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인공 마법 만세!-49화 (49/242)

49화.

49화.

한국인의 대명절. 추석.

다른 공휴일과 다르게 3일이라는 기나긴 연휴 동안 온 가족과 일가친척이 한데 모여 시간을 보내는 이 기간만큼은 다른 때와 다르게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방송사들의 성수기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스마트폰의 발달과 함께 나락으로 가기 시작한 TV 시청률. 거기에 3일이라는 긴 연휴를 노려 이곳저곳 여행을 떠나는 가족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오히려 평소보다 시청률이 떨어지는 기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자 방송사들은 저마다의 방법을 통해서 시청률을 사수하기 위한 노력을 했다.

그리고······. 그 노력 중 하나로 편성된 BMC 특집 프로그램. Magic Survival.

내로라하는 여러 마술사가 참가하여 신비한 저마다의 마술을 보여주는 이 단발성 예능을 기획하고 준비하고 있는 최기철 PD는 갑자기 발생한 돌발 사태로 인해 잔뜩 신경이 곤두서 있는 상태였다.

“그게 무슨 소리야? 강한성 마술사가 출연을 못 한다니.”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하고 명성이 높은 강한성 마술사. 이번 프로그램을 기획하면서 초기 단계부터 섭외를 확정하고 있었던 핵심 참가자가 돌연 빠지겠다는 소식에 그의 표정은 잔뜩 일그러졌다.

“그······. 일단 저희한테 밝히기로는 건강상의 문제 때문에 참가가 어렵다고 하기는 했는데······. 아무래도 김수찬 마술사 때문인 거 같습니다.”

“뭐야? 설마 강한성 측에서 김수찬 마술사도 참가한다는 사실을 눈치챈 거야?”

“직접적으로 밝힌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이런 젠장······. 누가 또 어디서 입 놀리고 다닌 거야?”

강한성 마술사의 강력한 경쟁자이자 라이벌로 소문이 자자한 김수찬 마술사.

각자 막강한 팬덤을 구축하고 있는 이 둘 중 누가 더 뛰어난 마술사인지에 대한 주제로 여러 의견이 분분했지만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결론을 내 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이번 기회에 둘을 맞붙여 세기의 마술쇼 경쟁을 시켜 시청률을 제대로 뽑아보려고 계획했던 최기철 PD.

그 이외의 다른 어중이떠중이 마술사들은 안중에도 없었기에 그는 이제 촬영이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는데 갑자기 계획이 어그러지자 연신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아오! 인제 와서 갑자기 이러면 어떻게 하라는 거야? 진짜 사람 열받게 하네······.”

“어떻게······. 할까요?”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지금 그냥 이대로 진행하면 어떻게 흘러갈지 몰라서 물어? 김수찬 마술사가 그냥 우승할 거 아냐! 이미 결과가 뻔한 상황에서 시청률이 잘도 나오겠다.”

당대 최고의 마술사로 알려지고 수많은 방송과 마술쇼를 주최하며 이미 엄청난 인지도와 유명세를 가지고 있는 강한성과 김수찬.

그 둘을 동시에 맞붙여 누가 이길지 모르는 긴박감 속에서 최대한 시청자들을 끌어모으고 누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아가 우승자를 위한 특별 마술쇼까지 개최하며 화려하게 시청률과 광고비를 뽑아먹으려고 했던 최기철 PD.

그리고 이 모든 계획을 완벽하게 성사시키기 위해서라면 강한성과 김수찬 마술사의 섭외는 반드시 달성해야 하는 목표였다.

“야! 김 작가! 지금 당장 강한성 쪽에 다시 연락 넣어! 거절하면 직접 찾아가서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어떻게든 섭외 성사시키라고! 이거 국장님이 엄청나게 관심 있게 보고 있는 특집 프로그램이라는 거 다들 알고 있지? 그냥 어중간하게 대충 준비하고 만들었다가는 나만 아니라 너네까지 싹 다 제대로 꼬일 수 있다고.”

“아······알겠습니다.”

“못 해도 KMS는 이겨야 할 거 아냐? 거기는 뭐 한다고 했지? 트로트? 허 참. 지금이 무슨 쌍팔년도도 아니고 무슨 젊은 가수들 데려다가 트로트 시키는 프로그램을 특집이라고 준비해? 그런 방송보다 시청률 뒤처지면 되겠어?”

“······.”

반드시 이번 마술쇼를 성공적으로 흥행시키겠다는 의지와 열망으로 가득한 최기철 PD. 그렇기에 강한성과 김수찬을 동시에 무대 위에 올려놓고야 말겠다는 생각에 빠져있던 그는 무심코 크나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에······. 그럼 다음 안건으로는······. 뮤튜브에서 마술사로 활동하는 뮤튜버들에 대한 내용인데요. 저희가 섭외 메일을 보낸 사람 중에서 참가를 희망한다는 답신을 보낸 사람들 명단입니다. 대략 6명 정도 되는데요······.”

