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20화.
서울 강동 지역 중학교에 다니는 학생들로만 이루어진 폭력조직 강동 연합.
이름만 들었을 때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유치한 이름의 일진 모임처럼 들렸지만, 상상 이상으로 이들의 실체는 고작 중학생 정도의 아이들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고 또 악랄했다. 인터넷과 SNS를 조금만 검색해봐도 이들과 관련한 온갖 낭설과 이야기들을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 최근 서울 지역의 청소년 4명이 무인 점포 수십 군데를 돌아다니며 기계와 금고에 있는 현금을 털어가는 절도 행각을 벌이다 결국 검거되었습니다. 이들로 인해 발생한 피해 금액만 최소 수천만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었는데, 범행을 저지른 이들 모두가 촉법소년으로 풀려나 큰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
[ 무면허 중학생 2명이 차량을 탈취해 벌인 광란의 질주로 인해 20대 대학생 배달원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이들은 범죄를 저지르고 난 이후에도 별다른 반성을 하지 않고 풀려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로 인해 소년 강력 범죄에 대한 사회적 공분이 일고 있습니다. ]
[ 요즘 어린 애들이 더 무섭다. 농담처럼 하던 이야기가 농담이 아닌 사회가 된 것 같습니다. 13일 새벽에 어느 한 공원에서 벌어진 청소년들의 집단 패싸움에 2명이 중태에 빠져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싸움에 가담한 이들의 행방을 추적해나가고 있는 경찰은 폭력 서클들 사이의 알력 다툼으로 추정하며 관련 학생들을······ ]
차량 탈취, 협박, 절도, 특수 상해, 특수 강도, 특수 폭행······. 심지어 살인까지.
그야말로 성인이라면 교도소에 처박혀야 할 정도로 극악무도한 강력 범죄들을 거리낌 없이 저지르고 다니는 이들의 무리. 물론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이 강동 연합에 속한 이들 중에는 갱생 자체가 불가능해 보이는 그야말로 쓰레기 같은 놈들이 여럿 끼어 있었다.
“조폭 꿈나무 같은 놈들인 건가? 상상 이상으로 가관이네.”
허세와 겉멋에 찌들어 사는 중딩 남학생답게 온갖 거만함과 오만함에 찌들어 자기 자랑에 바쁜 SNS의 게시글들. 수십, 수백의 계정들을 파고 파고 내려가며 이들에 대한 조사를 끝마친 나는 대충이나마 모든 그림을 그려내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다 조져버려야 할 쓰레기들이 대부분인 것 같은데······. 이걸 어떻게 처리한다······?”
어디서 구했는지 출처를 알 수 없는 돈을 잔뜩 늘어놓고 명품을 자랑하듯이 찍어 올린 어느 게시글과 예쁘장한 어린 여자애들의 무리 사이에서 의기양양하게 자신의 문신을 과시하며 찍은 사진을 둘러보며 나는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중얼거렸다.
“고작 중학생 애새끼들만 데리고 만들 수 있는 수준의 스케일은 벗어난 것 같은데······.”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아 보이는 강동 연합. 조금만 더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무언가 숨겨져 있는 거대한 실체가 그 모습을 드러낼 것 같은 냄새가 물씬 풍겨왔지만 나는 점점 복잡해지는 생각에 고개를 작게 흔들었다.
“아니지······. 아니야. 귀찮게 이딴 일에 복잡하게 끼어들 필요는 없지. 어차피 용용이만 다시 구출해내면 내가 상관할 문제는 아니니까.”
어차피 사라져봤자 또 비슷한 종류의 단체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날 뿐, 근절할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을 알기에 나는 그다지 이 문제에 깊이 발을 담그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저 가능한 평화적으로 용용이만 다시 찾아오기만 하면 될 뿐. 잠자코 상념에 잠겼던 나는 문득 드는 생각에 피식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그래도 하는 짓은 귀엽네. 이런 식으로 사람을 오라 가라 하고 있고?”
내 전화번호는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는 번호로 날아온 한 통의 문자.
그 문자 안에는 화사하게 혀를 삐쭉 내밀고 있는 용용이의 사진과 함께 어느 한 장소가 찍혀 있었다. 너무나도 도발적인 메시지와 함께 말이다.
- 네 인형을 되찾고 싶으면 직접 와서 찾아가라.
고작 인형 하나를 가지고 협박하고 있는 이들.
그게 평범한 인형이었다면 버리면 버렸지 미쳤다고 제 발로 어딘지도 모르는 곳까지 인형 하나 때문에 찾아갈 리가 없었지만. 이들은 너무나도 정확하게 나를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물론, 자신들이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지만 말이다.
“어떻게 참교육을 해 줄까나······.”
그렇게 나는 한참 동안 미친놈처럼 연신 혼잣말을 하며 히죽거렸다. 죽여달라고 애원하는 이 일진 놈들의 무리를 어떻게 참교육해줘야 하나 고민하며 말이다.
