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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마법 만세!-22화 (22/242)

22화

22화.

경찰서에서 약간의 서류 절차를 끝마치고 난 후.

나는 누나의 추가적인 고강도의 심문과 조사를 끝마치고 난 후에야 겨우 완전하 자유로 풀려나 내 침대에 몸을 눕힐 수 있었다.

“후······. 진짜 오늘 일진 더럽게 빡세네.”

여느 때와 다르게 너무 길고 길었던 하루.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여러 일이 있었기에 피곤하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도 더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욱씬.

“에고고 죽겠다······. 남은 마나로 최대한 육체를 강화해 놨었는데도 아주 온몸의 삭신이 비명을 지르고 있네.”

찰나의 순간이지만 수백 배의 시간 가속을 경험한 육체.

그 엄청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쉴새 없이 움직인 전신의 근육과 뼈마디가 무사할 리가 없었기에 밀려드는 후폭풍 속에서 나는 고통과 피로감에 뒤섞인 표정을 지으며 입맛을 다셨다.

[ 진짜 어이가 없어서······. 그게 고작 그렇게 근육 좀 아프다고 하고 말 일이야? ]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가방에서 튀어나온 용용이는 침대에서 멀쩡하게 뒹굴뒹굴하는 나를 보며 황당하다는 듯이 물었다.

[ 헤이스트를 아무리 강하게 써도 겨우 2배나 3배······. 아무리 높여봤자 5배 이상으로 쓰는 게 불가능한 마법인데. 그걸 수백 배 단위로 가속해놓고 한다는 소리가 뭐? 삭신이 쑤신다고? 평범한 인간이었으면 아예 쓰자마자 죽었어야 정상이야. 알아? ]

사용한 효과보다 수십, 수백 배의 후폭풍으로 몰려오는 육체적 부담.

그 때문에 헤이스트라는 마법은 아주 위중하고 긴급한 전투 상황이나 전쟁에서나 활용되는 마법이었지만, 그걸 거의 자살에 가까운 수준으로 사용해놓고도 비교적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 내 모습에 용용이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 아니, 도대체 어떻게 마법을 썼길래 그렇게 멀쩡할 수 있어? ]

드래곤 로드인 용용이의 지식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나의 마법. 하지만 그런 그의 물음에 나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어떻게 하긴. 그냥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마법을 사용한 거지.”

[ 뭐······? ]

도무지 이해를 못 하겠다는 듯이 되묻는 용용이.

그런 그에게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간략하게 내가 활용한 수식을 설명해주었다.

[ 자······잠깐만. 그러니까 지금 주인 말은 불변의 시간선에 주인의 존재를 각인하고, 거기에 상대적인 시간의 흐름의 좌표계에다가 각인한 주인을 끼워 넣는 방식으로 시간을 조작했다는 말이야? ]

경악으로 물든 용용이의 물음. 하지만 나는 왜 이런 것 가지고 호들갑이냐는 듯이 무심하게 답했다.

“그렇지? 대충 그런 느낌으로다가 사용하면 부작용을 최소화 할 수 있겠더라고.”

[ 이런 미친······. ]

단순하게 하나의 우주만이 아니라 수천, 수만······. 아니, 무한의 차원으로 나누어진 모든 우주를 관통하는 절대적인 시간의 흐름.

불변의 시간선(Immutable Timeline).

자신조차도 드래곤 로드라는 위(位)를 얻고 선대의 지식을 계승하고 난 이후에 수백 년이라는 연구와 공부 끝에 비로소 그 개념을 이해했을 뿐, 그 지식을 마법에 활용할 엄두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불변의 시간선은 너무나도 심오하고 고차원적인 내용이었다.

그런데······. 그런 심오한 내용을 이해하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마법에다가 당연하다는 듯이 활용하고 있는 그. 그것도 소위 초월 마법이라고 불리는 9서클의 마법도 아니고, ‘고작’ 2서클의 마법 따위에다가 활용하고 있는 것을 보며 용용이는 신음했다.

[ 도대체 어떻게······? ]

마법을 발현하는 데 필요한 연산만 해도 꼬박 수년이 걸릴 정도로 복잡하고 어마어마한 양의 수식. 하지만 주인이 그 마법을 사용하는데 걸린 시간은 고작 동전을 튕기는 시간 정도에 불과했다.

“아 몰라. 그냥 된다고.”

그저 의문을 갖는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복잡한 수식마저 자연스럽게 풀어내는 그야말로 권능(權能)이라 할 수 있는 전지의 힘을 가진 그. 비록 생각하는 방식과 행동 양식이 여느 인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나사가 빠져 있는 것 같았지만, 침대를 이리저리 구르며 괴상한 신음을 내며 쌩 쇼를 벌이고 있는 주인을 보며 용용이는 진지하게 생각했다.

[ 어쩌면 정말 가능할지도······. ]

자신조차도 알지 못하는 고차원적인 상위의 마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주인.

