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인공 마법 만세!-23화 (23/242)

23화.

23화.

미래 시대를 이끌어갈 수많은 첨단 산업들.

로봇 공학과 인공지능, 우주 및 로켓 공학을 비롯해 가상현실 등 수많은 산업이 주목받고 있었지만, 그중에서 최근 가장 화두로 떠오른 것은 다름 아닌 생명 공학이었다.

생명 공학(Bio Engineering).

셀 수 없이 다양한 질병과 질환에 노출되어 살아가는 이 인간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되는 기술은 특히 이 시기에 발발한 코덱스 바이러스의 창궐로 인해 어마어마한 수혜를 누리고 있었다.

[ 코덱스 바이러스의 전 세계적인 확산을 저지할 수 있는 백신을 개발한 노바맥스와 파이자의 주가가 역사상 최고치에 도달했습니다. 이는 거의 독점적으로 전 세계에 백신을 공급한 것에 따른 급격한 매출 상승으로 인한 결과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습니다. ]

[ 신약 개발에 성공한다면 이를 통해 창출할 수 있는 수익은 상상 이상으로 거대합니다. 물론 개발 비용 역시 적게는 수천억에서 많게는 조 단위의 자금이 들어가지만, 신약 하나만 개발에 성공한다면 이를 통해 벌어들일 수 있는 연간 매출은 최소 수조 원입니다.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죠. ]

특허권 하나 가지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앉아서 어마어마한 돈을 긁어모을 수 있는 산업. 그렇기에 다양한 회사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며 이러한 신약 개발에 나서겠다면서 이 바이오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그들 중 대부분은 장밋빛 환상과는 다르게 처참한 현실에 매운맛을 볼 수밖에 없었다.

“신약 개발이라는 게 생각보다 그리 쉬운 게 아니야. 어지간한 성분은 이미 많은 사람이 이리저리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다 해봤거든. 대부분의 자연적인 성분들은 그 효능이 다 검증되고 개발되었다고 보는 게 맞겠지. 물론, 그중에서도 아직 효능이 밝혀지지 않은 것들도 있긴 하겠지만 이게 동물실험이니 임상이니 온갖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해서 괜히 허튼 데 돈 쓰는 짓은 잘 안 하지.”

정말 운 좋게 얻어걸린 경우가 아닌 이상, 어마어마한 자금을 투입해도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할 수 있는 불확실한 미지의 영역인 신약 개발의 시장. 하지만 나는 너무나도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내 앞에 놓인 화분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렇기에 우리 살살이 풀은 어마어마한 가치가 있는 거야. 굳이 이상한 헛짓거리를 하지 않아도, 기본적인 살살이 풀의 성분 자체가 어느 약품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을 정도로 획기적인 신약 그 자체라니까? 이건 그냥 아주 생태계 교란 수준이 아니라 밥상 자체를 뒤엎어 버릴 그런 놈이라고.”

분무기로 물을 칙칙 뿌려주자 그 특유의 핏빛이 더욱 선명해진 살살이 풀. 그 색이 너무 강렬해서 처음 보는 사람은 거부감이 들 정도였지만 그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나에게는 그 색이 너무나도 아름다워 보일 뿐이었다.

[ 뭐······. 블러디 허브 정도면 인간들에게는 쓸만한 정도이긴 하지. 트롤의 피 바로 다음으로 강한 회복 효과를 가지고 있는 약초로 알려져 있으니까. ]

아무리 귀하다고 해도 그저 은화 몇 개만 주면 충분히 구할 수 있는 흔해 빠진 회복 물약의 재료일 뿐인 블러디 허브. 그렇기에 용용이는 그런 나의 말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며 그다지 놀라지 않는 듯한 모양새였다.

[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 봤자 블러디 허브는 블러디 허브지. 아무리 잘 정제해봤자 중급 회복 포션 정도밖에 안 될 텐데 그게 그렇게 가치가 있을까? ]

약간의 부상이나 출혈에는 효과적이겠지만 그 이외의 부가적인 효과는 끌어낼 수 없는 기초적인 마법 재료인 블러디 허브. 노화된 육신을 다시 젊은 시절로 회춘시키거나 모든 질병과 장애를 말끔하게 치료하고 수명을 수백 년으로 연장해주는 엘릭서(Elixir)와 비교해서는 부족한 점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용용이의 회의감 가득한 물음에 손가락을 좌우로 흔들며 말했다.

“그건 네가 이 문명의 진일보한 의료 기술을 몰라서 하는 말이야.”

[ 뭐······? ]

“두고 보라고. 그 단순한 ‘회복’ 효과가 가지고 올 파장이 얼마나 거대한지를.”

