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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마법 만세!-24화 (24/242)

24화.

24화.

대한민국에서 재계 서열 1위를 차지하는 삼진 그룹의 계열사인 삼진 바이오로직스.

처음에는 차세대 먹거리로 주목받는 바이오 산업에서 큰 파이를 차지하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가지고 이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이들은 그룹 차원에서 전폭적인 지원 속에서도 그리 큰 성과를 얻지 못하고 있었다.

- 신약 개발에 지지부진한 삼진 바이오. 다국적 제약사들의 하청업자 신세?

- K-바이오 기업들의 아쉬운 성적표. 이는 미국의 까다로운 FDA 승인 절차 때문.

- 코덱스 바이러스 사태로 막대한 이익을 얻은 미국. 손가락만 빠는 바이오 업체들.

- 신약 개발은 국가적인 지원이 필요한 사업. 대대적인 투자와 인내심이 필요.

막대한 이익을 뽑아내기 위해서는 신약을 만들어야 하지만, 그럴만한 기술과 인력도, 노하우도 그 모든 것이 한참이나 모자란 한국의 실정. 그렇기에 삼진 바이오만이 아니라 수많은 제약 회사들은 그저 특허 기한이 끝난 약들의 복제품이나 만들어 팔거나 특허를 보유한 제약 회사들의 외주를 받아 대신 의약품을 생산하는 하청 업체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러한 암울한 현실에 삼진 그룹의 수장인 이호준 회장이 직접 이와 관련한 특별 지시를 내릴 정도로 삼진 바이오 내부에서 신약 개발은 많은 의미가 있는 일종의 숙원과도 같은 것이었다.

[ 뭐라도 좋으니까 일단 신약 하나라도 개발해 봐. 내가 직접 사비를 털어서라도 각자 100억씩 포상금으로 줄 테니까! 목숨을 걸고 어디 한번 성공해 보라고! ]

그룹 총수가 주머니라도 털어서 천문학적인 포상금을 주겠다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야기를 하고 다닐 정도로 신약 개발에 커다란 갈증과 허기를 느끼는 삼진 바이오. 하지만 그런 이런 막대한 관심과 지원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방금 뭐라고 했나? FDA에서 스피노데트의 3상 추진을 거절했다고?”

삼진 바이오 내부에서 최근 야심 차게 추진하던 신경성 통증 치료제 스피노데트.

오랜 시간과 수천억이 넘는 자금을 투입한 신약이자 만약 개발에 성공만 한다면 수십 조의 이익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상황이었기에 그 보고를 듣는 문석호 상무의 표정은 처참할 정도로 일그러졌다.

“그······그렇습니다. 메일로 통보해온 내용을 종합해 보자면······. 안정성에는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되지만 약 자체가 유의미한 효과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해서 최종적으로 거절을 통보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

스피노데트를 구성하고 있는 성분 자체가 가진 약효에 대해서 의미가 없다고 판단한 FDA.

물론 수차례의 동물 실험과 여러 가지 데이터들을 종합해 보면 어떻게든 다시 보완해 재심사를 요청할 수는 있겠지만, 이미 한번 거절된 성분을 가지고 다시 수년에 걸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거쳤던 과정을 또다시 반복하는 것은 그다지 합리적인 결정은 아니었다.

“머리 아프게 됐군.”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암울한 결과를 보고받은 문석호 상무의 얼굴에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렇다고 딱히 그를 기쁘게 해 줄 만한 내용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우리가 추진하던 신약 개발이 모두 몇 개였나?”

“현재까지 개발 중인 신약은 모두 6개입니다. 후보군으로 물색 중인 것까지 포함하면 15개 정도 되고요.”

“거기서 임상 3상을 통과한 신약이 하나도 없는 건가? 해마다 수천억에 달하는 비용을 썼는데도?”

관련 내용을 보고 받으면 받을수록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현재 상황.

어떻게든 전 세계가 놀랄만한 신약을 개발해 내라는 이호준 회장의 지시에 따라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으며 전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연구자들을 긁어모아 추진하는 신약 개발 사업.

그야말로 돈 먹는 하마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 매년 써대는 연구 개발비만 해도 수천억에 달할 정도였지만 지금까지 이루어낸 성과라고는 그야말로 0에 가까웠다.

“회장님이 아시면 그야말로 거품을 무시겠군······.”

삼진 바이오의 모든 연구 개발을 총괄하는 문석호 상무로서는 업무 보고에서 된통 깨질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런 그의 혼잣말에 더욱 싸늘해진 회의실 분위기 속에서 관련 내용을 보고한 부장은 고개를 숙이며 면목 없다는 듯이 소리쳤다.

“죄······죄송합니다. 상무님. 저희가 부족한 탓입니다······.”

