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26화.
삼진 그룹.
대한민국의 명실상부한 1위 기업이자 전자, 반도체, 건설, 통신, 금융, 바이오를 비롯해 그야말로 다양한 영역에 발을 담가 국가 전체의 경제 발전에 많은 역할을 해 왔지만 최근 그 위세가 예전과는 많이 떨어진다는 이야기가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 삼진 전자의 주력 사업이었던 스마트폰의 작년과 올해 연속으로 실적이 하락했습니다. 이는 미국의 경쟁사인 앰플에게 전 세계의 시장 점유율을 빼앗긴 것으로 인한 결과로 보이는데요. 앞으로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갈 것인지 삼진 전자에게 있어서는 큰 숙제가 아닐까 싶네요. 하지만 최근 발생한 성능 문제와 불량 부품 사용에 대한 논란들 때문에 확산한 소비자들의 부정적인 인식을 빠르게 해결하기에는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
[ 삼진 전자에 대해서 말하자면 반도체 관련 문제도 빼놓을 수 없죠. 중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반도체 굴기를 선언한 이후, 지금까지 중국 기업들의 반도체 기술이 얼마나 빠르게 성장해나갔습니까? 이제 그들도 삼진 기업에서 생산 중인 5나노 공정에 뛰어들겠다고 공언하고 다닙니다. 본래 수십 년은 더 앞선 것으로 평가받던 기술력이 바로 턱 밑까지 따라잡혔다고요. ]
[ 삼진 그룹이 지금과 같은 대기업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많은 고민을 해야 할 시기입니다. 현재에 안주하지 말고 다른 차세대 먹거리를 발굴해내고 이렇다 할 만한 성과를 이른 시일 내로 만들어 내지 못한다면 아마 지금의 찬란한 위상이 옛이야기가 되어 버릴 수 있습니다. ]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기업의 틈바구니 안에서 치열하게 생존을 위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삼진 그룹. 그리고 지금까지 그 험난한 정글 속에서 삼진 그룹을 지키고 성장시켰던 이호준 회장은 가만히 자신의 회사의 미래를 대신 걱정해주는 평론가들의 이야기를 잠자코 듣다 TV를 끄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후우······.”
가만히 소파에 앉아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는 이호준 회장. 그리고 그의 옆에는 둘째 아들인 이용수 사장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가만히 앉아 있었다.
“용수야.”
“예. 회장님.”
자신을 부르는 이호준 회장의 부름에 고개를 숙이며 깍듯하게 답하는 이용수 사장. 그런 그에게 이호준 회장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얼굴로 탁자 위에 놓여 있는 보고서를 다시 집어 들며 물었다.
“지금 이 제안이 농담이 아니라 진심으로 하는 소리냐?”
“그렇습니다. 회장님.”
이미 두 번 세 번······. 아니 수십 번도 넘게 읽어봤지만 아무리 봐도 믿을 수가 없는 보고서. 하지만 그런 그의 물음에 용수는 너무나도 진지한 눈빛으로 이호준 회장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답했다.
“그러니까······. 경기도 일대에 80만 평에 달하는 용지를 매입하겠다는 거냐? 자그마치 3조에 달하는 자금을 들여서?”
경기도 광주와 양평 인근의 일대 토지를 자그마치 80만 평이나 사들이겠다는 정신 나간 발상. 대략적인 매입 금액만 3조로 추정해놓았지만, 이 정도면 시장에 나와 있는 매물을 싹 쓸어가는 것을 넘어서 없는 것까지 모조리 긁어모아 사버리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는 수준이었기에 3조가 아니라 그 이상의 자금이 필요할 것이 분명했다.
“최대한 알아보고 있습니다만 정부나 지자체가 보유하고 있는 공공용지를 민간에게 판매하는 방식으로 저희에게 이전하는 방법을 알아보고 있습니다. 대규모 개발을 하는 것이 아니기에 잘만 이야기하고 설득한다면 거기 나와 있는 예상 지출 내로 가능할 것 같습니다.”
삼진 바이오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수준의 자금 규모.
그렇기에 이용수 사장은 이호준 회장에게 손을 빌려 삼진 그룹이 가진 막대한 자금과 영향력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있었지만, 그건 생각보다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었다.
‘3조······. 이 정도 수준의 대규모 투자를 감행하려면 최소한 물산 쪽이나 전자 쪽에서 자금 투자를 하는 방식으로 진행을 해야 할 텐데······.’
주식 시장에 상장된 회사인 이상, 아무렇게나 계열사들의 자금을 이리저리 빼 올 수는 없기에 이호준 회장은 이 정신 나간 요구를 들어준다는 가정하에 그 방법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지만, 거기에는 꽤 골치 아픈 문제가 하나 있었다.