용용이에게 히죽 웃어 보이며 휴대전화를 집어 든 나는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네. 아영 씨. 오늘 혹시 시간 좀 되세요? 부탁할 일이 하나 있는데요.”

*

“오랜만이네요.”

“그러게요. 그동안 잘 지내셨죠?”

“······. 저야 뭐······. 평소처럼 지내죠.”

나를 보자마자 복잡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인사를 건네는 아영. 그때 카페에서 만난 이후로 직접 대면해서 대화를 나누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그녀는 금방이라도 온갖 질문 공세를 퍼부을 것 같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전부터 말하고 싶었는데 영상 편집 제가 상상하던 것보다도 훨씬 깔끔하고 보기 좋게 잘하시던데요? 간간이 넣어주시는 환경 보호 관련 영상들도 마음에 들고. 아주 마음에 들어요.”

내가 직접 진행하는 마법 강의와 더불어 주기적으로 강조하는 친환경과 관련한 영상들을 자의적으로 만들어 업로드하는 아영. 생각보다 채널을 유능하게 관리하는 것을 보며 꽤 만족하고 있었기에 나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칭찬을 건넸다.

하지만 그런 나의 칭찬이 들리지 않는지, 아영은 그저 가만히 자신의 앞에 놓여 있는 화분만을 내려다보며 의아한 시선으로 물었다.

“이게······. 뭐에요?”

“아, 이거요? 제가 아영 씨를 만나자고 한 이유죠.”

태어나서 처음 보는 붉은빛의 풀.

마치 길쭉한 다시마처럼 생겼지만 이렇게 진한 색의 핏빛으로 물들어 있는 식물은 어디에서도 듣도 보도 못했기에 아영은 묘한 표정을 지으며 연신 나와 살살이 풀을 번갈아 보았다.

“이 녀석의 이름은 살살이 풀이에요.”

“살살이······. 풀이요?”

“네. 제가 지은 이름인데 괜찮죠?”

“이름을 지었다고······요? 그렇지만 그 이름은······.”

한국 사람이라면 한 번씩은 들어봤을 설화. 서천 꽃밭의 이야기.

그곳에 등장하는 살살이 꽃의 이름을 따온 것 같은 이 풀을 가만히 바라보며 아영은 말끝을 흐렸지만 나는 그런 그녀에게 묘한 미소를 지으며 주머니 속에서 안약 통 하나를 꺼내 들었다.

“이 안에는 요 살살이 풀을 짓이겨서 낸 즙이 들어가 있어요.”

풀잎의 색만큼이나 진한 붉은 색의 즙.

본래라면 온갖 다양한 약초와의 배합과 마법적 처리를 통해서 그 효능을 보다 극대화할 필요가 있었겠지만, 지금 당장 아영에게 보여주려고 하는 연출은 그런 번거로운 과정조차 필요하지 않았기에 나는 원액 그 자체만을 가지고 온 채로 나이프를 집어 들었다.

서걱.

“꺅! 지······지금 이게 무슨 짓이에요!”

거침없이 내 손목을 긁고 지나가는 나이프.

빵이나 돈가스 정도나 자를 법한 그 무딘 칼날이 거칠게 뜯어놓은 내 손목은 그래도 꽤 깊은 상처가 났는지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어느새 테이플 위로 뚝뚝 흐르며 그로테스크한 광경을 연출해내기 시작했다.

“휴지···. 휴지로 일단 얼른 지혈부터······!”

갑자기 피범벅이 된 테이블을 보며 당황한 듯 완전히 얼어붙은 아영은 이내 몇 장의 티슈를 집어 들고는 어쩔 줄 몰라 허둥거렸지만 나는 태연한 자태로 피로 범벅이 된 내 손목에 안약 통에 든 살살이 풀의 원액을 몇 방울 떨어트리기 시작했다.

“살살이 풀은 이름 그대로 식물 자체에 막대한 양의 생명력을 품고 있어요. 그 생명력이 얼마나 강한지 그냥 짓이겨낸 즙을 상처에 뿌리기만 해도 이 정도 상처는 흔적도 없이 회복될 정도죠······. 이렇게 말이에요.”

살살이 풀의 원액을 뿌리고 난 후 가볍게 물티슈로 손목을 쓱 닦아낸 후 나는 상처 하나 없이 말끔한 내 손목을 보여주며 말했다.

“어······?”

마치 자신이 또 꿈을 꾸는 건 아닌가 싶은 얼굴로 눈을 휘둥그레 뜨는 아영.

하지만, 그녀는 볼을 잡아당기고 이리저리 주변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살펴보더니 피범벅이 되어 있는 테이블을 잠깐 내려다보다 이내 지금의 현실을 자각하고는 말했다.

