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42화.
블루홀 10의 성능 조작 논란.
일명 POS 사태라고 불리는 이 사건은 수차례의 반복적인 삼진 전자의 공식적인 사과문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잠잠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삼진 전자의 프리미엄 스마트폰. 블루홀 10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가 공식적으로 조사에 착수했다고 오늘 발표했습니다. 이는 해당 제품을 구매하고 피해를 받은 다수의 소비자가 민원을 제기한 데에 따른 조치로 면밀하고 엄중한 조사를 통해 사실관계를 밝혀나가겠다고 했습니다. ]
[ 너드 벤치가 POS 프로그램이 적용되어 성능이 조작된 삼진 전자의 제품을 추가로 발표하고 제명했습니다. 이들이 발표한 제품으로는 블루홀 브랜드의 프리미엄 제품인 7~9 모델을 시작으로 중저가형인 A 시리즈까지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큰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
[ 삼진 전자가 최근 논란이 있는 제품에 대해서 세 번째 공식 사과문을 홈페이지에 게시하였습니다. 하지만 실질적인 해결 방안이나 보상이 없이 그저 제한된 성능을 풀 수 있도록 하겠다는 조치만 포함되어 발열과 배터리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책이 없는 것으로 밝혀져 더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
잠잠해질 것 같으면 또 다른 뉴스가 터져 나오며 꺼질 것 같은 불씨가 또다시 새로운 장작을 만나 화르르 불타오르는 상황. 그렇기에 삼진 전자의 자랑이자 자존심이라고 할 수 있는 블루홀의 이미지는 불과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서 그야말로 걸레짝이 되어버렸다.
- ㅋㅋㅋㅋㅋㅋ 여기 블루홀 쓰는 흑우 없죠?
- 블루홀 쓰는 놈들 죄다 개돼지행
- 마! 사기 치다 걸렸으면 손모가지 날아가는 것도 모르나? 양심껏 환불해라
- 회장이 직접 나와서 도게자 박고 사과해라!
- 앰플폰 쓰세요. 여러분. 앰플이 최곱니다.
- ㅋㅋㅋㅋ 성능 제한 다 풀고 게임 하나 돌리면 배터리 한 시간도 안 가는데?
- 저게 해결책이라고 내놓는 삼진 전자 능지 수준 ㅉㅉ
예전에는 블루홀과 앰플폰 중에서 서로가 가진 장단점을 나열하며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던 소비자들의 평가. 하지만 이제는 누구에게 물어보더라도 둘 중 무엇을 선택하겠느냐고 묻는다면 이구동성으로 앰플폰을 선택할 정도로 소비자들의 민심이 완전히 돌아서 버렸다.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 나는 블루홀을 애용하는 한 명의 소비자로서 이호준 회장 앞에서 모두가 하고 싶은 말을 솔직하게 가감 없이 토해내고 있었다.
“도대체 그런 조잡한 물건을 신제품이라고 출시한 거예요? 그것도 가격도 인상돼서 기깃값만 150만 원이나 하던데 그 돈 주고 샀는데 이런 식으로 뒤통수 치면 부처가 와도 못 참죠. 우리 누나가 얼마나 속상해하는지 아세요?”
그 어떤 성인군자가 와도 화를 안 낼 수가 없는 상황. 게다가 내 누나까지 피해를 본 소비자였기에 이호주 회장은 중학생 정도밖에 되지 않는 나에게 듣기에는 영 불편한 이야기였지만, 딱히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지 않고 그저 가만히 듣기만 했다.
“게다가······. 왜 하필이면 게이머들 심기를 거스르는데요? 게이머들한테 스마트폰 성능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아세요? 그래픽 옵션 최상으로 돌리고 싶어서 멀쩡한 것도 최신형으로······. 그것도 가장 비싼 제품으로 바꾸는 족속들이라고요. 그런 애들이 게임을 정상적으로 못하게 생겼으니 얼마나 눈이 돌아가겠어요? 걔들이 화나면 얼마나 악랄해지는 무서운 녀석들인지는 아세요?”
“······. 그게 무슨 소리인가?”
“그런 게 있어요. 수틀리면 트럭이랑 마차까지도 보낼 수 있는 위인들이라고 할까요?”
“······?”
인터넷에 가장 익숙하면서도 또 여론전과 화력전이라면 괴벨스의 양 싸대기를 후려갈길 정도로 특출난 집단. 마음만 먹으면 현실에서 트럭과 마차까지 보내 시위를 벌일 정도로 행동력 또한 과감하고 어마어마한 이들이었기에 나는 이호준 회장을 바라보며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인터넷에서만 지금 화내고 있는 걸 다행으로 여기세요. 아마 여기서 제대로 수습 안 하면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를 녀석이니까요. 그런데 지금 삼진 전자에서 하는 후속 대책들을 보자면 이번 사태를 무마하기에는 한없이 부족해 보이는데 그게 정말 최선이에요?”
