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27화.
아영을 앞에 내세워 살살이 풀과 관련한 삼진 그룹과의 협상을 추진하는 동안, 나의 일상은 비교적 평범하게 흘러갔다.
“야! 누나 오늘 바빠서 먼저 나가니까 알아서 아침 챙겨 먹어! 돈은 식탁 위에 있어!”
“으하암. 요즘도 바빠? 대학교는 이제 방학 시즌 아닌가?”
“대학원생한테 방학이 어딨어? 그냥 만날 출근이야 출근! 꺅! 늦었다!”
매일 같이 아침 일찍 집을 나서서 밤늦게 돌아오는 누나를 배웅하고.
“에······. 철수야. 꼭 그 인형을 학교에 가지고 와야겠니?”
“저도 그러고 싶지는 않은데 그러면 용용이가 진짜 잠도 안 자고 밤새도록 거품 물고 발작하면서 저한테 온갖 개지랄을 다 떨거든요.”
“······?”
나름 평범한(?) 중학생의 모습으로 얌전하게 학교에 다니며······.
“이 미개한 인간 새끼들아. 오늘도 안녕하냐?”
집에 돌아와서는 위대한 대마법사로서 무지몽매한 인간들에게 마법의 위대함을 알리는 과업까지. 그 어느 하나도 빼먹지 않고 꼬박꼬박 열심히 소화해 나가고 있었다.
“오늘은 자신의 수준보다 상위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꿀팁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해보려고 한다. 너희 같은 머저리들에게는 조금 어려운 개념일 수 있으니 차근차근 노트에 메모하면서 들을 수 있도록. 알겠냐?”
- ㅋㅋㅋㅋㅋ 오늘은 또 무슨 개 헛소리를 하려나
- 멀린아. 또 이해도 안 되는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그냥 마술이나 보여줘.
- 마술이라고 하면 밴 먹는 거 모름? 마법이라고 하셈 마법.
- 아 맞다. 마법. ㅋㅋㅋㅋㅋ. 불꽃 쇼나 보여줘.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같이 영상을 올리는 성실함의 극치인 업로드 주기를 가진 나의 채널. 하지만 이전에 귀인 열전에 처음 올라왔을 때와 다르게 아영의 경고대로 내 채널의 성장은 완전히 멈춰버린 지 오래였다.
[ 너도 할 수 있어! 마법사가 되는 법. ]
구독자 수 : 32만.
구독자 수 자체만 가지고 본다면 그리 나쁘지 않은 준수한 수준이었지만, 거의 이 주일이 넘는 시간 동안 꼼짝도 하지 않는 수치. 성장세가 멈춰버리고 정체해버리기에는 한없이 부족한 규모였기에 이대로 하락세를 타는 것을 내버려 뒀다가는 몇 달도 채 지나지 않아 날개 없는 새처럼 아래로 추락해버릴 공산이 컸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하듯, 실시간 방송을 켜면 최대 수만 명까지 모여들었던 시청자 수도 어느새 천명도 간신히 채울 정도로 확연하게 줄어들어 있었다.
일반적인 평범한 뮤튜버라면 어떻게든 채널을 살리기 위해 다양한 방식과 시도를 통해 변화를 모색해야만 하는 상황. 하지만 뮤튜브는 그저 내가 머릿속으로 구상하고 있는 수많은 계획 중의 오직 하나 정도밖에 되지 않았기에 굳이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렇기에 나는 보드마카를 집어 들고는 단호하게 마법이나 보여달라는 시청자들의 징징거림을 일축했다.
“그놈의 불꽃 쇼는 지겹지도 않냐? 오늘 배우는 내용은 나름 잘만 써먹으면 활용성이 아주 뛰어난 중요한 내용이니까 귓구멍 열고 알아서들 잘 주워 먹어 봐라.”
고작 조회 수를 빨아먹고 돈을 벌기 위해 광대 노릇을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이 세상에 마법의 개념을 설파하는 것이 가장 주요한 목적이기에.
나는 특대형으로 마련해둔 칠판에 오늘의 마법 강의를 시작했다.
*
미국 뉴저지에 자리한 도시. 프린스턴.
소위 전 세계의 우수하고 뛰어난 인재가 선망하는 명문대학교 중 하나인 프린스턴 대학교가 자리한 이곳에는 아주 저명한 과학 연구 기관 하나가 둥지를 틀고 있었다.
프린스턴 고등 연구소(The Institute for Advanced Study).
