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48화.
일개 영상 편집자이자 뮤튜브 기획자에 불과했던 아영.
하지만 지금 그녀는 본래 생각했던 일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업무를 처리하느라 매일 같이 밤잠을 설치며 끝이 없는 과업들을 처리해 나가고 있었다.
“아니, 너무 강원도 지역으로 생태 부지를 선정하려고 하지 마시고요. 네. 물론 경기 지역은 부동산 가격이 너무 비싸서 가능한 비용 절감을 하려고 그러시는 건 다 이해하는데요. 제 입장도 조금 생각해 주셔야죠. 일단 최소 1곳은 수도권 지역에 추가로 조성하는 거로 해요.”
“아뇨. 새롭게 묘목들을 심고 있는 구역들 이외에는 출입을 자제해 주세요. 전에도 경고했지만, 혹시라도 이미 조성된 숲 안에 들어가서 무슨 사고가 일어나도 저는 책임 못 져요.”
“네. 저번 주에 만드신 영상은 다 편집했어요. 오늘 보내주신 영상은 다음 주 즈음에 올라가도록 해 놓을게요.”
한국 안에서만 최소 10곳 이상 새롭게 건설될 멀린의 정원의 입지를 선정하기 위해 삼진 그룹의 비서실과 끝도 없는 협의와 논의를 거치고, 기존의 조성된 생태 부지를 관리하며 거기에 본래의 업무인 뮤튜브 편집까지······.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일을 해도 도무지 끝나지 않는 업무들.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 미친 듯한 규모로 일감을 던져주고 있는 원흉인 멀린은 도무지 본인의 행동에 대해서 그 어떤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번에는 회사나 하나 차려보려고요.”
이런 식으로 또 정신 나간 일감을 가지고 오지 않을 테니 말이다.
“또 뭐요. 갑자기 무슨 회사에요?”
“별 건 아니고 자원 개발 회사에요.”
“자원 개발 회사요?”
이미 카페인에 찌들어서 퀭한 눈빛을 한 채 커피를 단숨에 들이마시는 아영. 무언가 전혀 생소한 이야기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녀는 나의 설명을 듣고는 이내 이해된다는 듯이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음······. 그러니까 마법의 존재가 노출되게 되면 가장 중요도가 높아지는 게 그 마나석인데 그걸 선점할 필요가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마음 같아서는 전부는 장악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그러기에는 어려움이 많으니 기본적으로 제가 필요한 만큼 이상은 자체적으로 확보해야 할 필요가 있죠.”
“말씀하신 걸 들어보니 분명 엄청 중요한 자원이긴 하네요. 그게 있으면 마법사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그 뭐냐······. 아티팩트라고 하는 기물들을 사용할 수 있다는 거죠?”
“네. 아마 모르긴 몰라도 그 희소성에 따라서 어쩌면 다이아몬드보다도 더 비싸게 팔릴 수도 있을걸요? 보통 고위 마법을 사용할 때 필요한 최상급 마나석의 경우는 판달리아에서도 엄청 희귀한 녀석이거든요. 지구에서는 그거에 해당하는 광물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조사할 필요가 있다는 거죠.”
최하급부터 최상급까지 나누어져 있는 마나석.
일반적으로 영자 기관이라고 불리는 심장과는 다르게 그저 주변의 마나를 흡수하고 저장하는 기능밖에 할 수 없었지만, 적절한 수식과 마법진만 담보된다면 3살짜리 어린아이도 마법을 쓸 수 있게 만들어주는 필수적인 수단이었기에 아마 매우 중요한 전략 자산이 될 확률이 높았다.
“그런데······. 그걸 굳이 직접 해야 하나요? 그냥 삼진 그룹한테 해 달라고 하는 게 더 수월하고 빠르지 않을까 싶은데······.”
“그건 안 돼요.”
“왜요? 다른 건 죄다 순이익의 30%만 달라고 하면서 이건 왜 그러는데요?”
다른 건 별로 그다지 욕심을 내지 않으면서 이건 왜 그러냐는 아영의 물음. 그리고 그런 그녀의 물음에 나는 히죽 웃으며 답했다.
“그러기에는 마나석이 가진 가치가 너무 크거든요.”
“네······?”
“살살이 풀이나 전력 조금 만들어주는 마법진 따위와 비교하기에는 마나석이 가진 가치는 비교도 할 수 없거든요. 생각해보세요. 만약 이 세상에 마법이 퍼져나가기 시작하면 가장 기본적으로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일지 말이에요.”
