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28화.
경기도 광주와 양평 일대.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나름 수도권에 속한 지역이지만 막상 들여다보면 이곳은 참 애매하기 짝이 없는 지역이었다.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어 초대형 신도시 개발 사업이 추진된 경기 남부 지역과 다르게 소외되어 뭐든 애매한 지역. 조금만 번화가를 벗어나도 산과 들, 그리고 평화로운 작은 마을들이 반겨주는 작은 소도시와 같은 곳. 서울까지 그리 멀지 않다는 점만 제외하면 굳이 큰 장점이라고 할만한 것이 없는 지역이었지만, 이곳에서는 최근 거대한 변화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 삼진 바이오가 경기도 동부 일대에 대규모 생태 연구 단지를 조성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는 자그마치 80만 평에 달하는 규모로 뉴욕의 관광 명소인 센트럴 파크의 절반에 달하는 수준입니다. 이를 조성하기 위한 토지 매입에만 자그마치 3조 원의 자금을 투입한 것으로 알려져 광주와 양평 일대의 부동산 가격이 급격히 상승했습니다. ]
[ 경기도 의회가 최근 경기도 소유의 공공 재산인 부동산 일부를 삼진 바이오에 매각하기로 최종 의결하여 큰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이는 통상 2~3개월 이상이 걸리는 절차를 불과 한 달도 되지 않는 시간 내에 신속하게 처리하여 뒤에서 물밑 거래가 있었음을 의심하는 의혹이 커져만 가고 있습니다. ]
[ 삼진 바이오의 이용수 사장은 이번에 새롭게 건설하는 생태 연구 단지는 앞으로 삼진 바이오가 세계를 선도하는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한 교두보가 될 것이며, 한국에서 자생하는 다양한 생물 자원을 활용한 신약 개발에 전력을 다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
자그마치 3조 원에 달하는 자금의 전폭적으로 투입하고 그것도 모자라 터져 나오는 모든 논란과 이의제기들을 그룹의 역량을 총동원하여 틀어막고 거의 전속력으로 추진하고 있는 상황. 그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이 기이한 행보에 삼진 그룹 내부에서도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이호준 회장은 단호했다.
[ 3개월 주겠네. 3개월 내로 매입 절차를 끝내고 관계자들을 제외한 그 누구도 출입할 수 없도록 보안 설비를 철저하게 갖춰 놔. ]
거의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이호준 회장의 직접 지시.
그 때문에 시공을 맡은 삼진 물산은 하루도 쉬지 않고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서 공사 기일을 맞추기 위해서 밤낮없이 작업하고 있었지만, 이들 그 누구도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했다.
“거기 C 구역에 펜스 설치 작업은 다 끝나가나?”
“예. 끝났습니다. 내일 보안 업체에서 CCTV랑 감시 장비만 설치하면 마무리될 겁니다.”
“최대한 사각지대 없게 확실하게 점검하라고 해. 이번 공사는 회장님께서도 깊이 관심을 가지고 계신다고 하시니까.”
“알겠습니다. 아무 문제 없도록 제가 확실하게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그저 허허벌판의 숲과 작은 동산들만 가득한 부지.
그런 그 부지를 완전히 감싸는 거대한 성벽과도 같은 울타리를 만들고 거기에 값비싼 감시 장비들까지 설치하는 것을 보며 작업을 하는 인부들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고개를 연신 갸웃거렸다.
“원······. 이거 완전 돈 낭비 아닌가?”
“그러게 말이야. 저기 뭐 아무것도 없는데 무슨 보안을 이렇게 철저히 해?”
“이렇게 넓은 부지를 다 틀어막는 것만 해도 공사비만 한 수백억은 더 들겠다.”
“예끼. 이 사람아. 고작 수백억 가지고 되겠냐? 감시 장비를 저렇게 빼곡하게 설치하는데? 이건 최소 수천억은 들여야 가능한 수준이야.”
자그마치 80만 평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부지.
일부도 아니고 그 부지 전체를 완전히 감싸는 데에만 해도 어마어마한 돈을 써 대는 것을 보며 이들은 삼진 그룹의 막강한 자본력에 혀를 내둘렀다.
“무슨 군사 시설도 이렇게까지는 안 하겠다.”
왜 이렇게 병적으로 보안에 집착하는지 그 이유를 전혀 알지 못한 채 말이다.
*
“흠······. 그래도 내가 원하는 대로 잘 만들어주고 있네.”
저 멀리에서 한창 바쁘게 움직이며 공사를 진행 중인 삼진 그룹의 사람들.
그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게 철저하게 방비를 해 두고 있었지만, 그런 그들의 의도와는 다르게 나는 이미 부지 한복판에 들어서서 주변을 싸돌아다니며 만족스럽게 숨을 크게 들이켰다.