‘둘째 놈의 이런 정신 나간 부탁을 들어주자니 물산이랑 전자 쪽을 맡은 첫째 그 녀석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을 텐데······.’
이미 후계 경쟁 구도에 들어서서 독자적으로 자신들의 사업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두 형제. 그 사이에서 어느 쪽의 편도 들어주지 않고 그저 실적과 능력만으로 이 둘을 평가하며 중립을 선언했던 이호준 회장이기에 삼진 전자와 물산에서 막대한 자금을 가져다가 바이오에 퍼주는 것을 보면 누가 봐도 이용수 사장을 밀어주는 모양새로 보일 게 뻔했다.
“원······. 골치 아프군······.”
어떻게 하더라도 대내외적으로 분명 시끄러워질 수밖에 없는 문제.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호준 회장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그 결정을 기다리는 이용수 사장을 물리지는 못했다. 차마 그러기에는 그가 가지고 온 물건이 너무 충격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게 네 녀석이 말하던 그거냐? 어마어마한 혁신을 가져올 치료제가?”
“그렇습니다.”
주사기 앰플 속에 들어가 있는 투명한 액체.
본래 살살이 풀의 붉은 색은 완전히 사라지고 첨단 바이오 기술로 핵심 성분만을 고도로 정제하고 추출한 그 용액을 유심히 바라보는 이호준 회장에게 이용수 사장은 확신에 찬 얼굴로 말했다.
“연구원들의 말로는 그 효과가 무궁무진하다고 합니다. 아직 동물실험 단계에 그치지 못했지만, 일반적인 상처를 넘어서 손상된 신경, 조직, 파열된 장기조차도 거의 즉시라고 해도 될 정도로 빠른 속도로 재생시켰다고 합니다. 별다른 부작용이나 위험성도 전혀 발견되지 않았고, 오히려 투약 이후로 더 활발한 생체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잔뜩 상기된 얼굴로 평상시의 그 냉철함과 차분함도 잃어버리고 흥분한 어조로 이야기하는 이용수 사장. 하지만 이호준 회장은 그런 그의 모습에도 별다른 말을 하지는 않았다.
자신조차도 눈앞에 있는 이 믿을 수 없는 효과를 가진 이 약물을 보고 있자면 앞으로의 삼진 바이오의 미래가 자동으로 그려졌기 때문이었다.
“세계의 바이오 시장을 완전히 지배하는 의약품의 탄생이라······.”
FDA 심사가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의 모든 병원과 약국에서 삼진 바이오에서 만들어 낸 이 약물을 찾게 될 것이 분명한 미래. 꿈에서도 상상해본 적 없는 그런 미래를 떠올리고 있자면 이호준 회장은 마치 젊은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렇기에 자신이 내릴 결정이 가져올 시끄러운 잡음과 문제를 알고 있음에도 그는 자신의 둘째 아들의 이 터무니없는 제안이자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 약의 원료가 되는 식물이······. 뭐라고 했었지?”
“살살이 풀 말입니까?”
“그래. 그거. 그 식물에 대해서는 어떻게 됐나.”
“아, 그게 말입니다······.”
그 물음에 난처한 표정을 짓는 이용수 사장. 그리고 그의 말을 들으며 이호준 회장은 조금은 실망스러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으음······. 자체적인 양산에는 실패했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저희가 확보했던 샘플을 일부 채취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재배를 해 보려고 했는데 심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곧장 시들어 죽어버렸습니다. 무언가 특별한 방식이 있는 것 같은데 현재로서는 자체적인 생산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살살이 풀이라는 식물만을 뽑아먹고 입을 씻으려고 했던 이용수 사장. 하지만, 식물에 능통한 전문가들을 모셔놓고 온갖 다양한 방식으로 재배를 해 보려고 시도했지만, 그 모든 시도가 번번이 실패한 결과 이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오직 하나뿐이었다.
“그렇다면 결국 그 80만 평의 용지를 매입해서 제공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군.”
“그렇습니다.”
김아영인지 뭔지 하는 어수룩해 보이는 아가씨에게 자그마치 수조 원에 달하는 부동산을 매입해서 갖다 바쳐야 하는 황당한 상황. 그렇기에 이호준 회장은 연신 어이가 없다는 듯이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렸다.
“허허허······. 고작 풀떼기 하나 공급받으려고 수조를 쏟아부어야 한다니. 이거 참······.”
“그래도 아마 장기적으로 보면 투자금에 수십 배 이상의 이익을 뽑아낼 수는 있을 겁니다. 회장님. 그 살살이 풀을 저희가 계속해서 독점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다는 가정하에 말이죠.”
“그렇지. 네 녀석이 말하는 걸 보니 그 아가씨도 범상치 않은 것 같던데? 우리가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당장 미국의 노바맥스로 찾아갈 생각이었다며?”