그의 힘을 활용하면 어쩌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이브의 목표를 해결할 수도 있겠다는 희망에······. 아니, 어쩌면 최대한 그로부터 수많은 마법 지식을 흡수해 과거로 돌아가면 판달리아를 보다 나은 세상으로 부흥시킬 수 있겠다는 생각에 용용이는 묘한 흥분을 느꼈다.

[ 내가 지금까지 주인에 대해서 잘 못 생각하고 있었네. ]

지금까지 말로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내심 속으로는 주인을 빌어먹을 성질머리 더러운 인간 놈이라고 생각했던 용용이. 하지만 자신을 구해주고 또 자신조차도 이해하지 못한 상위의 마법 지식을 활용하는 그 모습들을 보며 평가를 달리한 용용이는 이제 그 고상했던 드래곤의 자존심을 모조리 내려두고 결심했다.

[ 앞으로는 진짜 잘해 보자고. 내가 주인에게 조금 비협조적이었다면 이제부터는······. ]

“아 맞다. 생각해보니 가장 중요한 걸 깜빡했네.”

자기의 말을 조금도 듣지 않고 있었던 것처럼 갑자기 벌떡 일어나며 소리치는 주인. 그리고 그가 갑자기 자신을 집어 들고 베란다로 향하자 용용이는 무언가 밀려드는 불안감에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 주인······. 지금 뭐 하는 짓이야? ]

“너 말이야······. 그 납치한 놈들인지 뭔지가 너 베개로 사용했지 않았어?”

연신 코를 킁킁거리며 자신의 몸 이곳저곳의 냄새를 맡는 주인. 그리고 그는 이내 무언가 불쾌한 냄새를 맡았는지 인상을 잔뜩 찡그리며 거칠게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으······. 이거 봐. 침 냄새나는 거. 더러워 죽겠네.”

[ 자······잠깐만. 주인! 그럼 지금 설마······! ]

달칵.

그때 그 악몽과도 같았던 세탁기 속에 자신을 집어넣는 주인. 그리고 그는 이 상황이 재밌기라도 한 듯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미안, 그래도 어쩔 수 없잖아? 모르면 몰랐지 누군가의 침으로 범벅이 돼서 냄새나는 상황인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널 만지고 다닐 수는 없잖아?”

[ 야! 그래도 이건 아니지! 그래서 내가 처음부터 구해달라고······! ]

이번에는 잘못한 것도 없는데 그 지옥 같은 곳에 다시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에 분개한 용용이. 하지만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닫힌 세탁기 너머로 청량한 버튼 소리와 함께 주인의 활기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잠 푹 자고 올 테니까 나중에 향긋해진 상태에서 다시 이야기하자고. 내가 특별히 비싼 섬유 유연제도 왕창 넣어줄게.”

[ 야······. 야! ]

가동을 시작하고 세탁기 안에 차오르기 시작한 물. 그 안에서 용용이는 다급하게 주인을 불렀지만 결국 분노와 울분이 섞인 괴성 속에서 또다시 세탁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 이 빌어먹을 인간 새끼야!!!! ]

*

수 시간이 지난 후.

세탁기에서 꺼내져 축축해진 상태에서 허공에 매달려 있는 용용이.

빨래집게에 양팔이 물려 푹 늘어진 용용이는 나를 향해 오만 욕들을 다 쏟아내고 있었다.

[ 오크보다도 못생긴 인간. ]

[ 이 드워프보다도 작은 난쟁이 똥자루 같은 인간 같으니라고. ]

[ 엘프보다도 더 속 좁고 치졸한 인간이 있다면 그건 바로 주인일 거야. ]

[ XXXXXX 하고 XXXXX 해서 XXXX 해 버릴······. ]

“에헤이. 또 선 넘는다.”

세탁기에 돌린 것에 대한 분노와 원망이 한에 맺힌 듯 쉽사리 풀리지 않는 것 같은 용용이의 분노. 하지만 점점 정도가 넘어져 가는 그의 욕에 나는 단호하게 용용이의 그 귀엽게 내민 혓바닥을 손으로 붙잡으며 경고했다.

“넌 이놈의 입이 문제야. 입. 또 초강력 터보 모드로 한번 혼나볼래?”

[ ······. ]

LS 전자의 비운의 제품. 크롬 세탁기의 초강력 터보 모드가 가진 무서움을 이미 몸으로 학습한 덕분인지 그 말에 이 이상 선을 넘지는 않는 용용이. 한풀 꺾인 듯한 그의 기세에 나는 조금은 풀어진 얼굴로 먼저 사과를 건넸다.

“크흐흠······. 아무튼 세탁기에서 빨리 안 꺼내준 건 내 잘못이니까 인정할게. 미안. 너무 피곤해서 나도 모르게 꿀잠을 자 버렸지 뭐야.”

