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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마법 만세!-19화 (19/242)

19화.

19화.

드래곤 로드. 페르도스.

이제는 용용이라는 이름으로 중국산 짝퉁 아기용 똘리 인형에게 갇혀 있는 그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가방 안에서 연신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

[ 하아······. 이 망할 주인 새끼. 나 같은 고귀한 영혼을 뭐로 보고 짐짝 취급인지······. ]

감히 인간 따위가 범접할 수 없는 강대한 육체와 위대한 정신을 가진 최강의 종족. 드래곤. 그중에서도 가장 정점에 자리한 로드의 지위에 올랐던 그였기에 현재 상황에 대해서 느끼는 자괴감은 그 누구보다도 남달랐다.

[ 아니, 내 육신을 그대로 보전해주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최소한 생명체한테 빙의시켜줘야 하는 거 아냐? 이딴 거적때기만도 못한 솜뭉치 신세로 도대체 뭘 어떻게 하라는 거야? ]

거래를 운운하며 죽어버린 자신을 꼬드겼던 신성. 이브.

마법으로 자신이 이 세상을 지배하게 된다면 다시 과거로 되돌려 보내주겠다는 달콤한 제안을 수락한 건 사실이었지만, 이딴 식으로 인형에게 빙의시키는 엿 같은 짓을 저지르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기에 용용이는 마치 사기를 먹은 듯한 배신감에 분노했다.

[ 하여간······. 신성을 가진 새끼들은 믿을 놈이 없다고 하더니만······. 이건 그냥 장식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잖아? 일 처리 하는 꼬락서니를 보면 정말이지 하여간 답답해서 원······. ]

그렇게 자신을 이 세계로 보낸 이브와 주인이라는 작자에 대해서 혼자 온갖 불평불만을 토로하고 있던 용용이. 그렇게 얼마나 오랫동안 자신의 용권(龍權)을 보장해주지 않는 주인의 가혹한 처사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을까? 그는 갑자기 요란한 지퍼 소리와 함께 가방이 활짝 열리며 찬란한 빛이 눈앞에 쏟아지자 반가움과 분노가 뒤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 열어달라고 도대체 몇 번을 말했는데 이제야 열어주는 거야? 아니, 내가 무슨 인형 안에 들어갔다고 진짜 인형인 줄······. ]

철수에게 잔뜩 짜증을 내며 격렬하게 항의하려던 용용이. 하지만 그는 열린 구멍을 통해 자신을 내려다보는 생소한 얼굴에 하던 말도 멈춘 채 얼어붙었다.

“뭐야? 이건. 인형?”

딱 봐도 무언가 껄렁해 보이는 험악한 인상의 인간. 처음 보는 낯선 인간이었지만, 그 눈빛이 전혀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용용이는 그가 자신을 집어 들자 격렬하게 저항하며 소리쳤다.

[ 놔······놔라! 어디 감히 인간 따위가 나를 만지는 것이냐! ]

“흠······. 이거 그거 아냐? 옛날 만화영화에 나오는 그 아기용 똘리인지 뭔지?”

의아한 표정으로 인형 이곳저곳을 살피며 거칠게 다루는 그의 손길. 제아무리 인형이라고는 하지만 모든 감각을 느낄 수 있는 용용이는 드래곤들의 가장 예민한 부위인 꼬리를 강하게 잡아당기는 낯선 인간의 행동에 꽥꽥거렸다.

[ 뭐야! 이 망할 인간은! 어딜 만져! 악! 거긴 안 돼! ]

하지만 그런 용용이의 비명을 들을 수 없는지 전혀 거침이 없는 손속으로 용용이를 한참이나 능욕(?)하던 그는 이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이야······. 철수인지 뭔지 하는 이 새끼는 진짜 미친 새끼였네. 학교에 무슨 이런 유치한 인형을 가지고 오냐? 무슨 5살짜리 애야?”

“킥킥. 그러니까 원석이를 건든 거겠지. 정신이 제대로 박힌 새끼였다면 괜히 그랬겠어?”

“하긴······. 다른 놈도 아니고 사대 중학교에서 원석이 그놈을 건들면 어떻게 되는지 모르는 놈은 없을 텐데 말이야.”

[ 원석? 설마 주인이 한 대 갈겼던 그 인간 말하는 거야? 너희들 설마 그 일 때문에······? ]

대충 무슨 상황인지 눈치챈 용용이. 하지만 그새 어디로 사라졌는지 주인이란 놈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고, 그런 와중에 이 세 명의 인간들은 재밌다는 듯이 킬킬거리며 자기들끼리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학주가 데려갔다는데 어떻게 할까? 이따 점심시간에라도 다시 와볼까?”

“야, 우리가 또 이런 미친 새끼 하나 때문에 여기 내려와야겠냐? 그거 민폐야 민폐. 여기 죄 없는 후배들이 우리 때문에 쉬는 시간에 숨도 못 쉬고 눈치 보고 있는 거 안 보여?”

