
“그렇기에 누군가는 제가 한 짓을 보며 마귀가 끼었다고 말할 수도 있고, 그저 우연한 기행이나 행운으로 보기도 하며 누구는 로또 복권 위원회와 짜고 치고 번호를 조작하는 부정을 저질렀다고 의심할 수도 있죠.”
그 어떤 기적과 이적을 보여 줘도 지금 당장은 마법으로 받아들이기에는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는 상황. 그리고 나는 좋으나 싫으나 이런 애매한 분위기를 당분간은 이어 가야만 했다. 지금 당장은 고작 3서클의 경지로 정부 기관이나 국가 전체를 상대하기에는 불가능했으니 말이다.
“마법이 존재하냐고요? 믿거나 말거나. 아저씨가 원하는 대로 맘대로 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