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18화.
한 달 만에 돌아온 학교.
하지만 교실에 들어선 나는 그 순간부터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반 친구들의 시선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었다.
“야. 쟤 맞지?”
“맞는 거 같은데?”
“대박······. 요즘 뮤튜브에 뜨는 그 미친놈이 우리 학교 얘였어?”
구체적인 신상은 밝힌 적은 없었지만 당당하게 얼굴을 까고 뮤튜브를 찍었기에 내가 지난 한 달 동안 벌였던 기행은 이미 온 학교에 소문이 퍼져나갔는지 나를 보러 다른 반에서까지 찾아와 한 번씩 보고 갈 정도였다.
“스마트폰에 미쳐 사는 세대라서 그런가? 생각보다 반응이 빠르네.”
구독자 200만의 대형 채널인 귀인 열전에 출연해 강렬한 어그로를 끌었다 하더라도 아직은 그 유명세가 뮤튜브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 인터넷에서나 시끄럽지 현실에서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나를 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직은 말이다.
하지만 이 학교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삽시간에 유명인이 되어버린 나. 시간이 지날수록 교실 밖에 서성거리는 이들의 수가 줄어들기는커녕 점점 늘어나는 것을 보며 이상함을 느낀 학생 주임이 오고 나서야 이 혼잡스러운 사태는 비로소 진정될 수 있었다.
“이것들이! 아침부터 왜 몰려들고 난리야? 당장 자기 교실로 안 돌아가?”
학생 주임의 불호령에 순식간에 빠져나가는 학생들. 그리고 겨우 막혀 있던 앞문으로 들어선 서슬 퍼런 눈빛으로 교실 안을 쓱 둘러보더니 정확하게 나와 두 눈을 마주치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야! 김철수! 너 지금 바로 교무실로 따라와라.”
“저요? 왜요?”
“이 새끼가······. 따라오라면 따라올 것이지 뭔 말이 그렇게 많아! 어?”
자신의 말에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되묻자 급발진하며 소리치는 학생 주임. 교실에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그의 고함에 평범한 중학생이라면 찔끔하며 지레 겁을 먹고 얌전히 따라갔겠지만, 겉모습과 다르게 알맹이는 40살 먹은 중년의 아저씨였기에 나는 여유 가득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러죠. 뭐.”
“······.”
그런 나의 반응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똥 씹은 표정으로 노려보던 학생 주임. 하지만 그는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분노를 꾹 누르고는 이내 휙 하고 돌아서서 성큼성큼 먼저 교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뒤에서 흥미롭게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내 눈빛을 보지 못한 채 말이다.
*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하지. 너, 전학 가라.”
“네? 전학이요?”
이제 1교시 수업이 시작될 때가 되어서 전부 수업에 들어가서 텅 비어 있는 교무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난 학생 주임은 자리에 앉자마자 나에게 종이 하나를 들이밀며 말했다.
“그래. 전학. 거기 동의서에 네가 직접 작성하고 서명만 해. 그럼 나머지는 알아서 처리해줄 테니까. 강제 전학도 아니고 자발적으로 전학 가는 거로 처리될 예정이니 전학 가더라도 다른 학교에서 적응하는 데는 큰 문제 없을 거다.”
“흐음······.”
강제 전학이 아니라 일반 전학으로 처리할 테니 별 것 아니라며 일단 쓰기만 하라는 듯이 이야기하는 학생 주임. 어수룩한 중학생 수준의 사고방식이었다면 이 상황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그가 건네는 펜을 집어 들었겠지만, 나는 그의 태연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 뒤에 숨겨져 있는 미묘한 눈빛을 보고는 진한 미소를 지으며 그가 건넨 종이를 손가락으로 집어 들었다.
“재밌네요. 선생님.”
“뭐······?”
“이미 1달 정학을 먹이면서 제가 저지른 잘못에 대한 징계는 모두 끝이 난 거로 아는데요? 다 끝난 사안을 가지고 이런 식으로 전학을 보낼 거였다면 애초에 징계를 먹일 때부터 강제 전학 조치를 하시지 왜 정학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저를 불러서 이런 종이를 들이미는 거죠? 전혀 일반적인 상황은 아닌 것 같군요.”
“······.”
내 말에 학생 주임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동안 경험해왔던 수많은 중학생과는 전혀 다른 나의 반응에 당혹감과 혼란스러움이 섞인 눈빛으로 가만히 나를 바라볼 뿐.