일명 IAS라고 불리는 이곳은 최고의 과학자와 연구진들이 모여 있는······. 그야말로 모든 과학자의 메카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물리학, 수학, 사회과학, 사학, 생물학.
문과와 이과를 아우르는 여러 분야에서 특출난 이들이 모여서 자유롭게 토론하고 연구하며 인류를 위해 학문의 발전을 선도하고 과학과 기술의 비약적인 혁신을 불러오는 이곳은, 과거 수많은 위대한 과학자들이 이룩해 온 수많은 업적 위에 놓인 찬란한 과학 문명의 번영과 성공을 상징하는 것과 같은 곳이었다.
보통 서구 출신의 학자들로 가득 차 있는 이 연구소에 그 실력을 인정받아 오게 된 유일한 한국인이자 저명한 물리학자로 명성이 높은 류현진 교수. 그는 자신의 자리에 앉아 평소와는 다르게 모니터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무언가를 진지하게 경청하고 있었다.
[ 기본적으로 마법진을 활용해서 마법을 사용하게 되는 경우는 대충 두 가지지. 네가 보유한 마나와 역량보다 더 상위의 마법을 사용하고 싶은 경우. 그리고 또 그때그때 수식을 구현하기에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거나 즉각적으로 마법을 발현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경우. 더 쉽게 예를 들자면 전쟁을 대비해서 미리 마법을 발동할 수 있도록 구현해놓는 방어 마법이나 장거리 이동을 위한 워프 마법이 대표적이겠지. ]
[ 게다가 마법진을 활용해서 마법을 사용할 때 진짜 개꿀인 점이 뭐냐면 마나석이나 여러 가지 보조 수단을 잘만 활용한다면 상위 마법도 쓸 수 있게 된다는 거지. 마법진을 가동하는 데 필요한 양의 마나만 주입할 수 있다면 이론적으로는 1 서클도 9 서클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는 거지. 물론 그런 경우는 없겠지만, 여기서 핵심은 이거야. 사용하고자 하는 마법에 대한 이론과 원리만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다면 얼마든지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야. 아, 물론 그에 따른 부작용이 전혀 없다는 건 아니지만 원래라면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한다는 것이 얼마나 개쩌는 건지는 말 안 해도 다들 알겠지? ]
휘황찬란한 고깔모자와 반짝거리는 별무늬가 가득한 우스꽝스러운 복장의 어린 소년. 그저 애들 장난 같아 보이는 모습이지만 커다란 화이트보드에 온갖 복잡한 수식과 기하학적인 도형과 수식들을 잔뜩 그려놓고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는 그 모습은 그야말로 이질적이었다.
“Hey. Dr. 류. 뭘 그렇게 열심히 보고 있는 건가?”
“······.”
무언가를 심각한 표정으로 완전히 빠져들어 보고 있는 그를 보며 호기심을 느낀 동료 교수. 하지만 그는 너무나도 집중한 나머지 동료 교수의 물음조차도 들리지 않는 듯 눈길도 돌리지 않은 채 그저 미친 듯이 영상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한 류현진 교수의 모습에 묘한 호기심을 느낀 듯 힐끗 그의 컴퓨터를 바라본 동료. 하지만 그는 영상 속에 등장하는 광대 같은 복장을 한 철수의 모습을 보고는 무언가를 단단히 오해한 듯,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자네······. 도대체 근무 시간에 어떻게 농땡이를 피울 생각을 하나?”
어떻게 이 소중한 연구 시간에 딴짓을 할 수 있냐는 그의 질책과도 같은 물음에도 불구하고 류현진 교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뭐지······? 어떻게 이게 가능한 거지······?’
처음에는 그저 장난삼아 클릭했던 영상.
하지만 무언가를 시끄럽게 떠들며 마법에 관해 설명하는 그 장난과도 같은 이야기 속에서 류현진 교수는 자기도 모르게 점점 빠져들어 갔다.