“됐네. 그런 소리 한다고 없던 신약이 튀어나오기라도 하나?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할 시간 있으면 성과로 증명하게.”

“알겠습니다······. 노력하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회의를 끝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난 문석호 상무. 그가 먼저 자리를 뜨고 난 후에야 겨우 한숨을 돌린 각 개발팀의 부장들은 그제야 입을 열 수 있었다.

“후······. 진짜 상무님이 보고서 내려놓을 때 심장 멈추는 줄 알았네.”

“그러니까. 이번 임상은 그래도 통과할 줄 알았는데 어떻게 2상에서 막혔지?”

“내 말이······. 스피노데트 그거 개발하려고 전에 기업 하나를 아예 통째로 인수했지 않았어?”

“아마 그랬었지? 무슨 임상 후보 물질 가지고 있던 외국계 회사였는데 한 천억 들여서 가져왔던 걸 껄?”

“쩝······. 이거 진짜 이러다가 우리 싹다 모가지 잘리는 거 아냐?”

“에휴······. 그래도 할 말은 없네. 어떻게 하나도 남김없이 싹 다 죽 쑬 수가 있지?”

지금 당장 해고 통보를 받더라도 어디에 가서 항의조차 할 수 없는 지지부진한 성적표의 개발팀. 하지만 비단 삼진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통틀어 전 세계의 수많은 제약 회사들이 겪고 있는 문제였기 때문에 엄밀히 말해서 이건 이들의 잘못이라고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물론, 실적을 내라고 목을 조르며 압박하고 있는 임원들에게 이러한 이들의 고충이 귀에 들릴 리는 만무했지만 말이다.

“에휴. 이럴거면 그냥 속 시원하게 반도체 쪽이나 전공할 걸.”

누군가의 자조 섞인 혼잣말만이 회의실 안을 맴돌 뿐이었다.

*

“이거 원······. 모양새가 좋지 않게 됐군.”

엘리베이터에서 혼자 상념에 잠겨 있던 문석호 상무.

다른 이들에게 굳이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이번 스피노데트의 임상에는 남들이 알지 못하는 복잡한 사내 정치가 얽혀 있었다.

삼진 바이오를 경영하고 있는 이용수 사장.

삼진 그룹의 총수인 이호준 회장의 아들로 삼진 반도체의 사장으로 있는 이진수 사장과 후계 경쟁을 하고 있는 그에게 있어 이번 임상 시험 거절은 부하 직원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심각한 문제였다.

‘그 신약의 후보 물질을 보유하고 있던 기업의 인수를 주도적으로 추진했던 것이 사장님이었으니······. 이진수 사장 쪽에서는 그야말로 공격하기 딱 좋은 약점이 생긴 거나 마찬가지로군.’

안 그래도 둘째라는 이유로 불리한 후계 경쟁 속에서 고전하고 있는 이용수 사장에게 있어서는 그야말로 치명타라고 할 수 있는 문제. 뭐든 이렇다할 만한 실적을 만들어서 이 불리한 구도를 타계할 방책을 모색할 필요가 있었지만, 생각보다 암담하고 가혹한 이 신약 개발의 시장 속에서 아무리 막대한 자금과 노력을 퍼부어도 안 되는 일을 가능하게 만들 수는 없었다.

“어렵군 어려워······.”

완전히 고착화된 후계 경쟁에서 이렇다할 만한 역전을 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신약 개발을 성공시켜야만 하는 상황.

아직 이호준 회장의 지배 구조가 견고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최소 10년 이내에는 자리에서 물러나 후계자를 결정할 것이 분명하기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신약 개발의 과정을 생각한다면 이용수 사장에게 그리 남은 시간은 많지 않았다.

그렇게 깊은 고민 속에서 천천히 회사 로비를 걸어나가던 문석호 상무. 그리고 그는 수행원과 비서들의 보좌를 받으며 걸어가던 와중 문득 저 로비 한쪽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소란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제 말 제대로 들어줄 사람 오기 전까지 여기서 단 한 발자국도 안 나갈 거에요!”

“아니, 다 들었잖아요! 담당자 분한테 하신 이야기 전달하겠다는데 왜 자꾸 고집 피우세요?”

“전달하겠다는 말을 어떻게 믿어요? 그래놓고 저 가면 당장 쓰레기통에 던져버릴 거잖아요! 팀장급 이상의 책임자가 직접 오기 전까지는 절대 안 되요!”

“하 진짜······. 당장 안 일어나요? 진짜 영업 방해로 경찰 부르기 전에 얼른 나가요!”

“안 가! 아니, 못 가! 당장 누구든 불러와줘요!”

온갖 보안 직원들에게 둘러쌓여 있는 의문의 여성.