그냥 이야기만 들어도 뭔가 정상인의 범주에서는 아득히도 떨어져 있는 것 같은 사람. 그리고 그런 이호준 회장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이 이용수 사장도 조금 묘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뭐······ 저도 한번 만나보긴 했는데 조금 이상하긴 했습니다.”
“이상해? 뭐가?”
“전혀 특별한 게 없습니다. 가족부터 시작해서 주변 친구들까지 가능한 모든 것들을 면밀하게 조사하고 살펴봤는데 그냥 평범하기만 합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효능을 가진 식물을 어디서, 어떻게 가지고 오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도무지 파악할 수 없었습니다.”
너무나도 평범한······. 아니, 평범 이하의 20대 여성에 지나지 않은 아영. 그런 그녀가 갑자기 어느 날 전 세계를 뒤집어엎을 혁신적인 신약의 원료를 가지고 왔다는 것은 이용수 사장에게 의구심을 가지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계속 지켜보게. 혹시 모르지. 네 녀석이 아직 파악하지 못한 특별한 무언가가 있을지.”
“알겠습니다.”
자신의 조언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는 둘째. 그런 그의 모습을 잠깐 바라보던 이호준 회장은 이내 축객령을 내렸다.
“일단 돌아가서 대기하고 있어. 이 문제를 처리하려면 일단 네 녀석 형이랑 이야기부터 끝내놔야 할 것 같으니까.”
자신의 요청이자 부탁을 수락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는 이호준 회장의 말에 이용수 사장은 화색이 된 얼굴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실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 용지매입 계획이나 비서실이랑 이야기해서 잘 처리해 놔. 괜히 뒤에서 이상한 잡음 나오게 하지 말고.”
“알겠습니다.”
이용수 사장이 떠나가고 혼자 남은 이호준 회장. 그리고 그는 잠깐 클클거리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는 이내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오늘 잠깐 회사에 들러라. 긴히 할 이야기가 있으니까.”
지금 당장은 어느 한 자식에게 원망을 듣더라도, 이호준 회장에게는 이 삼진 그룹의 미래가 우선이었다.
*
- 삼진 그룹의 대규모 투자 계획 발표. 미래 먹거리는 바이오에 있다?
- 방만한 재벌 경영 논란? 잘 나가는 삼진 전자에서 돈 빼가는 횡포에 뿔난 주주들.
- 삼진 바이오. 경기도 광주와 양평 지역에 대규모 부동산 매입 정황 확인. 그 이유는?
- 바이오가 아니라 부동산에 투자하는 바이오 회사. 삼진 바이오의 기이한 행보.
뉴스와 신문에서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삼진 바이오의 이야기.
그 전후 사정을 알지 못하는 일반인들에게는 조금도 관심이 없는 이야기에 불과했지만, 나는 너무나도 만족스러운 얼굴로 눈 앞에 펼쳐진 드넓은 임야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여기구나. 나만의 작은 정원이?”
[ 이게 작은 정원이냐? 이 정도면 내가 본체로도 발 뻗고 누울 수 있는 수준은 되겠는데? ]
자그마치 축구장 5개는 더 들어갈 법한 거대한 크기의 부지. 물론 아직 매입만 했지 특별하게 뭘 한 것은 아니었지만 앞으로 이곳에서 많은 것들이 벌어지게 될 예정이었다.
“이제 여기에 울타리를 짓는 거야. 아무도 함부로 접근할 수 없는 절대적인 성역과도 같은 곳이 되는 거지.”
[ 도대체 여기서 뭘 할 생각인데? ]
“살살이 풀도 재배하고 나무도 심고, 생태계를 복원하고······. 뭐 해야 할 건 많지.”
[ 그거 하려고 이렇게 무식하게 일을 벌여놓은 거야? 고작? ]
“그리고······. 이게 가장 핵심이지.”
용용이의 어이없어하는 물음에 나는 마나를 끌어 올리며 손을 휘저었다.
우우우우웅.
나의 의지에 따라 서클이 회전하자 희미한 푸른빛으로 일렁이는 대지.
그리고 이내 대기에 퍼져 있던 미약한 마력이 서로 모이고 이어져 작은 실처럼 엮이고 엮이며 눈 앞에 펼쳐진 그 끝없는 대지 위에 복잡하고 기하학적인 문양들로 가득한 하나의 진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 이건······? 마나 집약진? ]
주변의 마나를 끌어모아 특정 지역의 마나 농도를 높여주는 마법진.
이걸 쓰게 되면 그 일대의 마나 농도가 현저히 줄어들기에 아주 제한된 장소에서만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보통 마나 수련을 위해서만 아주 한정적으로 사용되는 이 마법진을······. 수십만 평에 달하는 거대한 부지 전체에 아무도 모르게 각인시키며 나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이왕 먹을 거면 나 혼자 다 처먹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