*
서울 한복판에 자리한 어느 공사장.
소유주와 시공사와의 법적 분쟁으로 인해 공사가 중단된 채 방치된 지 몇 년이 지난 이곳은 일진들의 놀이터이자 아지트가 되어버린 곳이었다.
그리고 그곳에 찾아온 나는 험악하게 생긴 수십 명의 건장한 남학생들이 교복을 입은 채 기다리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오, 나 하나 때문에 이렇게 많이 모인 거야? 이거 영광인데?”
반갑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넸지만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고 그저 싸늘하게 노려보기만 하는 이들. 딱 봐도 예의범절이라고는 밥 말아 먹어버린 이들은 온갖 종류의 교복들이 형형색색 뒤섞여 있었다. 단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얼굴들. 하지만 그사이에 숨어 있는 한 사람을 발견하고는 나는 진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여, 원석아. 나한테 맞은 건 아직 다 안 나았냐? 네 덕분에 한 달 푹~ 잘 쉬고 왔다.”
아직 다 회복도 안 됐는지 목에 보호대를 착용하고 얼굴에 여러 개의 밴드를 붙이고 있었지만, 이렇게 먼 곳까지 친히 걸음을 옮긴 것을 보면 아무래도 이전의 그 진단서는 분명 과장된 것이 분명했다.
“전치 12주 나왔다더니 한 달 밖에 안 됐는데 잘만 걸어 다니네? 어쩐지······. 엄청 살살 쳤는데 그런 것 치고 너무 다쳤다고 온갖 호들갑을 다 떨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부풀린 거 맞네. 몇 살인데 벌써부터 나이롱 환자 행세나 하고 있냐?”
이 상황에서도 너무나도 태연하게 인사를 건네는 나의 행동에 당황한 표정을 짓던 원석. 하지만 이내 독기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악을 쓰듯이 소리쳤다.
“이 개새끼가······. 진짜 미쳤나. 야! 너 지금 무슨 상황인지 아직도 파악이 안 됐냐? 넌 오늘 진짜 뒤질 줄 알아!”
마치 주위를 보라는 듯이 의기양양하게 소리치는 원석. 수십 명이나 되는 인원을 상대로 질 것이라는 건 상상도 하지 않는 듯, 그는 진한 미소를 지으며 눈을 빛냈다.
“크크크 머저리 같은 새끼. 그깟 인형 하나 때문에 진짜 여기로 온다고? 네 놈이 정학 먹은 동안 뮤튜브에서 이상한 짓거리 하고 다닌다고 할 때부터 혹시나 하긴 했는데 진짜 미친 새끼였구나?”
설마하니 고작 중국산 짝퉁 인형 하나 때문에 알아서 제 발로 여기까지 오리라고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것 같은 원석. 그는 복수심에 불타 번득거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으르렁거렸다.
“두고 봐······. 내가 당한 것 이상으로 수십 배는 다시 되갚아 줄 테니까.”
무슨 짓을 하려는지는 모르겠지만, 저 비릿한 광기 어린 눈빛을 보면 나를 무사하게 걸어 나가게 할 생각은 전혀 없어 보이는 원석. 하지만 나는 조금도 무섭지 않았기에 심드렁한 반응을 보이며 무심하게 물었다.
“그건 알아서 잘 노력해보고······. 그보다 우리 용용이는 어디 갔냐?”
너무나도 진지하게 물어오는 용용이의 행방. 그리고 그 순간 원석을 제외한 모두의 얼굴에는 황당함과 의아함이 피어올랐다.
“용용이······?”
“설마······. 이 인형에 이름까지 붙였다고?”
누군가의 손에 들려 있는 귀여운 자태의 아기용 인형. 그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얼굴로 꼬리를 잡고 인형을 들어 올리며 나와 용용이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어, 꼬리 잡지 마. 용용이가 거기는 엄청 예민한 부위라서 함부로 만지는 거 싫어해.”
“······?”
“안 그래도 지금 너보고 당장 안 내려놓으면 네놈 새끼는 영혼까지 모조리 다 씹어 먹어버리겠다고 협박하고 있어.”
내 귀에 시끄럽게 들려오는 용용이의 광기 어린 분노의 외침. 그걸 진지하게 전해주며 경고하고 있었지만, 그것이 전혀 들리지 않는 이들은 자신들이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 폭소를 터트렸다.
“크크크······. 푸하하하하하.”
“이거 완전······. 골 때리는 미친놈이었잖아?”
“저거 진심으로 하는 소린가? 정신병자였어?”
한참을 서로를 바라보며 웃으며 나를 조롱하는 이들. 하지만 이내 험악하게 내 주위를 포위하기 시작했다.