회사 로비에 대짜로 드러누워서 온갖 강짜를 부리는 통에 모두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내려다보고 있었지만, 문석호 상무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게 지금 무슨 상황인가?”

“······. 지금 당장 확인해 보겠습니다.”

상무의 물음에 한달음에 달려가 상황을 확인하는 수행비서. 그리고 보안 요원에게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듣던 그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시 돌아와 관련 내용을 그에게 전달했다.

“그러니까······. 저기 저 여성분이 획기적인 신약 물질을 가지고 있으니까 한번 살펴봐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는 말인가?”

“예······. 그렇습니다.”

“······?”

전혀 상상하지도 못한 내용.

겉으로 보기에도 평범해 보이는 젊은 20대 여성이······. 그것도 오직 전문적인 기업들만을 상대로 사업을 하는 첨단 바이오 기업에 쳐들어와서 오만 강짜를 부리며 자신이 신약 물질을 가지고 있다고 살펴봐 달라는 이런 상황은 그야말로 상상 속에서도 하지 못할 정말 황당한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문석호 상무는 자신의 수행비서가 했던 것과 똑같이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잠깐 질질 끌려나가는 여성을 가만히 바라보다 이내 나지막하게 말했다.

“일단······. 저 사람 좀 나한테 데려와보게.”

“예······?”

딱 봐도 그냥 정신 나간 사람 같아 보이는 그녀를 데려오라는 문석호 상무의 지시에 귀를 의심하는 듯이 되묻는 수행 비서. 하지만 묘하게 밀려드는 기시감과 정확히 자신의 고민을 저격한 이야기에 흥미를 느낀 그는 그 생각을 번복하지 않고 재차 말했다.

“일단 저렇게까지 난리를 치는데 한번 이야기라도 들어봐야 하지 않겠나?”

*

“반갑습니다. 저는 삼진 바이오에서 연구 개발을 총괄하고 있는 문석호 상무라고 합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저는 이아영이라고 해요.”

겉으로 보기에는 너무나도 평범해 보이는 20대 여성.

자신을 소개하면서 소속이나 직급을 말하지 않는 것과 캐쥬얼한 청바지와 민무늬 티셔츠를 입고 있는 것을 보며 대충 눈대중으로 그녀를 파악한 문석호 상무는 즉각적으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저희에게 제안하고 싶은 신약 후보 물질이 있다고요? 그렇게 질질 끌려나가면서까지도 꼭 전달하고 싶을 정도로 말이죠?”

약간 가시가 있는 질문.

그리고 그 말뜻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니기에 아영은 약간 쑥쓰러운 표정을 지으며 멋쩍게 답했다.

“아. 네. 아마도 관심 있으실 것 같아서 부끄럽게 그런 추태를 보이게 됐네요. 하지만 그래도 이해해 주세요. 안 그래도 여러 제약 회사들을 돌았는데 죄다 안 좋은 경험을 겪어서 저로서는 이 회사가 마지막이라서 어쩔 수 없었어요.”

“안 좋은 경험······이요?”

삼진 바이오만이 아니라 다른 다양한 회사들에서도 여기에서와 같이 똑같은 정신 나간 짓을 벌였다는 아영의 이야기에 무언가 범상치 않음을 느낀 문석호 상무. 그리고 그런 그의 물음에 아영은 기다렸다는 듯이 가슴에 잔뜩 쌓여 있던 설움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다들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더라고요. 별 희안한 미친놈 보는 표정으로 로비에서 제대로 들어보지도 않고 쫓아낸 경우도 있었고, 담당자한테 전달하겠다고 해놓고는 그냥 쓰레기통에 제가 준 샘플을 처박아버리는 것도 직접 봤었고요. 하여간 듣는 척만 하지 내 말을 완전 개무시하고 문전 박대하는 것만 도대체 몇 번이었는지······.”

한참이나 자신이 겪었던 수많은 회사들의 푸대접을 토로하는 아영. 그런 그녀의 끝없는 한탄을 들어주던 문석호 상무는 탁자에 놓여 있는 작은 크기의 통을 집어들고는 유심히 바라보며 물었다.

“이겁니까······? 색깔이 마치······.”

“사람 피 같죠?”

너무나도 붉은 빛을 띠고 있는 선홍색의 액체.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혈액과도 같아 보이는 이 액체가 들어있는 통을 유심히 바라보던 문석호 상무는 이내 자신을 바라보며 빙그레 웃고 있는 아영에게 물었다.

“혈액이 아니라면······. 뭡니까? 어디서 난 물질이죠?”

사람 피가 아니라는 듯한 아영의 물음에 그 출처를 물어오는 문석호 상무. 하지만 그는 이어지는 그녀의 대답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살살이 풀을 으깨서 낸 즙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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