“캬~. 역시 이거지. 이 농밀한 마력. 이제야 좀 마나가 뭔지 느낄만한 수준은 되겠네.”
부지가 최종 선정된 직후에 몰래 찾아와 각인해 두었던 마나 집약진.
그로 인해서 주변으로 흩어지지 않고 얌전히 이 일대에 머물며 진하게 농축되어있는 마나를 한껏 들이마시며 나는 연신 히죽거리며 웃었지만 용용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 고작 이거 가지고? 다른 곳보다는 그래도 괜찮은 편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아직 형편없지. 판달리아를 기준으로 평균 수준에 절반도 안 되겠다. ]
나름 자연환경이 잘 보전된 지역에······. 그것도 마나 집약진을 가동한 것이 겨우 이 정도라는 것에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투덜대는 용용이. 하지만 나는 웃으며 바닥에 있는 흙 한 줌을 집어 들고는 말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하지. 최소한 내가 마나를 퍼부어주지 않아도 우리 살살이 풀이 알아서 자생할 정도의 수준은 되잖아?”
살살이 풀이 자라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수적으로 필요한 마나. 하지만 극악에 가까운 수준으로 희박한 이 지구의 마나 농도로 인해서 내가 옆에서 딱 붙어서 매일 같이 보살펴주지 않으면 생존 자체가 불가능했지만 여기 이곳에서만큼은 달랐다.
이 대지에······. 아니 이 흙에서 녹아있는 마나는 분명 살살이 풀이 자라나는 데 필요한 만큼의 양분을 공급해 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 그건 그렇겠지······? ]
판달리아에서 평생을 나고 자란 용용이. 그런 그에게 있어 이곳의 마나 농도는 분명 형편없이 짝이 없는 수준이지만, 주인이 하는 말을 들으며 대충 무슨 꿍꿍이인지를 깨달은 그는 그래도 나름 다시 봤다는 듯이 말했다.
[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짓을 벌였는지 이제 얼추 알겠네. 이 땅에 블러디 허브······. 아니, 살살이 풀을 재배할 수 있게 만들어주고 거기에 마나가 풍부한 이 영역 안에서 최대한 빠르게 마나를 축적하겠다. 이 생각이구나? ]
“그렇지.”
그 누구도 감히 접근할 수 없는 제한 구역 안에서 홀로 마나를 독식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 힘 하나 들이지 않고 이렇게 자유롭게 마나를 축적할 수 있는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한 것을 보며 용용이는 주인의 교활함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 흐음······. 이럴 때 보면 주인도 조금은 똑똑한 것 같긴 한데······. ]
“한데? 어째 뒤에 말이 잘린 것 같다?”
묘하게 거슬리는 용용이의 말에 눈을 가늘게 뜨며 초록빛 인형을 번쩍 집어 들며 무언의 경고를 날렸지만, 그의 그 삐죽 내민 혓바닥은 멈출 줄은 몰랐다.
[ 평상시에 하고 다니는 짓만 보고 있으면 다른 인간들보다는 멍청한 것 같단 말이지······. 참 특이해. ]
칭찬인 것 같으면서 내 욕을 하는 용용이. 그런 그의 말에 나는 이 버르장머리없는 도마뱀의 영혼은 아직 참교육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으며 말했다.
“이따 집에 가면 보자. 넌 오늘 초강력 터보 모드다.”
[ 아! 왜 또 그러는데! ]
세탁기 신세라는 말에 기겁하며 발작하는 용용이. 하지만 나는 그 결정에 조금의 번복도 없다는 의지를 담아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예전부터 말했지만 넌 그 입이 문제야. 입. 좀 생각하고 말하면 안 되냐? 하여간 사회생활이라는 걸 해 본 적이 없으니까 그렇게 할 말 안 할 말 구분을 못 하고 다니지.”
짧지만 길다고 할 수 있는 두 달의 시간 동안 경험한 용용이······. 아니 드래곤의 종특.
그것은 바로 그 하늘을 찌르다 못해 우주까지 찢어발긴 그 끝없는 자존감과 그 자존감을 바탕으로 터져 나오는 그 생각 없는 발언들이었다.
[ 아니 왜! 멍청하다는 걸 멍청하다고 하는 게 잘못이야? ]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조차 잘 모르는 것 같은 용용이.
이미 이 문제에 대해서 수 차례에 걸쳐서 몇 시간을 이야기하고 또 좋게좋게 설득도 해 봤지만, 전혀 변하지 않는 그의 태도를 보며 나는 차원을 넘어서 모든 우주에 통용되는 절대적인 하나의 진리를 깨달았다.
“초강력 터보 모드로 오늘 신나게 털려보면서 한번 고민해 봐.”
[ ······. 내가 잘못했어. 한 번만 봐 주라. 주인. ]
하여간 말 안 듣는 놈에게는 매가 약이라는 진리 말이다.
진심이 담긴 내 경고에 결국 꼬리를 내리고 사과하는 용용이.