프로그램으로 강제로 제한된 성능을 해제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삼진 전자의 후속 조치들. 하지만 그것이 근본적으로 현재 블루홀에서 발생하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었다. 최고 성능으로 돌아가기 시작한 스마트폰은 미친 듯한 발열과 동시에 너무 빠르게 떨어지는 배터리 문제로 도무지 실제 사용이 불가능한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호준 회장은 얼굴을 찌푸리며 앓는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끄응······. 만족할 수 없는 조치들이라는 건 나도 알고 있네. 하지만 지금 할 수 있는 대책 중에서는 가장 최선의 조치야. 단순한 A/S나 부품 교체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애초에 설계부터 잘못된 제품이니 말이네. 만약 이거보다 더 나간다면 전면 환불이나 리콜 조치로 나아가야 하는데 그랬다가는 아마 조 단위의 손실을 감수해야겠지.”
“출시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그렇게 손실이 커요?”
“이미 생산해 놓은 재고 문제도 있고, 기존의 생산 설비를 전부 정비하고 판매한 제품까지 전부 회수하려면 그럴 수밖에 없네. 비단 국내에서만 판매하던 제품이 아니라 전 세계에 판매되고 있던 제품이니까.”
아무리 어마어마한 매출과 실적을 자랑하는 삼진 전자라 하더라도 감수하기는 뼈아픈 손실. 그렇기에 가능한 최소한의 피해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리저리 수를 모색하고 있지만 영 뾰족한 수가 없어 보이는 이호준 회장에게 나는 작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가 아주 획기적인 해결책 하나 드릴까요?”
“자네가 말인가······?”
“네. 잊으셨어요? 제가 이 세상의 하나뿐인 위대한 대마법사. 멀린이라는 걸?”
“······. 자네 이름은 철수 아니었던가?”
“그건 제가 사적인 상황에서나 사용하는 이름이고요. 이렇게 공식적으로 일하는 비니지스 적인 관계에서는 멀린이라고 부르세요. 멀린.”
“······?”
왜 자꾸 있는 이름은 내버려 두고 이상한 마법사의 이름으로 자신을 지칭하냐는 듯한 물음이 섞인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이호준 회장. 그런 그의 시선을 무시한 채 나는 책상 위에 스마트폰을 하나 올려놨다.
“자요. 이건 제가 지금까지 쓰던 블루홀 제품이에요. 보세요.”
“뭐가 다른 건가······?”
전혀 특별한 걸 찾아볼 수 없는 그저 평범한 블루홀 제품. 그걸 보면서 이호준 회장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지만 나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제가 이번에 문제 터진 거 보고 살짝 개조해봤거든요. 보세요. 배터리가 없어도 작동해요.”
달칵.
“이······이건?”
이미 한번 뜯어본 것인지 너무 손쉽게 반으로 분리되는 스마트폰의 케이스.
그리고 그 안에 본래 가득 채워져 있어야 하는 부속품 중에서 가장 큰 부피를 차지하는 배터리의 공간이 텅 비어 있는 것을 보며 이호준 회장의 눈은 커다랗게 커지기 시작했다.
“회장님께서 제 마법 강의를 보시진 않았을 테니까 간단하게 설명해 드리죠. 마나가 가진 가장 주요하고 또 독특한 특성 중 하나가 바로 전환의 자유로움이에요. 그 어떤 에너지로도 전환할 수 있는 성질을 가지고 있죠. 열이나 빛, 운동, 화학, 중력, 핵······. 정확한 수식이 뒷받침된다면 그 어떤 에너지로도 변환 가능한데 그중에서 전자기력 역시 포함되죠.”
마법에 대한 개념과 지식이 없다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 하지만 눈앞에 배터리가 없음에도 아주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블루홀을 보며 이호준 회장은 잔뜩 굳은 얼굴로 침을 꿀꺽 삼키며 물었다.
“그 말은······. 설마······.”
“맞아요. 제가 배터리가 있던 자리에 새겨놓은 마법진에서 공급되는 전력을 통해서 기기가 작동하는 원리죠. 그 무지막지하게 커다란 배터리의 역할을 아주 간단한 수식 하나로 대체된다는 거 보면 엄청 아이러니하지 않아요?”
조각칼로 조심스럽게 새겨놓은 마법진. 판달리아에서는 아무런 가치도 인정받지 못할 실용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마법진으로 난이도로 치자면 1 서클의 초보 마법사도 코웃음을 칠 수준이었겠지만 이 수식 하나로 벌어질 충격은 그야말로 세계적인 혁명을 불러올 정도로 거대했다.
“정말로 배터리도 없이 이 기기의 모든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상태라······. 이 말인가······?”
