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16화. - 수정본.
아직 사람들이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이른 새벽.
하지만 나는 요즘 매일같이 그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 산책을 하러 집 근처 공원으로 향했다.
풀벌레들의 울음소리가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만이 들려오는 조용한 시간.
사람 한 명 찾아볼 수 없는, 그저 나무와 여러 식물만이 반겨주는 한적한 산책로에서 나는 다시 한번 주변을 살펴보고는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하게 눈을 감았다.
“쓰읍.......”
들이마시고.
“후우우우.......”
내쉰다.
겉으로 봤을 때는 그저 숨쉬기 운동을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나는 온 정신을 집중해서 심혈을 기울이며 숨을 들이마시고 또 내쉬기를 반복했다.
“후. 하. 후. 하.”
마나 심법(Mana Breath).
대기 속에 퍼진 마나를 호흡을 통해서 걸러내고 몸속에 축적하는 가장 단순하고도 효율적인 마나 축적법. 이 방법을 통해서 지독히도 적은 농도의 마나를 모으기 시작한 지도 벌써 한 달이 지나가고 있었지만, 그 양은 정말 처참하다고 해야 할 정도로 적었다.
[ 그나마 식물들로 둘러싸인 공원에서조차 이 정도 수준이라니. 진짜 심각할 정도로 적네. ]
그나마 아스팔트와 삭막한 도시 한 가운데에서 유일하게 마나를 생성해내는 공원. 하지만, 이미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지고 인공적으로 만들어지고 또 조성된 이 미약한 자연이 뿜어내는 마나의 양은 판타지 세계 출신인 용용이의 눈에는 도무지 성이 차지 않았다.
“어쩔 수 없잖아. 네가 살던 곳과 다르게 이 지구는 이미 수천 년 이상이나 과학 기
술에 찌들어서 모조리 다 헤집어 놨거든.”
마법을 기반으로 한 판타지 세계의 문명과 다르게 과학 기술을 기반으로 발전하고 진화한 현실 세계. 어느 개념이 더 우월하다고 감히 말할 수는 없으나, 기본적으로 인류 문명의 번영과 발달 수준만을 가지고 이야기한다면 분명, 그것은 이 지구가 압도적이었다.
“전에도 한번 말했었지만 원래 여기 세상의 인간들은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봤었거든. 물론 요즘은 좀 사람들 의식이 달라졌다고 말하기는 하지만 하도 약탈적으로 자원을 채굴하고 개발에만 치중하다 보니까 당연히 네가 살던 곳보다는 많이 황폐화할 수밖에 없지. 그래도 그 덕분에 이렇게 윤택한 생활도 가능한 거야.”
[ 그건 그렇긴 하지.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부랑자조차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밥은 먹고 다닐 수 있다니. 그게 맞는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확실히 판달리아보다는 훨씬 더 여유가 있는 세상인 건 맞더군. ]
먹을 것이 부족해 서로를 죽이고, 병에 걸리면 제대로 치료할 방법이 없어 그대로
죽어야만 하는 가혹한 판달리아의 세상. 산적과 몬스터에게 언제 죽을지 몰라 두려움에 떨며,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노예라는 신분의 사슬 속에서 언제나 고달프게 살아가는 인간들이 대부분인 것과는 다르게, 이 지구의 인간들은 하나같이 굶주리고 있는 이가 없었다.
“에휴······. 그러면 뭐 하냐? 어차피 20년도 못 버티고 망해버릴 세상인데.”
지구의 한계를 넘어서는 초과 인구와 무지막지한 형태로 벌어지는 자원 낭비와 에너지 사용. 그야말로 자연 생태계와 질서를 붕괴시켜버릴 정도로 강해지는 이 인류 문명의 영향력으로 인해서 결국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게 되는 현재 시스템의 한계를 직접 경험하고 왔기에 나는 용용이의 말에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현재 이 세계는 심각한 문제에 직면해 있어. 인간 대부분이 지속 불가능한 풍족한 생활을 영위하며 그 모든 것들을 당연시하지. 마치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그 풍요와 사치가 언제고 무한하고 영원할 것이리라는 거대한 착각 속에 빠져서 말이야.”
태생적으로 과학 문명이 가지고 있던 한계. 이전에는 명확하게 보지 못했지만, 마나의 힘을 깨우치고 인식한 나는 지금은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우우우웅.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처럼 신음하는 이 자연과 행성의 소리가 말이다.
“그러니까 내가 하루라도 빨리 번듯한 수준의 마법적 성취를 이룰 수 있도록 일정 경지에는 도달해야 한다는 말이지. 이 인류가 또다시 종말 엔딩을 맞이하기 전에 말이야.”
자원 고갈로 인한 에너지 부족과 식량 문제.
