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21화.
“어이! 빨리빨리 후송해!”
“환자분! 어디가 제일 아파요? 예?”
“이런 미친! 도대체 여기서 뭔 짓을 벌이고 다닌 거야?”
한두 명도 아니고, 자그마치 수십이 넘는 중학생들이 어딘가 한 군데씩 부러진 채 바닥에 널브러져 신음하고 있는 사건 현장. 누군가의 신고로 몰려든 여러 대의 경찰차와 구급차들의 행렬로 평소에 인적이 드문 공사장 한복판이 온통 소란스러워졌다.
그리고 그곳에서 유일하게 멀쩡하게 두 다리로 서 있는 나는 곧장 경찰서로 끌려가 강도 높은 조사를 받게 되었다.
“아 진짜라니까요? 그 자식들이 서로 시비 걸리더니 갑자기 자기들끼리 싸우기 시작했다고요. 저는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평범하고 선량한 학생인데 오늘 처음 맞으러 불려갔다니까요?”
“이 새끼가? 야! 그게 말이 돼? 어? 다른 녀석들은 죄다 네가 그랬다고 하는데?”
어떤 놈인지 모르지만 치사하게 경찰에게 모조리 다 있었던 이야기를 꼰지른 것 같은 상황. 하지만 나는 한껏 뻔뻔하고 당당하고 또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그렇다면 형사님 말씀은 이거네요? 아무것도 없이 맨손으로 온 저 한 명이, 쇠파이프랑 각목이랑 야구 배트로 무장한 험악하고 건장한 중학생 청소년 수십 명을 상대로 싸워서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한 것도 모자라 오히려 역으로 죄다 팔다리 하나씩 부러뜨려 놨다고요?”
“그······그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이야기.
그 말에 일순간 할 말을 잃은 듯한 형사는 당황한 듯이 입을 뻐끔거리다가 이내 다시 화를 버럭 내며 책상을 탕탕 내리쳤다.
“그래도! 네 녀석이 범인이라고 말하는 놈이 하나둘이 아니라고! 빨리 무슨 일이 있던 건지 바른대로 말하지 못해?”
“아 말했잖아요! 왜 제 말은 안 믿고 그 새끼들 말만 믿는데요? 거기 그놈들이 얼마나 질 나쁜 새끼들인지 한번 조사해 보면 다 나올 거 아니에요.”
진술만을 청취해 놓은 상태지만 완전히 상반된 이야기에 그 어느 하나도 말이 되지 않는 상황. 단신으로 수십 명을 상대로 싸워 모조리 팔다리를 분질러 놨다는 이야기도 전혀 말이 안 됐지만, 갑자기 사람을 불러놓고 자기들끼리 패싸움을 벌였다는 이야기 역시 개소리로 들리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형사는 생각만 해도 골치가 아픈 문제에 조금도 꿇리지 않고 꼬박꼬박 말대꾸하며 대드는 것 같은 내 태도에 평정심을 잃은 듯, 주먹을 하늘 위로 높이 쳐들며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소리쳤다.
“이 새끼가······. 야!”
그리고 그 순간, 갑자기 벌컥 열리는 문과 함께 한번 만나봤던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누구······?”
“어이, 이 형사! 잠깐 나와 봐.”
원석의 아버지이자 4선의 국회의원인 유력 정치인인 양원철. 그의 옆에 서 있는 형사과장이 다급하게 손짓하며 그를 불러내자 나를 조사하던 형사는 나를 힐끗 노려보더니 이내 밖으로 걸어 나갔다.
“무슨 일입니까? 지금 조사 중인데······.”
“야, 조용히 이야기해. 일단 지금······.”
문이 닫히기 전에 무언가를 조용히 속닥거리며 이야기하는 두 사람. 하지만 문이 닫히고 이내 원철과 단둘이 남게 된 이 취조실 안에서는 어색한 침묵만이 흘렀다.
“또 보네요?”
히죽 웃으며 장난스럽게 말문을 튼 나. 하지만 그런 나와 다르게 무언가 생각에 잠긴 원철은 아무런 말 없이 차분하게 아까까지 형사가 앉아 있던 자리에 앉으며 나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처음 봤을 때는 조금 당돌한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내 생각보다 더하군.”
“그래요?”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라고 생각했었지. 하지만 그게 아니었어. 세상 무서운 줄 몰라서 죽여달라고 사정하는 미친 새끼였다니 말이야.”
어투는 담담하고 차분했지만, 그의 눈빛에서 느껴지는 거대한 광기. 자신이 원하는 것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반드시 이루고야 말겠다는 그 욕망과 야망이 얼핏 비추어 보이자 나는 원석이 누구를 닮은 것인지를 어렴풋이 눈치챌 수 있었다.
