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39화.
삼진 그룹의 총수인 이호준 회장의 장남이자 삼진 전자를 책임지고 있었던 이진수 사장.
그의 갑작스러운 그룹 내 퇴출은 비단 기자나 경제계 관련 종사자들만이 아니라 일반 대중들에게조차도 화젯거리였지만 삼진 그룹 내부에서는 그야말로 핵폭탄이 터진 것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충격파가 밀려왔다.
“야, 소문 들었어?”
“무슨 소문?”
“그 있잖아. 이진수 사장님 나가서 공백 된 삼진 전자······. 그거 회장님이 다시 직접 맡아서 관리하신다더라.”
“뭐······? 그럼 진짜 말만 그런 게 아니라 다시 그룹 경영에 복귀하시는 거라고?”
“어. 크크크. 그래서 지금 들리는 말로는 지금까지 최근 3년 동안 진행해왔던 사업이랑 실적, 그리고 현재 현황까지 모조리 다 정리해서 직접 보고하라고 엄포가 떨어졌다고 하더라고.”
“와······. 진짜 손 놓은 동안 있었던 모든 걸 싹 다 갈아엎으시려나 본데?”
“이진수 사장 라인은 전부 다 엿 된 거라고 봐야지. 솔직히······. 회장님이 뒤로 물러난 이후로 실적 처참했잖아?”
“그거야 뭐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앞으로 우리 물산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
“위에 임원들이나 망한 거지 일개 직원인 우리 대리급이 뭐 있겠냐? 그냥 시키는 일만 하면 되는 거야.”
“하하······. 이럴 때는 아직 직급 낮은 게 좋은 건가?”
삼진 전자만이 아니라 물산, 금융, 중공업, 전기······. 수많은 계열사에 임직원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 압도적인 영향력으로 서서히 그룹 전체를 장악해나가던 이진수 사장.
그랬던 그가 돌연 한순간에 끈 떨어진 연이 되어버리자 여러 임원과 직원들 사이에서 커다란 혼란과 동요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또다시 직접 경영 일선에 나선 이호준 회장은 생각보다 심각한 삼진 전자의 내부 상태를 보며 한바탕 호통을 쳐대고 있었다.
“이게 지금 말이나 되는 일인가? 도대체 내가 없는 동안 일을 어떻게 해 왔길래 이렇게까지 북미 시장에서 뒤질 수 있나? 어떻게 판매량만 앰플하고 2배 차이가 날 수 있는 거지?”
삼진 전자의 주력 상품 중 하나인 스마트폰 블루홀. 그 블루홀을 앰플의 본진인 북미 시장에서 흥행시키기 위해서 갖은 노력을 다했었던 이호준 회장은 한때 막대한 보조금과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서 앰플의 판매량을 여러 분기 동안 추월하기도 했었다.
영업 이익을 포기하고 심지어 적자까지 감수해가며 공격적으로 북미 시장에서의 몸집을 불려 나가던 삼진 전자. 하지만 몇 년 동안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있던 이호준 회장은 다시 돌아와 시장 상황을 살펴보니 그간의 노력이 허무할 정도로 앰플과의 격차는 또다시 벌어져 있었다. 아니, 오히려 이전보다 더 상황이 나빠져 있었다.
“판매 실적이야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도대체 왜 신규 개발 투자는 줄인 건가? 내가 분명히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R&D 관련 예산은 최대한 확충하라고 했을 텐데?”
자신이 생각하던 것과는 다르게 대폭 축소되어 있던 개발 비용. 지금 당장은 아무런 성과 없이 돈 먹는 하마처럼 어마어마한 비용만 지출하겠지만, 먼 미래를 바라본다면 반드시 필수적으로 이루어져야만 하는 투자. 하지만 그런 그의 생각과는 다르게 이전과는 전혀 달라진 것 없는······. 아니, 오히려 처참하게 축소된 투자 규모를 보며 이호준 회장의 눈매는 점점 역으로 휘어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이진수 그 녀석이 무슨 짓을 벌인 건가?”
짤막한 물음이지만 서릿발 한기가 흐르는 그 냉기에 순식간에 얼어붙은 회의실. 그리고 그 물음에 책임자인 임원 하나가 잔뜩 긴장한 얼굴로 떠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저······. 그것이······. 근래 몇 년간 추진했던 인수합병으로 인해서 비용 절감과 경영의 유연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이진수 사장의 지시로······.”
“그러니까, 그 말은 다른 회사 집어삼키느라 바빠서 돈 아끼겠다고 개발 비용을 모조리 다 빼갔다 이 말인가?”
“······.”
이호준 회장의 말에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린 임원. 하지만 대답을 바라고 한 질문이 아니었는지, 그는 한심하다는 듯이 들고 있는 보고서를 책상 위에 거칠게 내려놓으며 중얼거렸다.