그래도 조금의 학습 효과는 있는지 예전에는 끝까지 꼬장꼬장한 태도로 바락바락 대들면서 온갖 발악을 다 했는데 크롬 세탁기의 무서움을 직접 경험하고 난 덕분인지 이제는 조금 사리판단이 되는 것 같은 그를 보며 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 이번만 넘어가 준다. 앞으로도 처신 잘하라고.”
[ ······. 에휴······. 하여간 진짜 내가 본체로 왔으면······. 아주 그냥······. ]
뭐라고 투덜대는 용용이의 불만 섞인 혼잣말이 들려왔지만 나는 그런 그의 말을 안 들리는 척 완전히 무시한 채 가방 속에서 오늘을 위해 준비한 것들을 꺼내 들었다.
“구슬이 모두 7개······. 이걸 중복되지 않게 분산해서 묻어두려면······. 꽤 걸어야겠네.”
자그마치 80만 평에 달하는 방대한 부지. 그 부지 안 이곳저곳에 아무도 모르게 묻어둘 주먹 정도 크기의 투명한 유리구슬을 꺼내 들자 용용이는 경악했다.
[ 뭐······뭐야? 그건? ]
기하학적으로 복잡한 무언가가 빼곡하게 그려져 있는 유리구슬.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그저 특이한 장식품 정도로 봤겠지만, 용용이는 내가 직접 새겨넣은 그 술식이 의미하는 바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 뭐야. 설마 그 유리로 된 구슬에다가 마나를 저장하려고? ]
모종삽을 꺼내 일대를 유심히 살펴본 후 흙 속에 작은 유리구슬을 심어놓는 나.
“오. 그걸 보자마자 눈치챘어?”
[ ······. 나 드래곤 로드라니까? 그걸 모르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냐? ]
보고도 모를 리가 있겠냐는 듯이 살짝 발끈하는 듯이 따져 묻는 용용이. 그리고 그는 이내 진지하게 내가 만들어놓은 구슬을 살펴보고는 나쁘지 않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마나를 모아서 저장하는 보관소를 설치해둔다······. 주인치고는 나쁘지 않은 발상이네. ]
“대충 배터리 같은 느낌으로 저장해두는 거지. 언제고 이 숲속에서 온종일 마나만 모으고 있을 수는 없잖아.”
내가 만들어낸 이 마나가 풍부한 인공 생태계.
내가 없는 사이에도 계속해서 마나를 빨아들이고 또 저장하는 일종의 창고이자 배터리와 같은 역할을 할 유리구슬을 곳곳에 묻어두었다.
[ 그런데 그거 너무 조잡한 거 아냐? 마법 회로가 너무 엉성한데? ]
유리구슬에 새겨진 마법 회로의 구성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마치 초등학생이 그린 것처럼 엉성하고 조잡한 회로. 하지만 나는 그 점에 대해서는 억울한 점이 많았다.
“어쩔 수 없잖아. 업체에서 그런 괴상망측한 도형은 각인 안 해주겠다는데. 덕분에 이거 전부 다 수제로 하나하나 내가 눈알 빠져가면서 겨우 작업한 건데. 정상적으로 작동만 하는 것도 기적이지.”
단 1mm의 오차도 안 된다는 나의 까탈스러운 요구에 그 어느 업체에서도 각인해 주지 않았기에 결국에는 내가 직접 초등학교 이후로는 잡아본 적 없는 조각칼을 가지고 새길 수밖에 없었다.
[ ······. 마법은 모르겠지만, 손재주는 일단 더럽게 없네. ]
나의 형편없는 미적 감각을 지적하며 가감 없이 듣는 사람 앞에서 자신의 감상을 말하는 용용이. 하지만 그 점에 대해서는 딱히 반박할 말이 없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기에 나는 별로 화가 나지 않았다.
“걱정하지 마. 어차피 나중에 여유가 되면 그때는 내가 직접 장비를 사서 레이저로 다 작업할 생각이니까.”
[ 레이저? 그건 또 뭔데? ]
“그런 게 있어. 나중에 보면 아마 깜짝 놀랄걸?”
[ 흐음······. 또 무슨 신기한 장난감이 있나 보네······? ]
이 세상의 첨단 기술들을 장난감 취급하면서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용용이. 그런 그의 물음에 나는 진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기대하라고. 아마 깜짝 놀랄 껄?.”
저 멀리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공사에 매진하느라 정신이 없는 인부들.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나는 나 자신에게 다짐하듯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머지않아 전 세계에 새로운 시대가 열리게 될 테니까.”
그렇게 어느 푸르른 작은 숲속에서 새로운 세계사의 분기점이 시작되었다.
마법의 개념이 시작되고 또 전 세계에 거대한 변화와 격동을 불러일으킨······.
마법 혁명(Magic Renaissance)의 시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