“선생님도 말은 안 하시겠지만 정말 제대로 똥 밟았다고 생각하고 계실 거예요. 하필이면 학생 주임을 하고 있을 때 학교에서 국회의원······. 그것도 4선이나 하는 유력 정치인의 자제가 학교 폭력의 피해자가 되다니 말이에요. 제가 만약 기자라고 한다면 이렇게 군침이 절로 도는 뉴스도 없을 거 같아요. 제목도 엄청 자극적으로 괜찮게 뽑을 수 있잖아요? ‘유력 정치인의 자제. 학교 폭력의 가련한 피해자’ ‘심각해지는 학교 폭력 문제. 학교는 무엇을 했는가?’ 이야······. 이거는 누구라도 클릭 안 해보고는 못 참을 것 같은데요?”
흠칫.
내 말에 자기도 모르게 일순간 반응하는 학생 주임.
그도 그럴 것이 학교에서 이런 문제가 발생했을 때 가장 꺼리는 것이 언론에 오르내리고 방송에 보도되는 상황이었다. 조용하게 처리할 수 있는 문제도 대중에게 퍼지는 순간부터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플 정도로 모든 일 처리가 복잡해지고 책임의 화살이 누구에게로 돌아가게 될지 모르니 말이다.
“그런데 말이죠······. 이상할 정도로 조용해요. 왜냐면 원철이 아빠도, 그리고 선생님도, 이 학교의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죠. 저한테 맞은 그 원석이는 누가 봐도 ‘와······. 쓰레기네’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개차반에 물리 치료가 시급한 개념 머리 없는 일진 놀이에 빠진 중딩 새끼라는 사실을요.”
학교 폭력의 피해자로 포장되어 있었지만, 사실 학생 주임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오랜 시간 동안 원석이 저질러왔던 그 집요하고 악랄한 괴롭힘과 그로 인해 고통받아왔던 피해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그래서······. 이런 식으로 저를 보내려고 하시는 거겠죠? 괜히 강제 전학을 보내겠다고 방방 뛰었다가 혹시라도 다른 학교에도 관련 소문이 퍼져나가고. 그러다가 냄새를 맡은 기자들이 캐고 다니다가 철부지 중학생 녀석들 입에서 무슨 이야기가 흘러나갈지 모르니까 말이죠.”
“이 새끼가······. 야! 김철수!”
정곡을 찔린 듯, 잠자코 내 말을 듣다 벌컥 화를 내며 언성을 높이는 학생 주임.
하지만 나는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마나를 작게 끌어 올리며 차갑게 말했다.
“그 입 다물고 가만히 들으세요. 선생님.”
우우우웅.
나의 의지에 따라 반응하며 공명하는 마나.
2 서클에 올라 이전보다도 더 강렬하게 퍼져나가며 교무실 전체를 장악해나가는 그 마력의 움직임에 마나 저항력이라고는 개미 눈곱만큼도 없는 학생 주임은 완전히 새하얗게 변한 얼굴로 얼어붙었다.
“저한테 먹인 징계에 대해서는 이해해요. 전후 사정이 어떻게 되었든, 분명하게 제가 잘못한 일이고 또 그로 인해서 처벌받는 것도 정당하다고 생각하니까요.”
물론, 그걸 계기로 막장이 되어버릴 원석의 미래가 조금이라도 바뀌길 바라는 나의 깊고 숭고한 마음에서 비롯된 훈육일 뿐이었는데 그걸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억울하긴 했다.
“그런데 말이죠······. 민식이가 2학년이 되어 수개월 동안 받아왔던 괴롭힘에 대해서는 왜 어떠한 처벌과 조치가 뒤따르지 않고 있는 걸까요? 아니, 왜 제가 없는 시간 동안 오히려 민식이가 다른 학교로 전학 갔다는 엿 같은 결론이 나 있을까요. 저한테 지금 하는 것처럼 민식이한테도 이딴 수작질을 부리셨나 보죠?”
내가 없는 한 달의 시간 동안 피해자인 민식이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버린 황당한 상황.
처음에는 그 소식을 듣고 그가 왜 그런 짓을 벌였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오자마자 나를 불러내 전학 서류를 들이미는 학생 주임을 보며 이제는 어떤 식으로 일이 흘러갔는지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이래서 제가 소위 권력자라는 이들을 혐오하는 거예요. 한낱 한 세기도 살지 못할 거면서 그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 온갖 더럽고 추잡한 짓은 골라서 다 하고 다니죠. 자신은 깨끗한 척, 오만 가식만 다 떨고 다니고 위선자들.”
