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47화.
삼진 전자의 새로운 신제품. 타임리스(Timeless).
아직 출시조차 되지 않은 제품이었지만 POS 사태로 인해 피해를 본 소비자 중 극히 일부에게만 제공된 3,800개가 조금 넘는 물량이 풀린 덕분에 사실 이 스마트폰에 관한 이야기는 이미 인터넷에 널리 퍼져 있었다.
- 충전이 필요 없는 스마트폰의 등장? 세간의 소문이 사실인가?
- 과학계. 무한동력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일축.
- 여러 논란에도 입을 다무는 삼진 전자. 과연 그 실체는?
배터리가 없이 영구적으로 지속 가능한 스마트폰.
믿어주려고 해도 도무지 말이 안 되는 허무맹랑한 이야기에 그 누구도 인터넷에 떠도는 그 이야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지 않았기에 그렇게 큰 논쟁거리가 되지 않고 그대로 묻히고 있었지만, 어느 한 사람의 발언으로 인해서 상황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전력을 발생시키고 있는지 모르지만, 이 기술을 상용화한다면 비단 우리 회사의 전기차만이 아니라 우주 개발 산업까지도 획기적으로 진척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정말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삼진 전자로 달려가 이 기술을 개발한 사람의 목덜미를 붙잡고 우리 회사로 데리고 가고 싶군요. 하하. ]
이 세상에서 손에 꼽히는 부자이자 동시에 뛰어난 프로그래머이자 엔지니어, 기업가······. 거기에 괴짜로 명성이 드높은 엘런 더스크.
그가 미국의 어느 한 유명한 방송에 나와서 인터뷰를 하는 그 모습이 전 세계에 퍼져나가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지금까지 콧방귀도 안 뀌고 조작이라고 치부하던 삼진 전자의 신제품에 대해서 조금은 진지한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 뭐야. 정말 배터리 없는 스마트폰을 만들었다고······?
- 엘런 더스크가 저렇게 흥분하는 건 또 처음 보네. 진짜인가?
- 와, 근데 저게 농담이 아니라 정말이면 진짜 사기 아니냐?
반신반의한 눈으로 현재 사태를 바라보기 시작한 사람들. 그리고 이러한 상황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삼진 전자의 공식적인 성명문이 언론을 통해서 보도되기 시작했다.
[ 현재 삼진 전자에서 교환했던 스마트폰. 타임리스는 오랜 시간 동안 회사 내부에서 개발해온 극비 프로젝트의 일환입니다. 정확한 원리를 이 자리에서 설명할 수는 없지만, 현재 논란이 되는 부분인 배터리가 없이 자체적으로 전력을 발전·생산해 작동한다는 점은 사실입니다. ]
무한동력의 영구적으로 가동하는 기기라는 점을 공식적으로 밝힌 삼진 전자. 그리고 이러한 사실이 대변인의 입을 통해서 흘러나오자 기자회견장은 그야말로 폭탄이라도 터진 것 같은 반응 속에서 술렁거렸다.
[ 원래 계획대로라면 출시 직전까지 해당 사실을 공개할 계획이 없었지만, 이호준 회장님께서 고객님들의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 대규모 리콜을 결정할 때 우리 삼진 전자의 제품을 구매하고 또 믿어주시는 고객님들에게 어떠한 보답을 해 줘야겠다는 고민 끝에 결단을 내려서 극히 일부만을 생산해 교환해 준 것입니다. ]
오직 3,800명 정도의 소비자들만이 교환을 신청한 상황. 그렇기에 이들에게 보상 차원으로 그만큼의 물량만을 생산해 시제품으로 제공했다고 설명하는 대변인은 쏟아질 질문을 예상했는지 그 어느 때보다도 단호하고 명확하게 기자들에게 말했다.
[ 해당 제품의 기술과 관련해서는 정확한 답변을 드리기 어려우니 이와 관련한 질문은 자제해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하나 말씀드릴 수 있는 점은, 해당 제품은 차후에 출시할 타임리스 모델의 시제품에 불과하며 아직 대량 양산이 불가능한 관계로 현재 그 어떤 요청에도 해당 제품을 추가로 제공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
그 어떤 경우에도 추가로 물량을 제공할 수 없다는 삼진 전자의 선언. 하지만 이번에 풀린 그 신제품에 담겨 있는 그 기술의 가치를 모르는 이가 없었기에 그 대변인의 발언은 어마어마한 반응 속에서 기자회견이 거의 난장판으로 치달아가고 있었다.
“헤······.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반응이 더 격렬하네요.”
이호준 회장과 함께 집무실에서 해당 기자회견을 감상하고 있는 나와 용용이. 쏟아지고 있는 질문 공세를 피해 도망치려는 대변인과 그런 그를 붙잡고 기자회견장의 출입구를 막아서서 어떻게든 답변 하나를 더 얻어내려는 기자들과 경호원들의 몸싸움을 재밌다는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자 이호준 회장은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럴 수밖에 없지. 그냥 ‘아. 그렇구나’하고 넘어갈 정도의 내용이 아니었으니까.”