“저번 일은 뭐 제가 과했다고 백번 양보해서 인정해 줄 수 있지만, 이번 일은 솔직히 감정 갖지 마세요. 대놓고 저 조지겠다고 수십 명 데려와서 밟으려고 했는데 그럼 그걸 그냥 가만히 당해줘요? 무슨 호구 병신도 아니고?”
나름 정당방위였던 사건.
그렇기에 나는 원망과 증오, 그리고 분노의 감정이 잔뜩 뒤섞인 눈빛으로 노려보고 있는 원철에게 조금은 억울하다는 듯이 해명했지만, 그는 조금도 이해하지 않는 듯했다.
“그래서······. 고작 그런 이유로 원석이를 그렇게 만들어놓은 건가?”
두 팔과 두 다리가 모조리 깔끔하게 부러진 상태.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는 하지만 팔과 다리에 깁스를 한 채로 제대로 거동조차 하지 못하고 꼬박 2달은 누워 있어야 하는 상태로 만들어버린 것을 보며 원철은 이가 부러지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강하게 이를 갈았다.
“저번에 전치 12주라면서요? 그런데 한 달 만에 너무 멀쩡하게 돌아다니길래 원하시던 대로 진짜 전치 12주로 만들어줬죠. 이제 의원님 아들내미도 어디 싸돌아다니면서 이상한 사고 안 치고 얌전히 치료에만 매진할 테니 오히려 잘 된 편 아닌가요?”
어차피 집에서도 통제가 안 돼서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미쳐 날뛰고 있는 원석. 정학에서 풀린 지 얼마나 됐다고 이런 식으로 애들을 이용해서 해코지하려고 하는 방식은 분명 원석의 독자적인 행보에 가까웠지 원철과 같은 정치인이 선택할 만한 답이 아니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저희 둘이서 한번 원만하게 사태를 정리해 보죠.”
“정리······?”
“어차피 의원님도 이번 일. 어디 시끄럽게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는 걸 원하고 계시지는 않을 거 아니에요? 나랏일 하시는데 괜히 번잡스럽게 이런 일에 아들이 연루되었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게 되면 분명 상대 진영의 입장에서는 먹음직스러운 먹잇감이 될 텐데 말이죠. 보아하니 차기 당 대표 자리도 노리고 계신 것 같은데 괜한 일로 공든 탑이 무너지는 위험을 감수하고 싶으세요?”
“흥. 네 녀석이 우리 아들한테 짓을 생각하면 그런 소리가 나오나?”
내 협박에 코웃음을 치며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중얼거리는 원철. 그리고 그는 싸늘한 눈빛으로 나에게 두고 보라는 듯이 말했다.
“원석이가 뭔 짓을 했든 이제는 상관없어. 언론과 대중은 어차피 눈에 보이는 자극적인 것만 기억하거든. 지금 그 녀석이 시체처럼 침대에 누워 움직이지 못하는 모습이 공개되면 아마 네 녀석은 극악무도한 학교 폭력의 가해자로······.”
[ 죽어! 죽으라고! ]
“······.”
미리 찍어둔 영상을 틀어 보여주자 하던 말을 멈추고 입을 굳게 다무는 원철. 그리고 그는 가만히 내가 몰래 동영상으로 촬영해둔 원석의 광기 어린 모습을 감상하였다.
“사실 팔다리 다 부러뜨릴 생각은 없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주머니에서 저렇게 흉측한 칼을 꺼내 들어서 진심으로 휘두르는데 어떻게 하겠어요? 제압은 해야겠고 칼 든 녀석을 상대로 손속을 봐줄 수도 없고 말이죠. 그래서 저로서도 그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었어요. 원석이 저렇게 된 건 안타깝지만 불가피하게 벌어진 사고에요. 사고.”
“······.”
칼을 들고 미친 듯이 휘두르고 있는 원석의 모습.
중학생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섬뜩한 살의를 풍기는 저 눈빛이 생생하게 담긴 저 영상이 대중에 공개된다면 벌어지게 될 끔찍한 상황을 상상하며 원철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어떻게······. 이래도 저 혼자만 엿 먹일 자신 있으세요? 정 안 되면 저는 증인도 여럿 모을 자신 있는데······.”
너무나도 정곡을 찌르는 나의 물음. 그도 그럴 것이 다른 직업도 아니고 대중의 사랑과 유권자들의 표심을 얻어야만 하는 정치인의 삶을 살아가는 원철에게 이러한 일로 논란이 되는 것은 가장 기꺼워하고 또 성가셔하는 문제였다. 특히 단순한 정치인이 아니라, 이 대한민국을 통치하는 권력의 정점에 오르고야 말겠다는 거대한 야망을 품은 그로서는 더더욱.
“원하는 게 뭐지?”
이제 조금은 이야기가 통하는 듯한 그의 태도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나는 요구조건들을 말했다.
“간단해요. 저는 말이죠. 우리 원석이가 다시는 제 눈앞에서 안 보였으면 좋겠어요. 이런 이상한 수작질이나 유치한 장난질에 다시 엮이는 건 저로서도 사양이거든요.”