현재 과학 기술의 발전과 한계를 너무나도 간단하게 해결해 줄 수 있는 마법. 그 효율성과 경제성을 생각한다면 분명 제정신인 국가들은 어떻게든 마법을 기반으로 한 아티팩트를 활용하고 또 에너지원 자체도 마나를 활용할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용용이의 말대로 마법은 미개하고 열등한 인간들을 위한 학문이 아닌 법.
만약 국가마다 아주 극소수의 선택받은 인간들만이 마나를 느끼고 운용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마나석은 반드시 없어서는 안 될 핵심 자원이자 전략 자원이 될 것이 분명했다.
“그렇기에 가능한 마나석의 원료가 되는 광물들은 제가 침 발라놔야 한다는 거예요. 한국이 땅덩어리가 좀 좁아요? 뭐가 마나석이 될지는 몰라도 아마 외국에 대량으로 매장되어 있을 텐데 일단 숟가락을 얹어놔야 나중에 혹시라도 문제가 생겨도 따질 명분이 생기죠. 명분이.”
“정말이지······.”
마나석의 그 가치를 아무도 모르고 있을 때 찜을 해 두겠다는 나의 속셈을 들은 아영은 질린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이내 혹시나 하는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것도 저한테 시킬 생각은 아니시겠죠?”
“맞는데요? 왜요?”
“······. 장난해요? 지금 제가 처리하고 있는 일만 해도 몇 갠지 아세요?”
본래 영상 편집자이자 기획자로서의 업무는 제쳐두고 전담 매니저인지 뭔지 하는 이상한 직책으로 부르며 뮤튜브와는 전혀 관계없는 일들을 처리하고 있는 아영. 그녀는 자신이 얼마나 비윤리적인 노동환경에 놓여 있는지 한참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삼진 바이오 쪽에서는 제가 그 멀린의 정원인지 뭔지 하는 생태 부지의 주인인 줄 알고 하루에도 수십 통의 전화를 걸어오지, 거기에 추가로 조성하기로 한 부지 선정 관련 업무 처리는 누가 하고 있는데요? 엊그제만 해도 현장 답사한다고 제가 삼진 그룹 비서실이랑 서울부터 부산까지 쭉 돌아보고 새벽 2시에 집에 간 거 아세요? 거기에 뮤튜브라도 안 하면 몰라 영상은 또 꼬박꼬박 찍어서······.”
지금까지 쌓인 게 많았던 것 같은 아영. 그런 그녀의 한탄을 듣던 나는 이내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알겠어요. 그럼 조정 좀 하도록 하죠.”
“조정이요?”
“네. 하고 싶은 말이 지금 있는 일이 너무 바빠서 새롭게 회사 경영하는 건 어려울 거 같다는 말씀이시잖아요?”
“······. 그렇죠······?”
“그럼 그냥 광산 회사 경영이랑 뮤튜브 편집만 하세요. 어차피 생태 부지 쪽은 삼진 바이오 측에서도 알아서 잘하겠죠.”
“네······?”
“거기도 어차피 살살이 풀을 생산량을 대폭 늘리고 싶은 상황이잖아요? 그렇기에 생태 부지 추가 조성은 굳이 안 살펴봐도 알아서 적극적으로 추진할 거예요. 제가 이용수 사장한테 따로 말해서 귀찮게 전화하지 말라고 해 둘테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거예요. 그럼 이제 문제 해결된 거 맞죠?”
“······.”
뭔가 ‘내가 원했던 건 이게 아닌데······.’라는 오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영은 이내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그런데 저는 회사 경영이나 광산 개발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데요······?”
“이호준 회장이 삼진 물산 쪽 인력들을 보내주기로 했어요. 해외 자원 개발이나 광산 쪽에 빠삭한 사람들이라고 하니까 크게 걱정하실 건 없어요. 그냥 회사 사무실에 앉아 있다가 저 대신 결재도장만 찍어주시면 돼요.”
“그건 그냥 바지사장 아니에요?”
“심심하면 그 시간에 뮤튜브 편집이나 하시던가요.”
히죽 웃으며 나는 아영을 위해 직접 마련한 명함을 건넸다. 그리고 그 명함을 떨떠름한 표정으로 받아들고 살펴본 그녀는 이내 눈을 가늘게 뜨며 중얼거렸다.
“매지컬······컴퍼니?”
“어때요? 제가 지은 회사 이름인데?”
“이름이 너무 유치한 거 아니에요······?”
“그 유치한 회사 사장이 바로 아영인데요?”
“······.”
회사 이름에 대한 불만에 가득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던 아영. 하지만 그녀는 이내 체념한 것처럼 깊은 한숨을 푹 내쉬며 화제를 돌렸다.
“하아······. 일단 알겠어요. 그보다 뮤튜브 말인데요.”