“역시······. 저번에 했던 이야기는 농담이 아니었군요.”

“어라? 아직도 제 말을 안 믿고 있었어요?”

“아니, 그건 아닌데······. 지금은······. 이 모든 게 진짜라는 게 정말 실감이 가네요.”

앞으로 벌어질 미래 인류의 끔찍한 최후를 꿈에서나마 생생하게 목격했던 아영. 그렇기에 이 정신 나간 것 같은 중학생의 기행에 같이 발을 맞춰주고는 있었지만, 그녀는 아주 작게나마도 이 모든 것에 의심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이 눈앞에 놓여 있는 살살이 풀을 보며 그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이 그저 한낱 눈속임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에 아영은 조금은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서······. 이걸 가지고 뭘 어떻게 하실 생각인가요?”

세상에 공개된다면 어마어마한 파란을 몰고 올 것이 분명한 식물.

그렇기에 아영은 복잡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고 나는 그런 그녀에게 환하게 미소 지으며 답했다.

“간단해요. 저를 대신해서 이걸 매입할 업체를 좀 구해주세요.”

“네······?”

“지금 당장은 드릴 수 있는 녀석은 이거 하나뿐이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제 방에서 당장 자라고 있는 녀석들만 해도 수십 개는 더 되니까 아마 추가적인 샘플을 더 요청하는 곳이 있다면 한 이 주일 정도 뒤에는 더 드릴 수 있을 거예요.”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구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처음 보는 식물인 살살이 풀.

보기만 해도 이 식물이 가진 가치가 천문학적이라는 것은 문외한인 사람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기에 아영은 침을 꿀꺽 삼키며 되물었다.

“그러니까······. 지금 이걸 가져다가 바이오 업체들에다가 팔라는 말씀이신가요?”

“네. 저 같은 중학생이 찾아가서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아영 씨 같은 성인이 가서 이야기하는 게 더 잘 들어먹을 것 같아서요. 아마 개 무시 받고 회사 로비에서 쫓겨날 확률이 더 높아 보이기는 하는데 어떻게든 발품만 잘 팔면 어디든 한 군데는 미끼를 물지 않을까요?”

“······.”

히죽 웃으며 너무나도 쉽게 이야기하는 내 이야기에 아영은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무언가를 심각하게 고민하던 그녀는 이내 조심스럽게 입을 열어 자기의 생각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저기······. 멀린님.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것 같아요.”

“왜요?”

“으음······.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일단 이 살살이 풀이 가지고 있는 효과가 너무 강력해서요. 이게 만약에 대형 제약 회사나 바이오 기업에 알려지게 된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그냥 호구처럼 살살이 풀만 빼앗길 것 같아서 걱정이라는 말이에요?”

“······. 그렇죠. 저도 정확히 알고 있지는 않아서 뭐라 말씀드리기는 그렇지만 조금 신중하게 다가가야 할 문제 같은데요.”

“흐음······. 그렇군요.”

일반적이라면 그렇다.

아무리 혁신적인 기술이나 발견을 하더라도 이 매콤하고 화끈한 현실에서 인생은 실전이기에 만반의 대비 태세를 갖추지 않고 무작정 공개했다가는 다 털리고 소위 가진 자들에게 빼앗기기에 십상이었다. 괜히 중소 업체들이 대한민국에서는 장사 못 해 먹겠다며 이야기하는 게 아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그 일반적인 범주를 아득히도 벗어났기에 아영의 이야기에 자신감이 넘치다 못해 오만한 자태로 말했다.

“상관없어요.”

“네······?”

““뭐······. 가져가서 키울 수 있다면 키워보라고 하세요. 상관없으니까요.”

“······. 진심이세요?”

“사실 우리 살살이 풀이 가리는 게 딱히 없어서 키우기 그렇게 어려운 녀석은 아니에요. 물도 한 이틀에 한 번만 줘도 알아서 쑥쑥 잘 크고 온도도 적당히 10~30도 사이에서만 맞춰주면 크게 문제없거든요. 원체 넘치는 생명력 때문에 병충해나 전염병 같은 것도 딱히 없고 또 잎사귀 하나 떼서 땅에 심어도 알아서 자라거든요. 단······.”

심기만 하면 따로 관리할 필요가 아예 없다시피 할 정도로 잘 자라나는 식물. 그렇기에 재배하는 사람으로서는 그야말로 효자 같은 녀석이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아주 커다란 선행 조건 하나가 갖추어 져야만 했다.

“심은 땅에 마나 농도를 아주 진하게 맞춰준다는 조건만 갖춰진다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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