“흥, 멍청한 자식. 수십 조를 이런 식으로 멍청하게 낭비해놓고 고작 3조를 동생 회사에 투자한다고 그런 아쉬운 소리를 했던 건가? 이런 녀석을 그동안 사장이라고 앉혀놨다니. 쯧쯧.”
그간의 성적표가 전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불만에 찬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연신 혀를 차는 이호준 회장. 그리고 그런 그의 반응에 안 그래도 차가웠던 회의실 내부는 그야말로 숨소리 하나 안 들릴 정도로 더욱 냉각되었다.
‘큰일이다······.’
‘이런 망할······. 이러다 전부 다 잘라 버리는 거 아냐?’
‘어휴. 도대체 사장님은 왜 갑자기 그만두신 거야?’
‘또 무슨 사고를 쳤길래······.’
정확한 이유가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회사를 그만두는 것을 넘어 도망치듯이 한국을 떠나버린 이진수 사장. 그런 그의 동태를 보며 직원들은 분명히 무슨 커다란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었다. 특히나 뭔지는 모르겠지만 잔뜩 날이 서 있는 이호준 회장의 태도를 보면 그러한 예상은 점점 확신으로 변해갔다.
“그리고 말이야······. 지금 신제품도 마음에 안 들어. 반으로 접는 스마트폰? 폴더블? 그거 정말 시장성 있는 게 맞나?”
접이식 액정······. 일명 플렉서블 디스플레이로 만들어진 삼진의 새로운 스마트폰 폴더블.
기존 경쟁자인 앰플과 차별화되는 삼진만의 독특한 제품으로 시장의 큰 주목을 받고 있었지만, 이호준 회장은 영 떨떠름한 눈치였다.
“예. 현재는 좌우로 접히는 모델만 출시한 상태이지만 몇 년 내로 상하로도 접히는 모델도 출시할 예정입니다. 지금까지의 소비자 반응을 종합해서 말씀드리자면 기본적으로 신선해서 좋다는 호평이 많으며 큰 액정으로 중장년층에서도 많은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그런 그의 물음에 무선 통신 사업부의 담당 임원이 입을 열었지만, 그는 계속해서 이어지는 이호준 회장의 날카로운 물음에 식은땀을 잔뜩 흘려야만 했다.
“수율은? 생산 비용이 막대해서 그리 큰 이익이 없다고 나와 있는데?”
“현재까지는 그렇습니다만······. 판매량이 늘어나고 생산 규모 역시 증대되면 현재보다는 비용 문제는 대폭 개선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수율은······. 계속해서 개선점을 찾아가겠습니다.”
“발열 문제는 어떻게 됐나? 그리고 무게는 너무 무거운 게 아닌가? 기존 블루홀 제품과 비교했을 때 거의 30% 이상은 더 무거운데? 또 배터리 사용 시간 문제는 어떻게 되는 건가? 크기가 커진 만큼 기존만큼의 사용량을 확충하기에는 어려워보이는데?”
“에······. 그것이······. 일단······.”
하나하나가 살을 후벼 파는 것 같은 날카로운 질문들을 쏟아내는 이호준 회장. 그런 그에게 정신적으로 철저하게 박살 나는 희생양을 보며 다른 임원들은 몸을 떨었다.
‘으으으······. 역시 회장님이야······.’
‘와······. 진짜 질문 하나하나가 가차 없네······.’
‘끄응······. 이거 이러다 나한테 질문하면 어떻게 하지······.’
보는 이로 하여금 식은땀이 절로 흐르게 만드는 숨 막히는 순간. 그렇게 한참 동안 스마트폰에 관한 질문을 토해내던 이호준 회장은 문득 시계를 보고는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크흠······. 아직 하고 싶은 이야기는 더 많지만 일이 있어서 오늘은 여기까지만 해야겠군.”
삼진 바이오에 들려서 그 당돌한 마법사 소년과 잠깐의 만남을 가지기로 했던 이호준 회장. 그렇기에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임원들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둘러보며 이내 엄포를 내리고는 먼저 회의실을 나섰다.
“내일 다시 모여서 회의 진행하도록 하지. 사업부별로 상세하게 현재 현황 보고받을 생각이니까 우물대지 않게 철저하게 준비해 와.”
그 말만을 남기고는 회의실을 떠나간 이호준 회장.
그가 사라지고 회의는 모두 끝난 상황이었지만, 그곳에 앉아있는 임원들 그 누구도 감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그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한치도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상상 속에서 그저 깊은 한숨만을 내쉴 뿐이었다.
“휴······.”
*
삼진 전자의 블루홀. 그리고 앰플의 앰플폰.
대한민국의 휴대폰 시장을 양분하고 있다고 해도 무방한 이 두 제품 사이에서 소비자들은 언제나 인터넷상에서나 현실에서나 언제부터인가 치열한 전쟁을 벌여왔다.
