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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마법 만세!-41화 (41/242)

41화

41화.

삼진 그룹에서 거느린 수많은 계열사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삼진 전자. 이들은 여느 IT 기업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업을 벌이며 수백······. 아니, 수천 개도 넘는 제품들을 개발하고 또 판매해오고 있었다.

작게는 청소기나 세탁기, 에어컨 같은 생활 가전제품부터 시작해서 크게는 반도체, OLED 패널, 메모리와 같은 기업용 제품까지······.

수많은 제품이 삼진 전자의 로고를 붙인 채로 시장에 판매되고 있었지만, 그중에서 블루홀 시리즈가 가지는 의미는 생각 이상으로 컸다.

[ 요즘 사람들은 TV나 컴퓨터가 집에 없어도 생활하는 데 큰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는 사람들의 손에 하나씩 들려있는 스마트폰 때문인데요, 인터넷 검색을 비롯해 뮤튜브, 게임, 금융, SNS 등 기존의 컴퓨터와 TV로 하던 모든 기능과 역할이 전부 스마트폰 하나로 대체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

집에 TV나 컴퓨터가 없더라고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두가 필수품처럼 가지고 다니는 현대 과학 문명의 산물. 스마트폰. 현대인들의 생활에 가장 밀접하게 연결되어있는······. 그리고 또 많이 사용하는 물건이었기에 이번 블루홀 사태는 특히 소비자들의 인식에는 치명적이었다.

- 아, 삼진 실망이네. 무슨 물건을 이따구로 만드냐?

- 알고 보니까 숫자만 9에서 10으로 바꾼 거지 실상은 9보다도 못한 제품.

- ㅋㅋㅋㅋㅋ 최신형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 죄다 흑우행.

- 이번 이슈 터진 거 보고 빠르게 앰플로 갈아탔다. ㅅㄱ

- 블루홀이 편해서 그냥 썼는데 이제 앰플로 바꿀 때가 왔나······.

원가 절감을 위해서 이전 제품보다 못한 제품을 만드는 것도 모자라 거의 사기에 가까운 마케팅을 통해서 소비자들의 뒤통수를 친 삼진 전자.

그렇게 한순간에 믿고 살 만한 제품을 만드는 기업에서 멋모르는 소비자들 호구나 잡는 악덕 기업으로 인식이 추락하며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지만, 이를 완전히 타개할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은 없었다.

“끄응······. 머리 아프군.”

“삼진 전자가 상황이 많이 난처해진 것 같습니다. 회장님.”

“아무리 네 형이라고는 하지만 지금까지 어떻게 회사를 경영했는지 살펴보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글러 먹었더구나. 예전 제품만도 못한 고물 덩어리를 신제품이라고 시장에 공개했었다니······.생각만 해도 머리에 피가 쏠려.”

“안 그래도 뉴스나 인터넷에서 관련 문제로 꽤 시끄럽더군요.”

“······. 지금 당장 돈을 벌고 실적이 좋으면 뭘 해? 소비자들의 신뢰는 완전히 밑바닥까지 추락했는데. 하여간 그 자식을 그냥······.”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뻗치는 듯, 연신 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이를 갈고 있는 이호준 회장. 하지만 이용수 사장은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그래도 다행이라는 듯이 말했다.

“그래도 이제라도 문제점을 알게 돼서 다행이지 않습니까? 지금 당장은 큰 논란이 되어 시끄럽겠지만 최대한 신속하게 대응한다면 아마 큰 피해 없이 문제를 봉합할 수 있을 겁니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터졌을 문제.

오히려 아무런 소리소문없이 상처가 썩어들어가 서서히 죽어가는 것보다 지금처럼 피가 철철 흐르더라도 과감한 개혁과 혁신으로 삼진 전자를 올바른 방향으로 되돌려 놓을 수 있다는 것이 이용수 사장은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회장님께서는 어떻게 이 문제를 처리할 계획입니까?”

“이미 여론은 최악으로 떨어진 상태고 외신 기사들까지 퍼져나간 상황이라 지금 블루홀 10의 흥행은 어렵다고 봐야겠지. 밑에 녀석들이 말하는 걸 들어보면 소프트웨어를 최적화해서 문제들을 최대한 잡을 수 있다고는 하지만, 원가 절감을 위해 저지른 설계상 구조적 한계는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 같더군.”

발열을 잡기 위한 부품들이 없는 상황에서 소비자들의 불만을 잠재울 수 있을 정도의 혁신적인 개선은 불가능한 상황. 그렇기에 이호준 회장의 얼굴에 드리운 근심은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기에 이용수 사장은 그를 힐끗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전면 리콜까지도 고려 중입니까?”