“전학이라도 보내라는 말인가?”
“아뇨. 이 한국에서 내보내라고요.”
“뭐······?”
“어차피 유학 보내실 형편은 되잖아요? 국회의원을 한 번도 아니고 자그마치 4번이나 해 먹으셨으니 돈이 부족하실 일은 없으실 테고······. 뒤에서 여기저기 찔러주는 것만 해도 미국이나 유럽 같은 나라에서 대학교까지 졸업시키는 건 크게 문제없지 않나요?”
위대한 마법을 고작 애들 싸움질이나 장난질에 활용하는 건 이쪽에서도 질색인 상황. 그렇기에 나는 다시는 이런 비슷한 상황에 얽매이지 않기 위해서 철저하게 이번 사태를 처리할 생각이었다.
“의원님이 직접 고르세요. 유학이에요? 아니면 전쟁이에요?”
중학생인 나와 본격적인 전면전을 치르거나 아니면 자식을 얌전히 어디 외국으로 처박아놓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나의 협박 아닌 협박에 원철은 황당하다는 듯이 무어라 말을 하려고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우우우우웅.
‘이게 도대체 무슨······.’
중학생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거대한 위압감.
자신의 가슴까지도 오지 않을 작은 키에 아직 아이 같은 앳된 얼굴이었지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영악하고 음흉한 처세술과 주변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는 것 같은 미묘한 분위기에 그는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아무 말이나 함부로 꺼내서는 절대 안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어떻게 하시겠어요?”
“······.”
숨 막히는 침묵 속에서 영원같은 찰나의 시간이 지나고 난 후.
갑자기 들려오는 노크 소리에 나와 원철의 비밀스러운 대화는 끝을 맺었다.
“야! 김철수!”
“어? 누나?”
“또 뭔 짓을 벌이고 다닌 거야! 이 망할 놈아!”
연락을 받고 급하게 달려온 듯한 영희는 방 안에 들어오자마자 나의 등짝을 후려 갈기기 시작했고 이어서 다급하게 쫓아 들어온 형사들이 그녀를 만류하며 끌고 나갔다.
“여······여기 함부로 들어오면 안 됩니다. 보호자 분.”
“나가시죠. 일단 나가서······”
“너 진짜 죽었어! 이게 왜 갑자기 미쳐서 자꾸 쌈박질하고 난리야!”
수사관들에게 질질 끌려나가며 마지막까지 무어라 고래고래 소리치는 영희. 그 광경을 흥미롭게 구경하던 원철은 이내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저 사람이 네 누나인가 보군?”
“맞아요. 왜요?”
“아니네······.”
누나를 보고는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듯한 원철.
내 질문에 답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대충이나마 짐작했기에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의원님. 그거 아세요?”
“뭐가 말인가?”
“지금까지 벌어졌던 모든 일은 말이죠······. 정말 사소한 일들로 인해 비롯되었어요.”
가냘픈 죄 없는 우리 꽃순이를 죽이려고 했던 일. 그리고 나의 소중한 중국산 짝퉁 인형. 용용이를 납치한 일. 이 모든 것들은 그저 지나고 나면 하나의 해프닝 정도로 끝날 수 있을 법한 일들이었다.
“그렇기에 이 정도로 깔끔하게 넘어가 줄 수 있는 거예요. 제가 이래 보여도 엄청 쪼잔하고 치졸해서 한번 당하면 절대 안 넘어가고 꼭 그에 상응하는 복수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향이거든요.”
하지만 그 사소한 일들과 다른 무언가 큰 일을 벌이려는 것 같은 원철에게 나는 분명하게 그 ‘선’을 넘지 말라고 진심을 담아 경고했다.
“혹시라도······. 그 어떤 조금의 영향력이라도 발휘해서 제 누나를 건들거나 그 어떤 불이익이라도 주려고 하거나 해코지를 하게 된다면······.”
“그때는 의원님이나 원석이 정도로 끝나지 않을 거예요.”
“······. 진심인가?”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한 원철은 싸늘하게 굳은 얼굴로 되물었지만 나는 화사하게 웃으며 그의 물음에 화답했다.
“물론이죠. 제가 설마 이런 거 가지고 농담하겠어요?”
이들을 처리할 능력은 있지만, 그저 그러지 않고 있을 뿐인 나.
그런 나를 자극하지 말라고 다시 한번 경고하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려고 했다.
“어디 가는가······?”
“네? 집에 가는데요?”
“······?”
수십 명이 중상해를 입은 폭행 사건에 대한 조사가 아직 다 안 끝났는데 어딜 가냐는 듯한 물음이 섞인 눈빛을 보내는 원철. 그런 그에게 나는 잊었냐는 듯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저는 아직 촉법소년이거든요.”
내가 이 집단 폭행 사건의 주범이든 아니든 그딴 건 조금도 중요치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