[ 마나라는 에너지가 가진 가장 중요한 핵심은 모든 에너지의 근원이자 이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기본적인 요소라는 점이야. 다시 말해서 이 물질계에 존재할 수 있는 것 자체가 마나가 있기에 가능하다 점이지. 질량이 붕괴할 때 엄청난 에너지가 발생하는 거 다들 알고 있지? 그 에너지가 다 어디서 온 건지 알아? 그게 다 마나가 치환되면서 발생하는 에너지잖아. ]
[ 일반적으로 마나는 자연의 순환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곳에서만 생성되고 또 강해져. 그건 왜 그러냐고 묻지 마라. 그냥 그러라고 정해져 있는 법칙이자 개념 같은 거니까. 특별한 이유가 없어. 이 세상이······. 아니, 대우주가 그렇게 정립되어 버린 걸 가지고 나한테 왜 그렇게 했냐고 물어보면 어떻게 알아? 내가 정했냐? ]
[ 마나를 느낀다는 건, 믿음의 문제야. 무슨 사이비 종교처럼 돈 뜯어내려고 작업하는 거 아니니까 이상한 생각은 하지 말고. 기본적으로 우리는 보이지 않는 건 일단 안 믿잖아? 그렇기에 만날 신이 있네 없네 하면서 죽어라 싸워대고 온갖 헛짓거리를 다 해대지. 하지만 비록 존재함에도, 존재함을 믿지 않는다면, 그건 존재하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겠지? ]
[ 우리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보자고. 과학이 있다면 마법이라고 없을까? 판달리아에서 넘어온 우리 용용이를 봐. 너희들이 지금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상식들이 이 녀석한테는 그냥 문화충격 그 자체라니까? 그러니까 내 말은 좀 포용적으로 한번 생각해보라는 거야. 마법이 정말 그냥 진짜 개소리일까? ]
너무나도 당연하게 마법의 존재한다며 공언하며 온갖 개소리를 해대고 있는 중학생 소년.
평생을 과학 연구에 매진하며 학계에서 최고 권위자로서의 명성을 얻은 류현진 교수. 그로서는 절대 인정할 수 없는 그저 헛소리에 불과했지만, 그는 저 카메라 너머에 적혀져 있는 삐뚤빼뚤한 어느 한 수식을 보며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어떻게 이 수식들이 여기에서······?’
최근 양자역학과 미시 세계를 연구하며 아주 우연한 발상 속에서 도출해낸 공식. 완벽하지는 않지만, 지금까지 막혀 있던 여러 문제를 획기적으로 해결해 낼 수 있을 것 같았기에 최근 공식의 오류를 보완해 나가며 논문을 준비해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아직 그 어디에서도 공개된 적 없는 자신만의 수식이 이미 어느 한 정신 나간 영상 속에 온전히 들어가 있었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완전히 똑같은 형태로 말이다.
[ 아마 이 영상 보는 사람들 모두가 빡대가리라서 이해는 못 할 것 같은데 형이 일단 설명은 해야 하니까 예시로 하나 보여줄게. 여기 이건 가장 기본적인 양방향 워프 마법진이거든? 여기 이 마법진에 들어가 있는 수식들을 하나하나 뜯어보자 일단 여기에 공간 좌표를 입력하는 곳이 있고, 이쪽에는 전이를 위해서 필요한 기본적인 수식들이······. ]
보기만 해도 눈이 어지러워질 정도로 복잡하게 그려져 있는 기하학적인 문양들.
하지만 그 문양들 옆에 간략하게 적혀져 있는 수학적인 수식들을 보고 있자면 그건 중학생 따위가 감히 적어놓을 수 있는 수준의 것들이 아니었다.
아니, 어지간한 것들은 보자마자 무슨 공식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빠삭한 자신조차도 완벽하게 그것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에 류현진 교수는 어마어마한 충격에 빠져 있었다.
“이게 도대체······.”
처음에는 그저 장난과 호기심 속에서 눌러보았던 영상.
하지만 그 영상 속에서 지금껏 접해보지 못한 거대한 무언가가 잠들어 있는 것 같은 지식의 보고를 접한 것 같은 묘한 기분에 류현진 교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제대로 그 모든 내용을 이해할 수는 없는 내용이었지만······. 자신이 발견하고 또 논문으로 작성하고 있는 수식을 포함해 들어본 적 없는 온갖 여러 가지 난해하고 복잡한 수식들이 가득 적혀져 있는 영상들. 그런 것들이 하나가 아니라 거의 백 개가 넘게 있다는 것을 보며 그는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기시감에 그는 기존에 연구하던 것을 모두 집어던지고는 미친 듯이 그 얼빠진 중학생의 영상들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파고들기 시작했다.
‘뭔가 있어······. 이건 분명히 뭔가 있어······.’
그렇게 지구 저 멀리 어딘가에서, 철수가 아무렇게나 찍어놓은 영상을 미친 듯이 탐닉하고 있는 이들이 아주 극소수지만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 세상에 존재했지만······. 아니.
이 세계에서는 허락되지 않아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했던 개념.
마법을 이해하기 위해서 기를 쓰는 이들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