“그렇긴 하죠. 만약 저게 정식으로 출시된다고 한다면 스마트폰의 시장 자체가 완전히 삼진 쪽으로 기울게 될 테니까요.”
디자인이나 가격도, 하드웨어의 성능이나 운영체제의 효율성도······. 스마트폰을 구매할 때 소비자들이 고려하는 그 어떤 요소로도 감히 비교할 수 없는 조건을 가진 타임리스. 게다가 배터리가 없기에 기존에 가지고 있던 물리적인 한계를 벗어나 독창적이고 파격적인 디자인을 구현해낼 수 있게 된 타임리스의 디자인은 분명 그 유명한 앰플의 제품보다도 빼어난 것이 사실이었다.
“그래도 너무 자만하지는 마세요. 솔직히 이번 제품으로 디자인이나 성능이 앰플을 넘어섰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그 UI의 디자인이나 감성적인 부분은 앰플에 한없이 못 미치거든요?”
“그래야겠지. 그건 나름대로 노력할 생각이니 걱정하지 말고 맡겨주게.”
이번 기회에 반드시 스마트폰의 세계 시장을 제패하고 말겠다는 의지가 강렬해 보이는 이호준 회장. 그리고 그는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다는 듯 연신 킬킬거리며 말했다.
“그 잘난 앰플도 이번에 잔뜩 긴장한 것 같더군. 우리가 이번에 풀었던 신제품을 확보하기 위해서 물밑에서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는 소문이 있네.”
“아. 그거 저도 봤어요. 아예 공개 포상금까지 걸었던데요?”
삼진 전자의 강력한 경쟁자이자 압도적인 이익과 사장 장악력으로 이미 세계 시장을 잡아먹은 앰플. 그들은 이번에 풀린 삼진 전자의 신제품을 확보하기 위해서 발품을 파다 상황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는지 아예 공개적으로 매입 선언까지 한 상황이었다.
- 타임리스 공개 매입. 매입가 1,000,000$
자그마치 한화 10억이 넘는 어마어마한 가격을 내걸고 해당 제품을 사들이겠다는 앰플. 그리고 그걸 시작으로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이 온갖 기업들이 비슷한 광고를 내걸었다. 비단 스마트폰 산업만이 아니라 자동차, 전자를 비롯해 온갖 산업의 이름 있는 전 세계의 대기업들이 얼마 풀리지 않은 물량의 삼진 전자의 스마트폰을 사들이기 위해서 경쟁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상황. 그리고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용용이는 그저 기가 찰 따름이었다.
[ 하······. 그깟 애들 장난 수준의 마법진 하나를 가지고 무슨 그렇게 많은 돈을 쓰는 건데? ]
많은 자원과 시간이 필요한 상위 마법도 아니고 판달리아에서는 3서클 정도만 되어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난이도였기에 용용이는 그걸 집 10채도 넘게 살 수 있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가격을 줘서라도 손에 넣으려고 눈에 불을 켜는 이들이 어처구니없을 뿐이었다.
“말했잖아. 그깟 마법진이 이 세상에서는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니까.”
[ 하여간······. 정말 독특한 세상이라니까. ]
그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세계. 그렇기에 한참을 투덜거리며 무어라 중얼거리는 용용이와 이야기를 나누던 나는 이내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하나 떠올라 입을 열었다.
“아, 맞다. 그러고 보니 보안 문제는 아주 영악하게 해결했더라고요? 마법진을 여러 기판 사이에 조각조각 나눠서 아주 작게 새겨 넣는다니······. 마나의 반응을 보지 못했으면 저조차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엄청 교묘하더군요.”
“어쩔 수 없었네. 분명 경쟁사 입장에서는 지금과 같이 어떻게든 타임리스에 적용된 기술의 원천을 파악해내기 위해서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분석할 텐데, 그걸 숨기지 않은 채로 그들의 손에 들어가게 된다면 분명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해법을 찾아내겠지.”
“뭐······. 그건 그렇긴 해요. 그래도 부품 하나씩 뜯어보면서 분석하려면 꽤 머리 아프겠던데요? 하나라도 어긋나면 술식 자체가 깨져버리니까요.”
“그게 타임리스에 적용된 보안 조치의 전부는 아니네. 그거 말고도 꽤 여러 가지를 심어놨지. 그러지 않고서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타임리스를 하나하나 해부해보면서 자네가 새겨놓은 마법진을 알아내고도 남을 위인들 세상에 널렸으니까.”
“그래요?”
“그래. 엘런 더스크만 봐도 보이지 않는가. 우리 회사에 매일 같이 직접 전화해서 나랑 한번 통화 좀 해보고 싶다고 거의 애걸복걸한다고 하더군. 자기들이 개발하고 있는 전기차에도 그 기술을 적용하고 싶다고 아주 난리야.”
“음······. 방송에서 보니 엄청 관심 있어 보이긴 했죠.”