감히 중학생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염세적이고 냉소적인 눈빛과 미소. 이 세상의 종말을 온몸으로 뼈저리게 경험하고 온 나의 그 싸늘한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그 강렬한 혐오의 감정에 학생 주임은 완전히 얼어붙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너······. 뭐야?”
아까의 능글맞은 미소는 어디 가고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변한 나의 기세에 완전히 압도당한 것 같은 그. 고작 중학생 따위한테 이렇게까지 두려움을 느끼는 자신의 본능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 연신 혼란스러움과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찌이이익.
반으로 찢어진 전학 신청서가 팔랑거리며 학생 주임의 앞에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나는 가볍게 미소 지으며 보란 듯이 말했다.
“선생님이 하신 제안은 거절하죠. 원석이 아빠 때문인지, 아니면 교장 선생님이 시켜서 이러시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저를 어떻게 할 생각은 지금이라도 접는 게 좋을 거예요. 저도 여기를 다니고 싶어서 다니는 게 아니지만, 이런 식으로 쫓겨나고 싶지는 않거든요.”
예의범절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오만하고 거만하기 짝이 없는 태도.
학생 주임의 불같은 성향을 생각한다면 그냥 귀싸대기를 한 방 날려도 이상하지 않을 법한 상황이었겠지만, 어느새 교무실에 가득 퍼져 있는 농밀한 마나는 감히 그러한 생각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그를 강력하게 압박하고 있었다.
우우우웅.
“으으······.”
숨조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로 잔뜩 굳어 있는 학생 주임. 완전히 새하얗게 질려 창백해진 얼굴로 겨우 신음하며 끙끙거리는 그를 보며 나는 미소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1교시 끝나는 종도 쳤으니 이만 교실로 돌아가 보도록 할게요. 선생님. 아무쪼록 앞으로 서로 마주치지 말고 조용히 지내보자고요.”
드르륵.
우두커니 서 있는 학생 주임을 뒤로 한 채 교무실을 나선 나는 영문도 모르고 날뛰고 있는 학생들을 바라보고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캬. 역시 마나가 좋긴 좋구나.”
그 험악하고 거대한 러시아 불곰 같은 학생 주임조차도 꼼짝하지 못하게 만든 마나의 힘.
마나 저향력이라고는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이 세계에서 마나는 모두에게 과한 수준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고작 1 서클 마법인 슬립에 조금도 버티지 못하고 곧장 잠에 빠져버리는 아영이나.
아무런 방향성 없이 나의 의지만이 담겨 있는 마나에 완전히 얼어 붙어버리는 학생 주임이나.
신체적, 정신적 성장과 성숙이 완전히 끝난 성인들조차도 감히 어쩌지 못하는 것은 분명 용용이가 살아가던 판달리아의 세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이 지구만의 특별한 반응들이었다.
“이거······. 생각보다 일반적인 수준의 위협들은 지금도 충분히 제압할 수 있겠는데?”
마법과 마나에 대한 저항력이 조금도 없기에 과할 정도로 민감하게 마나에 반응하는 이 세계의 생명체들. 이 특성을 잘만 활용하면 고작 2 서클 마법 중에서도 충분히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는 것들이 머릿속에 여러 가지 떠올랐기에 나는 절로 흘러나오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교실로 향했다.
“용용이한테 가서 말해줘야겠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가방 속에서 연신 시끄럽게 꽥꽥거리며 발광하던 용용이.
교실에 가면 꺼내준다고 약속했지만 학생 주임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새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을 떠올리며 교실로 돌아온 나는 아까와는 완전히 달라진 내 책상을 보며 멈춰섰다.
“어······? 뭐냐?”
분명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던 내 책상.
하지만 누가 그랬는지 서랍 안의 모든 내용물이 바닥을 구르고 있고 활짝 열려 있는 가방은 책상 위에 마치 보란 듯이 열려 있었다.
그리고······. 그 가방 안에는 본래 있어야만 할 존재가 사라진 상태였다.
Made in China & 판달리아.
중국산 짝퉁 아기용 똘리 인형이자 고귀한 황금의 일족. 드래곤 로드 페르도스.
그가 감쪽같이 누군가에게 납치당한 것을 보며 나는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뭐지? 신종 자살법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