3학년을 상징하는 푸른빛 명찰을 한 세 명의 불청객들. 그들의 갑작스러운 교실 난입에 가만히 자기 자리에 앉아 숨소리도 내지 않고 시선을 피하고 있는 다른 학생들을 돌아보던 그는 마치 이 상황을 즐기기라도 하듯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올 거면 본인이 직접 찾아오라고 해야지.”

완전히 엉망이 된 주인의 책상에 걸쭉한 가래침을 탁 뱉고 걸음을 옮기는 인간. 그리고 그의 손에 붙들려 어딘가로 끌려가는 용용이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로 외쳤다.

[ 야! 이······.인간!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 거냐! ]

어두컴컴한 가방 속에 내내 갇혀 있다 갑자기 이름 모를 누군가에게 납치당하고 있는 용용이. 하지만 그의 그 절박한 외침은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는 듯, 그 누구도 그의 외침에 반응하지 않았다.

[ 이 망할 주인 새끼야야아아아아아아아! ]

그렇게 판달리아의 최강자이자 고귀한 드래곤 로드였던 용용이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납치를 당했다. 일개 16살의 아무런 힘도 없는 인간 따위에게 말이다.

*

“그러니까······. 3학년 선배들이 와서 내 자리를 이렇게 헤집어놓고 용용이까지 가져갔다고?”

“어······.”

“왜?”

“나······난 잘 몰라.”

“그래? 정말로?”

우우우웅.

화사한 미소를 띤 얼굴로 부드럽게 물었지만, 그와 반대로 폭발적으로 반응하는 마나.

학생주임도 얼어붙게 만들던 그 마나의 강렬한 압박에 아이는 버티지 못하고 이내 자신이 목격한 바를 힘겨운 목소리로 토해냈다.

“그······. 원석이 이야기를 하긴 했는데······. 그게 다야. 난 진짜 몰라······.”

“원석이······?”

나한테 한 대 얻어맞고 병원 신세를 지게 된 원석. 안 그래도 학교에 오자마자 거의 반강제로 전학을 종용받고 온 상황이기에 또다시 튀어나오는 그의 이름은 내 심기를 거슬리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러고 보니 원석이 그 자식이 예전에도 무슨 이상한 패거리에 속해 있던 것 같긴 했는데······.”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사대 중학교 만이 아니라 강동 지역의 여러 중학교에서 좀 논다고 하는 무리가 한데 모여서 결성한 집단······. 속칭 ‘강동 연합’이라고 하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이상한 이름의 무언가가 있었다는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나는 고개를 저었다.

“어휴······. 하여간 이 나이대는 역시 안 된다니까.”

겉멋만 잔뜩 들어서 온갖 괴상한 기행을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저지르는 나이.

제아무리 호르몬의 노예가 되어 인간과 짐승, 그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시기라고는 하지만, 이런 식으로 남의 물건을 헤집어놓고 책상에 더러운 체액까지 뱉어놓고 간 것을 보며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니 무슨 짐승 새끼도 아니고 영역 표시야 뭐야? 왜 침을 뱉고 가는 건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참교육이 마려워지는 상황.

하지만 지금 당장 범인을 잡으러 쳐들어갔다가는 눈에 불을 켜고 내가 사고 치기를 기다리고 있을 학생주임이 신이 나서 춤을 출 게 뻔했기에 나는 책상을 대충 정리하고 가만히 앉아 생각에 잠겼다.

‘일단 용용이가 어디 있는지를 먼저 찾아야 하는데······.’

의문을 갖는 순간 자동으로 나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해답. 이런 상황에서 유용하게 쓸만한 마법이 떠오른 나는 피식 웃으며 눈을 감고 마나를 끌어 올렸다.

“스캔.”

우우우우웅.

아무도 들을 수 없는 나지막한 중얼거림에 학교 전체에 퍼져나가는 마나의 파동.

마치 잔물결이 일어나듯이 빠르게 사방으로 흩어져나간 마력의 파장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듯 모두가 태연한 얼굴로 수업을 듣고 있었지만, 나는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느껴지는 이질적인 기운 하나를 분명하게 찾아낼 수 있었다.

“찾았다.”

마나의 존재조차 알지 못하는 이 지구에서 유일하게 마력에 반응하는 개체인 용용이.

바로 위층의 어느 한 교실에서 그의 기운이 감지되는 것을 깨달은 나는 또다시 마나를 끌어 올려 그에게 메시지를 건넸다.

[ 야. 용용아. 들리냐? ]

[ 어! 주인! ]

처음으로 사용하는 정신 감응. 그 민감도를 조정하지 못해 순간적으로 들려오는 강렬한 용용이의 외침에 나는 황급히 마력의 강도를 조절하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 조용히 좀 이야기해라. 무슨 귀청 다 떨어질 뻔했네. ]

[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던 거야! ]

내가 말도 없이 사라진 와중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 쫑알쫑알 이야기하는 용용이. 그는 자신의 소중하고 은밀한 부위(?)들이 한 무리의 남정네들에게 어떻게 능욕당했는지 자그마치 10분이 넘는 시간 동안 과도할 정도로 상세하고 자세하게 묘사했다.