“에휴······. 야 진짜 중학생 한 명 두고 이렇게까지 해야 겠냐? 무슨 삼류 조폭 영화도 아니고 이게 쪽팔리게 뭐 하는 짓이야 진짜······.”
“일단 넌 좀 처맞고 난 다음에 이야기하자.”
맨주먹인 놈들부터 시작해서 각목, 쇠파이프에 야구 방망이와 같은 보기만 해도 험악해 보이는 무기들을 각양각색으로 들고 있는 이들.
고작 한 명을 상대로 하기는 너무 과중하다 싶을 정도의 조치였지만, 이들의 무리 밖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원석의 얼굴에는 잔인한 미소가 피어올라 있었다.
“밟아! 그냥 죽여버려!”
용용이를 잡아들고 내가 밟히는 걸 감상하려는 듯한 원석. 하지만 이런 이들을 한심하게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던 나는 호주머니 속으로 손을 집어넣으며 나를 향해 경계하며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 같은 태세의 무리를 한 바퀴 둘러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너희들 혹시 헤이스트라는 마법 알아?”
“······?”
“??”
아무도 내 말에 대답하지 않았지만 의아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
뮤튜브 영상으로 언제 한번 상세하게 강의했던 내용이었지만, 내 영상을 봤을 리가 없는 무지몽매한 이 어린 중학생들을 위해서 다시 한번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디멘션 학파의 가장 기초적인 마법 중 하나야. 공부랑은 아예 담쌓고 게임이나 쌈박질이나 하고 다니는 너희들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겠지? 이동속도나 공격속도를 높여주는 버프 마법 정도로 말이야.”
100원짜리 동전 하나.
호주머니에서 꺼낸 그 동전을 손바닥 위에 펴 보이며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기본적인 그 원리를 들여다보자면 어떤 마법보다도 복잡하고 난해한 마법 중 하나야. 단순히 신진대사를 빠르게 하거나 육체적인 능력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 자체를 조작해서 다른 이들보다 시간의 흐름 자체를 빠르게 만들거든.”
“그래서 일반적인 수준의 마법사는 어지간한 상황이 아니면 사용할 엄두도 내지 않지. 시공간을 가지고 장난질을 치는 ‘시간 가속’은 수식이 너무 복잡해서 실패할 확률도 높고, 또 그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찰나의 순간만을 수십, 수백 배로 가속한다면 그 어떤 마법보다도 강력하지.”
따앙.
맑은 소리를 내며 내 손가락에 튕겨 공중으로 솟아오른 동전. 내 기이한 행동을 잠자코 바라보며 모두의 시선이 자기도 모르게 동전으로 향한 그 찰나의 순간.
내 심장을 중심으로 맹렬하게 회전하던 마력의 서클은 강렬한 마나를 발산하며 나의 의지에 따라서 하나의 마법을 구현하였다.
우우우우우웅.
“헤이스트.”
그리고 그 순간. 모두의 시간이 멈추었다.
고작 눈꺼풀 하나 깜빡일 정도로 짧은 찰나의 순간.
원석은 자신의 눈앞에 벌어진 광경을 보며 경악에 물들었다.
“이······이게 뭐야!”
일순간 커다란 충격을 받은 것처럼 공중에 떠올라 거의 동시에 바닥으로 쓰러지는 수십 명의 무리. 어떻게 했는지 알 수 없지만 다들 어디 한 곳을 부여잡고 고통에 겨운 비명을 지르며 신음하고 있었다.
“끄······끄아아아아악. 내 팔!”
“다리가······. 다리가 부러진 것 같아!”
“으아아아아아아아아!”
“끄으으······.”
장난치는 것이 아닌가 했지만, 너무나도 현실적인 비명을 지르며 고통스러워하는 이들. 몇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든든해 보이던 방패막이가 모조리 사라진 원석은 쓰러진 이들 너머로 보이는 한 사람을 보며 얼굴이 창백해졌다.
타악.
이들을 모조리 쓰러트리고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떨어지는 동전을 잡아챈 나.
고작 초 단위에 불과한 찰나의 시간이었지만, 헤이스트를 통해 그 시간을 수십, 수백 배의 시간으로 부풀린 나에게 이들 모두를 쓰러트리는 건 너무나도 여유 가득한 일이었다.
“최소 내 팔다리 한두 곳은 박살 내려고 했었지? 나도 너희들 하려는 대로 그대로 똑같이 해 준 거니까 불만 품지 마라. 이런 말도 있잖아?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팔다리에는 팔다리라고.”
나를 해코지하려고 했던 이들 모두에게 함무라비의 법전 그대로를 실천해 준 나는 피식 웃으며 누군가에게서 빼앗은 쇠파이프를 어깨에 걸친 채로 겁에 질려 서서히 뒷걸음질 치는 원석이에게 다가가 부드럽게 물었다.
“그래서 이 사건의 주범인 우리 원석이는······. 어떻게 해 줘야 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