- 블루홀 그거 왜 씀? ㅋㅋ 생긴 것도 엄청 후진데.
- 삼진 페이도 안 되는 앰등이 새끼 어서 오고.
- ㅋㅋㅋㅋ 요즘 삼진 페이 없어도 바나나 페이면 결제 다 되는데? 혹시 아재임?
- 네 다음 교통카드 신용카드 죄다 들고 다니는 감성충.
- 보안도 후져서 맨날 해킹당하고 버그랑 렉 오지는 폰 써서 좋겠다~
- 넌 통화 녹음도 안 되지? ㅋㅋ
- 응~ 어플 깔면 되는데?
- 어쩔티비~ 저쩔티비~
- 찐따 특 : 블루홀 씀.
서로를 비하하며 자신이 사용하고 있는 폰이 더 월등하다며 싸워대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 중에서 21살의 대학교 2학년인 지혁은 열렬한 블루홀의 지지자였다.
“흥, 앰등이 새끼들. 블루홀이 얼마나 편리하고 좋은데? 하여간 수수료로 얼마나 뜯기는지도 모르고 사는 멍청한 놈들.”
스마트폰을 주로 모바일 게임을 하는 데 이용하는 지혁은 적게는 몇천 원에서 많게는 몇만 원까지도 차이가 나는 앰플의 수수료 정책 때문에 지금까지 세 차례에 걸쳐서 스마트폰을 바꿨지만, 그때마다 블루홀을 선택했다.
“게임 성능에 차이가 있다고는 하지만 블루홀도 충분한데 왜 괜히 구리다고 지랄이지?”
앰플폰 자체의 그 비싼 가격 때문에라도 단 한 번도 사용해 본 적은 없었지만, 블루홀로 지금까지 온갖 다양한 게임을 즐기는 데 있어서 큰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던 지혁.
그렇기에 그는 최근 새로운 스마트폰으로 블루홀의 신제품인 ‘블루홀 10 프리미엄 울트라’를 몇 달에 걸쳐 모은 용돈과 아르바이트 비용을 전부 털어 넣어 구매했다.
“캬. 화면 크기 봐라. 아주 게임 할 맛 나겠네.”
최근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게임. 원진.
어마어마한 용량과 사양을 요구하는 게임이지만, 그에 걸맞은 환상적인 그래픽과 아름다운 미소녀 캐릭터들이 가득했기에 지혁은 조금 낮은 사양의 저렴한 제품들도 있었음에도 가장 비싸고 최고 사양의 성능을 가진 최고급 프리미엄 제품으로 선택했다.
“이제 이거면 원진도 최고 성능으로 돌릴 수 있겠구나. 헤헤······.”
지금까지 쓰던 기존의 블루홀에서는 중급 정도의 사양에서 간신히 돌아가던 원진. 하지만 이제 이거면 최고의 그래픽으로도 쾌적한 플레이를 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에 게임을 실행한 지혁은 이내 이상함을 느끼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이거 왜 이렇게 뜨거워······?”
게임을 다운로드하고 실행한 지 얼마나 되었을까?
이제 겨우 10분도 안 지난 것 같은데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두 손에서 뜨거운 열기가 올라왔다. 최대한 참고 게임을 해 보려고 했지만, 도무지 무시할 수 없는 화끈거리는 손에 지혁은 이내 게임을 종료할 수밖에 없었다.
“으······. 이러다 화상 입겠네. 도대체 이게 뭐지?”
손을 연신 흔들며 빠르게 식히는 지혁. 그렇게 홈 화면으로 돌아온 스마트폰을 힐끗 바라본 지혁은 이내 경악스러운 얼굴로 소리쳤다.
“뭐야 이거? 배터리가 왜 벌써 절반이나 닳았는데?”
분명 게임을 실행하기 전만 해도 90%에 달했던 배터리.
고작 20분 정도 게임을 한 게 전부였는데 벌써 배터리 잔량이 50% 밑으로 내려간 것을 보며 지혁은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설마 내가 산 제품이 불량품인 건 아니겠지?”
혹시나 하는 생각에 인터넷을 검색한 지혁. 그리고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이 비단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 블루홀 뭐임? 발열 미쳤는데?
- 게임은 뭐 하지도 못하겠다. 배터리가 도대체 얼마나 빨리 떨어지는 거냐?
- 블루홀 10 뭔가 이상하지 않냐? 그래픽이니 성능이 어째 예전 제품이랑 다를 바가 없음.
- 블루홀 신제품에 대해서 Araboza. 형이 직접 뜯어본다.
이미 자신과 같은 제품을 샀던 사람들 사이에서 어마어마한 성토와 불만의 글들. 그것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지혁은 얼얼해진 뒤통수를 자기도 모르게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뭐야 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