누군지 이름조차 제대로 들어본 적 없는 어중이떠중이들.

종이 한 장으로 끝나는 짧은 명단의 이름과 뮤튜브 채널의 이름들을 힐끗 살펴본 기철은 보는 둥 마는 둥 대충 훑어보더니 이내 종이를 거칠게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어차피 두 사람 말고는 죄다 곁가지들이니까 대충 알아서 수준 확인하고 참가시켜. 지금 이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일단 강한성 마술사 문제부터 우리끼리 한번 정리해보자고. 지금 출연료로 우리가 생각한 게 어느 정도였지?”

“에······. 그게······.”

강한성과 김수찬.

그 둘만을 위한 무대라고 해도 무방한 프로그램인 Magic Survival.

그 이외의 다른 참가자 중에서 우승자가 나올 수 있다는 가정은 상상조차 하지 않았기에 저지를 수 있는 실수였지만, 기철은 미래에 이 순간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만약 이때 조금만이라도 시간을 들여서 섭외한 뮤튜버들의 채널을 한 번만이라도 들어가 봤더라면······.

역사적으로 길이 남을 BMC 개국 최악의 방송사고를 저지른 PD라는 오명을 뒤집어쓰는 일은 피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말이다.

*

상암에 자리한 BMC의 사옥.

일반인으로서는 평생에 단 한 번도 갈 일이 없는 그곳에 방문한 나는 묘하게 밀려오는 뿌듯함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에 연신 신기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키야. 내가 그래도 성공하긴 했네. 살다 살다 방송국에서 방송 섭외도 다 받아보고 말이야.”

과거에는 그저 평범한 중소기업의 영업직 사원으로 일하던 것이 다였던 나. 특별함이라고는 찾아보려고 해도 찾아볼 수가 없었기에 내 얼굴이 텔레비전에 나온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지만, 막상 방송국에 들어와 설치되어 있는 무대를 보고 있자니 이 모든 것이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뭐야? 저 꼬마는?”

“이 오디션 참가자인 거 같긴 한데······. 그런데 복장이 왜 저래?”

“컨셉인가······? 근데 진짜 정신 나갔네.”

“어, 나 누군지 알 것 같아. 그 뮤튜브 하는 또라이 마술사 아닌가?”

나를 이상한 눈빛으로 힐끗힐끗 바라보며 자기들끼리 연신 속닥거리고 있는 수많은 참가자. 하지만 그들 중에서 누구도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말을 걸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입고 있는 복장은 그 누구도 감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휘황찬란했기 때문이었다.

[ 주인······. 진짜 여기에서도 그 정신 나간 복장을 해야 하는 거야? ]

반짝반짝 별무늬가 정신없이 새겨져 있는 고깔모자와 마법사 망토를 입고. 거기에 한 손에는 블링블링한 씨크릿 쮸쮸의 요술봉을 들고 허리춤에 매달려 있는 중국산 짝퉁 아기용 똘리. 용용이까지.

뮤튜브에서는 언제나 자주 보여주던 위대한 대마법사 멀린의 모습이었지만, 설마 이런 복장으로 전 국민이 지켜보는 지상파 방송에까지 나갈 줄은 몰랐는지 용용이는 자기가 다 부끄럽다는 듯이 연신 투덜거렸다.

“그럼. 이게 얼마나 좋은 기회인데? 34만에서 멈춘 구독자들을 한 번에 뻥튀기할 수 있는 상황인데 최대한 뮤튜브랑 비슷한 컨셉을 유지해야지.”

[ ······. 진짜······. 마법사 망신은 주인이 다 시키는 거 같아. ]

판달리아에서는 언제나 위엄과 품위를 지키며 품격 있는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하던 수많은 인간 마법사들. 그런 그들이 본다면 무덤에서 통곡할 정도로 마법사라는 이름의 가치를 바닥에 내려치고 그야말로 즈려밟고 있는 나의 행동을 보며 용용이는 질린다는 듯이 말했다.

“뭐 어때? 오히려 방송국 관계자들은 이런 나의 모습을 좋아하는 기색이 역력하던데? 딱 봐도 뭔가 특이해서 방송 분량 잘 뽑힐 거 같잖아.”

이제 중학생 정도의 어린 나이. 어엿한 성인 마술사들과 비교해서 최연소로 이 무대에 서는 것도 눈에 팍 띄었지만, 외모와 같은 겉모습에 민감할 사춘기임에도 불구하고 자진해서 인터넷에 영구 박제될 것 같은 모습으로 사회적 자살을 하러 나온 나의 행동은 그야말로 방송 각이 제대로 잡혀 있었다.