“왜요.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
“아니, 문제가 있는 건 아니고요. 그······.”
이걸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깊은 내적 갈등을 겪고 있는 듯이 말끝을 흐리는 아영. 그런 그녀의 반응에 호기심을 느낀 나는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뭔데 그렇게 뜸을 들여요?”
“그게······. BMC에서 메일이 하나 왔거든요.”
대한민국의 3대 방송국 중 하나인 BMC. 그곳에서 메일이 왔다는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BMC요? 뭐라고 메일을 보냈는데요?
“그게······. 혹시 자기들 방송에 출연해 줄 수 있냐고 하더라고요.”
“엥? 방송이요?”
“네······.”
“정말로요?”
“그러게 말이에요.”
“······?”
인기 뮤튜버들이 방송계에 진출하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수백만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는 이들은 인기 연예인 못지않은 영향력을 자랑하며 온갖 예능에 출연해 얼굴을 비추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제 겨우 30만이 조금 넘는 수준의 구독자를 보유한 하꼬 뮤튜버에 지나지 않는 나.
그것도 불과 몇 달 전에 엄청나게 큰 논란에 휩싸이며 기사에까지 오르내린 상황이기에 초대형 지상파 방송이 나에게 섭외를 해 온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놀라운 일이었다.
“흠······. 마술 대전······?”
“추석 연휴에 방송될 특집 프로그램이라고 하더라고요. 여러 유명한 마술사들을 섭외해서 각자 자신이 준비한 마술쇼를 펼치며 최고의 마술사를 뽑는······. 뭐 그런 전형적인 오디션 프로그램 같은 거예요.”
이제 한 달 뒤에 있을 추석 연휴를 위해서 제작하려고 하는 단편 예능. Magic Survival.
마술사들을 여럿 데려다가 서로 경쟁적으로 쇼를 펼치며 대한민국 최고의 마술사가 누구인지를 결정하는 그런 내용의 방송이었지만 독특한 점이 하나 있었다.
“모든 과정이 전부 생방송으로 진행된다고요?”
“네. 일단 시청자들의 온라인 투표를 통해서 우승자를 결정할 거라고 하는데요. 대본이랑 방송 진행 순서는 기본적으로 안내가 될 예정이라고 하지만 공연 자체는 실시간으로 진행할 예정이라고 하네요.”
“흐음······. 이제 왜 저한테 이런 메일을 보낸 건지 알긴 알겠는데······.”
스스로를 마법사라고 생각하는 중학생.
거기에 꽤······. 아니, 놀라운 수준의 마술들을 계속해서 뮤튜브에서 보여주고 있었기에 방송을 준비하고 있는 작가나 PD에게 나는 아주 탐스러운 출연자일지도 몰랐다.
문제는······.
“정말 날 감당할 수는 있으려나?”
그저 손장난이나 눈속임에 불과한 다른 마술사들과 다르게 마나를 활용해 이능을 구현할 수 있는 진또배기 마법사인 나.
그렇기에 마음만 먹는다면 정말 모두를 완전히 씹어먹고 압도적으로 1등을 차지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온 국민이······. 그것도 할 게 없어서 대부분이 TV 앞에서 뒹굴뒹굴할 명절 연휴에 지상파 방송에서 라이브로 마법을 쏟아냈을 때 벌어질 일들을 상상하며 나는 킬킬 웃었다.
“역시······. 이럴 거 같아서 말 안 하려고 한 거예요.”
“에이. 제 편집자면서 그러면 안 되죠. 이렇게 구독자를 떡상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쳐서야 되겠어요?”
“그······. 설마 대놓고 마술이 아니라 마법을 쓰려는 건 아니겠죠?”
뭘 상상한 건지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물어오는 아영. 그런 그녀에게 나는 황당하다는 눈빛을 보내며 답했다.
“설마 제가 뭐 카메라 앞에서 파이어볼이라도 날리겠어요? 가능은 한데 그렇게 대놓고 쓰지는 않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이제 어엿한 마법사라고 할 수 있는 3서클의 경지에 이른 상황. 심장에 쌓아놓은 마나량 정도라면 누가 봐도 마법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마법들도 사용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근심이 가득해 보이는 아영을 보며 나는 안심하라는 듯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방심하면 안 되겠는데요? 1등 상품이 너무 탐나네요.”
“······. 저는 그게 제일 걱정이거든요? 1등이라도 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네요.”
추석 특집으로 추진하는 예능 마술쇼. Magic Survival.
이 프로그램의 1등 상품은 바로······.
우승자만을 위한 단독 마술 콘서트를 BMC에서 열어주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