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40화.
삼진 전자가 새롭게 출시한 블루홀 10.
공격적인 마케팅과 더불어 사전 구매자들에게 빵빵한 할인 혜택과 사은품들을 내건 덕분에 엄청난 초기 판매량을 기록하며 연일 큰 인기를 끌고 있었다. 그렇기에 수많은 이용자 사이에서 터져 나오는 불만과 이용 후기에 관한 정보들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인터넷에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 삼진 전자의 신제품. 블루홀 10. 발열과 배터리 문제 논란.
- 역대 제품 중 가장 높은 성능 점수와 다르게 부족한 성능. 그 이유는?
- 삼진 전자의 신제품. 이용자 불만 사례 급증. 관련 사태에 관해 확인 중.
불만 여론이 사방에서 쇄도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올라오는 관련 인터넷 기사들. 그리고 이와 관련한 소식들은 곧장 이호준 회장의 귀로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관련 긴급회의가 소집되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성능 문제라니?”
삼진 전자의 최신 스마트폰. 블루홀 10.
무선 통신 사업부의 주력 제품이자 삼진 전자의 매출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상품이었기에 이런 문제가 출시 이후에 터져 나왔다는 것은 여간 심각한 일이 아니었다.
“현재 불만 사항에 대해서 내부적으로 확인하고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대량의 자원을 사용하는 작업이나 프로그램의 구동 중에서 발생하는 성능 저하와 발열 문제에 따른 문제로 보입니다.”
“뭐?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알아듣기 쉽게 간략하게 이야기하게.”
“그게 그러니까······.”
이호준 회장 앞에서 현재 제기되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임원. 그리고 그의 이야기를 차근차근 듣고 있는 이호준 회장의 얼굴의 낯빛은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쉽게 말해서······. 현재 블루홀에 들어간 AP(Application Processor)로는 고사양의 프로그램을 장기간 구동시키기에는 발열과 배터리 사용 시간 문제가 발생해서 임의로 성능에 대한 일종의 제약을 걸어놨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발열과 배터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조치였습니다. 게임과 같은 프로그램을 구동시킬 때 제한적으로 적용되는 조치일 뿐이고, 일반적인 사용에서는 큰 문제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사항이 정확하게 고객들에게도 고지된 내용이 맞나? 지금 내가 확인한 바로는 전혀 그런 내용을 몰랐다는 것처럼 보이는데.”
“······. 제품의 마케팅 관점에서 굳이 부각할 사항이 아니라고 판단되었기에 굳이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추가적인 제품 안내 설명서에 관련 사항이 들어가 있기에 법적으로 문제가 될만한 부분은 없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자네가 말해보겠나? 지금 이 상황은 마케팅의 관점에서 어떤 상황이라고 생각하는지?”
보고를 들으면서 연신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이호준 회장.
평상시 회의를 하면서 다른 행동을 하며 한눈을 파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기에 그런 그의 행동에 잠깐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임원들은 이내 그의 스마트폰에서 이제 막 뮤튜브에 업로드된 것으로 보이는 뉴스 보도를 보며 헛숨을 들이켰다.
[ 최근 삼진 전자에서 출시한 프리미엄 스마트폰. 블루홀에 대한 성능 평가에 대해서 특정 상황에서 성능이 대폭 저하하는 현상을 확인했습니다. 이에 세계적인 전자기기 성능 평가 플랫폼인 너드 벤치는 삼진 전자가 블루홀 10의 발열과 배터리 문제를 숨기기 위해 성능 조정 프로그램. 일명 POS(Program Optimizing System)를 통해 의도적으로 성능을 조작한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이에 블루홀 10의 성능 점수를 삭제하고 기존 제품 모두를 전면 재검토해 POS가 적용된 제품의 일체를 영구 퇴출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
전 세계적으로 가장 공신력 있는 스마트폰의 성능 평가사인 너드 벤치의 극단적인 조치.
이미 이런 식으로 성능 조작을 통해 허위로 소비자들을 기만한 전례가 다른 회사에서도 여럿 있었기에 세계적으로 나름 유명한 삼진 전자라고 예외는 없다는 듯 이들은 즉각적으로 조치를 해나가겠다고 공언하고 있었다.