“네. 충전도 필요 없어요. 실시간으로 주변 대기에 있는 마나를 흡수해서 알아서 전력으로 치환해서 공급하는 구조니까요. 엄밀히 따지자면 마나를 에너지원으로 삼아서 작동하는 거긴 하지만······. 마나의 존재를 모르는 미개한 인간들의 눈으로 보기에는 그야말로 영구기관이나 다름없어 보이기는 하죠?”
“······.”
장난기 가득한 멀린의 말에 이호준 회장의 머릿속에는 여러 가지 상상들이 스쳐 지나갔다.
이 세상을······. 이 우주를 지탱하고 있는 물리학적인 법칙을 기반으로는 존재하지도, 또 존재할 수도 없는 상상 속의 장치. 영구기관의 탄생. 물론 마나를 기반으로 한다고는 하지만 아직 정확하게 검증도 되지 않은 에너지원을 기반으로 한 이 무(無) 배터리의 제품을 상용화해서 출시한다면 비단 스마트폰의 시장 문제가 아니라 과학계를 비롯해 산업계 전체에 어마어마한 충격을 가져올 것이 분명했다.
“그 말은······. 이 수식이 비단 스마트폰만이 아니라 그 이외의 다른 기계와 설비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말인가?”
조금 엉성하고 삐뚤삐뚤하지만,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나의 마법진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는 이호준 회장. 이것만 있다면 전혀 다른 개념의 에너지 혁명이 가능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많은 것들을 떠올리고 있는 것 같았지만 아쉽게도 그의 상상은 실현 불가능했다.
“아쉽지만 현재 이 지구의 마나량으로는 불가능할걸요? 이게 가능한 것도 사실 스마트폰이 잡아먹는 전력량이 극도로 적어서 가능할 뿐이지 출력이 높은 대형 장비에 이 수식을 적용한다고 한다면 마법진을 항시 가동할 수 있는 수준의 마나를 공급하는 건 힘들죠.”
“그런가······?”
“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수식도 완전히 뜯어고쳐야 할 수준으로 달라지죠. 높은 출력의 전력으로 변환하려면 고려해야 할 사항이 얼마나 많아지는지 아세요? 이런 조잡한 수준의 수식으로 그랬다가는 곧장 누구 하나는 뒤지고도 남을걸요?”
“아쉽군······.”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살벌한 경고를 하는 나를 바라보며 씁쓸한 표정으로 입맛을 다시는 이호준 회장. 하지만 이내 그의 눈빛에는 탐욕과 열망으로 번들거리기 시작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자네가 이걸 나에게 보여준다는 건 우리 삼진 그룹에게 이 기술을 제공할 의향이 있다고 보이는데 내 생각이 맞는가?”
해결책을 주겠다고 했던 내 말을 떠올리며 잔뜩 기대에 찬 얼굴로 물어오는 이호준 회장. 그런 그에게 나는 활짝 웃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제가 일전에 했던 말이 농담이겠어요? 당연히 제공한다면 우리 회장님께 먼저 드려야죠. 어떻게······. 생각 있으세요?”
“생각이 없을 리가 있겠는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확보해야 할 신기술이네.”
다른 제품들에까지 똑같이 적용할 수는 없겠지만, 스마트폰만이라도 상용화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강력한 경쟁사였던 앰플폰을 씹어먹고도 남을 정도의 혁신을 불러올 수 있는 기술. 그렇기에 이호준 회장은 확고한 어조로 말했다.
“이걸 우리 삼진 전자에 제공하는 대가로 뭘 원하는가? 원한다면 내 지분까지도 일부 넘겨줄 수도 있네만.”
무슨 대가를 치러서라도 반드시 확보하겠다는 의지가 가득한 이호준 회장. 하지만 그런 그의 물음에 나는 잠깐 고민하다 이내 입을 열었다.
“음······. 그것도 나쁘지는 않은데요. 일단 바이오와 같은 조건으로 가도록 하죠.”
“총 판매 수익의 30% 말인가······?”
“네. 어차피 실패할 리가 없는 기술이니까 괜히 액수 딱 정해서 받아갈 이유가 없잖아요? 얼마를 벌어들이든 저랑 사이좋게 나눠 먹기만 한다면 전 상관없어요.”
“알겠네. 그렇다면 거래가 성사된 거로 알고 그 아영이라는 아가씨에게 계약서를 조만간 보내도록 하겠네.”
“아, 그런데 그거 말고 또 다른 조건이 하나 있어요.”
“조건······? 그게 뭔가?”
또 다른 요구가 있다는 말에 자리에서 일어나다 멈칫하던 이호준 회장. 의아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에게 나는 은근한 눈빛으로 물었다.
“회장님······. 혹시 땅 좋아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