[ 그래서 더 이해가 안 된다는 거야. 도대체 왜 저기 저렇게 많은 정상적인 인간들을 내버려 두고 주인한테 계속 카메라를 들이대면서 질문을 하는 건데? ]

“그거야······.”

용용이와 대화를 나누고 있던 나는 문득 앞에 다가온 한 사람을 보며 하던 말을 멈추었다.

“멀린이라······. 네 녀석이군.”

무언가 묘한 눈빛으로 나의 가슴팍에 부착된 이름표를 지그시 바라보며 중얼거리고 있는 한 남자. 그리고 나 역시 이름표를 확인하고는 그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 김수찬 ]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지도 있는 마술사 중 하나로 알려진 사람. 살아생전 한 번도 마주해 본 적 없는 사람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적대적인 기세를 내뿜으며 그는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저를 아세요?”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 하나가 뮤튜브에서 마술사 행세를 하고 다니면서 온갖 이상한 짓은 다 벌이고 다닌다는 소문이 있어서 혹시나 했는데 그 말이 사실이었나 보군······.”

내 채널의 방송을 본 적이 있는지 나를 알고 있는 듯한 수찬. 하지만 그는 질색이라는 듯이 잔뜩 일그러진 표정을 지으며 나의 위아래를 훑어보고는 경멸하는 어조로 말했다.

“네 녀석이 정말 마술사의 꿈을 꾸고 있다면 복장부터 제대로 갖춰 입어라. 그렇게 천박한 방법으로 대중들의 이목을 잠깐이나마 끌지 몰라도 결국에는 잊히게 될 테니까.”

“······?”

다짜고짜 다가와서 나의 복장을 지적하며 시비를 걸고 있는 수찬의 적대적인 태도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서 있자 주변에서 그에게 동조하는 듯한 목소리들이 똑똑히 들려오기 시작했다.

“크으. 진짜 속이 뻥 뚫리네. 전부터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었는데.”

“저 자식 완전히 얼어붙은 거 봐. 김수찬한테 저런 말 들으니까 충격이 컸나 본데?”

“안 그래도 꼴도 보기 싫었어. 무슨 마술사 망신은 자기가 다 시켜. 나이도 어린 주제에.”

“어차피 저 자식이 하는 마술은 죄다 CG로 미는 놈 아니었나?”

“그러게······? 무슨 깡으로 이런 방송에까지 나온 거지?”

정밀하고 감쪽같은 기교와 손재주. 그리고 수백, 수천 번의 반복적인 연습 끝에 비로소 사람들의 눈을 속이며 뛰어난 마술들을 보여주기 위해 매일 같이 수많은 고민과 노력을 해 나가는 프로 마술사들. 그런 그들에게 있어 나와 같이 구독자 좀 모아보자고 온갖 어그로와 무리수를 던지는 아마추어 뮤튜버는 그야말로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나 다름없었다.

[ 헹. 이건 솔직히 말해서 나도 저 인간의 생각에는 동의한다. 아무리 주인이라지만 그 복장은 누가 봐도 정신 나간 건 사실이지. ]

매번 내 복장에 불만을 가지며 판달리아의 마법사들의 망신은 내가 다 시킨다며 투덜대던 용용이. 그렇기에 그는 수찬의 말에 무언가 공감하는 것 같기도 했지만, 지금의 상황을 달가워하는 건 아니었다.

[ 그렇다 하더라도······. 감히 마나도 느끼지 못하는 열등하고 미개한 인간 따위가 마법사에게 감히 저런 식으로 훈수를 둬? 주제를 벗어나도 한참을 벗어났지. ]

드래곤인 그에게 인간의 나이나 신분 따위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인간 개개인이 가진 격(格)을 더 중요시하는 용용이. 그런 그의 가치관과 관념으로 볼 때 20살은 더 나이를 먹었을 수찬이 나에게 지적을 하는 지금의 상황은 그야말로 천인공노할만한 짓이었다.

[ 주인. 저 인간 저렇게 가만히 놔둘 거야? 나 같으면 그냥 잡아다가 아주 XXXX하고 또 XXXX 해서······. ]

너무나도 차분한 나와 다르게 길길이 날뛰며 당장 무대 위에서 마술쇼를 펼치고 있는 수찬을 잡아 족치라며 시끄럽게 꽥꽥대는 용용이.

나는 그런 그의 머리를 매만지며 히죽 웃으며 말했다.

“너무 그렇게 나대지 말고 얌전히 있어 용용아. 그렇게 품위 없이 복수한다고 날뛰면 되겠어?”

내 심장에서 나의 의지에 따라 강렬하게 회전하는 세 개의 서클.

그 서클이 뿜어내는 진한 마나의 파장을 느끼며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사악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마법사라면 응당······.”

“마법으로 말하는 법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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