비록 의도한 건 아니지만 그를 내버려 두고 자리를 비운 내 잘못도 있기에 잠자코 그 불평을 들어주던 나는 도무지 끝날 기미도 없이 계속되는 징징거림에 결국 그의 말을 끊으며 물었다.

[ 네 꼬리가 어떻게 더럽혀졌는지는 이제 알겠으니까 그만 이야기하고······. 일단 그놈들이 원하는 게 뭐래? 도대체 너는 왜 가져간 거야? ]

[ 나도 그건 몰라. 그런데 딱 봐도 주인이 저번에 했던 짓 때문에 그거 복수하려고 벌인 것 같은데? ]

[ 그래······? ]

원석이 꾸민 짓인지 아니면 그의 절친한 친구들의 뒤틀린 우정으로 인해 비롯된 일인지 확실하지 않은 상황.

그렇기에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고심하고 있는 와중에 용용이는 나에게 한 가지 중요한 정보를 말해주었다.

[ 그런데 이놈들 이야기하는 거 얼핏 들어보니까 일반적인 수준으로 복수하려는 건 아닌 것 같던데? ]

[ 그래? ]

[ 어. 바로 방금 이야기한 건데 일단 주인을 끌어내고 난 이후에······. ]

듣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거로 생각했는지, 용용이 앞에서 자신들의 계획을 꽤 상세하게 이야기한 이들. 그리고 그건 전혀 평범한 중학생들이 할 법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 그러니까······. 나를 불러내서 일단 다리 몽둥이부터 부러뜨리겠다고 말했다고? ]

[ 어. 팔이나 다리든 상관없으니까 어디 하나는 못 쓰게 만들게 해야 한다는데? ]

[ 하겠다가 아니라 해야 한다고 했다고? ]

[ 누구인지 정확히 이야기하지는 않아서 잘 모르겠는데 일단 뭔가 사주를 받고 벌이는 짓 같긴 하더라. 마치 용병 같은 놈들이던데? ]

아무리 개념을 밥 말아 먹은 중학생이라고는 하지만 그런 이들에게조차도 선 넘는 짓거리를 작당하고 있는 이들. 가만히 생각해보면 아무런 안면도 없는 3학년 선배가······. 그것도 정학에서 풀리기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갑자기 찾아와서 이런 짓을 벌인다는 것 자체가 전혀 평범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 흠······. 원석이 녀석이 벌인 짓인가······? ]

머나먼 미래에는 결국 살인까지 저질러 집안 전체를 몰락시키게 되는 그.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갱생의 기회까지 친히 부여했지만, 그 잔혹한 성정은 어디 안 가는지 반성은커녕 오히려 선 넘는 복수를 계획한 것을 보며 나는 한 가지 인생의 진리를 떠올리며 씁쓸한 입맛을 다셨다.

[ 인간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고 하긴 하던데. 혹시나 했지만 역시 예상대로네······. ]

자기가 잘못한 건 생각 안 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라도 복수를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그. 그것도 본인의 힘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끌어들여서 일을 키우려는 것을 보며 나는 원석에 대한 처우를 결정했다.

[ 뭐······. 자기가 알아서 죽여달라는데 그걸 또 굳이 말릴 필요는 없겠지······? ]

[ 그건 뭐 알아서 하고······. 그보다 나 좀 데리고 가. 이 새끼 지금 내 배 위에다가 머리 처박고 자고 있다고! 침까지 흘려대고 더러워 죽겠어! ]

용용이를 베개로 삼아 단잠에 빠져 있는 듯한 납치범.

하지만 지금 갑자기 3학년 교실에 난입해서 용용이를 빼 올 수는 없었기에 나는 심드렁하게 그의 요청을 거절했다.

[ 나중에 데리러 갈 테니까 지금은 그냥 쥐 죽은 듯이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그 녀석들이 하는 이야기는 놓치지 말고 잘 주워듣고. ]

지금 당장은 아주 유용하게 도청기 역할을 해 줄 용용이.

그런 그를 일부러 내버려 두고 앞으로의 계획을 고민하던 나에게 그는 분노 섞인 목소리로 따져 물었다.

[ 이······. 야! 지금 당장 구하러 오라고! ]

[ 마나 부족해서 일단 연결 끊는다. 말썽 피우지 말고 얌전히 인질 역할 잘하고 있어. ]

[ 야! 야! 이 XXXX야! ]

정신 감응을 끊기 전에 들려오는 용용이의 분노가 느껴지는 괴성. 하지만 마력이 끊어지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온종일 시끄럽게 쫑알거리는 목소리가 사라지고 너무나도 조용해진 교실을 둘러보며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가끔은 일부러 납치당하게 내버려 두는 것도 유용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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