“필요하다면 그것도 고려해야겠지. 일단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방안을 모색 중이긴 하지만······. 이미 생산해놓은 재고들을 생각한다면······. 손실만 수천 억은 가볍게 넘어가게 생겼어.”

이미 인터넷에서 활활 불타고 있는 여론.

인제 와서 어지간한 수준의 보상안이나 사과문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느끼고 있었기에 이호준 회장은 깊은 한숨을 푹 내쉬며 애써 화제를 넘겼다.

“그래서······. 바이오 쪽은 어떠냐? 지금 신약 개발 절차는 들어간 게냐?”

“아, 그게 말입니다. 최근 FDA 측에서 직접 저희가 개발한 신약을······.”

첫째 자식이 온갖 똥을 산더미처럼 남기고 간 삼진 전자의 이 암울한 상황보다는 삼진 바이오의 밝고 희망찬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더 나누고 싶은 이호준 회장이었다.

*

[ 주인. 도대체 뭐 하고 있는 거야? ]

드라이기를 가지고 와서 연신 내 스마트폰에다가 이리저리 가져다 대는 나를 보며 의아한 목소리로 물어오는 용용이. 그리고 그런 그의 물음에 나는 시큰둥하게 답했다.

“뭐겠냐? 접착제 녹이는 중이지.”

[ ······? 그걸 왜 녹여? ]

방수와 방진 기능 때문에 예전과는 다르게 나사를 푼다고 분해할 수 없게 만들어진 나의 블루홀 9. 누나가 최근에 샀던 10은 아니었지만, 기본적으로 전체적인 구조는 그리 크게 변하지 않았기에 나는 조심스럽게 스마트폰의 뒤판을 분리하고는 그 안에 숨겨져 있는 속내를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 헤에······. 속에 엄청 복잡하게 뭐가 잔뜩 들어가 있네. ]

첨단 기술의 총아라고 불릴 수 있는 이 스마트폰의 내부를 보며 신기하다는 듯이 중얼거리는 용용이.

수백 개가 넘는 온갖 종류의 부품들이 그 자그마한 손바닥 정도의 케이스 안에 오밀조밀 들어가 있어 일반인이라면 감히 건드릴 엄두도 안 날 정도로 복잡했지만, 과거에도 이런 것들을 취미 삼아 몇 번 분해해보고 만지작거렸던 경험이 있는 나에게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보자······. 여기가 메인보드고 스피커······. 카메라에 이건 뭔지 모르겠고······. 음······.”

완전하게 다 이해하는 것은 아니지만 얼추 각 부품의 기능을 대충 추측할 수 있는 나는 그렇게 몇 개의 부품들을 분해하고 들어내고 난 이후에 원하는 부품을 뽑아낼 수 있었다.

“성공!! 생각보다 간단하네.”

[ 주인. 그게 도대체 뭔데 그렇게 난리야? ]

삼진 전자의 AS센터 엔지니어들이 봤으면 기겁할 만한 광경. 드라이기로 접착제를 녹이고 자체적으로 해체해다가 온갖 부품들을 뜯어보고 있는 나의 행동은 혹시라도 잘못되면 자그마치 하나에 백만 원이 넘어가는 초고가의 스마트폰을 보증기간이고 뭐고 상관없이 그대로 날려 먹는 거나 다름없을 정도로 위험천만한 짓이었지만 나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이거? 배터리라고 하는 거야.”

[ 배터리······? 그게 뭔데? ]

“전기를 저장하는 부품인데······. 음······. 이를테면 마나석 같은 거지.”

[ 아, 그래? ]

마나석이라고 하니까 곧장 이해하는 용용이. 하지만 그는 이내 또다시 이해가 잘 안 된다는 듯 의뭉스럽게 물어왔다.

[ 그런데 그걸 왜 찾은 거야? 그거로 뭐 하려고? ]

“이 스마트폰이라는 녀석을 작동하기 위해서는 이게 필수적이거든. 전기를 통해 작동하는 물건이라서 지속해서 끊임없이 전력을 공급해줘야 하는데 전기 콘센트에 꽂고 다닐 수가 없으니 이 안에 저장창고를 같이 넣어둔 거지.”

[ 으음······. 무슨 말인지는 대충 알겠네. ]

“꼭 필요한 부품인데 사실 엔지니어나 디자이너로서는 가장 골칫거리인 녀석이기도 해. 안 그래도 작고 얇은 스마트폰을 만들라고 위에서 자꾸 압박을 넣는데 이 배터리 때문에 그게 불가능할 때가 많거든.”

아주 얇고 가벼운 제품을 위해서 작은 용량의 배터리를 넣으면 사용 시간이 줄어들고, 용량이 빵빵한 배터리를 넣으면 제품의 크기가 뚱뚱해지고 우람해지는 딜레마적인 문제.