“내가 마케팅을 전공한 건 아니지만 이 정도면 그야말로 재앙에 가까운 수준인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
마치 이 상황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이 물어오는 이호준 회장. 그리고 그 물음에 회의실 안의 임원들 그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내가 삼진 전자를 맡아서 경영하고 있을 때만 해도 POS라고 했나? 이런 시답지 않은 프로그램은 넣어놓은 기억이 없는데. 언제부터 이런 장난질을 한 거지?”
“그게 그러니까······.”
“여기 인터넷에 보니 어떤 소비자는 아예 자체적으로 우리 신제품을 하나하나 분해해서 뜯어보고 또 분석까지 해 놨구먼. 최신형이라고 가격은 비싸게 더 받아놓고 실상 부품 성능은 오히려 1년 전 제품인 블루홀 9보다도 못한 수준이라고 평가하는데 이게 사실이 맞나?”
“······.”
침묵은 곧 긍정.
이호준 회장의 물음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는 담당 임원을 보며 그는 점점 얼굴을 굳히며 싸늘하게 물었다.
“이것도 이진수 녀석 짓인가?”
후대를 생각하며 자리를 넘겨주며 자신이 생각하던 삼진 전자의 방향성과 추구하는 가치에 대해서 아낌없이 공유하고 조언했던 이호준 회장. 잘하고 있으리라 믿었지만 실상 뚜껑을 열어보니 나타난 이 어마어마한 문제들을 보며 그는 굳게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임원들을 향해 물었다.
그리고 이내 힘겨운 얼굴로 누군가가 솔직한 과거의 진상들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내부적으로 개발 부서와 관련 문제에 대해서 계속해서 지적하고 또 의견을 냈습니다만, 원가 절감과 영업 이익 확충을 위해서 부득이하게 내릴 수밖에 없는 조치들이었습니다.”
“저희도 POS와 성능 저하와 관련한 문제에 대해서 강하게 사장님께 건의했지만, 도무지 받아들이지 않아서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히트 파이프와 베이퍼 체임버(Vapor Chamber)까지 모두 빼버려서 최소한 방열판이라도 추가하자고 했지만, 그것 역시 생산 공정의 복잡성과 비용 문제로 무산되었습니다.”
“막대한 보조금과 마케팅 비용으로 인해서 발생한 지출과 판매량 감소로 인해서 발생한 이익 감소를 메꾸기 위한 생산 단가 절감 정책에 대한 이진수 사장의 의지가 너무 강력해서 저희로서는 도저히······.”
자신들이 살기 위해서 과거 자신들이 모시던 상사이자 무능하지만 그래도 자식이었던 이진수 사장의 치부를 연신 떠들어대는 이들. 이호준 회장은 그런 그들의 이야기를 잠자코 듣다 이내 주먹으로 거세게 책상을 내리쳤다.
콰앙.
이제 60대 중반에 들어서는 노인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패기.
그리고 그는 완전히 얼어붙어 입을 다물고 있는 임원들 모두를 둘러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내가 여기서 가장 화가 치미는 점이 뭔지 아나?”
“······.”
“판매 실적 부진? 생산 수율의 저하? 무능한 사장에게 직언하지 못하고 제 자리를 보전하는 데 급급한 네놈들의 비겁함? 아니, 그런 게 아니다. 내가 가장 화나는 건······.”
마치 마음 같아서는 눈빛으로 모두를 찢어 죽일 것 같은 살벌한 기세로 임원 한명 한명의 눈을 바라보는 이호준 회장. 그리고 그는 으르렁거리듯이 모두를 향해 그 분노를 토해냈다.
“네놈들이 완전히 걸레짝으로 만들어놓은 브랜드의 가치다.”
앰플과 블루홀을 사이에 두고 서로 치열한 전쟁을 벌여오던 소비자들.
본인이 삼진 전자랑 아무런 관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블루홀을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적극적으로 블루홀을 옹호하고 또 해가 지나며 새롭게 출시하는 신제품들을 꼬박꼬박 사주던 충성 고객들.
그리고 이런 고객들에게 삼진 전자가 만들어낼 수 있는 최고의 제품을 선사하겠다는 그 신뢰를 이번 블루홀 10을 통해서 완전하게 무너뜨렸다.
“이제 이번 사태로 인해 배신감을 느낀 소비자들이 다음 블루홀 제품을 구매할 거로 생각하나? 비단 스마트폰 아니라 하더라도 삼진 전자의 로고가 붙은 제품을 마음 놓고 살 수 있을까? 아니! 분명 또 비용 절감을 위해서 이상한 수작질을 벌였다고 의심하겠지.”