기후 변화와 쓰레기 문제. 그리고 이어지는 수많은 자연재해.
내전과 폭동. 그리고 전 세계로 겉잡을 수 없이 번져나가는 세계대전까지.
어느 작고 사소한 하나의 사건을 시발점으로 도미노처럼 연이어 쓰러지며 인류 문명 전체를 자멸하게 만드는 결말을 가져오기까지. 그 모든 과정을 완전히 상세하게 알고 있지는 않지만, 전체적인 흐름 정도는 알고 있기에 내 얼굴에는 확고한 각오가 어려 있었다.
우우우우웅.
나의 의지에 따라서 전신을 맹렬하게 흐르는 기운. 마나.
신체의 주요 혈관을 따라 움직이는 그 강렬한 푸른빛의 에너지는 내 심장을 중심으로 고리를 형성하며 맹렬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위이이이잉.
나의 의지에 따라서 점점 속도가 붙으며 늘어나는 회전력과 함께 강하게 증폭되는 마력. 그리고 그것을 보고 있던 용용이는 내가 무슨 짓을 하려는 듯 눈치챈 듯, 엄청나게 당황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 뭐······. 뭐야? 주인······. 설마 거기서 새로운 서클을 만들겠다고? ]
“어. 왜?”
[ 너무 빠른 거 아냐? 아니, 고작 한 달 만에 어떻게······. ]
아무리 천재라고 불리는 인간이라 할지라도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1 서클을 형성하는 데에는 최소 3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마법과 마나에 대한 이해와 통찰의 문제가 아니라, 단순히 마나를 인식하고 축적하여 육체에 그 마나를 안착할 수 있도록 하는 절대적이고 물리적인 한계 때문에 아무리 경지를 넘어설 수 있는 깨달음을 얻고 모든 지식과 개념을 이해하고 있다 하더라도 단기간의 폭발적인 경지의 상승은 불가능했다.
[ 그렇게 무리하다가는 주인의 육체에 어마어마한 타격이 가. 그렇게 단기간에 마나에 적응할 틈도 없이 심장에 대량으로 마나를 받아들이게 된다면 곧장 마나 폭주로 이어져 한순간에 비명횡사하게 된다니까? ]
그렇기에 지금 내가 하는 이 기행이 그저 경악스러운 신종 자살법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듯한 용용이. 그는 연신 내가 하려는 일을 멈추게 하려는 듯 다급하게 소리쳤다.
[ 주인이 이미 마법에 대해서 다 알고 있는 건 알겠는데, 그래도 너무 성급해. 최소한 1년 이상은 차근차근 신체를 적응시키고 최소한 안정적인 수준으로 마나를 쌓은 다음에······. ]
하지만, 나는 그런 용용이의 말에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너······. 아직도 나를 무시하는구나?”
[ 뭐······? ]
“네가 말한 그것들은 마나의 통제와 컨트롤이 미숙했을 때 벌어지는 일이잖아.”
그 무엇보다도 순수하고, 자유롭고, 또 강력한 에너지원인 마나.
하지만 조금이라도 통제에 벗어나면 그 강렬한 에너지는 심장을 비롯해 연약한 육체의 모든 내부 장기와 혈관을 찢어발기는 끔찍한 흉기가 될 수 있는 그야말로 언제 터질지 모르는 끔찍한 시한폭탄이 될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일반적인 마법사들은 본능적으로도 의도적으로도 마나를 움직일 때 동시에 신체 전체에 마나를 덧씌워서 내부 장기를 보호하지. 혹시라도 마력 운용에서 실패했을 때 치명적인 부상이나 타격을 입지 않기 위해서 말이야.”
조그마한 상념이나 외부 충격 속에서도 언제나 흔들릴 수 있는 집중.
그렇기에 마법 사용은 언제나 신중해야 하는 것이었고 특히 축적된 마나를 전부 움직이는 서클의 형성과 같은 위험한 작업은 섣불리 하는 일이 아니었다.
물론, 그 모든 가정은 나와는 관련 없는 이야기였지만 말이다.
위이이이이이잉.
그 어떤 보호 수단도, 사전 작업이나 준비도 없이, 날것 그대로 나의 심장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하나의 서클. 자그마치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심혈을 기울여 모아두었던 그 모든 마나가 미친 듯한 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하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 이럴 수가······. ]
마치 원래 그랬다는 것처럼 반으로 갈라지며 새롭게 형성되는 또 다른 마력의 띠.
기존의 서클이 가지고 있던 뚱뚱하고 두툼했던 두께는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홀쭉해졌지만, 새롭게 만들어진 서클과 함께 회전하며 증폭되는 마력의 힘은 분명 이전과는 다르게 최소 몇 배는 더 강렬해진 출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우우우우웅.