배터리 때문에 매일 같이 밤을 지새우며 머리를 쥐어 싸매는 개발자들의 피눈물을 떠올리며 나는 이들의 고뇌의 주범을 가차 없이 옆에 놓인 쓰레기통에 던져넣었다.

[ ······? 그걸 왜 버려 주인? ]

“잠깐 생각해봤는데, 스마트폰이라는 녀석이 생각보다 그렇게 전력을 많이 잡아먹는 제품이 아니다? 고작 백열전구 하나 켜는 것보다도 안 될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에너지를 적게 쓰는 물건이야.”

[ 그래······? ]

제한된 전력량을 가지고 최대한의 사용 시간과 효율을 확보하기 위해서 숱한 공돌이들이 공밀레를 외치며 갈려 나간 덕분에 만들어진 첨단 과학 기술의 산물. 그렇기에 나는 진한 미소를 지으며 그 대단함을 잘 이해하지 못한 것 같은 용용이에게 말했다.

“그래서 한번 계산해 봤는데 가능할 것 같더라고.”

[ 뭐가 가능해? ]

“이거 봐. 내가 만들어놓은 마법진 도안이거든? 이걸 여기다가 새겨놓을 거야.”

[ 이건······? ]

A4용지에 내가 스케치해놓은 원형의 마법진.

그다지 복잡한 술식을 적어놓을 필요도 없을 정도로 비교적 간단한 것이었기에 용용이는 보자마자 그 효과를 이해하고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 마나를 전기로 변환시키는 수식이네······. 그런데 그 양이 너무 미미한데? ]

“이 정도면 딱 적정량이거든? 이거보다 더 많았다가는 과전압으로 회로가 다 터져.”

[ 뭐······. 무슨 소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정도 수준이면 답도 없이 적은 이 세계의 마나량으로도 가동할 수 있겠네. ]

“그치? 그게 핵심이야. 언제, 어디에서도 마법진이 가동할 수 있는 수준으로 아주 적은 마나만을 요구하게 만드는 거지.”

[ 아티팩트(Artifact)라고 하기는 부끄러울 정도로 조잡한 수식이긴 한데 주인이 원하는 게 그거라면 수식 자체는 나쁘지 않네. ]

전기라는 효율적이고 친환경적인 에너지원을 고작 몬스터나 사람을 감전사시키는 야만적이고 미개한 방법으로밖에 사용하지 않는 판달리아. 그렇기에 용용이는 조금 따끔한 수준에 불과할 미약한 수준의 전력을 발산하는 내 수식을 보며 콧방귀를 꼈지만 나는 조각칼을 집어 들고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용용아. 다시 말하지만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마법이 가진 가치는 여기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뛰어나다니까?”

만약 이곳이 용용이가 있던 판달리아의 세계였다면 내가 그려놓은 마법진은 그냥 쓰레기나 다름없었다. 사용할 수 있는 곳이 전혀 없는 아주 미약한 수준의 전력만을 발생시키는 활용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술식.

하지만 과학 기술이 꽃피운 이곳에서는 달랐다.

“상상해 봐. 배터리도 없이,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마나를 포집해서 그것으로 영구적으로 작동하는 스마트폰이 가진 가치를. 충전도, 배터리 수명도, 그 무지막지한 크기와 무게도. 그 어떤 제약도 없이 무제한으로 24시간 가동되는 영구기관(永久機關)의 탄생을.”

스마트폰의 몸체 안에 거의 절반에 가까운 비중을 차지하는 부품인 배터리.

그것이 아예 사라진 채 그저 회로 기판에 새겨진 마법진 하나를 통해서 스마트폰을 가동하는데 필요한 모든 에너지를 공급받는 그야말로 혁신 그 자체인 기술.

이 마법진 하나만으로도 기술적, 구조적 한계에 봉착해 지금의 투박하고 진부하기 짝이 없는 스마트폰의 디자인을 벗어나 파괴적이고 혁신적인 디자인의 제품들을 뽑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 무식한 벽돌 같은 보조 배터리도, 충전기를 들고 다니며 꺼지기 일보 직전의 스마트폰을 충전하기 위해서 콘센트 옆에 쪼그려 앉거나 카페를 찾아다닐 필요도 없어진 세상.

스마트폰 없이는 하루도 살지 못하는 이 현대의 인간들에게는 그야말로 상상 속에서나 존재할 법한 그런 스마트폰을 만들기 위해서 나는 히죽 웃으며 조각칼을 집어 들었다.

“잘 보라고. 이 쓸모 없어 보이는 마법진 하나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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