“그래. 조만간 우리 회사로 무작정 찾아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니 그 집념 하나는 나조차도 무서울 정도네. 허허허. ”
비단 스마트폰이 아니라 다른 곳에도 적용하고 싶다는 다른 기업들의 요구. 하지만 나는 은근한 눈빛을 지으며 바라보는 이호준 회장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그건 대기 중에 퍼져 있는 마나량이 지극히도 적어서 불가능해요. 마법사가 직접 해당 ‘아티팩트’를 가동한다면 모를까, 타임리스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인이 무작정 사용하는 것이 가능한 환경을 구현하려면 최소한 지금의 수십 배는 더 많은 대기 중의 마나량이 필요하거든요.”
스마트폰보다 수백······. 수천 배는 더 많은 에너지를 요구로 하는 다른 설비들에까지 적용하기에는 마나 자체가 한없이 부족한 이 지구의 현실. 특히나 전 세계에 상용화되어 곳곳에서 마나를 미친 듯이 소모하기 시작한다면 그것도 금세 고갈될 것이 분명했다.
“그렇군······. 아쉽군. 자동차에 적용될 수 있다면 정말 어마어마한 에너지 혁명을 일으킬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조금은 아쉽다는 표정으로 입맛을 다시는 이호준 회장. 하지만 나는 그런 그에게 무슨 말을 하냐는 듯한 얼굴로 되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누가 적용할 수 없대요?”
“뭐라······?”
“배터리가 없이 자체적으로 대기 중의 마나를 흡수해서 가동되는 타임리스만큼은 안 된다는 거지 추가로 마력 저장 장치를 탑재한다면 못 할 것도 없죠.”
“마력 저장 장치······?”
“이거요.”
이호준 회장의 호기심 어린 눈빛에 나는 자신만만하게 책상 위에 작은 유리구슬 하나를 올려놓았다. 아기 머리통보다 조금 커다란······. 기하학적인 문양이 잔뜩 새겨진 장식품처럼 보이는 구슬.
하지만 그 안에 은은하게 퍼져나가고 반짝거리고 있는 푸른색의 빛은 이게 평범한 장식품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그 존재감을 물씬 풍기고 있었다.
“이게 뭔가?”
몽롱한 얼굴로 그 유리구슬을 한참이나 쳐다보고 있던 이호준 회장. 그런 그의 물음에 나는 진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인공 마나석이요.”
“마나석······?”
무슨 말인지 몰라 되묻는 이호준 회장. 용용이랑 똑같은 반응을 보이는 그를 보며 나는 킬킬거리며 웃고는 이내 다시 설명했다.
“이를테면 전력을 저장하는 배터리 같은 거죠.”
“배터리······? 그럼 설마······.”
“네. 맞아요. 이 마나석을 부착해놓는다면 처참한 수준의 대기 중의 마나 농도와는 관계없이 전기차를 비롯해 온갖 막강한 출력의 장비들도 마력으로 가동할 수 있죠. 그리고 생각보다 이게 효율이 뛰어나긴 할 거예요. 그 어떤 에너지로도 100%에 가까운 효율로 변환할 수 있을 테니까요.”
“······.”
상상해 본 적 있는가?
석탄과 석유, 그리고 원자력으로 이어져 온 인류 문명의 에너지원.
그 에너지원을 마나로 전환하게 되며 벌어질 수많은 변화와 여파들을 말이다.
어쩌면 현재 구축된 세계 패권과 정치적 역학 관계마저도 새롭게 재정립할 수 있는 거대한 혁명의 씨앗이 될지도 모르는 나의 인공 마나석을 바라보며 이호준 회장은 묘한 표정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어쩌면······. 에너지 산업 자체를 완전히 지배하는 것도 가능할지도 모르겠군.”
비단 전기차나 배터리만 수준이 아니라 인류가 사용하던 가장 기본적인 에너지 자체를 완전히 뒤바꿀지도 모르는 어마어마한 가치의 마나석. 하지만 조잡한 유리구슬을 가공해 만든 이 마나석의 성능은 썩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직 문제가 많아요. 이건 인공적으로 만들어놓은 마나석이라서 그 용량이나 출력의 한계가 너무 명확하거든요. 제가 원하는 수준까지의 한계 용량을 끌어낼 수 없어요.”
고작 유리 재질 따위로는 강대한 양의 마나와 그 출력을 버텨낼 수 없는 상황.
그렇기에 나는 은근한 표정으로 이호준 회장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서 말인데요······.”
“음? 뭐 바라는 게 있는 건가?”
“회장님. 저 사업 하나만 하게 도움 좀 주시죠.”
“사업······. 갑자기 말인가?”
뜬금없이 무슨 사업이냐는 표정의 이호준 회장.
그런 그에게 나는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광산 개발 같은 거요. 천연 마나석으로 쓸만한 녀석을 찾아볼 생각이거든요.”
다른 건 몰라도 마법 혁명이 시작되고 난 이후에 그 무엇보다 핵심 자원이 될 마나석.
그 가치를 아무도 모르고 있을 때 내가 선점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