반으로 분열해서 두 개로 나누어진 서클. 그리고 내 의지에 따라 천천히 느려지며 미친 듯한 기세로 들끓던 마나가 완전히 평상시의 모습으로 다시 안정을 되찾자 나는 눈을 뜨며 히죽 웃으며 말했다.
“2 서클 형성 성공.”
[ 방금 그거······. 도대체 어떻게······. 한 거야? ]
“뭐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신음하는 용용이. 그런 그의 물음에 나는 전혀 모르겠다는 듯, 순진한 얼굴로 되물었지만, 그는 심각한 어조로 혼잣말을 하듯이 중얼거렸다. ]
[ 주인이 마법에 관해 전지의 권능을 가지고 있다는 건 알겠어. 하지만 그거랑은 별개로 방금의 그 마나 통제력과 운용력은······. 고작 인간의 육체나 정신력 따위로는 보여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야. ]
일만 년의 가까운 수명을 살아오며 수많은 재능 넘치는 인간들을 봐 왔던 용용이. 그렇기에 그는 그 누구보다도 확신해서 말할 수 있었다. 방금 주인이 보여줬던 그것은 어떤 인간도······. 심지어 자신조차도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고 정밀했던, 그야말로 그 누구도 감히 구현할 수 없는 마력 운용이라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그의 심각한 물음에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냥 했는데?”
[ 뭐······? ]
“그냥 했다고.”
그냥.
가장 간단하면서도 제일 짜증 나는 대답.
누가 봐도 경악할 수준의 일을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해 놓고 스스로 자각조차 하지 못하는 그의 모습에 용용이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무어라 하려고 했지만, 철수는 전혀 듣지 않고 있었다.
[ 그걸 지금 말이라고······. ]
“아. 몰라. 넌 무슨 숨 쉬는 걸 어떻게 하는지 설명하냐? 그냥 이 정도면 서클 하나 만들 수 있겠다 싶어서 한 거지.”
[ ······. ]
내 말에 침묵하는 용용이.
그리고 그는 진심과 비아냥을 담아 한 마디를 툭 던졌다.
[ 주인은······. 진짜 내가 장담하는데 사상 최고의 마법사가 될지는 몰라도 역사에 다시 없을 최악의 스승이 될 거다. ]
“뭐래. 내가 얼마나 잘 가르치는데.”
그 누구도 불가능한 일을 너무나도 당연한 듯이 해내면서 다른 이들에게는 왜 이것도 못 하냐며 추궁하고 질책할 타입.
이런 재수 없는 인간한테 마법을 배워야 할 다른 인간들을 생각하며 용용이는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애도를 표했다.
“쩝······. 그래도 이렇게 한 달이 지났네. 생각보다 시간 빠른데?”
현재 시간 7시 30분.
어느새 슬슬 출근 시간이 되어가자 공원 너머로 보이는 수많은 차량의 행렬을 바라보며 나는 지나간 한 달의 시간을 빠르게 돌이켜보며 감상에 젖어 들었다.
“그동안 참 좋았는데······. 그렇지 용용아?”
[ ······. 그 정신 나간 복장으로 인간들 앞에서 강제로 치욕 당하는 게 좋은 거라면, 나는 빼 줬으면 좋겠다. ]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빠짐없이 카메라 앞에 나서서 그 정신 나간 복장으로 당당하게 온갖 어그로를 끌어대는 나와 함께 채널의 마스코트 역할을 하며 아주 화려한 역할을 했던 용용이. 하지만 그것을 별로 즐기지 않는 것 같은 그의 반응에 나는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
“왜. 너를 위한 팬아트도 팬들이 그려줬는데 그러면 섭섭하지.”
용용이를 위해서 그려준 누군지 모를 익명의 팬아트.
원작자가 극대노하며 고소장을 작성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순수한 동심 가득한 아기용 똘리를 나에게 차마 입으로 말할 수 없는 추잡하고 더러운 짓(?)을 당하는 그림을 그려놓은 것을 이야기하자 용용이의 서슬퍼런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 다시 이야기하지만, 주인은 반드시 그 추악한 그림을 그린 인간을 잡아내서 나를 대신해서 복수해야 한다. 감히 고귀한 나의 영혼을 모욕한 그런 새끼는 잡아다가 XXXXX하고 XXXXX해서 XXXXXXXX해 버려야······. ]
용생을 걸고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보복을 하겠다며 발작하는 용용이.
그런 그의 반응에 나는 피식 웃으며 그를 가방에 집어넣었다.
지이이익.
그리고 나무 사이로 비추는 햇살을 올려다보고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자······. 그럼 오늘로 정학도 풀렸으니 이제 다시 학교로 가 보실까?”