타인의 신뢰를 얻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지만, 한번 깨져버린 신뢰를 다시 회복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특히 수많은 대체재······. 그것도 앰플폰이라는 아주 강력한 경쟁자가 존재하는 이상 이번 사태는 단순한 해프닝이나 사고 정도로 넘어갈 수준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이호준 회장은 마치 사형선고를 내리는 사신과도 같은 냉혹하고도 싸늘한 목소리로 침을 꿀꺽 삼키고 있는 임원들에게 명령했다.
“지금부터 딱 24시간 주지. 그 시간 내로 이번 사태를 해결할 대안을 내 앞으로 가지고 와. 그러지 못한다면 여기 이 자리에 있는 네놈들은 모두 오늘로 끝장이다.”
*
“으······. 누나······. 계란말이가 왜 달아?”
“소금 넣는다는 게 정신없어서 실수로 설탕 넣었지 뭐야.”
“······.”
“뭐야? 그 불만에 가득 찬 눈은? 먹기 싫으면 먹지 마. 이게 음식 아까운 줄 모르고.”
“이걸······. 음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게 또 까불고 있어! 너 자꾸 밥상머리 앞에서 반찬 투정할 거야?”
인간이 먹을 수 없는 음식을 만들어놓고 너무나도 뻔뻔하게 먹기 싫으면 먹지 말라는 영희. 그런 그녀의 요리 앞에서 입을 삐쭉 내밀고 김치와 멸치에 애써 아침을 먹고 있는 와중에 뉴스 소리가 시끄럽게 부엌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 삼진 전자의 신제품. 블루홀 10의 성능 관련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 삼진 전자 측에서 아직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지만, 어제 너드 벤치의 발표 이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삼진 전자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확산하고 있습니다. ]
[ 최근 몇 년간 발생했던 삼진 전자의 제품 성능 논란은 계속해서 있었습니다. 이 상황은 원가 절감을 통한 영업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이진수 전 삼진 사장의 경영 방침에 따른 결과라고 보는 것이 가장 신빙성 있는 정황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습니다. 과거 이호준 회장이 삼진 전자를 경영하던 때를 생각해 본다면······. ]
[ 삼진 전자가······. ]
삼진 전자와 관련해서 계속해서 언급되고 있는 내용들.
그것을 유심히 듣고 있던 영희는 멍하니 입을 우물거리며 생존을 위한 식사를 하는 나에게 푸념하듯이 중얼거렸다.
“으휴······. 정말이지 속상해서 원.”
“뭐가?”
“아니, 저 블루홀 10말이야. 3년 만에 기껏 스마트폰 최신형으로 바꿨는데 막상 바꾸고 나니까 저런 문제가 터졌잖아.”
“어? 뭐야. 누나 최근에 폰 바꿨어? 누나 앰플폰만 썼잖아.”
앰플폰이 디자인이 예쁘다며 앰플만 고집하던 영희. 웬일로 삼진의 블루홀을 구매했나 싶어 의외라는 눈초리로 묻자 그녀는 짜증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학원 다니다 보면 온갖 자료랑 논문을 내려받고 옮기고 해야 하는데 앰플은 운영체제가 너무 폐쇄적이라서 불편하단 말이야.”
“아. 그래서 바꾼 거야?”
“그래! 그래서 큰맘 먹고 바꾼 건데 성능을 조작했다잖아. 어휴! 배터리가 오래 간다고 해서 큰맘 먹고 산 건데. 정말이지······. 이제 환불도 안 될 텐데 꼼짝없이 2년을 쓰게 생겼어.”
새로 산 스마트폰이지만 전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거칠게 손에 들고 있는 폰을 흔들면서 온갖 불만을 토로하며 연신 투덜거렸다.
“흐음······. 그렇단 말이지······.”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자 삼진 그룹이 이 문제로 꽤 오랜 시간 고초를 겪었던 것이 어렴풋이 떠오른 나는 이내 잔뜩 화가 난 듯한 그녀를 보며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뭐야? 그 미소는?”
문득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재미난 발상.
그리고 그 발상을 현실에 구현하면 벌어질 거대한 여파를 떠올리며 나는 의심스럽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누나를 향해 히죽 웃으며 답했다.
“아냐. 아무것도.”
아무래도 누나의 불만족스러운 삼진 전자의 신제품을 좀 만져줘야 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