세탁은 오래전에 끝났지만, 그 이후에도 몇 시간은 더 지나고 나서야 꺼내준 것은 분명한 내 과실이었기에 그것에 대해 나는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지만 용용이는 조금도 내 사과를 받아주지 않았다.

[ 고작 그딴 말 한마디로 퉁 치겠다고? 내가 저 망할 기계 안에서 얼마나 끔찍한 치욕을 겪었는지 알기나 해? ]

[ 인간적으로 나를 깨끗하게 할 거면 다른 것들이랑 같이 섞지 말아야지! 내가 주인의 팬티에 뒤섞여서 몇 시간을 갇혀 있었는지 알아? 내가 주인 팬티가 파란색인 걸 굳이 알아야······. ]

“아. 좀. 부끄럽게 남 팬티 가지고 그러냐. 미안. 미안하니까 인제 그만 화 좀 풀어.”

[ 흥! ]

단단히 화가 난 듯한 용용이. 하지만 그 외형은 초록빛의 귀여운 아기용의 모습이었기에 나는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 웃어? 지금 나한테 그런 짓을 해 놓고도 웃는다고? ]

하지만 내 미소에 발작 버튼이 눌렸는지 꽥꽥거리기 시작한 용용이. 하지만 그는 내가 앞에 들이민 것을 보며 금세 조용해졌다.

“그만 난리 치고 이거나 좀 봐.”

[ 어······? 이건······? ]

방금까지 화가 났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게 할 정도로 충격을 받은 용용이는 경악했다.

[ 블러디 허브······? 이······.이게 도대체 왜 여기 있어······? ]

이 지구에서는 자라난 적 없는······. 그리고 자라날 수조차 없는 판달리아의 식물.

블러디 허브.

마나가 양분으로 자라나는 이 핏빛의 식물은 고유한 하나의 특성이 있었다.

“이게 그렇게 판달리아에서는 상처 치료나 외상에 특효약이라며?”

막대한 생명력을 품고 있어 그저 상처에 붙여두기만 해도 반나절 만에 흉터 하나 없이 깨끗하게 재생시킬 수 있다는 강력한 치유력을 가진 약초. 게다가 그 성분만을 고농도로 농축시키면 절단된 신체 부위마저도 말끔하게 붙일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회복약을 제조할 수도 있기에 판달리아의 약초꾼들도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니는 고급 약초 중 하나였다.

[ 마나가 희박한 이 세상에서 이런 마법 식물이 자랄 수가 없을 텐데······? 어떻게? ]

“엄밀히 말하자면 블러디 허브는 아니야. 꽃순이지.”

[ 뭐······? 꽃순이······? 주인 설마······?]

그때 학교에서 구출해 온 이름 모를 어느 꽃.

하지만 지금 그때 그 미약한 외형은 온데간데없고 완전히 새롭게 뒤바뀌어 완전히 핏빛으로 새빨갛게 물들어 있는 이것은 그야말로 블러디 허브와 다를 바 없는 막대한 양의 생명력을 품고 있었다.

“하나 발견한 사실이 있는데 말이야······. 이 지구의 생명체들은 마나를 접해본 적이 거의 없어서 그런지 민감도가 어마어마하다? 마나를 물처럼 주기적으로 꼬박꼬박 주니까 곧장 반응해서 이렇게 급속하게 변이가 일어날 정도라니 말이야.”

단 한 번도 직접적으로 마나에 노출되어본 적이 없는 지구의 생명체들.

그렇기에 내가 투사하는 마나를 반강제적으로 주입받은 꽃순이는 상상 이상으로 어마어마한 효과를 보이며 완전히 새로운 종(種)으로 변화해 있었다.

“이제 꽃순이는 그냥 꽃이 아니야. 아마 유전자의 기본 단위부터 완전히 달라진 전혀 다른 새로운 식물 종이라고 해도 무방할걸? 물론 네가 살던 세상에 있던 그 블러디 허브랑 같은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야.”

물론, 내 머릿속에 있는 그 식물에 대한 지식을 활용하여 영감을 받기는 했지만 말이다.

[ 자······잠깐만······. 그럼 지금 설마······. 주인이 이러한 ‘진화’를 유도했다는 말이야······? ]

“그러게······? 어떻게 된 걸까······?”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내 애매한 반응에 혼란스러운지 무어라 중얼거리는 용용이. 하지만 나는 그런 그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며 내 앞에서 이리저리 팔랑거리는 붉은빛의 꽃순이를 바라보며 진한 미소를 지었다.

“아무튼······. 완전히 새로운 종으로 재탄생한 우리 꽃순이의 새로운 이름을 지어줘야지.”

[ 새 이름······? 그게 뭔데? ]

내 중얼거림에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어오는 용용이.

그런 그의 물음에 잠깐 고민하던 나는 이내 아주 좋은 생각이 떠올라 히죽 웃으며 그 이름을 결정했다.

“살살이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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